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교회가 안수를 남발할수록 복음의 권위는 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안수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에 따라 본절의 안수에 대해, 범죄한 후 회개한 장로에 대한 안수라는 견해와, 직분자를 세우기 위한 안수라는 견해로 나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신약에서도 직분자를 위한 안수의 예들(딤전 4:14 ; 딤후 1:6) 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대체적으로 두번째의 견해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러한 권면을 할 당시는 복음의 초창기로서, 많은 일꾼들이 필요한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그의 신중한 자세와 앞을 내다보는 긴 안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직분자, 특히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할 목회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대표하는 일종의 공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 직분자를 잘못 세우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와 복음에 미치는 피해는 참으로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앞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자세하게 언급함으로써 (3:1-13) 이러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계의 현실을 보면 이와는 사뭇 동떨어진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이고 있어,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일례로 먼저 교회 안을 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직분을, 교회 정치의 한 수단으로 삼곤 합니다. 그래서 불만이 많은 성도를 무마하기 위해서나, 혹은 어느 성도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얻기 위해, 자질과는 상관없이 교회 직분을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편 더욱 심각한 것은 목회자 직분의 경우입니다. 즉 각 교단이나 교파에서는 일종의 세력 확장을 위해, 각기 신학교를 세워, 거의 무제한의 목회자를 양산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처에 도저히 신학교라고 볼 수 없는 무인가 신학교가 난립해 있고, 심지어는 이러한 과정까지 생략하고 안수하는 경우조차 있어, “비행기를 탈 때에는 평신도였는데, 내릴 때에는 목사가 되어 있다”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여러분, 이는 세상의 물량주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계속하면 결국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복음과 교회, 더 나아가 목회자 자신들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수많은 무인가 신학교를 보며, 복음과 신학의 수준을 평가할 것이고, 또 남발된 안수를 통해 직분을 받은 자들이 각종 불미스러운 행위를 함으로써, 결국 경멸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목회자와 교회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가장 무서운 범죄라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값없이 주셨다 하여, 직분과 안수까지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복음과 말씀이 귀한 만큼, 그를 위한 직분을 귀히 여겨, 직분자를 세울 때에는, 한없이 두려운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말씀과 진리에 합당한 자들만을 바르게 임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권위가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늘 힘써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