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등 오피스 공실률 껑충… 임차인 잡기 경쟁
"사무실 옮긴다" 소문 나면 우르르 몰려가 파격혜택 제시
첫 3개월 임대료 공짜계약도 공급증가로 공실률 더 늘듯
서울 강남 테헤란로(路)의 초현대식 빌딩. 이 빌딩의 주인은 오는 10월 임대계약이 끝나는 한 업체가 최근 임대료가 싼 인근 중소형 빌딩으로 이사 가려고 하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5년간 재계약하면 향후 1년간 임대료를 20% 할인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중소형 빌딩 주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새로 입주할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하는 물론 수천만원은 족히 들어가는 사무실 이전 및 인테리어 비용까지 대주기로 한 것. 강남의 빌딩 임대·관리업체 담당자는 "최근 서울 강남과 도심의 오피스(업무용 빌딩) 빈 사무실이 늘어나면서 빌딩 주인들이 임대료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지역 집값이 치솟고 있지만 서울의 오피스는 빈 사무실이 급증하고 있다. 기업체들이 몸집 줄이기와 비용 절감에 박차를 가하면서 오피스 임대 시장의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높은 임대료는 기본이고 세입자의 업종까지 따졌던 '콧대 높았던' 빌딩 소유주들이 임차인 구하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 대형 오피스가 밀집해 있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 경기침체의 여파로 서울 비즈니스 중심 지역의 대형 오스피 공실률이 3%를 넘어서면서 임대료가 내려가고 무상임대 기간이 늘고 있다.
◆1년에 2~3개월치 임대료 안 받아
서울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한 대형빌딩은 최근 세입자와 재계약을 맺으면서 신규 임대 기간에 최초 3개월은 임대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세입자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자 전체 계약기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개월을 무상 임대해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협의 중이다.
입주업체들에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던 임원급 차량의 무료 주차도 계약의 기본 옵션이 됐다. 또 일부 빌딩은 다른 빌딩에 머물던 업체를 신규 세입자로 유치하려고 사무실 이전 비용은 물론 3.3㎡당 100만원 정도 하는 인테리어 비용까지 대주고 있다.
이처럼 빌딩 소유주들이 세입자 잡기에 경쟁적으로 나선 주된 이유는 오피스 공실률(空室率·빈 사무실 비율)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서다. 서울의 주요 오피스시장 공실률은 지난 1분기 2.0%에서 2분기 3.3%로 증가했다. 특히 도심의 공실률은 1분기 1.6%에서 3.3%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더욱이 현재 건설 중이거나 추진 중인 신규 오피스 공급까지 감안하면 서울의 오피스 공실률이 2~3년 뒤에 1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서울에는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 상암동 DMC 랜드마크빌딩, 용산국제업무지구, 잠실 제2롯데월드 등 초대형 오피스 공급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부동산투자자문업체 '세빌스코리아' 사이먼 힐(Simon Hill) 임대마케팅본부장은 "공실률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금융·보험업체들이 사무실 규모를 줄이거나 지점을 폐쇄했기 때문"이라며 "공실률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그동안 임대인 중심이었던 오피스 시장이 당분간 임차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대료 인하에도 떠나는 세입자
그동안 오피스 시장에서는 빌딩 소유주와 임차인이 3~5년간 임대 계약을 맺은 뒤 매년 약 5%씩 임대료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향후 1년간 임대료를 10~20%씩 내리기 시작한 것. 특히 서울 도심을 벗어난 경기 일산신도시 호수공원 주변의 경우 텅 빈 사무실이 계속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작년보다 30% 이상 내려간 곳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 테헤란로·광화문 일대의 최고급 빌딩에 입주했던 기업체들이 계속되는 경기침체에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사무실 규모를 줄이고 있다. 지난 3월,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외국계 전자제품 제조업체는 사무실 경비 절감을 위해 서초구 방배동으로 본사를 옮겼다. 정보통신기술업체도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 대표는 "테헤란로는 요즘 임대료가 내렸다고 해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며 "차라리 임대료도 싸고 근무환경이 쾌적한 새 건물에서 생활하려고 이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실률 증가에 오피스 투자수익도 떨어져
공실률 증가와 임대료 하락에도 중소형 오피스 빌딩에 대한 투자 인기는 절정에 달하는 모습이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아직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초(超)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에 대비, 대기업이나 거액 자산가들이 오피스와 같은 안전자산 매입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소형 빌딩의 시세는 공실률 증가에 따른 임대수익 감소에도 견조한 상승세를 보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높은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부동산투자자문업체 '알투코리아' 김태호 시장분석팀장은 "공실률이 5~6% 수준으로 올라가면 임대료가 더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더욱이 오피스 공실률은 경제 여건과 보통 6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는 만큼 올 하반기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도 내년 초까지는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김재언 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투자자들은 월세 등 임대수익보다 건물의 가치 상승에 초점을 맞춰 투자하는 경향이 짙다"며 "하지만 경기 침체의 여파로 임대수익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경우에는 건물 가치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료원:조선일보 2009.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