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나는 35년 만에 [이화장]을 다시 방문했다. 정월 초이튿날 [한·미동맹 이승만 기념재단] 임원 몇 명과 함께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 내외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필자가 1987년에 이화장에 들어가 예배를 인도할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와 이인수 박사 내외분과 함께였다. 그때 50대였던 이인수 박사도 어느덧 92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편집자 주: 23년11월1일 별세)
이번에도 나는 그 자리에서 신년예배를 인도했다. 먼저 찬송을 선택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면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마음 아파 울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하소서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나는 이 찬송을 부르면서 간단한 해설을 했다. 이 찬송은 본래 미국의 찬송가였는데, 한국의 초대 선교사 배위량 목사의 부인인 Ms W.M. Baird가 1895년에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한국적 가락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찬송을 가장 많이 애창하신 분이 바로 독립운동가 이승만 박사였다.
이 박사는 40여 년 동안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쓸쓸했든지, 이 박사는 이 찬송을 늘 입에 달고 있었다. 빼앗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외교로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 입국> 등 그는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읽었다. 이 성경 구절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삶의 목표였다. 그래서 나는 간단히 이 구절을 늘 암송하셨던 이승만 대통령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다시는 일본의 종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승만의 의지를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24일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승만과 칼빈주의 사상>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는 것을 보고했다. 이승만 박사는 조지 워싱턴 대학시절 워싱턴에 제일 큰 교회인 <언약 장로교회>에 출석했고, 헴린(Hamlin)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그의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헴린 목사는 조지 워싱턴 대학의 이사이자, 하바드 대학교의 이사장이었다. 두 학교를 졸업하고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으로 박사 학위를 위해 왔지만, 그는 먼저 신학공부를 했다.
이승만이 받은 신학교육의 주요 사상은, 당시 프린스턴 교장이었던 비.비 월필드 박사가, 화란의 위대한 칼빈주의 대신학자요,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박사를 초청하여 <칼빈주의 특강>을 하므로 학교 전체의 분위기는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과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 첫째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당 울타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학문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Pro Rege)이란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승만은 그 시기에 변증학자 그린(Greene) 교수로부터 <기독교 변증학>을 공부했고, 한경직 목사와 박형룡 박사의 스승이기도 했던 챨스 어드만(Charles Eerdman) 박사에게서 <바울신학>을 공부했었다. 그래서 이승만의 가슴 속에는, 조선이 일제를 물리치고 독립하여 나라를 세운다면, <하나님 중심의 나라>, <그리스도 중심의 나라>, <성경 중심>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것이 바로 <기독 입국>이었다. 그래서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에서 의장이 된 이승만 박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제안하여 <이윤영> 의원으로 하여금 기도케 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기도로 세워진 나라이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가 나라를 세운 지 75년, 국부 이승만이 떠난 지 어언 60여 년, 아직도 이 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선거>, <독재자>라는 프레임을 걸고 이승만을 격하시키고, 폄하하고, 심지어 이승만이 세운 대한민국의 <건국절>도 없애 버렸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가 적통이라고 우기는 자들이 십수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이 지구상에 대통령직을 하야하면서 <청년들의 기상이 놀랍다>, <국민이 원하면 하야하겠다>고 하면서 걸어서 사저인 이화장으로 갔던 대통령은 이 지구상에는 없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병이 들어도 단단히 불치병이 들었다.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의 국가를 세워서 부국강병의 나라로 <원자력>을 만들어서 세계열강의 꿈을 키운 분은 이승만이었다. 나는 전 세계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고, 미국의 많은 대통령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장점도 있었지만, 약점도 많았다. 심지어 그 위대한 아브라함 링컨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기록이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대통령들의 약점은 모두 덮고, 장점만 크게 부각시켜서 아름다운 기념관을 지어 미국인의 사표로 삼았다. 독립운동했던 백범은 사실상 자유대한민국의 탄생을 가장 반대했던 분이고, 남북합작, 좌우 합작을 부르짖으며 북으로 가서 김일성의 붉은 군대의 사열까지 받고 돌아왔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이지 그런 어른에게는 아름다운 기념관을 지어 주었단다. 최근들어 몇 분의 한국 대통령들은 은퇴하고 별로 조국을 위해서 공헌한 바가 없는데도, 국고를 짜내 지방에 엄청난 아방궁을 지어놓고 살고 있다. 그런데 건국 대통령이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위해서는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오랜만에 이화장(梨花莊)을 걸어 나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정성구 박사/ 前 총신대·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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