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반만년 역사, 영웅은 두명뿐?
전제덕·재즈하모니카연주자 |
역사에는 가슴 뛰게 하는 수많은 얘기가 있다. 그 얘기들은 음악만큼 나를 흥분시킨다. 내가 역사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이유다. 거기엔 뜨거운 야망과 처절한 몰락, 영광과 오욕의 시간이 교차한다. 역사에서는 정의가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는다. 그냥 승자가 있을 뿐이다. 확실한 건 그 어떤 순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역사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민낯이 보인다. 그 민낯은 나의 얼굴이자 당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영화 '명량'이 대박 났다. 누적관객 수가 1700만명을 넘었다고 하니, 가히 '명량 광풍(狂風)'이었다. 사실 '명량'엔 특별한 내용이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좀 더 감각적으로 재구성했을 뿐이다. 그 많았던 이순신 드라마 중 하나일 뿐인데, 왜 우리는 그토록 열광했을까. 아마도 현실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현재 한국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리더십의 부재를 겪고 있는가를 영화의 광풍은 말해준 듯하다. 시대에 대한 반동으로 400년 전 영웅을 데려와 우리는 환호하고 대리 만족했다.
영화 '명량'을 시각장애인용 영화로 보면서 오랜 의문이 다시 들었다. 왜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 우리가 손꼽을 영웅은 이리도 적은가. 아직도 이순신과 세종대왕 자랑뿐인가. 행정구역과 거리와 공연장과 심지어 군함의 이름에도 압도적으로 둘의 이름이 많다. 지폐에 그려져 있는 주인공도 15~16세기 인물들이 전부다. 반만년 역사라고 떠들기엔 좀 민망하지 않은가.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들이 빈약하고 근현대의 인물들은 논쟁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이제 역사적 시야가 조선시대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 마음속에 더 많은 시대의 영웅 얘기가 들어와, 현재를 살아가는 작은 힘이라도 되길 바란다.
한 가지 더.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우리 가슴에 뜨거운 비전을 심어줄 지금 이 시대의 영웅은 정녕 없는가.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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