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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딴 거짓말을 나한테 했던 이유를 설명해봐.”
혜주는 박찬의 방으로 들어서자 하이힐을 벗고 남자치고 깔끔하게 정돈된 방을 얼핏 둘러보다가 그가 한말을 듣고 박찬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혜주의 어설프게 둘러댄 거짓말이 거짓임을 알고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오평 남짓할까. 그 좁은 방에서 한참이나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혜주는 처음에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라고 계속 우겨버릴까라고 생각도 하였지만, 그의 눈에서 무언가의 진지함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만 사실을 실토해버린다.
“사실, 어떤 한 남자가 있는데…….”
“…….”
“자그마치 육년 동안이나 날 여자로 보지 않고,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펴.”
“뭐라고……?”
“아, 그니깐 씨, 아 쪽팔리게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 돼? 나랑 같이 육년이나 살았는데도 그 짓을 한 번도 안하고 심지어 키스조차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다른 년들이랑은 죽치고 잘 놀고 다닌다고……!”
“고작 이유가 그딴 거야?”
“그딴 거라니, 네가 6년 동안이…”
“나가.”
혜주는 그의 냉담한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한테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그녀의 비밀을 6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친구 성아조차 성민이 그저 바람만 많이 핀다고만 알고 있지 자신이 사랑한번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엄청난 아킬레스건을 이 박찬이라는 이 낯선 남자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지만 깡그리 무시당하고 만 것이다. 자신이 그가 말했던 대로 정말 우스운 미친 여자가 돼 버린 것이었다. 혜주는 마지막 남은 그녀의 자존심을 꺼내어 그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난 그 남자한테만 여자가 아닌 줄 알았어. 근데 너도 날 그때 모텔에서 그냥 버리고 간 거야. 내 얘기가 우습지? 그래도 끝까지 들어줘. 사실 그렇게 거절당한 게 그 사람 말고 네가 유일하거든.”
“…….”
“그래서 너라면 알거 같아서 온 거야. 나사실……”
“…….”
“그 남자한테 사랑한번 받아보고 싶거든.”
박찬에게 혜주가 마지막 말을 마쳤을 때, 혜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혜주는 계속 애써 담담한척 해오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성민이 그럴수록 엇나가고 아무렇게나 행동해왔지만 사실 긴 시간동안 말 못할 상처가 깊어졌었던 것이다. 아무리 당당했던 그녀라도 오랜 시간동안 짝사랑으로 무뎌져왔더라면 얼마나 깊은 흉터로 남았을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박찬이 혜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외투를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혜주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
“이건 하나는 확실한데…”
“……?”
“너 키스할 때 많이 어설프더라.”
그가 말을 마치고 혜주에게 얼굴에 다가오더니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 전혀 애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키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몹시도 뜨거웠다. 혜주는 분명 술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숙한 혀놀림에 몸이 들떠 이성을 잃고 그에게 몸을 맡겨버린다. 그의 능숙한 손이 혜주의 블라우스를 바지에서 빼내고는 블라우스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그의 차가운 손이 한참이나 야릇하게 등에 배회를 하다가 혜주의 브래지어 후크를 재끼려고 할 때, 혜주가 문득 아찔해진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밀쳐낸다.
“더 이상은 아니야….”
“왜?”
“너랑 나랑 두 번밖에 안 봤어.”
“…그럼 계속 볼래?”
그의 말에 혜주는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와 긴 속눈썹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혜주를 향해 똑바로 응시한다. 혜주는 본능적으로 그와 더 이상 가까워지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자각했지만 그저 생각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말아버린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아 입을 열었다.
“그 남자한테 사랑받는 거 복수하는 거.”
“…….”
“둘 다 하게해줄게.”
“뭐…?”
“그 대신, 너 돈 많다고 했지? 넌 그걸로 갚아.”
박찬은 메모지를 꺼내 볼펜으로 어떤 주소를 적더니 혜주에게 건네주었다.
“한꺼번에 삼 개월 뒤에 거기 주소로 갚아. 그때쯤이면 난 없을 테니까.”
육년 동안 자신이 하지 못했던 걸 이 남자는 단 삼 개월 만에 자신이 성민에게 사랑받게 해준다고 하고 있다. 거기다 말하지 않던 복수까지 덤으로 해준다하고 있다. 혜주는 그의 말에 한참이나 웃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단지 돈을 어떻게 떼어먹어보겠다는 심보는 아닌 거 같았다. 그럴 거면 삼 개월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을 요구했을 거니깐.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자신이 육년 동안 하지 못했던 걸 삼 개월 만에 성민의 마음을 돌리고, 자신이 승패를 쥐고 있는 게임이라. 거기다 저렴한 용어로 후불이란다. 밑져야 본전인 것이었다.
“그래 좋아. 어떤 식으로든 삼개월동안 그 남자의 마음이 나한테 돌아오게 해봐.”
“…어.”
“이렇게 된 거 서로에 대해 좀 알아야 되지 않겠어? 이름이 정확히 뭐지?”
“박 찬.”
“이름이 외자야? 특이하네. 난 정혜주.”
혜주는 그가 넘겨준 메모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성덕동 혜성빌라아파트 십이단지라……. 왜 그는 돈을 자신이 받지 않고 그곳에 보내 달라 하였을까? 거기다 아까 그가 했던 말이 거슬린다. 삼 개월 뒤쯤이면 자신이 없다고? 에이즈가 사실인걸까? 혜주,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에이즈란 재생 가능한 항체가 없어 회복능력을 상실해버려 질병에 걸렸을 경우 사망할 수 있는 병으로써 정확한 날짜 개념 없이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를 뿐만 아니라 얼마큼 살지도 모르는 병이고 거기다 요즘 많은 약이 개발돼서 살라고 하면 충분히 살수 있다는 병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생각인걸까?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메모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보다 긴 그의 속눈썹에 아무생각 없이 빤히 쳐다보다가 무심결에 손을 뻗쳐 그의 눈꺼풀에 다가갔다.
“뭐하는 짓이야.”
“…어? 어, 아니 흠흠…. 그냥, 근데 에이즈에 걸렸다는 거, 사실이야?”
“적어도 누구처럼 그런 걸로 거짓말은 안 해.”
“그러면 나이는?”
“스물여섯”
“그럼 내가누나네. 난 서른.”
“아줌마네….”
“그런 거 진지하게 말하지 말아줄래? 어디가면 나 아직 스물다섯으로 밖에 안 봐.”
“…….”
“사람 민망하게 왜 아무 말도 안 해? 흠…. 아무튼 혈액형은?”
“…아줌마 미팅 나왔어?”
“…뭐라고? 어쨌든, 당분간 우린 계약관계에 있는 거야.”
혜주는 솔직히 자신이 왜 이런 낯선 남자에게 이끌려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계약관계를 성사시켰는지 자신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어설프게 변명을 늘어놓자면 허무맹랑하게 거짓을 늘여놓기에는 그가 진지하고 예쁜 눈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관계에 놓여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이 거지같고 그의 말대로 엿 같은 상황에서 뒤바뀔 수 있는 약간의 기회라도 가질 수 있다면, 혜주는 그 기회를 잡아야했다. 육 년이란 세월은 길면 길었지 짧은 세월은 절대 아니었다. 그 세월동안 무뎌진 감정이, 이게 애정을 필요로 하는지 복수를 필요로 하는지 혜주 스스로의 감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우선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모든 실전에 있어선 예행연습이 필요하지.”
“그게 뭔데?”
“그 새끼를 자극하기.”
박찬, 그가 다시 혜주의 입속으로 따뜻한 혀를 파고들어간다. 혜주가 반항할 틈도 없이 짧은 키스를 끝내고 목으로 내려와 빨간 몽우리를 새긴다. 그리고는 한쪽 손은 혜주의 블라우스 셔츠를 풀고 한쪽 손은 그녀의 허리를 은밀하게 감싼다. 혜주가 그를 밀쳐내고 인상을 찌푸린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일 그 남자 앞에서 해야 할 짓.”
“…뭐라고?”
“아무리 병신이라도 자기 거라고 생각했던 게 허튼짓하고 있다면 신경 쓰이기 마련이거든.”
“내가 말했잖아, 그 남자는 내가 눈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눈 깜짝 안할걸?”
“그럼 내기할래?”
무슨 내기란 말인가? 그녀가 물어볼 새도 없이 박찬이 갑작스럽게 혜주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핸드폰을 꺼내어 보인다. 그리고 무언가를 누르더니 혜주의 손에 쥐어준다. 박찬의 번호였다.
“필요하면 여기다 전화해. 그땐 누구 말이 맞는지 한번 쌩쇼 한번 하자고.”
“…쌩쇼?”
“그래. 그럼 이제 나가. 옷 벗을 거니까. 계속 보고 있으려면 있던가.”
그가 셔츠를 풀고 윗옷을 벗어재끼더니 그의 훤칠한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혜주는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 때리고 있다가 그가 벨트를 푸는 마찰음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하이힐을 신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밖의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던 혜주는 자신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저 방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면 박찬 저 사람은 토끼란 말인가? 혜주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풋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들 속에서 그가 자신을 어떤 통로로 이끌어갈지 생각하다가, 너무 오래된 동화속의 결말을 떠올려 보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 이건 정해진 결말의 동화가 아니었다. 자신 앞에 놓여 진 현실이었던 것이다.
“정혜주, 이게 잘하는 짓인 거니?”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핸드폰을 보았다. 그가 남겨준 전화번호와 박찬이라는 이름. 꿈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엔 자신의 핸드폰에 남긴 건 엿 먹으라는 메모였고 그다음에 남긴 것은 그의 전화번호였다. 모든 것이 그와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박찬 그 남자와의 만남의 선택은 혜주자신이 하는 것이다. 선택이라……. 혜주는 자신의 전화기록을 살펴보지만 성민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있지도 않았다. 이렇게 늦은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아도 성민은 전화 한통은 물론이고 그 흔한 문자 메시지 한건조차 남기지 않았다. 항상 있던 일상인데도 불구하고 혜주는 오늘따라 그게 무척이나 거슬리고 화가 났다. 그리고 혜주는 자그마하게 중얼거린다. 그래……. 끝까지 한번 가보자. 이건 당신부터 시작한 게임이었어. 이제 자극을 주는 건 네가 아니라 내가 돼볼게. 당신이 어떤 기분으로 나를 그동안 조롱해왔는지 나도 한번 느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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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진짜 그 대용량을 쓰시는 다른 작가분들이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너무 어려운 길을 선택해버린 기분..ㅠㅠ 너무 꼬아버렸어요. 원래 할려고 했던 제목이 혼돈의관계인데
제가 혼돈돼버릴 지경ㅋㅋ 정신이 붕괴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 꼬은 실들은 열심히 푸는 일이 제가 할 이야기가 되겠네요. 열심히 해볼게요
1,2화 댓글달아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드려요^.^
다음편은? 저도 대용량을 시도해보겠습니다! 과감하게..
혹시나 4화 업뎃 쪽지 원하시는 분은 감각이라고 해주세요.
첫댓글 완전전 기대기대 이제부터 본격 시작?ㅋㅋㅋ
잘봤어용 ㅋㅋ 다음편도 기대기대 ㅋㅋㅋ
진짜 찬이 말대로 됐으면 좋겠네요ㅎㅎ군데진짜 찬이가 에이즈 걸린거맞나요?
재밋어요!ㅎㅎㅎㅎㅎ찬이뭔가멋져 ㅠㅠ얼른혜주가성민이한테복수햇음좋겟ㅇ요! 기대할게요~
감각 처음보는데재미잇어서삼편까지다봣네용ㅋㅋ너무재미잇어용ㅋ그리고흥미진진까지ㅋㅋ과연남편유혹성공할지!궁금해용ㅋ다음편빤낭업뎃됫으면^^
감각 아 진짜 재미있어여 계속 볼 수록 매력적인 소설이에요!!
앞으로의 내용도 더 기대할게요~!!
근데 진짜 찬이 에이즈인건가여?? ㅠㅠ
슬픈 인연의 시작이네요 ㅠㅠ
감각 저용량이라도 작가님께서 빨리들고오시니까는 좋아욬ㅋㅋ
여기에 감각이라고 쓰면 되나요.
넿ㅋㅋㅋㅋ귀여우셔..ㅎ
감각 / 재밋어요 잘읽고갑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습니다~ 근데 찬이가 진짜 에이즈? ㅜ
감각 다음편도 기대할게요ㅎㅎ!
잘 읽었어요 ㅎㅎ
감각 잘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