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선서 [김영환]
2월 들어 전국 수련 병원에서 의과대학 입학 후 7~11년 차인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약 9,000 명이 열흘 넘게 사퇴서 제출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의대생 수천 명은 동맹 휴학계를 냈죠. 의대 2,000명 증원은 의대 교육의 질을 낮추고 의료시스템을 붕괴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국민 여론은 76퍼센트가 증원 찬성입니다. 주요 일간지들도 모두 사설로 파업을 비판했습니다. 의사협회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증원을 지지하는 국민까지 이길까요? 총선 때 국민투표에 부쳐볼까요?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1명으로 평균이 3.6명인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
대학병원 대기실은 노인들로 붐벼 시장 같습니다. 인간의 품위를 찾기 어렵죠. 혈압 재기도 기다려야 합니다. 북한 의사도 3.4명 수준인데요. 북한 하면 떠오르는 것이 국가안보죠.
얼마 전 주말에 응급실에 갔는데 주로 노인인 87명이 와 있어 ‘별 이상 없음’을 확인하는 데만 11시간 걸렸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였습니다. 환자가 밀려 밤 9시께 영상을 찍었죠. 한 대 10억 원 이상을 한다는 장비라는데 하루에 기껏 30~40명 찍을 수 있답니다.
수가가 100만 원 이상일 텐데 장비는 왜 더 들이지 않는지 궁금했죠. 환자도 좋고 병원도 좋을 텐데요.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는데 영상을 최종 판독할 전문의가 없어 약 20일 뒤로 예약해 줬습니다. 진료가 왜 늦느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사람이 나타나자 직원이 데리고 나갔습니다.
의대 증원은 정부와 의사들이 마주 달리는 자동차에서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진다는 ‘치킨게임’을 벌이는 풍경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상황에서 400명을 늘리려다가 극렬한 저항에 포기했습니다. 문 정권은 나주에 한전공대를 세웠죠. 필요한 건 넘치는 공대가 아니라 공공의대였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로 입시 준비생들은 “야호”, 환호의 소리를 지를 법합니다.
현 13만 명인 의사를 1년에 2,000명 늘리는 증원은 저출산 고령화로 국민이 팍 늙어가는 나라에서, 선진국을 향하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당연한 수순이라고 이해됩니다. 환자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있을 수 없죠.
늘어난 인력으로 지역 필수 과목의 공공병원을 만들 수 있죠. 의대 전형은 비인기의 공공의료학과로 대별하거나 아예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등 진료 과목별로 뽑을 수도 있을 겁니다.
늘어난 자원으로 일본 드라마 <나이트 호스피탈-질병은 잠들지 않는다(ナイトホスピタル-病氣は眠らない)>처럼,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사회를 위해, 야간 전문 공공 병원을 만들 수도 있죠.
자신들이 기피하는 지방과 진료과목의 의사를 늘리려는 국가 정책에 한 덩어리로 뭉쳐서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이 아니란 생각입니다.
지금 세계적인 화두인 인공지능(AI)을 보면 의대 교육도 시대에 발맞춰 의료 빅 데이터를 축적해 급변하는 의료 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늑장 부리면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AI의 쓰나미에 떠밀려갈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분당서울대병원의 주도로 AI의료 서비스 플랫폼인 ‘닥터앤서’ 솔루션 개발에 30개 병원과 전문 기업들이 협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헬스케어 플랫폼인 ‘바빌론 헬스’는 “우리들의 목표는 사람들이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15개 언어로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자가 250만 명, 매출액이 2022년 10억 달러였다고 합니다. 환자들의 병원 내방을 30퍼센트 줄여줬다죠.
중국의 ‘平安好醫生(평안 굿닥터)’은 2,000명의 의사를 고용하고 5만 명의 의사와 계약하여 365일 24시간 가동으로 하루에 100만 건의 경증을 진료하고 처방합니다. 회원이 4억 명이나 된답니다. 거리에서 간단한 질환을 진료하고 약을 주는 무인 1분 클리닉도 오래전에 만들었습니다. 최종적으론 인간 의사의 확인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획기적이죠. 중국 AI는 영상을 보고 폐암을 몇 초 만에 진단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비대면 진료까지 의료인들이 막아왔죠.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미국과 일본의 의사고시를 무난히 통과했고, 중국산 AI 로봇은 의사고시에 '고득점' 합격했습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의대 정원으로 다툴 때가 아니죠. 기존 정원 3,058명에서 2,000명의 증원은 대학에서 요구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산정했답니다. 보건복지부는 2006년 의약분업 때 정원 351명을 안 줄였다면 올해까지 추가로 배출됐을 의사가 6,600명, 2035년까지 1만5,000명이 돼 의대 정원 2,000명을 안 늘려도 될 숫자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 의사 수의 10퍼센트를 좀 넘는 거죠.
의료계는 우리나라의 환자들의 병원 방문 횟수가 OECD 평균의 2.6배라서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 붐비는 병원의 긴 예약 대기, 너무 짧은 진료와 간단한 설명이 의사 부족 증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증원하면 진료의 질이 높아지고 의사들의 노동 강도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한국은 내년 65세 이상이 20퍼센트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어 병원 갈 일만 쏟아지는 거죠. 어떤 병원은 잽싸게 노령 내과를 만들고 담당 전문의는 텔레비전에 출연해 각종 질병을 열심히 설명합니다. 질병 정보와 치료 방법, 복약 지도는 데이터베이스화로 환자들과 인공지능이 직접 24시간 마음껏 문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고지혈증과 치매 예방약을 먹는데 너무 잠이 안 와 웹으로 검색했더니 어떤 부인이 극심한 불면증이 생겼다고 쓴 글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10시면 잔다는데 나는 왜 새벽 2시가 돼도 왜 못 잘까,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먹는 그 '뇌 영양제'를 친구에게 권했는데 동네 약사가 친구에게 “내가 잘 아는 사람에게 그 약을 팔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어느 날 약간 한가하여 의사에게 물었더니 “좋다고 생각하면 그냥 드시고요, 나쁘다고 생각하면 먹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네이버의 AI에 질문했더니 상호작용이 우려되며 의사나 약사와 상담하라고 했죠. 답을 못 얻은 나는 단골 약사에게 물었죠. 그는 약이 심야에 두뇌를 활성화하여 잠이 안 올 수도 있다며 아침에 복용하라고 했습니다. 아침에만 먹었지만 불면증은 그대로라서 그 약을 끊었습니다. AI에 물으면 명쾌한 답이 나와야 할 사안이죠.
나는 많은, 친절한 의사들을 잊지 못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검사 결과가 우려되니 빨리 내원하라는 전화를 직접 해주신 가정의학과 분도 계셨습니다. 얼굴을 보면 걱정이 사라졌죠. 나는 병원의 긴 대기 줄과 달리 일부 의사에겐 허명이 있으며, 2,000명씩 의사로 나올 7년 뒤가 아니라 지금도 천차만별이라고 믿습니다. 걱정되는 의료 질의 향상을 위해, 청진기와 주사기, 혈압계와 메스, 약 포장기뿐인 지금 시골 보건지소의 인턴들이나 벽지 의사들에게 어떤 대책을 강구하시나요?
의대 지원생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들어가니 어차피 우리는 AI에 밀려난다는 글이 눈에 띄었죠.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수입이 줄어 병원에서 폐지한다는 것입니다. 지방대 의대에 가서 서울로 유턴할 수 있냐는 물음엔 요새 뜨는 “피안성 정재영(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은 학벌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는 답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열공하고 있습니다. 의대생을 위한 전문의 학원에도 다닌답니다.
최고의 수재들이 연간 수억 원을 버는 안락한 꿈도 좋지만 보다 광대한 꿈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요. 스페이스X 재활용 로켓 개발, 100명이 타는 화성(지구로부터 최단 5,500만 킬로미터 거리) 유인 왕복선 탐사 등,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세계 정상급 갑부(재산 약 250조 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최근 사지가 마비된 환자의 뇌에 칩을 심어 마음먹은 대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너무나 멋지지 않습니까?
앞으로 의술은 1960년대의 공상과학 드라마 ≪스타트렉≫의 ‘트라이코더’처럼 단말기로 진단하는 시대가 올까요?
부디 우리나라 도규계(刀圭界)의 선배들이 수십 년간 인술로 쌓아온 공든 탑을 후배들이 허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핸드폰에 3년 전 서울대 의대 교정에서 찍은 옛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약 460년~370년) 동상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의대 13회가 세웠답니다.
◇서울대 의대 교정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동판에 이렇게 새겨 있었죠.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애타는 각종 환자연합회들의 소망대로, 빅5 대학병원장, 의과대학 학장들의 호소대로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오세요. 인술(仁術)은 결코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Message Of Love - Don Bennechi
(사랑의 메세지 - 돈 베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