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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2011년 추석 명절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며
musics33 추천 0 조회 45 11.09.16 07:41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2011 9월 한국이라는 나라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어머니가 계시는 경남 밀양이라는 곳으로 어머니 찾아 귀성이 아닌 역 귀성이라는 말로 회자되는 이번 여행은 참으로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10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침 미리 예약된 대구행 고속버스를 타고 아침 출발했다 미리 예약을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조금 안락한 버스를 예약하지 못해 비좁은 차에 몸을 실은 우리 가족은 총 5명 이었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 2, 그리고 혼자 살고 있는 누이 한 분 이렇게 5명이었다

평소에는 약 3시간 30여분 정도 예상되는 거리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길이 혼잡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5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하고 예상을 했었다 그런 반면에 차는 고속도로상에서는 중앙 차도를 시용하기에 조금은 수월하게 갈수 있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았고 고속도로보다는 실제 대구 시내에서의 교통이 더 어려웠었다

어렵게 도착한 동 대구에 도착은 했으나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하는데 사실 서울에서 고속버스 도착시간을 예상할 수가 없어서 열차를 예약하지 못하고 출발했던 터라 다음 행선지인 상동까지 약 40여분 정도 더 가야 하는데 그러나 좌석이 없었다 결국 3매는 좌석권을 사고 2매는 입석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밀양 상동이라는 열차 역에 오후 3 40분에 도착했으니 아침 8 30분에 출발했으니 약 7시간에 걸쳐 어머니가 계시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자 마자 매우 반갑게 맞아 주시는가 싶더니 몇 분 안되어 나의 처를 보고 댁이 뉘시냐? 고 당황함을 드러내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러나 우리 큰 아이에게는 이름을 부르면서 반갑게 맞이하셨으나 아들을 보고서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작은 아이를 손수 애기 때부터 등에 업고 키우셨었는데 그때의 어린 모습만이 남아 있는 듯 전혀 지금의 커다란 몸집의 아이 아들보다 작은 큰 아이의 동생이라는 것이 상상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매형은 안 계시고 누이만이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우리는 모두 마루에 모여 어머니의 기억을 회상하는 시골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을 기억나게 했었는데 그렇게 아버지와 시골에서 싸우시면서 생활하셨는데도 전혀 그런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좋은 기억만이 남아 있는 것은 치매치고는 참으로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치료 받고 있는 서울 현대 병원 의사의 말씀에 우리는 참으로 감사할 뿐이었다

가끔 큰 누이를 보고서는 누구냐? 고 하시면서 큰 딸이라고 하니 맞다? 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시기도 했다

매형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서울역으로 가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KTX를 타고 저녁에 밀양으로 내려가시겠다는 말씀이다 매형은 자주 서울을 다녀서 철도와 비행기에 쏟아 부은 공로로 거의 VIP PERSONNEL로 티켓을 얻는데 조금은 쉽다 하시면서 내려 오실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잤다 어머니를 끌어 안았다 누이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저녁 잠을 주무시다가도 몇 번이나 일어나신다고 어려움을 말했는데 첫날 밤은 너무나 편히 한번도 일어나지 않으시고 수면을 취하셨다 누이는 참으로 이상하단다 아들이랑 자니 편하신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매형은 저녁에 출발하여 밀양에 있는 작은 집에서 주무시고 벌써 집에 도착하셔서 집안을 정리하고 계셨다. 참으로 부지런 하신 분이다

아침을 먹고 우리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큰 누이는 근처 교회를 찾아 나섰다 강 건너 조그마한 교회였다 상동 교회언덕 위의 하얀 집처럼 조금은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그래도 시골 교회이지만 피아노 치는 반주자도 있고 바이올린 연주자도 있었다

예배를 마친 후 내일이 추석인데 교회 분들이 오셔서 맛있는 송편이랑 드시고 가라고 권유하셨다 그러나 우리도 집에 가서 만들어야 한다면서 떠나 왔다 아담한 교회에서의 조용한 예배를 통해서 참으로 시골다움을 그대로 맛볼 수 있었다

 

오후에는 잠시 온 식구 7명 모두 밀양 River” 근처로 어머니를 모시고 운동 삼아 나갔다 어머니는 근력이 많이 떨어지셨기 때문에 한번에 거기까지 가시는 것은 조금 무리인 듯 했으나 단번에 가셨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다 그 동안 누이의 노력이 이렇게 만든 것 같아 누이 부부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어머니를 놔 두고 두 부부는 운동을 하고 있으면서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누이 부부가 힘이 많이 드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말이다 전혀 모르신다. 왜냐고 오히려 반문하신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와서 밀양 시내를 갔다 떡 방앗간을 찾아서이다 흰쌀을 빻아와서 송편을 만들 셈이었다 특히 전라도에서 추석 때에 많이 찾는 쑥으로 만든 송편과 모시로 만든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한편 나는 돌아와서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솔잎을 구해야 했다 그 이유는 솔잎으로 덮어서 쪄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머니께 물으니 오래 놔두어도 부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기억하시는 걸 보면 아직은 치매가 아닌 것도 같기만 하다

또 한 식구가 창원에서 출장 근무중인 조카가 왔다 그 조카와 같이 솔잎을 구하러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무작정 마을 뒷산으로 가면 소나무가 있을 것 같아서 가 보았지만 도무지 소나무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곳은 감나무가 많았다 산에도 밭에도 감나무의 감이 주렁 주렁 열려 있을 뿐 소나무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겨우 마을 뒷산을 헤메이다가 찾은 작은 소나무를 발견했으나 솔잎이 너무 작아서 겨우 조금만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곳의 산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있을 뿐 모두 잡다한 나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접근도 어려운 산의 모습을 참으로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이런 나무들로 산이 이루어졌더라면 지난 여름의 우면산 산 사태같은 일은 없었을 것 같은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오는 길에 길가의 밤나무에서 밤을 조금 줍기도 하고 하여 집에 도착해 보니 벌써 송편을 몇 판은 그냥 천을 놓고 쪄버린 상태였다 그래도 가져온 솔잎으로 모시 송편을 해서 먹으니 어렸을 때 그 맛이 난다고 큰 누이께서 말씀하셨다

두 번째 저녁도 나는 어머니 옆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역시 어머니는 숙면을 취하시는 듯 전혀 미동도 안 하시고 아침까지 주무셨다 참으로 기이하단다 누이만 있을 때는 최소 2번은 일어나셔서 화장실을 가시던지 잠이 안 온다고 말하신다는데 이틀 저녁이나 아무 탈없이 숙면을 취하시다니 하신다

큰 누이는 이미 오래 전에 매형을 잃고 아들과 함께 사신다 그날은 어머니와 함께 자는데 많이 힘이 드시는 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매형은 마당을 정리하시고 바쁘시다 감나무가 텃밭에 있고 고추, 방울 토마토, 깨와 콩 등 많은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밭의 크기는 약 500여평정도 된다고 하는데 서울 나들이 하시랴 텃밭도 가꾸시랴 무척이나 바쁘시다

그날 오후도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나갔다 어머니께 사드린 보행 보조차를 밀고 어머니는 단숨에 공원까지 가시는 것이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현실이 너무 행복하다 서울에 계실 때는 층계 계단을 오르실 때 부축을 하지 않으면 어려웠는데 하나의 층 정도는 혼자 지팡이를 의지하여 거뜬히 올라서는 현실이 너무 감격적이다 꼭 애기가 걸음마 연습을 할 때 한발 한발 띄어 놓을 때 기뻐했던 것 그 이상의 기쁨이었다

저녁이 되었다 역시 나는 일찍 어머니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누이도 옆에 와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늘은 참으로 이상하였다 어머니께서 잠을 못 주무시는 것이었다 왜일까?

이틀 저녁이나 전혀 이상 없이 주무셨었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결국 누이도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 몇 번이나 일어나시곤 앉아서 우신다 나는 옆으로 누워서 누이의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러나 어쩔 수 없어 어머니 왜 잠이 안 와? 하니 응 잠이 안 온다 하시는 것이었다 누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숨만 내 쉬지만 어머니는 왜 인지도 모르신다 눈망울이 좀 슬퍼 보인다 왜일까? 낮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머니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잠을 저녁 9시에 들었는데 자정이 약간 넘었는데 4번이나 벌떡 일어나시는 것 아닌가? 조금 두려웠다 누이는 앉아서 기도하시는지 가느다란 한숨만 계속 지으시며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시고 계셨다 나는 너무 피곤했는지 잠에 떨어지고 말았는데 누이의 말을 빌리니 거의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이지만 누이가 말했다 작은 누이랑 얘기하는 것을 들은 것은 아닐까? 내일이면 떠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어머니를 두고 갈지 모르겠다고 서로 안타까운 말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었을까? 말이다 가끔은 기억을 못하시지만 가끔은 어릴 적 기억과 시골에서 아버지와 또 시어머니(나의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 등은 아직도 시아버지에게 사랑 받았던 얘기 등을 늘 자랑 삼아 말씀하시는 걸 보면 완전히 기억을 못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 섭섭함으로 인하여 잠을 못 주무신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 온다 그러니 마음이 허전할 때면 그 마음을 잡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다 어머니의 혼자만의 고독을 벗 삼아 줄자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서글퍼지기만 하다

이럴 때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자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났다 지난번 왔을 때에도 여기가 얼마나 쓸쓸하고 적적한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던 생각이 한꺼번에 나의 머리를 하고 내리치는 듯하다

아침이 되어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이 왔다 9 40분 열차를 타야 하니 9시가 지나면 5명이 떠나가야 한다 아침 식사는 정원에서 하기로 하였다

모여서 식사를 하고 곧 떠나야 했다 어머니를 혼자는 아니지만 몇 일간 같이 생활하다가 떠나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북한과 이산 가족 상봉행사를 하고 헤어지는 그 순간들이 캡쳐 되어왔다 식탁을 ?고 행주를 씻는 우물가에서 나는 한없이 울음이 나왔다 그것을 본 큰 아이가 가까이 오더니 아빠 또 우네! 하고 말을 이어온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그칠 수는 없었다 자식에게 보이는 눈물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우리들의 가방을 먼저 차에 실어 놓고 어머니는 마당에 앉아계시게 하고 형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아들은 회사 가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 가야 하여서 서울에 가야 한다 하니 아무 생각이 없으신 것인지 아니면 섭섭함을 아시면서도 참고 계시는 지 알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의자에 앉아계시고 우리들은 어머니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포옹 인사를 한 후 차에 올랐다 떠나올 때 울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건만 역시 헤어짐이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옛 시인의 말도 생각나지만 그래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주역은 나와 누이 뿐이었다 나의 아이들은 그저 그렇게 나의 아내는 조용히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에 오는 동안 누이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한없이 흘렀고 나 역시 덩달아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이가 70이 다 되시는 누이의 눈물은 나의 눈물과는 전혀 다른 눈물이었을 것이다

2011년 추석 명절을 역 귀성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보내졌다

어머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많이요 건강하세요 다음달에도 어떻게든 한번 다녀올 생각이다 얼마나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 지금의 현실에서 자주 어머니를 뵙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돌아 가신다 해도 조금은 덜 후회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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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9.17 09:59

    첫댓글 효심이 배어나옵니다. 공감백배

  • 작성자 11.09.18 11:04

    과찬이시고요기억력이 감퇴하시는걸보니
    너무 안타까울뿐이죠감사합니다

  • 11.09.17 20:08

    구구절절 가슴이 저며 옵니다.

  • 작성자 11.09.18 11:05

    왜이리 글을써놓고여러분들 글들을 읽으면
    더욱 마음이 아려오는건 어쩔수가 없네요

  • 11.09.23 08:18

    ...............아...퍼갈수 없게 해놓아 퍼담느라 한참 걸렸습니다. 퍼갑니다...고향에 부모님 생각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 작성자 11.09.23 23:29

    뭐 이런걸 어디쓰실려고요

  • 11.09.23 08:18

    추석때 저희는 항상 20km차로 달려 산속산꼭대기에 10대조부 성묘를 가는데, 올해는 아버지가 "어찌 산에 성묘가는게 마지막이 될것 같다" 고 하시는게 아닙니까...저희 형제 애써 태연하게 받아넘겼지만, 다들 한동안 말이 끊겼습니다. 그 먼길을 성묘가며 벌초하며 다녔는데..요즘 건강이 악화되어 좀 걱정이거든요..허리가 많이 불편해지셔서요..지세는 좋은데 묘소가 서있기도 힘든 비탈진 산꼭대기라....

  • 작성자 11.09.23 09:25

    걱정이 많이 되시겠네요 그래도 현재 살아계심에 감사를 할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월은 지나가고 몸은 노쇠해 가고 말입니다 우리네 육체도 멀지 않아 부모의 뒤를 따라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자주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려드리는 것이 멀리 사는 우리들의 가능한 효(?)아닐까요?
    건강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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