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아 영가천도 영험담 모음
1.
김 명자(가명)씨는 타고난 미모에 지성미마저 넘쳐 흘렀는데, 성격이 좀 까다로워 결벽증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결혼하기 2년 전쯤 한 청년의 구혼을 거절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입맞춤하고 포옹하는 등의 사랑의 행위가 매우 추하게 여겨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 청년에게 거의 겁탈당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그 자리를 벗어났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씨의 부모가 서둘러 지금의 남편과 중매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그 청년은 어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해왔다.
"당신 남편에게 과거가 있는 여자라고 말하겠다. 어디 잘 사나 두고보자."
이런 상황에서 어찌 마음이 편했겠는가? 김씨는 그 때문에 남편과의 잠자리마저 여의치 못해 거의 의무로 여기게 되었고, 결혼후 1년쯤 지났을 때는 신경쇠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체중이 겨우 40킬로그램 미만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병원에 다니던 김씨는 그 사이에 임신중절을 한 번 했다. 남편과 시부모가 극진히 간호하여 건강이 다소 회복되기는 했지만 왠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不貞부정의 상징처럼 여겨져 그 후에도 임신하면 곧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중절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두 차례나 했다.
결혼 생활이 4년째 접어들면서 차차 부부생활에도 익숙해진 김씨는 아기를 하나 낳았다. 그녀는 이제야말로 마음의 병도 없어지고 몸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6년째가 되자, 밤에 악몽을 꾸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자 몸에 아프지 않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러다가 "아가야, 용서해다오" 읽고는 묘각 스님에게 연락을 드린 후 찾아와 의논한 끝에 시댁과 남편 모르게 수자령을 천도하기로 했다.
3개월에 걸쳐 방생을 세 번했고, 처음 방생한 날로부터 100일동안 지장보살염불을 했다. 세 아이를 지워버린 사실을 지극히 참회하면서 하루에 1만번씩 지장보살을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째 접어들자 악몽이 차츰 사라지고 입맛도 생겨 마침내 건강도 회복되었다. 그러자 기피하던 잠자리도 즐겁게 변해 남편과의 금실도 좋아졌다.
그 당시 김씨는 임신 8개월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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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각 스님은 어느 촌로로부터 한 번은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받으셨다고 한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아가야, 용서해다오."를 읽고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나이 69세, 안 사람의 나이는 60세로 농촌에서 어렵게 지내는 농군입니다. 자식이 열이나 되는데, 85년 4월초에 큰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치어 발을 부러뜨려,없는 살림에 논밭을 팔아 합의를 보고 수습을 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 해 가을, 안사람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은 정신이상이 고질이 되어 혼자 지껄이고 웃기도하며 청승맞게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사람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는 남편이 이웃집 아낙네와 통정을 했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다니기도 했다. 처음엔 미친 소리로 치부하던 동네사람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촌로는 딱 죽고 싶은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잡신이 씌인게 아닌가해서 푸닥거리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다고한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돌이켜보니, 20여년 전에 자식은 많고 살림은 어렵고해서 6개월짜리 태아를 낙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2개월 된 아이를 남모르게 지워버린 일도 있습니다. 스님께서 쓰신 책을 읽고 혹시나 그 아이들의 靈障영장인가해서 부끄럼을 무릅쓰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올바른 하교를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편지를 받고 전화를 걸어 그 촌로를 상경하게하여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촌로는 집안이 너무 어려워 서울오는 차비까지 이웃에서 간신히 빌려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튿날 스님이 두 아이의 불명을 짓고 천도할 준비를 하자, 촌로는 아무 준비없이 왔으니 일단 그냥 내려가겠다고 자리를 뜨려했다.
촌로의 사정을 이미 알고 계셨던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제자인 제가 돈이 없다고 천도를 안 해드리겠습니까? 딱한 일을 보고 외면한다면 어찌 불제자라 하겠습니까? 아무 걱정마시고 천도나 정성껏 하십시오."
천도재가 끝나자 스님은 촌로에게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고 츰부 다라니를 외게했다. 반 년쯤 후 촌로가 찾아와 집사람의 이상한 증세가 사라지고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하고는 그 동안 빚을 진 것 같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하면서 주섬주섬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어느덧 그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있었다.
스님 역시 눈물을 훔치며 공양주보살에게 촌로가 가져온 곡식을 깨끗이 씻어 오게해서 불단에 올리고는 함께 예불을 올리셨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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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당시 23세의 정이(가명)라는 여인이 편지를 보내 스님에게 상담을 청했다.
그 결과 그녀는 무려 30명의 수자령을 천도했다.
아니 30명이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정이는 가난한 어촌에 태어나 중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보려고 야학에도 열심히 다니는 소녀였다. 그다지 미인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천성이 밝고 붙임성이 좋아 공장의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어느해 여름 야유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소 잘알고 지내던 주임과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정이는 그날 술을 처음 먹어보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한다. 정신이 깼을 때 정이는 이미 그 남자와 넘지않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취방으로 돌아와 그 다음날로 공장을 옮겼다.
그러나 그 남자와의 인연은 질겨 결국 동거까지 하게되었고, 그 과정에 두차례 중절수술을 했다.
남자는 시간이 흐르자 정이에게 싫증을 느꼈는지 술과 노름으로 조금있던 저축을 다 까먹고는 사라져 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건강마저 나빠진 정이는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생활비도 못대고 밥만 축낸다는 핀잔만 들었다. 그래도 고향이라고 그 곳에서 몸을 추스린 정이는 다시 도시로나와 공장을 전전했지만 결국 호스티스 생활로 접어들게 되었다.
돈은 잘 벌게 되었다. 집에 송금도 많이해서 효녀라는 말을 듣고 대접도 극진히 받았다. 그러나 그게 과연 행복이었을까?
정이는 얼마가지않아 이유없이 아프고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때문에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있기 일쑤였다.
악몽은 늘 이랬다. 갓난아이를 안아주거나 업어주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꼭 악귀처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거나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이 깼다가 다시 들라치면 이젠 그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날이면 꿈 속에서 아이들이 때렸던 곳이 너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정이는 여러 병원과 한의원을 찾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묘각 스님과 인연이 되어 천도재를 올린 정이는 집으로 돌아가 츰부다라니와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를 매일 한 편씩 100일동안 사경을 했다.
사경을 끝내던 날 밤, 정이는 꿈에 구름 속에 계신 부처님을 보고 환희심을 느꼈다.
그 날부터 기분이 몹시 좋아진 정이는 거짓말처럼 몸이 좋아졌고, 이에 불보살이 시방세계에 상주하심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금 정이는 착실한 남편을 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어느 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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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자인 오부인은 어느날 묘각 스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일전에 친구집에서 스님이 쓰신 "아가야, 용서해다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요즘 身病신병으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데, 아무래도 중절한 아이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지않아도 아이의 영혼을 천도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불보살님께서 종교를 가려가며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어찌되었든 같은 종교인의 입장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한 번 절에 들르십시오."
며칠 후 찾아온 오부인은 친정이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시집을 간 후 시댁 식구들에게 모두 기독교를 전도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교인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님은 그런 오부인이 왜 중절 수술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더란다.
그러자 오부인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 땐 너무 살기가 어려워 그만 큰 죄를 짓고 말았다며 가슴아파했다. 오부인은 한 번의 유산과 두 번의 중절 수술을 했는데, 특히 허리와 어깨가 몹시 아팠다고 한다.
처음엔 오부인도 중년이 넘으면 생기는 그저 그런 병이라고 치부했는데, 좀처럼 통증이 가시지않아 좋다는 병원을 여러곳 전전했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몸이 아파 누워있는 나날이 많자 가정살림도 점점 엉망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잘되던 남편의 사업마저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다.
오부인은 묘각스님과 상담한 후 절에서 천도재를 지낸 뒤 100일을 작정하고 집에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자아게를 하루 한 편씩 사경했다고한다.
그리고 그 사경은 나중에 부처님 앞에 모셔졌다.
100일이 거의 가까워질 무렵 오부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질이던 허리와 어깨의 통증이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남편의 사업이 다시 잘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져서 살만해진 오부인은 불교쪽으로 기운 생각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속된 말로 불교가 최고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종교가 다르다해도 불보살님들은 고통받는 중생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출처: 알기쉬운 지장보살 지장기도 이야기(진 현종저, 도서출판 은행나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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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로 얻은 아픔이었는데...(출처: www.ekayana.or.kr 무등산 광륵사)
작년 여름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온천에서 여름 휴가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광륵사에 들렀습니다.
이 절에는 남편이 존경하는 스승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고,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이며 오랫동안 불교공부도 같이 한 친구 분이 법사님으로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들른 것입니다. 법사님이 서울에 계실 적에 만났었기 때문에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저는 무심코 남편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 이상 어떻게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보살님이 제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아프다고 해서 한약도 지어 주고, 병원에가서 종합진찰을 해본 결과 병이 없으니 신경만 안 쓰면 된다고해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해줘도 아프다고 하니, 낸들 어쩌라는 말이야."하며 그 동안의 심정을 하소연이나 하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법사님이 혹시 유산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아일 때 죽은 아이라해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무주고혼(無住孤魂)이 된다.
일본에서는 유산한 아이들을 수자령(水子靈)이라고 해서 천도시키는 일이 일반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텔레비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엠(M)의 작가도 그냥 완전한 픽션으로 극본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34세로 결혼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곧 임신을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다음에 곧 임신이 되었는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유산을 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집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는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아 그 다음에는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도 몸이 아프니 또 유산을 시키고, 그렇게 하여 6명의 아이를 유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혹시 산후조리가 안되어 그런가 하고는 다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병명이 없이 아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제는 '복에 겨워 그런다'고 하며 관심도 안 갖고 남편마저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대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상해 이혼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 때 온천물에 목욕 좀 하자면서 내려왔다가 광륵사 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했고 법사님은 그러면 지금부터 지장경을 독송한 뒤에 내일 아침에 아이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장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심지어는 남편이 못마땅하게 할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그 이야기 가 듣기 싫었는지 법회에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장경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읽으려고 결심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졸려서 한번도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동안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유산된 아이들의 천도기도를 드리고나니 아픈 것도 덜 아프고 가슴에 맺혀있던 것이 풀린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오후에 출발을 하려니 법사님께서 집에 가서 지장경을 100번 읽어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와 유산시킨 아이들과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께서 좋은 세계에 나시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지장보살님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저는 다시금 평범한 가정주부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된 것입니다.
평소에 무관심했던 불교에 대해 귀의심(歸依心)을 내게 되었고, 이제는 불제자가 되어 지장경 독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다시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지장 보살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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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ㄷ사의 태아령 천도기도에 동참한 광주의 한 보살님은 기도 접수한 날 밤에 꿈을 꾸었다. 극락전에 와서 기도를 모시는데 법당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보니 꾀죄죄한 아이들이 수없이 몰려들어서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때묻은 손으로 불전에 올려진 과일과 떡을 가리키고 자기들 입을 가리키며 먹을 걸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위패만 올리고 제물을 차려주지 못한 것을 깨닫고 몇사람이 떡과 우유, 과일 등을 준비해 와 관욕(영가 목욕의식)부터 시작하여 천도재를 정성 스럽게 베풀어 주었다.
이튿날 새벽 예불을 모시는데 깨끗하고 말쑥해진 아기들이 한 줄로 서서 법당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기도중에 보였다.
그 신도가 애들을 보며 "웬 애들이 들어오지?"하고 말하니, 애들이 돌아보고 손가락질 하면서 "우리 보고 애들이래. 자기들도 애들이면서……" 하고는 영단 위패로 사라졌다고 한다.
출처:월현사 포교원간 영험의 진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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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보살님은 여섯 번 중절 수술을 하고 난 뒤 늘 기운없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전화로 태아천도기도접수를 하였다.
그날 밤 꿈속에 아기를 낳아 품에 안았는데 아기의 눈이 아닌 어른의 눈이 자기를 원망의 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젖을 꺼내어 먹으라고 했더니 갓난 아기가 입을 열어 또렷한 발음으로 "업장이 많은 여자의 젖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식은 땀이 흐르고 계속 그 원망스런 눈빛이 자기를 지켜보는 것 같아 절에와서 3일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자는데 꿈속에 본 아기가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 손을 덥석 잡으며, "여기 있었구나. 어서 집으로 가자."하고 말하니, 아기가 엄마 손을 뿌리치며 "나는 법당에 가서 스님법문 들어야 돼요."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법당으로 향하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보살님은 몸이 놀랍게 가벼워졌고, 또한 지장보살님전에 눈물의 기도를 하고 돌아갔다.
출처: 대원사 떠도는 어린 넋들을 위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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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 년 전남 담양군 대덕면 법천사에서의 일입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불자님들이 우란분절에는 그저 조상 영가분의 천도만 하여 왔던 터라 소승이 태아령을 한다 하니 모두가 궁금하여 많은 문의가 쇄도했던 때 입니다.
당시 불자님들에게 태아령에 대한 법문도 해주고 왜 태아령 천도를 꼭 해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자 다음날 부터 하나 같이 꿈속에 동안 잊고 지냈던 낙태 영가들이 나타 났다고들 했었지요.
당시 법천사 신도 회장보살님과 총무보살님과 당시 기도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이 기도 회향을 하는 날 전날 밤 믿기지 못할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기도 회향을 마치자 이구동성으로 하기 시작 했었습니다.
꿈의 내용인즉.....
어떤 바다인지는 모르는데 맑은 물 한 가운데 부처님이 조그만 배를 타시고 그 배 안에는 핏덩이 같은 아이들이 무척 많이 탔었답니다.
그래서 그 꿈을 꾼 보살님들은 하나 같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꿈 속에서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했었답니다.
그러자 부처님과 같이 한 배를 탄 낙태영가 아이들이 웃으며 손 짓을 하며 배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나더랍니다.
그 꿈을 한 두불자님이 꾼 것이 아니라 당시에 동참했던 약 20 여명의 불자님들이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답니다. 그리고 회향을 마치고 난 뒤에도 당시에 참석했던 불자님들은 종종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거의 매주 미타정근을 하곤 했던 기억들이 우란 분절만 되면 떠오릅니다.
낙태........... 그것은 해서도 아니 되지만 혹시라도 누가 주위에서 '낙태'를 하려한다면 말리십시오.
그것은 또 다른 방생과도 같은 귀한 보시입니다. 물가에 고기를 넣어 주는 것만이 방생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낙태) 그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가르치어 자식을 살생하는 것을 막을 때 그 것 이상 큰 방생의 공덕은 없는 것 입니다.
(출처-보살의 친구 토굴지기님 글. 네이버 아비라카페에서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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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의 한 부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았다.
모아놓은 돈도 물려받은 논밭도 없었던 그녀는 세 자녀를 키우기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해미면의 산부인과에서 청소부노릇을 해야만했다.
조그마한 시골의 산부인과였기에 그 지역사람들보다는 인근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낙태수술은 하루 10건에 이르렀다.
자연 그녀는 저녁마다 그 핏덩이들을 치워야만했다.
그러나,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특별한 생각도없이 그 핏덩이들을 쓰레기통에 담아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눈앞에는 핏덩이가 아니라 사람의 몸을 완전히 갖추고있는 태아가 방치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충격을 느낀 그녀는 그 낙태아를 다른 핏덩이들처럼 취급할 수가 없었다.
그 녀는 자기 돈으로 하얀 천을 구입하여 그 아기를 돌돌말아 싼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의 산기슭에 묻어주었다.
그날 밤 그녀는 발가벗은 아기 수십 명이 찾아와서 매달리며 호소하는 꿈을 꾸었다.
"아줌마,나도 그렇게 해줘! 나도 버리말고 천에 싸서 묻어줘!"
밤새도록 발가벗은 아기들에게 시달리다 깨어난 그녀는 핏덩어리를 버리는 산부인과 청소부의 일이 인간으로서는 할 짓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로 그녀는 산부인과 청소부일을 그만두고 음식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약 30년 전, 우리나라에 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울산시 중구 우정동의 북쪽 마을에는 마을 공동의 큰 우물이 하나 있었으며, 그 마을에는 48세가 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막내 시누이가 있었는데, 죽은지 몇 년만에 꿈에 나타나 반가운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언니야! 나하고 같이 살자, 언니야."
그날 이후 그녀는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고민에 빠져 들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아기를 낳아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창피스럽기도 하고 키울 일도 걱정이 되어 집안 어른들과 의논하였다.
"너의 고충은 알겠다만 꿈이 심상치가 않구나. 힘들겠 지만 아이를 지워버리지 말고 낳도록 하려무나."
그녀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창피하지도 않느냐?" 나이 오십에 아이를 낳다니....수술해, 수술!"
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수술을 하였다. 그러나 많 은 나이에 낙태수술을 한 때문인지 회복이 쉽지않아 줄 곧 누워 있다가, 일주일 가량 지났을 무렵 몸이 조금 좋 아졌으므로 물을 긷기 위해 새벽녘에 동네 우물로 갔다.
그 우물은 평소 때 뚜껑을 닫아 두었다가 물을 길을 때만 뚜껑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그녀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 뚜껑을 여는 순가, 머리를 산발하고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의 시누이가 우물 속으로부터 솟아올랐다.
그리고 당장에 잡아먹을 듯한 분노의 음성으로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요년!"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였다. 그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고, 집안에는 강당하지 못할 재앙이 계 소해서 터졌다.
불자였던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울산 해남사 법당에 가서 참회를 하며 용서를 구하였고,그 렇게 3년을 참회하고 나자 병이 사라지고 집안 풍파가 완전히 가라않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에 살고있는 40대후반의 보살은 결혼 후 몇 해가 지나고나서부터 줄곧 병고 속에서 지냈다. 더욱이 큰 아들이 말을 못하는 장애자였으므로 언제나 가슴에는 못이 박힌 듯했다.
"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이 아이가 내가 죽은 다음에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아이의 말문을 열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녀는 아이의 입을 열게하려고 푸닥거리도하고 교회와 성당에도 가고 사찰도 찾았다.
조그마한 희망이라도보이면 어디로든 찾아가서 방법을 묻고 기도를 하였다. 한 번은 나에게 20여명에 이르는 일가친척을 위한 49일 천도기도를 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49일동안 직접 천도를 해 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비구니 한 분을 소켜시켜주고, 마지막날 마무리를 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49일째가 되어 내가 가서 천도의 중심예식들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배송염불(拜送念佛)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옆에서 합장을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부인에게 7~8명의 아기가 달라붙어 부인을 끌고 꼬집고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한 아이가 머리카락을 당기자 부인의 몸을 뒤로 젖혀졌고, 또 다른 아이가 오른쪽 팔을 잡아당기자 오른쪽으로 넘어졌으며, 뒤에서 앞으로 콰당 넘어지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또렷하게 보이는데, 부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 이 보살님이 의식하지 못하고있는 핏덩이의 원결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윗대 조상과 일가친척의 천도는 되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였는데, 과연 천도재가 끝난 뒤에도 부인에게는 여전히 고통이 따르고 근심걱정이 해결되지 않았다. 곧 수원보살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은 집안의 영가들은 모두 천도의 대상으로 삼아 이름을 올리고 천도를 하였지만, 낙태한 태중의 영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하였기때문에 그 영가들의 원결을 풀어줄 수가 없었고, 자연 고통은 계속 되었던 것이다.
2년의 세월이 흘러 그 부인을 다시 만나게되었을 때, 나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낙태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스님, 무려 일곱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큰아들을 낳았고요."
나는 천도 마지막날 보였던 아이들이 낙태수술을 받은 원혼임을 확신하고 부인에게 당부하였다.
"이제부터는 낙태수술을 한 그 영가들을 향하여 참회를 하면서 천도를 해드리십시오."
낙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원결을 맺는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평균 70만 명에 이르는 신생아가 태어난다.
이에 비해서 낙태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태중 아기는 150만이 넘어서고 있다. 태어나지 못하는 아기가 태어나는 아기의 두 배를 넘으며, 그 기록은 단연 세계 제일이다.
실로 인공유산의 장면을 초음파 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보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3개월 된 태아가 양수 속에서 놀라서, 날카로운 수술기구가 들어오면 깜짝 놀라 자궁벽 쪽으로 피해 달아난다. 수술 기구의 움직임을 간파하여,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그렇지만 수술 기구는 달아나는 태아를 흡입하여 뽑아버린다.
기계에 온 몸이 난자당하여 핏덩이 상태로 세상의 공기와 접하게 되는 태아영가......
많은 사람들이 임신 중절 수술 후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태아영가는 여전히 생명을 지닌 한 존재로서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어둠의 세계로 부터 구원을 받기를, 누군가가 구원을 해주기를 갈구한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에서 처럼, 이 태아영가가 원결을 지니는 경우에는 어머니와 집안에 무서운 보복을 전개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태아영가와 형제가 되는 다른 아이에게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곧 그 집안의 아이가 무기력과 자살충동에 빠지거나, 고독에 잠기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며, 부모를 미워하고, 돈을 마구 써버리는 등의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나아가 낙태영가의 원결 때문에 기형아나 정신박약아를 낳게 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태중 영가의 장애는 만만하지가 않는 것이다. 어찌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태중 영가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천도를 해주어야 하는가?
그 방법은 일반 천도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기간을 백일 또는 49일로 정하여, 하루 1시간 가량 염불을 하거나, 독경 또는 사경을 하거나, 광명진언 등의 진언을 외워주면 된다.
단 한가지 꼭 당부드릴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참회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었든, 어머니된 '나'의 순간적인 판단 결여로 인해 '나'를 찾아온 인연을 마다함으로써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데 대해서 깊이 참회하는 기회를 가져야한다.
"내가 어리석고 참된 길을 몰라 죄를 지었구나.
부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불보살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행복의 나라로 나아갈지어다"
"부처님, 지장보살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죄없는 이 어린 영가를 불국토로 인도하소서"
이렇게 끊임없이 참회하고 축원하면 태중아기 영가는 저절로 천도가 된다. 그리고 절에서 천도를 할 때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입는 신생아복과 양말등을 모두 준비하여, 스님의 지시에 따라 재를 지내면 된다
결코 낙태한 사실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고 쉬쉬 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인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영가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에 낙태수술을 받은 이가 대부분 이지않은가. 그러면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태중아기 영가를 천도시켜주면 된다
거듭 이야기하건대, 낙태아 천도의 기본 마음가짐은 참회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영가천도'(우룡큰스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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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들 낳으려 딸 셋 중절…영가 저주로 불행 닥쳐
얼마 전 40대 주부 Y씨가 찾아와 중학생 아들이 가출을 했다며 속상해했다. 최근 갑자기 반항이 심해지더니 독서실에 간다며 나간 아이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고 했다.
나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일주일 뒤 그녀는 가출했던 아들과 함께 법당을 찾았다.
"이제 다시는 집나가지 않도록 구명시식을 올려주세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얼굴이 바싹 말라 있었다. 그때였다.
내 눈에 여섯 명의 태아령이 모자(母子) 주변을 부유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아들 몰래 물어보니 산아제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네 명의 태아를 중절수술을 했다고 고백했다.
수술한 태아보다 많은 수의 태아령이 있다고 말하자 Y씨는 몰랐던 사실을 떠올리듯 "아, 두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정말 난감했다. 아무리 태아라도 자기 자식인데 몇 명을 수술했는지 모를 정도로 무감각하다니.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다. 솔직히 그동안 민감한 상황이라 말을 아꼈지만 요즘 구명시식을 청하는 20대부터 40대 부부들 중 중절수술한 태아령이 평균 여섯 영가가 넘는다. 최근 구명시식을 받은 모 가수는 33명의 태아령을 초혼하기도 했다.
이미 영계는 중절수술의 심각성을 여러 번 경고했다. 태아령의 포화로 국운(國運)까지 흔들리고 있다.
태식(胎息)이란 말이 있다. 태아의 숨소리란 뜻으로 태아는 두 달만 되면 어머니와 함께 숨을 쉰다. 이때부터 영혼이 깃들기 시작, 태아는 모체의 일부분이 아닌 영육의 혼합체로 성장한다. 태교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태아는 백지 상태의 맑은 영혼이기에 모태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옛 말에 임신한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외출을 하면 훗날 아이가 108번 가출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절수술은 대개 임신 3개월 즈음에 하니, 이제 막 태식이 시작된 태아령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이유 없이 죽어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
엄연히 살인행위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중절수술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부모들이 찾아와 자기 자식은 잘되길 바라니 참으로 이기적이란 생각뿐이다.
나는 과거 태아령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체험했다.
20년 전 얘기지만 영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던 O여인이 나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놨다. 그녀는 딸만 셋을 낳고 네 번째 임신 중이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무심코 이번엔 틀림없이 아들이긴하나 낳으면 남편이 위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중, 아내가 정부에서 권장한 복강경 수술을 받다가 정작 배꼽이 두꺼워 수술은 못하고 6시간 동안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 사경을 헤맨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O여인은 내 말을 듣고 낙태시기를 훨씬 넘긴 상태였던 네 번째 아기를 지우기 위해 6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 있었다.
O여인에게서 낙태된 태아령이 극도로 분노해 내 아내와 나에게 고통을 준 뒤 떠난 것이다.
Y씨처럼 아들의 잦은 가출로 괴로워하던 K여인은 아들을 낳기 위해 위로 딸 셋을 중절 수술했다. 그녀는 남편의 바람기로 괴로워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지만 아들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태아령은 자신들을 죽이면서까지 낳은 아들을 키우며 어머니가 반성하고 후회하길 바랐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태아령은 천도되지 못한 채 지상을 떠도는 태아령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과보를 받을 것이라 예고했다.
늘어나는 자살, 이혼, 불륜 등을 막기 위해서는 낙태율을 줄이고 태아령을 위로하는 천도의식을 병원과 가정 등에서 올려줘야 한다며 한숨쉬었다.
"다음 생에는 꼭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어요." 해맑은 태아령들이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길 간절히 소원했다.
출처: 스포츠조선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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