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 주간반 회원들을 위한 전법회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전법회원들이 모여서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전법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12월 3일 밤부터 사회가 좀 혼란스러워져서 여러분 모두 근심과 걱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늘 일어납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친 수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활성화 방안과 내년도 상반기에 진행할 예정인 법륜스님의 백일법문의 취지와 제안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비상계엄령 선포를 시작으로 일어난 지난 일주일 동안의 혼란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전법회원들의 정기 포살 법회날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왜 수행자는 포살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정토회의 전법회원이 되면 분기별로 포살을 하게 됩니다.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는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참회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나의 잘못을 자각하는 것을 참회라고 해요. 참회는 자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이것을 잘못했구나’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반성하는 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둘째, 나 혼자 살지 않고 다른 사람과 같이 살 때에는 관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관계에서는 내가 잘못을 알아차려도 상대는 내 잘못을 내가 알아차렸는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알려야 합니다. ‘내가 이런 잘못을 했고, 그것을 내가 자각해서 반성하고 있다’ 이렇게 상대에게 나의 잘못을 알림으로써 ‘수행자가 왜 저렇게 계율을 어기지?’ 하는 의혹을 불식시켜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 간에 신뢰를 깊이 쌓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포살이라고 합니다. 도반들에게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을 포살이라고 합니다.
마음 나누기도 똑같아요. 마음 나누기를 하려면 나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을 ‘정념’, ‘사티’, ‘알아차림’, ‘자각’이라고 합니다. 혼자 산다면 스스로 자각하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도반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거예요. 내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어 알리는 것이 마음 나누기입니다.
셋째, 포살은 내가 나의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가능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겠죠. 그래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떻더냐?’ 이렇게 도움을 요청해서 ‘아하, 그랬구나’ 하고 나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을 ‘자자’라고 말합니다. 포살과 자자는 어느 정도 수행이 되고, 도반과의 관계가 설정이 되어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관계없는 사람하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참회는 알아차림이 있어야 가능하고, 수행의 핵심은 알아차림입니다. 그리고 도반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마음 나누기를 해야 하고, 계율에 따라 정기적으로 포살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오류, 잘못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도반들과 나누게 되면, 첫째 내가 수행적으로 더 깊어지게 됩니다. 둘째, 도반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포살을 하는 목표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포살을 하겠습니다.”
이어서 전법 회원들은 계율에 따라 자신의 말과 행동을 참회하고 나누는 포살 법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해외 출장을 가기 위해 짐을 쌌습니다. 오늘 밤에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출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후 4시 30분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청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2시간 달려 6시 30분에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입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청주 행복센터에서 나온 행복시민 50여 명이 곳곳에서 강연을 보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킹 공연팀 ‘제로’의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주에 로힝야 난민캠프를 방문하여 비누 636만 개를 전달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1층과 2층에 700여 명의 청중이 좌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스님이 청주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그래도 겨울은 추운 맛으로 또 겨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회까지 좀 어수선해서 여러분들 요즘은 TV 본다고 밤잠을 설쳤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행한 일인데, 요즘 뉴스를 보면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뉴스도 없는 것 같죠? 코미디 같아서 좀 웃다가도 어떻게 저렇게 엉성하게 할 수가 있나 싶지요? 저렇게 엉성하니 또 좋잖아요? 준비를 잘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 앞으로 뭐든지 일 잘하는 걸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잘 못하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이것도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일이네요.
어떤 연속극보다도 더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 요즘 다른 방송 채널이 아마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아요.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창피한 일인데, 또 그게 6시간 만에 끝났다는 거는 대단한 일이에요. 그 이후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한편으로는 우리 마음이 좀 착잡하고 심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매일매일 호기심이 가고, 도대체 저들이 뭘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면서 연속극보다 더 재미있는 폭로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매일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고요.
다만 크게 안타까운 것은, 요즘 우리 경제가 안 좋아서 서민들이 살기가 특히 힘든데, 이렇게 되면 서민경제만 안 좋은 게 아니라 국가 전체 경제도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고요. 지금 상황이 너무 장기간 가게 되면 외국과의 관계에서도 한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외교관계라든지 경제관계를 대부분 다 유보합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려던 외국 원수들이 다 방문을 연기시키고 국가적인 큰 계약도 다 연기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당했고, 외세에 의해서 분단이 되었고, 전쟁이 났고, 독재 체제의 억압을 받았고, 또 가난한 가운데서도 경제를 성장시켜서 선진국 대열에 들었고, 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를 이루었고, 또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한때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경지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도로 후퇴해서 전쟁이 날 위험에 이르기까지 저 밑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위기가 조금 진정된 상태이고 내년 봄이 되면 어쩌면 조금 더 관계가 개선될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것은 늘 이렇게 참 잘됐다 할 때 재앙이 초래되고 또 어렵다 하는 그런 가운데서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이러면서 인생이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 마음을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또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유행하는데 지금 이러한 상황인 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조금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헌정질서가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다섯 명이 먼저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아들이 먹어야 할 밥을 뺏어 먹어서 걱정이라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아들 밥을 뺏어 먹어서 너무 얄미워요
“저는 밥상에서 가족끼리 항상 불화가 좀 있는데요. 아들과 남편이 같이 밥을 먹으면 남편이 자꾸 아들 밥을 뺏어 먹어요. 분명히 음식을 적게 주는 건 아닌데 왜 자꾸 뺏어 먹을까 해서 음식을 나눠서 줘요. 나눠 주면은 남편은 자기 것을 다 먹고 ‘아들, 너 다 못 먹지?’ 그러면서 또 뺏어 먹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들은 자꾸 빼빼 말라가고, 그렇다고 남편이 살찌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너무 얄미워요. 남편을 좀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잘 안 돼요. 물론 잘 먹는 건 좋은데 상대적으로 아들이 말라가는 원인이 남편인 것 같아서 너무 미워요. 어떻게 하면 남편을 좀 예쁘게 볼 수 있을까요?”
“처음에 나눠줄 때 똑같이 나눠주지 말고 남편은 3분의 2를 주고 아들은 3분의 1을 주면 그런 일이 안 생기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남편이 조금 남긴 것을 아들한테 줄 수 있잖아요. 그래도 균형이 안 맞으면 아들한테는 주지 말고, 전부 다 남편한테 주면 됩니다. 남편이 ‘어? 아들은 없네’ 이러면서 나눠줄 겁니다. 그럼 보기가 참 좋잖아요. 아무 일도 아닌 걸 갖고 왜 그래요? 아들이 몇 살이에요?”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도 아직 청소년이잖아요. 성인하고 밥 먹는 양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좀 많이 먹고, 아들이 적게 먹게 되죠. 안 그러면 아버지가 먹는 속도가 빠르고. 아들의 속도가 늦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음식을 배분을 해야 합니다. 질문자처럼 이렇게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에 대해서는 약간 미운 감정이 있고, 아들에 대해서는 사랑스러운 감정이 있으면, 음식을 줄 때 아들한테 더 주거나 남편한테 덜 주게 됩니다.
그리고 먹는 속도를 견주어 봤을 때 남편은 다 먹었는데 아들은 아직 덜 먹었다면, 남편이 생각할 때 ‘너는 다 못 먹는구나. 내가 좀 먹어줄게’ 하고 가져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밥을 나눠 먹었다고 하면 되지 질문자는 왜 뺏어 먹었다고 표현해요? 첫째,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서 나눠 먹었다고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질문자가 볼 때 남편이 자꾸 아들 것을 뺏어 먹는다는 생각이 들면, 배분을 할 때 아들은 주지 말고 남편한테만 다 주세요. 안 그러면 아들은 조금 주고 남편한테 많이 주는 겁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해봐요. 그러면 뺏을 것이 없으니까 뺏어 먹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남편이 ‘너는 부족하구나?’ 하면서 한 젓가락이라도 나눠 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것은 부엌을 책임지고 있는 질문자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걸 가지고 ‘남편이 얄밉다’ 하고 있으면, 질문자가 약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들이 좀 많이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한테도 아들 못지않게 많이 줘요”
“남편이 아들이 먹던 음식을 가져가서 먹는다는 것은 어쨌든 남편에게는 음식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럼 질문자가 음식을 좀 더 만들든지요”
“음식을 많이 하면 동네 사람 잔치하냐고 또 잔소리를 합니다.”
“그러면 잔치한다고 대답하면 되지요. 부부가 살면서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를 자꾸 따지기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운 거예요. 음식이 부족하면 좀 풍부하게 하고, 또 조금 많이 하니까 음식이 남는 경우가 있다면 음식 만드는 양은 동일하게 하고 분배 방법을 잘 조절하는 방식으로 질문자가 적당하게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 머리도 안 돌아가면서 결혼은 왜 했어요?” (웃음)
“아이가 빼빼하게 마른 것은 음식을 적게 먹어서 그렇다기보다 소화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옛날에는 적게 먹어도 살이 찌면 열효율이 좋다고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상대적으로 음식이 풍부하니까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면 열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건 좋은 현상이에요.
이것은 관점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문제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은 본다고요. 내가 기분이 나빠서 남을 비판할 때는 작은 티끌까지 보이고, 내 잘못을 덮어두려면 대들보도 안 보인다는 거예요. 자기가 조금 호의를 가진 사람은 대들보도 안 보이고, 반대로 자기가 약간 기분 나쁜 사람은 티끌까지 다 보인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관점을 조금 바꾸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어떻게 식구가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데 남편이 아들한테 ’다 못 먹지? 내가 좀 먹을까?‘ 하면서 먹는 것을 두고 뺏어 먹는다고 말해요? 질문자의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아들은 분명히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남편이 너무 얄미워요. 그래도 스님의 말씀처럼 관점을 바꿔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음식을 모두 남편한테만 주고, 아들한테는 주지 말아 보세요. 그러면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들은 내버려 두고 옆에서 계속 남편한테 ‘직장 다니려면 힘드니까 많이 드세요’ 하고 말해 보세요. 아들이 먹으려고 하면 ‘너는 안 먹어도 된다. 아버지 먹고 남거든 나중에 먹어라’ 자꾸 이렇게 해보세요. 질문자가 아들을 너무 챙기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들을 안 챙기고 남편을 챙기면 남편은 저절로 누구를 챙기게 될까요? 아들을 챙기게 되어 있는 겁니다.
아무리 얄미워도 남편이 내 남자이지, 조그마한 아들은 내 남자가 아니에요. 아들이 크면 다른 여자가 데려가요. 키울 때나 귀엽지 아들은 절대로 내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해요. 그것을 깨달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겁니다. 장가를 보내서 어떤 일이 벌어져야 그제야 ’내 남자가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