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공시민'의 정치를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총선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회의원이 무엇 때문에 있는지, 뭘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많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다시 또 300명이나 뽑아야 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4년마다 벌어지는 꼴불견 행태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공천을 따내려는 아귀다툼과 상대방 헐뜯기, 밀치고 줄서기, 이합집산 소동, 그리고 여와 야의 사생결단식 쟁투와 공방이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특히 설날 당일에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새로운 개혁신당으로 출범했다가 합당 선언 열흘 만에 갈라선 일은 정말 코미디 같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입시비리 및 감찰무마 사건으로 모두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도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되지 않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반성과 자숙은커녕 ‘조국신당’(가칭)을 만들었습니다. 국회의원을 하루만 하더라도 출마하겠다는 그가 1호로 영입한 변호사는 4년 전 총선에서 정의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가 네 차례의 음주·무면허 운전 전과가 드러나 사퇴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발표 작품마다 그토록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어온 유명 소설가가 '조국신당' 후원회장을 맡고 나섰습니다.
이런 게 다가 아닙니다. 구속상태에서 ‘민주혁신당’을 창당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등 국회의원 자리를 법적 제재를 피하는 방탄용이나 신분 세탁용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더 기가 막히게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기 한 달 전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정국의 큰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견제·심판론이 먹힐지, 정부 지원·야당 심판론이 먹힐지 궁금합니다. 전과가 많은 데다 각종 비리 혐의로 재판받기 바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거취가 선거 이후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출마는 하지 않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선거결과에 따라 정치적 명운이 결정될 것입니다. 나아가 2027년의 제21대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4·10총선에 대해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21대 총선처럼 어느 한 당이 의석을 독과점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현재 상황은 야당이 압도적 의회권력을 갖고 있어 정부가 원활한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21대 국회 기간에 정권이 교체돼 여야가 바뀐 탓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입법 횡포는 이미 넌덜머리가 날 지경으로 잘 경험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석수가 완전 정반대로 여야가 역전되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려와 분별을 갖춘 국정 운영을 해나갈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럴 경우 대체로 거칠고 때로는 무모한 독주 독선과 불통이 걱정됩니다. 그러니까 정부·여당이 안정되게 나라를 이끌어가되 반드시 야당과 소통하고 협치를 해야만 하는 적정한 수준의 의석수를 확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숫자가 어느 선인지는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는 운동권 정치의 퇴장을 강력히 희망하고 촉구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괄목할 발전을 해왔고, 파란과 곡절은 있지만 상위 선진국으로 이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모든 분야와 국민의 생활과 의식, 문화수준이 다 높아졌는데 정치만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행하는 중입니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운동권 정치이며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민주화운동 경력 하나만으로 권력과 명예를 차지해 향유하면서 세습적 혜택까지 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몰염치, 파렴치한 행태입니다. 특히 타협과 절충을 배우지 못하고 상대방 타도를 목표로 한 투쟁과 폭력으로 의사를 관철하는 식의 정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치도 아닙니다.
세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운동권 정치를 대체할 ‘공공 시민’의 정치가 싹터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공 시민’이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기관과 합작하거나 국고 보조금을 타내는 게 능사인 시민단체의 그 '시민'이 아니라 공개념을 갖춘 시민, 상식과 합리에 기초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시민, 비판의식이 살아 있는 시민, 정상적인 직업인으로 일정한 생업활동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중요성도 알고 사회발전의 방략을 궁리할 능력을 갖춘 시민…이런 인물들이 의회에 많이 진출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새로운 시민의 정치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혐오스럽고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다 꼴도 보기 싫지만, 나라의 모습을 결정하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게 정치이니 어쩌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정치가 달라지기를 소망하면서 나는 위와 같은 생각으로 한 표를 행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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