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15장 (구 471장) / 요한복음 13 : 1 - 14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1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요한복음 13장 1절 – 14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아멘!
우리에게 늘 사랑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어서 행복하지 못하고, 충분히 사랑할 수 없어서 불행을 느낍니다. 우리 안에 사랑의 능력이 있다면, 우리에게 사랑이 차고 넘쳐흐르면, 그 사랑이 우리 주변사람들에게 흘러가 그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서 우리는 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바로 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까지 내어주시는 사랑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은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치유하시고 회복 시키며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을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큰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은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열두 시간 전쯤의 상황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통상 발을 씻기는 일은 집에 처음 들어오는 때입니다. 주인이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발을 씻겨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제자 중에서 누군가가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리고 저녁을 잡수시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서로 미루고 아무도 주님의 발을 씻겨 드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투기 바빴습니다. 서로 자신은 그렇게 천한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만찬 도중에 가룟 유다는 식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버렸습니다. 이제 얼마 후에 가룟 유다가 군사들을 이끌고 자신을 잡으려고 몰려 올 것 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착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어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만한 여건이 전혀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수 세숫대야에다 물을 떠다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철없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이렇게 요한복음에서만 '사랑하라.' 는 말이 56회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인 13장에서 21장 사이에 44회나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며 희생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 순간 사랑하다가 끝나버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한번 마음 주셨으면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표준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카렐이라고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할 줄 아는 사람보다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그의 참 모습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워도 참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대상을 정해 주셨습니다. '서로' 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거창한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옆에 있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가까운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 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할 때 온전해집니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먹을 사랑의 식탁을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의 위치에서 제자들에게 봉사하시므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겸손과 봉사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미워할 사람을 가장 가까운 곳에 앉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좌우에는 유다, 그리고 요한이 앉았습니다. 왼편 좌석은 연회장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이며 가장 친한 친구를 위한 자리인데, 그 자리에 가롯유다를 앉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미워할 자에게 떡을 찍어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음식을 떼어주는 것은 특별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나쁜 마음을 알고도 숨겨 주셨습니다. 그의 흉계를 끝까지 숨겨 주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신자 유다를 저주하기 보다 끝까지 사랑하며 용서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보여주신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