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imental.
1.감상적인, 정에 약한, 다감한, 정에 호소하는.
2
“그래그래, 미안하다구! 너 그렇다고 이렇게 하루종일 넋놓고 있을래?
자자, 빨리 밥 먹구 나가서 운동이나 하자. 으쌰으쌰!”
“...... 으으.... 알았으니까 제발 조용히 좀.......”
남에게 모질지 못한 게 비령의 성격이다.
신비령. 생긴것도 꽤 귀염성있게 생겼고 공부도 잘 해서 고등학생때도 꽤 날렸던 친구다.
나와 성이 같아서, 또 자매만큼 친하게 지내서 우리 둘을 자매로 오인하는 경우는 다반사.
아무튼, 아까 그렇게 화를 내면서 차갑게 전화를 끊은 지 대략 한 시간만에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는, 곤히 자고 있던 나에게 미안하다며 수도없이 사과를 해대고는
이제는 같이 운동이나 하자며 날 때려댄다.
우리 집 번호키를 아는 녀석은 이 녀석이랑 나 밖에 없지, 아마...
다음부터 가르쳐 주나봐라. 확 바꿔버릴까/
엑, 안 그러면 문짝을 차대고 초인종에 불이 날 때까지 눌러 댈 게 뻔해.
으으, 어쩐다......
“으으으으으으, 알았어알았어. 가자.”
오늘도 비령이 이겼다.
“흐아아~ 좋다. 그지, 응?”
“응.......”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집 바로 앞 강변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는 비령을 보면서
‘이 녀석, 내가 방금 전에 은결이랑 헤어진 장소가 여기라는 걸 알기는 하는 건가’
라는 의문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은결이는 정말로, 나에겐 부담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던 걸까?
방금 전까지 눈물을 쏟아냈던 이 장소에 왔어도,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한 기분이랄까.
정말 많이 슬프기는 하지만.
방금 비가 그친 강변은 딱 내 취향이었다.
약간 흙 냄새가 섞인 비 냄새도, 조금 젖은 나무들도 아직 잿빛인 하늘도 아주 예뻤다.
“난 비 온 뒤의 공기가 너무 좋아.”
비령이 베시시 웃는다.
나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미소를 똑같이 따라해주었다.
“아라라, 그 옷, 새로 산 거야?”
비령이 밝게 웃으면서 내 티를 가리킨다.
메이커 이름이 크게 쓰여진, 검은색 반팔티.
사실 난, 옷을 잘 입을 줄 몰랐는데.......
메이커 옷도 별로 사지 않았었는데.......
그 모든 걸 가르쳐 주고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준 건 은결이었지.
“에이, 기분도 그런데 우리 그냥 니 동생 마중이나 가자.”
“마주웅? 야, 고등학생을 뭐하러 마중가냐?”
“아씨, 몰라몰라! 그럼 그냥 보러가자. 오랫만에 얼굴이나 한번 보러가자구~
멋있는 고딩애들도 있을꺼아니냐!”
“... 난 맨날 보는 애들인데.......”
“아 몰라몰라! 렛츠 고고고~!”
이번에는 내가 비령이를 잡아끌었다.
“지금 끝나나 보네?”
“응...... 기공은 5시에 끝나지 않나?”
비령의 동생이 다니는 기계공고와 우리집은 그닥 멀지도 않은 터라
(걸어서 30여분쯤 걸린달까) 그냥 천천히 걸어왔는데, 딱 시간을 맞춘 모양이었다.
한 10분쯤을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저 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이~ 소령~”
신소령.
군대 계급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예쁘게 생각할 수 있는 이름.
.................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신소령, 신소령!!!”
팔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면서 아는 체를 하는 자신의 누나가 창피했는지
제법 길쭉길쭉한 친구들과 같이 오던 소령이 토낄 모션을 취하자마자 냅다 달려가서는,
소령의 귀를 잡아끄는 비령이었다.
“아야야야야야! 귀 찢어져 귀!!! 귀걸이!!! 아퍼!!!!!”
“뭘 이 정도 가지고 쌩난리야!!!!”
.........비령아.
귀걸이한 사람 귀 잡아당기면 안돼.....
졸라 아픈데.
“헤에, 누구야, 신소령?”
“우리 누나야.......”
비령에게 잡혀진 귀가 아파서 눈물을 찔끔거리던 소령이 간신히 대답했다.
신소령, 딱 봐도 ‘날라리’ 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만한 외모다.
지 누나를 닮아서 예쁘장한 외모에다가, 머리까지 빨간색(지 말로는 레드와인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새빨강이다)으로 염색하고서는, 귀걸이가 몇 개요 피어싱한 부위가 대체
몇 군데란 말이더냐.
거기다가 풀어헤친 교복이란.
“아아, 안녕하세요!
우와, 누나 진짜 이쁘다.”
물론 녀석의 친구들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녀석들이지만.
“야, 신소령! 너한테 누나도 있었냐? 듣던거랑은 사뭇 다른데?”
“뭐라고 그랬는데?”
비령의 손에서 겨우 자유가 된 소령이 ‘하지마’라는 입모양을 연신 해보이며 고개를 세차게 저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또한 악동들 중의 악동이 아니던가.
“뭐, 그냥...... 대학생이라서 맨날 할짓없이 뒹굴거리고 놀기만 한다던데.
아! 성질 더럽다고 했다는 얘기, 제가 했나요?”
............. 신소령, 부디 천국으로 가기를.
비령의 눈빛이 보통이 아니잖아. 이를 어쩜 좋아.
“너네, 몇 살이야?” 비령과 소령에게서(일부러)눈길을 돌린 내가 최대한 착한 척을 해가며 물었다.
“열 여덟 살이요.”
또다시 추억에 젖는다.
열 여덟 살...... 한참 좋을 때지.
게다가 너네는 공부도 안 하는 편이니까 정말 한참 잘 놀 때구나.
(미래에 대한 책임은 모르겠다만은.)
“이름이 뭔데?”
“와~ 누나 저한테 관심있어요?”
장난스럽게 웃는 초록 잔디밭 머리.
아니 근데 이잣샤가 예의상 물어본걸가지고 딴지거네?^.^
“장난치면 죽여버린다.”
“에이~ 농담이에요 농담! 전 강미소라고 하는데요.”
이름 졸라 이상하네.
“어이어이, 김신일! 뭐하냐? 누나한테 인사좀 해봐 임뫄.”
“난 여자친구 있어.”
여지껏 말이 없던, 진한 흑발을 가진 학생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핸드폰으로만 향해 있는 그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결기가 올라서 그에게 떽떽였다.
“이봐,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면 얼굴은 봐야 할 것 아니야?”
“......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뭐 안 될것도 없죠.”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준수한 얼굴이었다.
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와 흑발이 대조되어서 더 얌전하고, 신비스러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 이런 게 잘 생긴 얼굴이구나-’ 싶은 분위기랄까.
사실 구지 따지자면 이 김신일이라는 학생과 소령, 미소의 외모 차이는 별로 나지 않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신일이 좀 더 돋보여 보였다.
“...... 너.”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나랑 사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