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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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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게시판 스크랩 Social Network와 개인의 사생활, 공생
양원석 추천 0 조회 178 10.03.16 13:26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사생활의 개념

사생활이라는 개념을

지금 우리는 매우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는 근대에 성립한 개념입니다.

 

18세기 개인은 국가로부터 자기 삶의 자유를 획득합니다. 

 

19세기는 공동체로부터 자기 삶의 자유를 정립한 시기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영역을 정립한 시기입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가 가정에서

개인의 단위로 바뀌는 시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즉 사생활(Privacy)이라는 개념, 개인이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라는 개념이  

근대를 거치면서 점차 강력하게 정립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생활의 파동 그리고 변곡점

지금 우리는 개인적 공간, 개인적 삶의 자유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사생활의 보장은 크게 신장되었습니다.

이제는 사생활의 보장이 없는 사회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반면 사생활이 강화될수록 공생성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사생활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공동체는 점차 그 영역을 잃어갔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사생활만으로 삶을 영위하기 불가한 존재입니다. 

 

그동안 사생활, 개인적 자유를 최대화하는 흐름과 추세를 따라왔지만,

점차 개인은 공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생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Social',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점차 퍼져가고 있으며,

사회 여러 분야에 새롭게 접목되고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생활, 개인적 자유의 신장에 따라 부족해진 공생성을

개인들이 깨닫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을 새롭게 찾고, 모색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고 봅니다. 

 

마치 파동의 흐름을 보는 듯 합니다.

사생활을 추구하는 일련의 흐름을 보였으나,

이 추세가 전환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고,

새로운 추세로 전환되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동의 흐름과 유사해 보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변곡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생성

그렇다면 어떻게 공생성을 추구할 것인가?

예전의 공동체 사회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저는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이전의 공동체 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칫 사생활의 범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확대된 사생활과 자유를 놓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를 지키면서, 부족한 공생성을 새롭게 모색하는 단계로 진입할 것입니다.

 

이전 사회는 공동체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사회는 확대된 사생활은 최대한 보장하는 가운데,

개인을 사회 최소 기반으로 한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개인을 최소 단위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생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 봅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삶이 공유되던 시대에서

개인을 기반으로 사생활을 보장하되,

개인적 선택에 따라 사생활을 공유하는 형태로

공생성을 확보해가는 흐름을 보이리라 봅니다. 

 

 

 

Social Network

개인을 한 단위로, 개인 사생활의 공유 범위를 개인이 결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공생성의 추구.

이것이 Social Network의 개념이라 봅니다. 

 

최근 등장하는 SNS를 살펴보면

개인을 최소 단위로 출발하되,

얼마나 개방하고, 협업하고 공유할 것인가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권으로 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개인 단위의 사생활을 보장하되,

개인적 선택에 따라 사생활의 공유 정도를 자기 스스로 선택, 결정, 통제하는 형태입니다. 

 

앞으로 공생의 형태는 위와 같이

개인적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하는 전제에서

또한 공유의 범위 또한 개인적 선택을 따르는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공생을 위한 활동을 계획하는 경우 

이러한 전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개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참여하도록 하는

매우 깊은 통찰을 제공해 주리라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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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3.16 15:04

    첫댓글 할 일이 많은데, 컴퓨터 앞에 앉으면 게시판 글이 궁금하고, 읽고 생각하고 답 궁리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고.. ^^ 생각을 나누고 다듬어가는 과정이 기쁨입니다. 이런 공간이 있어 누릴 수 있음이 복입니다. 양원석 선생님 글 읽고 싶은데 꾹 참고, 우선 급한 일 먼저합니다~

  • 작성자 10.03.17 10:03

    저 또한 글 쓰고 다듬고 궁리하는 것이 즐겁긴 한데..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가서..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

  • 10.03.17 21:20

    하는 것과 한일은 없지만 시간은 금방 흘려갑니다. 의미가 있다면 뜻을 가지면 그대로 작은(?)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면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치있는 삶 되도록 하겠습니다. 스스로라도 용서할 수 있는 자가 될께요.

  • 작성자 10.03.18 09:56

    박진태 선생님, 고맙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신다는 말씀에 저 또한 다짐합니다.

  • 10.03.21 01:10

    저에겐 인터넷의 큰 혜택은 양원석선생님 글을 대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0.03.22 10:37

    어이쿠... 부끄럽습니다. 잘 정리되지 않아 글로 써보고 빈 자리를 찾고자 썼습니다. 깎아주시고 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10.03.22 13:24

    재미있는 이야기 감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Social Network' _ 개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생성 지금 우리의 삶과 미래의 삶을 관통하는듯한 느낍이듭니다. 그리고 사생활 개념의 변화도 흥미롭습니다. 쉽게 이해되기도 하구요. ^^

  • 10.03.22 13:33

    개인을 기반으로하는 사회가 유지된다면 끔찍할 것 같습니다. 그 전제로 사회사업을 해야 한다니 두렵습니다. 그리 생각하니 아무리 새롭다 하더라도 공생성이 초라해보입니다.

  • 작성자 10.03.22 17:18

    개인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어떤 점에서 끔찍할 것 같다고 하신 것인지요?

    저의 의미는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개별로 유아독존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도, 규칙없이 적자생존의 밀림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되,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므로 개인과 개인이 만나 관용 속에서 공생을 모색한다는 의미입니다.

    개인화될수록 공생에 대한 절감은 더 높아질 것이고,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도 공생성은 더 요구되리라 봅니다.

  • 작성자 10.03.22 17:19

    어느 것이든 그 안에는 기회 뿐 아니라 위협도 있습니다. 위협만 있는 것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기회만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기회와 위협 중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결정론적 관점은 우리의 몫을 잊게 만듭니다. 사회 변화의 방향은 정해져있고, 우리는 오직 '적응' 또는 '역행'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와 위협의 가능성을 모두 보고 그 가운데 어떤 기회를 살릴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몫이라 봅니다.

    저는 개인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그 안에서 공생성을 모색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자유로운 개인' 가치도 지키고, '서로 돕는 공생' 가치도 살리고 싶습니다.

  • 작성자 10.03.22 17:41

    저는 개인의 의사가 무시되어진 측면이 있었던 공동체 사회가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공생의 측면은 좋지만, 자유로운 개인의 측면에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

    반면 개인주의가 심화 또는 변질되어 이기주의로 바뀐 지금은, 개인의 자유가 이전에 비하여 신장되었다는 점에서는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로써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떠넘겨진 사회 즉 공생성의 측면에서는 반대합니다.

    저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길은 이 두 길만 놓여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 두 길만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봅니다.

  • 작성자 10.03.22 17:26

    아마 선생님께서 우려하신 '개인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라는 것은
    극단적 이기주의로 나타난 현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측면을 말씀하신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저 또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특히 극단적 이기주의로의 위협은 매우 위험하다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라면 공생성은 매우 초라해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개인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끔찍하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

    다만, 저는 지금 사회가 100% 버려야 할 것만 있다 보지 않기 때문에, 살릴 것은 살리되, 더할 것은 더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합을 이루어가는 것이 역사 속 현 시점의 우리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 10.03.24 22:49

    끔찍.... 제가 너무 과한 표현을 사용했나봅니다. ^^;
    문명의 흐름을 읽고 있지만 그저 따라야만 하는가에 대한 자성과 성토라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크게 동의합니다. '"자유로운 개인'의 가치도 지키고, '서로 돕는 공생'의 가치도 살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궁리는 이제 자유(개인)와 공생(공동체)의 조화로움을 어떻게 공작할것인가에 모아지는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10.03.25 08:44

    사실.. 끔찍한 면이 있지요. 또 말씀하신 끔찍에 저 또한 공감하는 면이 당연히 있지요.. 마음 깊이에서는 자성과 성토가 몸부림칠 때가 많지요.. 그러게요... 이정일 선생님과의 대화는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덕분에 저도 많이 궁리합니다.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자주 대화나누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10.04.10 01:24

    저는 공생성이 개인주의가 심화될 수록 약화되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생성이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성으로 본다면,
    다른 사람과 남을 돕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것을 희생(?)해야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희생(?)에 의해서 다른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가능성이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생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걸까요?

  • 10.04.10 01:33

    또 한가지 생각해 본 것은,
    공생성에 대한 동기입니다.

    후원을 받을 때 후원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좋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구체적으로 어려운 사람이나 계층에 대한 관심에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중 몇몇은 자신이 소속된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 형성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재력을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동기가 다소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할지라도
    이것 또한 공생성을 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 10.04.10 01:38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자신이 후원을 했다는 이유로
    사업의 방법이나 내용에 대해서 간섭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것은

    사회를 위한 사업이라기 보단
    개인을 위한 사업의 새로운 형태라고 보여집니다.

    사회사업에 있어서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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