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온갖 고생하다가 잘난 남자 만나 신분 상승한 이야기라고만 보면 큰 오산이다.
다 읽고 나면 이게 소녀성장물인지 운명적인 사랑이야기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캔디라는 밝고 씩씩한 고아 소녀가 성장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간다는 큰 틀 속에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캔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잘난 남자를 만나 신분 상승할 생각은 1%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오만 잘난 남자들이 꼬이게 된 것.(...)
등장인물들의 주요 활동 무대를 기준으로 레이크우드 편, 런던 편, 메리제인간호학교 편, 시카고 편 크게 4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83년부터는 들장미 소녀 캔디 란 제목으로 MBC에서 애니메이션을 재더빙해 방영 했으며 역시나 큰 인기를 얻었다.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맡았던 권혁수는 오빠부대를 몰고다닐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80년대의 대표적인 미소년, 미청년역 전담 성우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1989년에는 화인프로덕션에서 MBC판과는 다른 성우 캐스팅으로 녹음된 대여용 비디오도 출시되었다. 2007년 대교어린이TV에서 비디오판이 방영되기도 했으며, 혜은이를 모셔다가 다시 주제가를 부르게끔 했다.
...그리고 훗날 같은 원화가에 의해 들장미 소녀 제니란 작품이 나오지만...해당 항목 참고.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한국에서 고난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은 '캔디형 주인공' 이라 불리게 되었고 머리 좀 장발로 기른 미남 남자 연예인이 나왔다 하면 별명이 테리우스가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주제가 작곡은 와타나베 타케오가, 작사는 원작 스토리를 쓴 나기타 케이코가 했다.
주제가 가사는 캔디의 밝은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웃으면서 달려가자 푸른 들을" 이라든가 "나 홀로 있을 땐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같은 구절 때문에 농담삼아 캔디 광년이 설이 나오기도 했다. 게이머즈에서 만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워낙 작품이 큰 인기를 끈 탓에 애니메이션 주제가 역시 한일 양국에서 모두 히트를 쳤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은 노래의 본편도 본편이지만, OP곡의 전조부가 귀에 익은 것에 경악하게 될 것이다.
일본판은 호리에 미츠코가 불렀다. 이 캔디캔디가 얼마나 메가히트를 했는지 호리에 미츠코는 캔디 캔디 노래에 짓눌렸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음반사에서는 동요와 같이 처리되던 애니메이션 노래가 별도 부서로 분리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발매사인 일본 컬럼비아에서 호리에 미츠코는 미소라 히바리 다음가는 거물로 취급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야말로 충공깽.
국내판은 몇가지 버전이 있는데 정여진씨가 부른 곡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인기 가수 혜은이도 캔디 주제가를 불렀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버전 오프닝 가사는 일본 오프닝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원래 가사내용은 자신의 주근깨와 들창코도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등등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고난을 이겨낸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당시 인고를 견뎌내는 어머니적 여성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렇게 개사하라는 상부의 압박 때문이라고도 한다.
6. 저작권 문제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1995년 11월부터 작화가인 이가라시 유미코가 닛폰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캔디캔디의 리메이크 얘기를 꺼내면서 코단샤와 20년동안 맺었던 저작권 관리계약을 해제한 데에서 비롯된다. 이에 닛폰 애니메이션 측도 글쓴이인 나기타 케이코에게 시나리오 제작을 맡기고 했으나 이미 끝난 작품이라는 이유로 그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이가라시는 1997년, 동 작품의 캐릭터를 이용한 스티커 카메라 설치를 시작으로 자신이 세운 '이가라시 유미코 미술관'을 비롯해 홍콩의 캔디코퍼레이션, 후지산케이애드워크(현 콰라스) 등지와 계약을 맺어 나기타 케이코와의 협의없이 판화, 사탕, 홍콩 번역판 만화책 등지의 형태로 무단으로 캔디 캐릭터를 이용한 각종 캐릭터 사업을 벌이면서 이것이 문제가 되어 원작자인 나기타 케이코가 1997년 11월에 이가라시와 후지산케이애드워크를 상대로 '복제판화 판매/배포금지'를 청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업에 앞선 1995년 11월에 이가라시 유미코와 나기타 케이코는 캔디를 이용한 부가 사업의 경우 쌍방이 협의하에 결정하기로 계약을 한 상태였음에도 이가라시 유미코는 이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에 이가라시는 이전에 원작자와 맺은 계약을 부정하며 '나기타 케이코는 원작자도 아니고 캔디에 대한 권리도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재판 도중에도 이가라시 본인과 변호사는 "항소 중이므로 결정난 건 없다"느니, "이미 원작자랑 화해한 상태이다." 등지의 개소리를 지껄이며 캔디 캐릭터를 이용한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1999년에 도쿄 지방법원과 2000년 도쿄 고등법원에서의 승소를 거쳐 2001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나기타 케이코의 원작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재판 이후에는 법적으로 나기타 케이코와 이가라시 유미코 둘의 동의가 있어야만 캔디라는 작품 자체의 저작권 활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가라시 유미코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원작자쪽의 권리를 부정하고 이에 대해 나기타 케이코 측도 격분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결국 두 사람이 관련사항에 동의해야만 사용가능한 캔디의 저작권은 봉인되다시피한 게 현 상황이다.
거기다 이가라시 유미코가 닛폰 애니메이션과 손잡고 리메이크 시도할 당시 코단샤와 저작권 관리계약을 해제해 토에이 애니메이션을 통수쳐 놓은지라 캔디 애니메이션이 각종 매체로 다시 나오는 것도 요원하다.
즉 한국에 나온 캔디 만화나 IPTV를 통해 서비스되는 캔디 애니메이션은 몽땅 해적판인 것이다. 일본에서 저작권 문제가 생겨서 해외 저작권은 누구도 신경쓰지 못하고 붕 떠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보니 완전히 대놓고 해적질(...) 대해적시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는 DVD도 발매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화인프로덕션에서 해적판 DVD를 발매하였다. 전편 115화 20 디스크라는 분량임에도 5만원 이하로 쉽게 구하는 것이 가능. 일본에는 발매되지도 않은 DVD인데다가 가격까지도 5천엔으로 매우 저렴하여 역수입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04년에 한국에서 방영한 캔디 주제가를 이용한 CF는 정식 판권이니 오해하지 말 것. 원작가(미즈키 쿄코=나기타 케이코)가 특별히 허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저작권료를 한국의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전액 기부하는 대인배적인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소설판의 경우에는 나기타 케이코가 권리를 온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 나기타 케이코가 원작자의 권리를 인정받은 이후인 2002년에 소설판을 냈다.
토에이 애니메이션 사이트로 들어가보면 캔디캔디 항목은 안 나온다. 누르면 그냥 처음으로 보내고 끝. 이는 1995년에 있었던 닛폰 애니메이션과 이가라시의 통수짓 때문이다. 1992년에 총집편 극장판도 나왔다. 이때도 호리에 미츠코가 주제가를 불렀다. 단 시대가 시대인지라 성우는 몇몇 바뀌었다.
2007년에 속편이 나왔다.'캔디캔디 파이널스토리'이다. 작가 나기타 케이코는 더 이상의 속편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작가의 구성 배경 및 의도는 여기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