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싸움닭(鬪鷄)
지난 이야기는 “리더의 조건”이었습니다. 안목, 품격, 권위, 아우라가 있어야 진정한 리더라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갖고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은 雜스런 日常입니다.
총공사비 1400억 원 중 우리 회사 몫이 283억 원인 “아시아 최대규모영월태양광발전소” 건설공사가 종료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시행사에서는 아직 공사비 80억 원의 지급을 미루고 있어 대금지금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자재를 납품한 업체가 인증서를 위조하여 형사고발을 했고 해당업체에서는 자재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공사 기간 중 설비를 손상한 업체에 대해서는 복구비용청구소송을 하는 등 크지 않은 공사에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송사가 많다. 그중의 압권은 하도급한 업체가 불공정행위를 했다하여 우리 회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것이다. 공정위 고발 전 상대기업은 공사대금 27억 원을 요구했고 우리 회사는 옆 공구 정산액을 기준으로 5.3억 원을 제시했다. 합의를 하기위해 수차례 협의를 했지만 금액차이가 커서 합의를 하지 못했다.
상대회사가 주장하는 27억 원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공기업 간부출신인 상대회사 대표의 협상태도도 문제가 있었다. 공정위 조사결과 우리 회사가 벌점을 받게 되면 입찰제한 조치로 공사수주를 못할 것이고 회사 신인도에도 불리할 것이며 벌과금으로도 수억 원을 내야하니 백기를 들라는 태도는 협상이 아닌 협박에 가까워 절대로 수긍할 수 없었다. 정당하게 27억 원을 받아야 한다면 명확한 근거를 대야 하는데 몇 차례의 협상과정에서 요구금액이 20억 원까지 내려갔으니 역설적으로 이는 정당한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공기업에서는 근거 없는 돈이라면 10원도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대방과의 무의미한 협상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사실 정공법을 택하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이 컸다. 부임 전 발생된 사안이지만 우리처의 잘못으로 인해 회사 전체가 입찰제한 조치를 받게 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문제는 둘째 치고 막대한 매출손실이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팀과 업무담당자들의 노력으로 다행스럽게도 9개월여에 걸쳐 공정위 조사를 받은 결과 우리 회사가 위법적 요소는 있으나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판정되어 벌과금 없이 벌점만 부과되었다.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재조사 요구, 헌법소원, 민사소송인데 공정위 재조사는 동일사안이라 상대방이 유리하지 않을 것이고 헌법소원은 예상되지 않으며 민사소송은 예상되며 해당업계에서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 민사소송은 내가 바라던 바였는지 모른다. 서로의 잘, 잘못을 따져 판결결과에 따라 우리 회사가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면 대가를 지불하면 되니 100억이라도 줄 수 있는데 상대방을 겁주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것은 사업파트너로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상대기업은 이전의 다른 공사를 수행하며 우리 회사에 지급해야할 50억 원의 공사비를 5년 넘게 미루고 있는 기업이니 흔히 이야기하는 기업윤리는 어디로 갔는지도 궁금하다.
형사고발과, 민사소송, 공정위제소까지 정공법을 택해 대처하니 본 건으로 인해 관련업계에 우리 회사가 만만한 공기업이 아니라는 소문이 났다는데 차라리 소문이 나려면 과장되게 났으면 좋겠다.
잡음을 없애기 위해 어물쩍 상대방을 무마하는 기업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싸움닭 같은 기질이 있더라. 물렁하게 봐서는 뼈도 추리지 못하겠더라. 싸움닭은 발에 날카로운 칼을 매달고 싸워 한 마리가 숨을 거두기 전에는 싸움이 끝나지 않는데 알고 보니 한전KPS가 사나운 싸움닭이더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9개월여에 걸친 지루한 싸움의 1막이 끝났다. 아직도 4건의 소송이 진행 중에 있고 아마도 2건의 추가소송이 예상되는데 마무리가 되려면 최소 2년 이상 소요될듯하다. 이제는 만성이 되어 그런지 웬만한 건으로 소송을 한다 해도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는다. 단지 귀찮을 뿐이다.
여러 현안들로 인해 술맛도 잃어 막걸리를 사겠다는 동료들과의 약속을 모두 미뤘는데 오늘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싸움닭들과 막걸리 한잔 하려 한다.
2015.10.04 전력사업처 임순형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