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부인(令夫人)의 수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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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느 해 몇 년도인가는 확실치 않으나 당시 제1야당인 고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대항마로 여당의 이회창 국무총리를 후보로 지명하여 필승기원과 후보지명자 축하 행사로 신한국당 소속인 황낙주 국회의장의 건배 제의에서 비롯된 건배사로 기억됩니다. 행사장의 뜨거운 열기속에 황의장은 다음과 같은 건배사의 말머리를 열었다고 합니다. "우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신 이회창 후보와 영부인이신 한인옥 여사의 건강과 행운을 빌고 필승을 기원하는 건배를 올립시다" 그런데 이와같은 내용의 인삿말이 각 언론매체의 도마위에 시비 거리로 작용한 까닭입니다. 다음날 어느 모 일간지에서는 황의장의 무식한 소치와 지나친 아부를 일제히 질타하면서 심지어는 노추(老醜)라고 까지 혹평을 쏟아 놓는가 하면 한인옥 여사를 가리켜 아직 영부인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영부인의 뜻도 모르면서 대통령 부인에게만 쓰이는 영부인이라 부르기를 서슴치 않았다는 겁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위 이나라 국민들의 여론을 주도하고 계도한다는 지식층의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오히려 아연실색할만한 무식을 여과없이 폭로했으니 말입니다. 난데없이 뜻밖의 봉변을 당한 꼴이 되어버린 국가의 원로의원이자 입법부의 수장이기도 했던 노정객의 실로 참담하고 착잡한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영부인'의 바른 뜻은 무엇이고 왜 이처럼 터무니없는 헤프닝을 벌이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상호간 호칭을 할 때 접두사로 영(令)자를 붙이는 것은 상대방을 높혀주는 최상의 예우인 것입니다. 사전에서 영(令)자의 뜻은 착하다, 아름답다,훌륭하다,좋다,등으로 쓰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좋은 평판,아름다운 현상,좋은 시절,등 令자를 붙여 치하의 뜻으로 두루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令자를 붙여 에우하는 경우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남의 아버지를 영존(令尊) 영엄(令嚴)영군(令君)이라 합니다. 또한 남의 어머니를 영당(令堂) 영모(令母) 영자(令慈) 라고 하며 남의 큰아버지를 영백(令佰) 숙부를영숙(令叔) 남의 형을 영형(令兄) 아우를 영제(令弟) 남의 아들을 영식(令息) 영윤(令胤) 영자(令子) 영랑(令郞) 남의 딸을 영교(令嬌) 영애(令愛) 영양(令孃) 영원(令媛) 남의 사위를 영서(令서) 남의 누님을 영자(令姉) 여동생을 영매(令妹) 남의 손자를 영손(令孫) 영포(令抱) 남의 조카를 영질(令姪)이라 칭하며 상대방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 봉제사(奉祭祀) 하는 자손을 영사(令嗣) 영서(令緖)라고 따로 불러 우대해 주거니와 심지어는 남의 첩도 영총(令寵) 이라 하며 남의 종 까지도 영개(令价) 영복(令僕)이라 예우해서 불러 준다 합니다. 이왕 내친 김에 좀더 살펴보기로 하지요.남이 받은 시호를 영시(令諡)라고 하며 훌륭한 법규를 영갑(令甲) 영격(令格) 영규(令規) 영구(令矩) 남의 훌륭한 인덕과 덕망을 영덕(令德) 영망(令望) 영예(令譽) 영문(令聞) 영사(令士) 영칭(令稱) 영호(令好)라 하며 국량(局量)이 넓고 계책이 뛰어나거나 행동거지가 방정한 사람을 영기(令器)영도(令圖) 영모(令謨) 영유(令猷) 영의(令儀) 영혜(令慧)라 하며 그런가 하면 날 좋은 날을 영일(令日) 영신(令辰) 좋은 달을 영월(令月) 좋은 절기를 영절(令節) 그리고 꽃다운 한창 때의 나이를 영령(令齡) 아름답고 좋은 사교 모임을 영준(令準)이라 일컬었습니다. 이처럼 옛 어른들은 令자로서 예의를 갖추어 남의 부인을 부를 때에도 令자를 붙혀 영권(令券) 영규(令閨) 영실(令室) 영처(令妻) 영합(令閤) 영정(令政) 영부인(令夫人)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令은 상대에 대한 높임이고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혀 부르는 말인 것입니다. 일반 아낙의 뜻으로 불리는 부인(婦人)과는 구별하여 불렀습니다. 그래서 흔히 어떤 행사에 초대하는 청첩장의 말미 상단에 반듯이 동령부인(同令夫人)귀하라는 문구를 써넣었던 것입니다. 즉 왕림하실 때에는 꼭 영부인을 동반하여 오셔서 함께 기쁨을 누리시라는 인삿말로서 합당한 의전(儀典)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외명부(外命婦)의 부인들에게 수여하는 품계에도 모두 부인(夫人)이라는 말을 붙여 이를테면 정경부인(貞敬夫人) 숙부인(淑夫人) 정부인(貞夫人)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부인의 올바른 뜻은 반듯이 대통령 부인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남의 부인을 부를 때는 영부인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며 또한 나의 아내도 상대가 호칭할 때는 당연히 영부인으로 호칭해야 옳을 것입니다. 오유지족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