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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클래식 이라는 클래식 동호회에 올렸던 글을 옮겨 왔습니다.
코스엔 클래식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쪽 분들은 꽤 재밌게들 읽어 주시기도 했고, 일반적인 음악 얘기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 갖고 와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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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계신 분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저 어렸을 때는 정말 다양한 물건의 방문 판매가 있었습니다. 화장품, 백과사전, 계란, 세계문학전집, 화장지 등등.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이 클래식 전집도, 부모님께서 방문판매하는 지인을 통해서 떠안지 않으셨나 추측합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맞을 겁니다. ㅎㅎ
이 세트는 82년 서울음반에서 라이선스한 음원들을 40개의 테이프에 담아낸 클래식 카셋 테이프 세트입니다. Turnabout, Everest, Acanta 등 낯선 레이블의 음원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연주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암튼 어머니께서 박씨 집안 장남을 좀 교양 있게 키워 보려고 하신 것 같은데, 불행히도 80년대 초반 국딩의 귀에는 클래식 음악이 그닥 살갑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클래식은 커녕 가요나 팝도 접하지 않았던 때라 조기교육은 그렇게 실패로… 그래도 트로이메라이, 아베마리아, 엘리제를 위하여, 유모레스크 등이 수록된 소품 모음집만은 아름다운 선율에 감탄하면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40년 넘은 지금도 테잎과 설명책자가 남아 있는데, 이젠 테잎을 들을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네요.
2.
중학교 때부터 영화음악-최신 팝-헤비메탈이라는 정규 코스를 착실히 밟아 갔지만, 클래식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락, 국악, 켈틱 등 이런저런 음악을 들으면서도 항상 중심은 헤비메탈이었죠. 최애밴드 Helloween 같은 소위 멜로딕 스피드, 심포닉 메탈부터 고딕, 둠, 데쓰, 블랙 같은 하드코어한 장르까지 제법 열심히 들었습니다. (밴드 이름이 Obituary/부고니 Dissection/해부, Deicide/殺神 같은 식이었죠 ㅎㅎ)
그런데, 2006년 클래식 음반계를 뒤흔든(?)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모차르트의 전집을 발매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10만원 내면 천원 빼주는 홈쇼핑스러운 가격(최저가 99,000원)에 무려 170장짜리 전집이라는 파격적 구성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브릴리언트에서 기획 박스를 발매하기도 했고, 다른 레이블들도 박스세트를 발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큰 관심몰이를 했던 건 처음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무려 30만 세트가 팔린 이 박스는 신문에까지 기사가 실리면서 저 같은 문외한의 눈에도 띄게 되었죠.
사실 저는 박스 세트라는 ‘포맷 혹은 현상’ 자체에 흥미를 느꼈고, 그러다 음반도 구입하고 이런 저런 책도 사보면서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앞뒤가 바뀐 거 같긴 하지만… ㅎㅎ)
다만 이 170장 세트는 한동안 소장하다가 이 걸 얼마나 듣겠나 싶기도 하고 원전 연주인 교향곡 사이클도 취향에 안 맞아 곧 처분하고, EMI의 간촐한 50장짜리 에디션으로 갈아 탔습니다.
3.
박스 세트가 영 못마땅하신 분들도 간혹 계시지만, 저 같은 초심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쓸모 있는 아이템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시간의 세례를 받은 양질의 녹음을 전문가인 음반사가 알아서 엄선해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제 편협한 취향에 절대 접할 리가 없는 작품까지도 적당히 끼워팔아 주시니 의도찮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도 생깁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박스를 하나 고르라고 하면 셀빠인 저는 당연히 소니의 106CD 조지 셀 전집을 고르겠지만, 그 걸 제외하면 예전 브릴리언트에서 발매된 100장짜리 베토벤 전집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세트도 100장에 99,000원까지 가격이 떨어진 데다, 무엇보다 거의 절반이 Decca, 필립스 등 메이저 레이블의 라이선스 음원들로 채워져 있고, 카라얀, 푸르트뱅글러 등 거장들의 라이브 녹음 다수와 굴다의 피소, 피협 전집까지 포함되어 그 전의 브릴리언트 박스와는 ‘끕’을 달리하는 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 하고 계획에도 없는 두번째 베토벤 박스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진먼의 교향곡 사이클로 유명했던 RCA-Sony 박스)
암튼 박스세트 열풍 덕에 CD 시장이 한동안 활기를 찾았다지만,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듯 이런 박스의 범람이 안 그래도 쇠락해 가던 CD시대의 종말을 앞당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제 CD도 LP처럼 일부 매니악한 애호가들의 틈새시장으로 남거나, LD나 카세트처럼 자리를 못 잡고 증발해 버리려나요…
4.
저도 처음엔 1000원짜리 최신 팝송 테잎으로 음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고 1 때 처음으로 LP를 구입했고(Michael Jackson의 Bad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즈음 자주 보이기 시작한 CD로 환승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30년을 CD만 듣다 몇해 전 타이달에 발을 들였네요.
또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다 보니 물욕도 다 부질없다 싶어 어정쩡한 CD와 LP를 몇년 전에 상당량 처분했습니다. CD는 팝, 가요 중심으로 한 700여장을 방출했고, LP도 클래식만 남기고 100여장을 떠나 보냈습니다. CD 무더기를 보고 시큰둥하시던 업자분이 가요LP를 보시고는 눈빛이 바뀌시더군요.ㅎㅎㅎ 결국 CD는 거의 무상인도에 가깝고 LP값만 쳐주신 느낌이었습니다. 그 옛날 CD로 갈아 타면서 200장 가까운 LP를 재활용통에 던져 버렸던 기억이 나면서 심경이 복잡해졌네요.
지금은 클래식은 대체로 CD로, 가끔씩 팝이나 가요를 들을 때 스포티파이를 이용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CD로 듣는 것과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 중 어느 쪽이 음질이 더 좋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왔다갔다 해서… ㅎㅎㅎ;;)
5.
작년엔 격월에 한번 정도 공연장을 찾은 것 같은데, 저는 공연장을 즐겨 찾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일회성 경험보다는 음반이나 오디오에 좀 더 투자하자 라는 주의라서… 그래서 대부분은 예술의 전당에서 가격대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공연을 찾아 보거나, 직장이 있는 OO시에서 OO 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을 찾습니다. 후자의 경우 돈 만원에 Full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잇점이 있긴 하지만 사실 공연의 퀄리티는 티켓 가격과 비례한다는 걸 절감하곤 합니다. 악장 사이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든지(악장이 끝날 때마다 조마조마합니다.;;;) 소음/시야방해, 공연장 사운드 환경, 오케스트라의 컨디션 기복까지 많은 걸 각오해야 합니다. 물론 예술의 전당도 티켓이 싸지면 어김없이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오긴 합니다만...ㅎㅎ
제가 가장 즐겁게 봤던 공연은 2022년 9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공연이었습니다. 삼각관계 세 남녀의 피아노 협주곡 세트였는데요. 오케스트라는 서진님이 지휘하는 프라임필하모닉이, 피아노 협주는 강성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손정범 세 분이 맡았습니다. 처음 접했던 클라라 슈만의 피협도 매혹적이었고, 슈만과 브람스의 피협에서는 일리야와 손정범의 불꽃 튀는 연주가 정말 멋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흥겨우면서도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정말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많지 않은 공연경험이지만 그 중 최고였지 싶습니다.
6.
사실 팝이나 가요를 들을 때는 30만원대 데논 CD-player(리시버)에 60~70만원대 미션 스피커만 붙여 놓아도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근데 클래식을 듣노라면 항상 한끗이 아쉬워서(개별 악기 소리도 좀 더 선명하게 듣고 싶고, 무대감도 느끼고 싶고…) 조금씩 장비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더군요. 근데 하다 보니 장비 뿐 아니라 케이블도 너무 후지면 안 되는구나, dac로 소리가 확 좋아지는구나, 스탠드만으로도 저음의 단단함이 확 바뀌는구나 하는 이런저런 깨달음을 넘어, 음악방 문에 흡음/방음재를 도배하는 공사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지금은 B&W 705S3 스피커에, 소스기는 마란츠 ND-8006, 앰프는 NAD C375bee와 진공관인 Quad VA-one+ 정도를 갖춰 놓으니 나름 클래식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LP는 많지도 않고 어차피 더 늘릴 생각도 없어 턴테이블은 소리 날 정도만 최소한으로 갖춰 놓았습니다.)
근데 똑 같은 세팅으로 똑 같은 음악을 들어도 어떤 날은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황홀하게 들리는가 하면 어떤 날은 푸석푸석하니 지루하게 들리는 날이 있습니다. 사람 몸(귀)의 컨디션이 매일 같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인데도 겪을 때마다 신기하긴 합니다. ㅎㅎ
7.
이전에 조지 셀에 대해 글을 한번 올리기도 했었는데, (George Szell 컬렉션) 이 글도 제 최애 셀 옹의 이야기로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셀 옹은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마에스트로 중 한명이지만, 조직생활을 하는 입장(오케스트라 단원)에서 보면 좀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일단 변방 미국의 로컬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조직과 조직원들에게 최고의 성과를 안긴 리더로 평가될 수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폭압에 가까운 권위적 태도와 악명높은 반복 리허설, 무자비한 단원 해고, 특히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괴롭히는 장난(그 대상이 상처 받은 걸 알면 오히려 즐거워 했다고 합니다.) 등 단원 입장에선 난이도가 상당한 리더였던 것 같습니다.
[Györgyg Széll at 12 (1909)]
하지만 New Mozart라고 불리며 천재성을 보였던 어린 시절의 셀 옹은 오히려 사랑스럽고 밝은 아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11살에 갑자기 찾아온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꼬마 천재를 폭력적 성향의 통제 불능 문제아로 만들었다고 하죠. 완전히 절망에 빠진 부모는 치료를 위해 셸을 그 유명한 칼 융에게까지 보내게 되는데... 결과는?
셀은 심리학 전문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문제아가 되어서 돌아왔다 합니다;;; 문제 행동은 14살이 되면서 차츰 가라 앉았지만 이 무렵 생긴, 사람을 괴롭히는 장난과 무절제한 탐식/폭식의 성향은 성인이 된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만 어릴 적 신동들이 사춘기 시절의 혼란을 제대로 못 넘기면서 천재성이 소멸되는 경우도 흔한데, 셀 옹은 다행히 천재로 온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지휘자 중에 독재적인 캐릭터가 많기도 하고, 셀 옹도 따뜻한 면을 보여준 사례도 있기에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 가면 안 되겠지만, 그런 상상은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연주자로서 기회가 생긴다면 이 양반이랑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하고 싶을까, 좀 덜 유명해도 사람 덜 괴롭히는 다른 오케스트라를 찾게 될까… ㅎ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두두오 같은 곳에서 글로만 보던, 시스템을 다루는 능력자분이시군요.
기기 관련 되서 궁금했던 점들 조언도 받고 그러면 감사할 듯요.ㅎㅎ
마란츠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저도 최근에 위에 언급한 소스기기 ND8006에 추가로 마란츠 인티앰프(PM-12SE)를 새로 들여 붙였습니다.
실내악에서 현의 질감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ㅎㅎㅎ
다만 대편성 곡에서 음장감, 무대감 같은 것들이 아쉬워서 NAD는 계속 유지하는 상황입니다만…
10월엔 아들놈의 제안으로 런던필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지가 보고 싶은 공연에 아빠한테 빨대를 꽂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ㅎㅎ
대단한 콜렉션입니다. 방이 앨범으로 가득하네요.
근데,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와서 좀 허무해지긴 했어요...
유행이 돌고 돌면서 언젠가부터 그 흔했던 오래된 cd들을 구입하기가 힘들어지더라구 이젠 다시 lp가 유행이고 보관하고 있는 lp는 죽기전에 들을 수 있을지..ㅋ
환경이 참 부럽군요.
제 귀가 더이상 MP3 320K와 FLAC을 구분하지 못하는 걸 알았을 때 음질에 관한 것은 대부분 내려 놓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