누가복음 22:1~6 / 유다의 배반을 당하신 예수님
(눅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눅 22: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눅 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눅 22: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눅 22: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눅 22: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은혜를 주었지만, 그들은 거짓으로 자신의 기득권과 소망을 버리지 못하여 예수님을 배신하여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사건을 통하여 더 놀라운 구원역사를 바라봅니다.
1~2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430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떠나온 날입니다. 바로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로 나온 날입니다.
하나님은 9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쳤지만 그래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에 사는 모든 장자를 치시고자 하였습니다.
이날에는 이집트에 있는 모든 장자는 죽임을 당합니다. 이집트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흠 없는 어린 양을 죽여서 그 피를 문설주 좌우 인방에 바르면 죽음의 재앙이 넘어간다는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유월(踰越)은 한자어로 넘을 유, 넘을 월로 예를 들면 담을 넘어가는 것을 월담이라고 합니다.
유월절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넘어가는 절기입니다.
죽음이 넘어가고 재앙이 넘어가고 저주가 넘어가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서 7일 동안을 무교절 절기로 지킵니다.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일주일간 먹기 때문에 없을 무, 누룩교 자를 써서 무교절(無餃節)이라고도 합니다. 이날에 누룩 있는 떡을 먹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정도로 엄하게 누룩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룩은 부풀게 하는 것으로 가식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유월절은 거짓된 죄를 회개하고 진실하고 순수해지는 날입니다.
그들은 노예살이 하면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노예근성이 몸에 베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의존적이며 음란하게 살았습니다. 주인의 눈치를 보며 거짓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감사하며 자립적이고 거룩하게 살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무엇보다 진실하게 살고자 결단하는 날입니다.
누룩 없는 떡은 또한 맛없는 떡으로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쓴 나물과 함께 누룩 없는 떡을 먹습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그들이 출애굽 하기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노예살이하던 고난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이 바로 왕 밑에서 살 때 그들은 채찍과 막대기에 맞았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인권이 없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의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서 남자는 하수에 던져서 죽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통하던 자를 크신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하나님을 알기 전의 고난을 기억하며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거룩한 날에 어떻게든지 죄로 죽어가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자 연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죽일 방책을 연구하였습니다.
무슨 연구할 것이 없어서 예수님 죽일 방책을 연구합니까?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존경하자 백성들의 원성을 사지 않고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월절에 죽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유월절에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3~6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입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열두 사도로 택함을 받은 큰 특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물질을 관리할 만큼 물질 관리에 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인정하여 재정부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여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도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지 않고 종교 지도자들과 싸우는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지상 메시야 왕국의 꿈이 깨어져 실망했습니다. 그는 향유 붓는 여인을 책망하다가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쓴 뿌리를 품었습니다. 물질을 만지다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이런 가룟 유다를 회개시키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도 나는 아니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회개치 않고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유다의 마음에 사단이 들어가니 그는 사단이 시키는 대로 예수님을 팔고자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죽일 방책을 의논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기뻐하여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로 은 삼십을 가룟 유다에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는 무리가 없을 때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3년 동안 말씀을 주시고 섬겨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를 배신하는 그는 배은망덕한 죄인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만 못한 자입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가룟 유다의 공통점은 둘 다 거짓된 것입니다.
사단은 거짓된 자들을 통하여 일gkq니다. 이런 거짓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들과 종교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시기심도 있고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로 세상 적인 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였습니다.
그들이 진실하였을 때 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