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다고 들떠 있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났다. 프로야구도 그 시간의 흐름과 함께했다. 수많은 명승부와 스타들이 탄생했고, 또 그만큼 사라지곤 했다. 여행에서 남는 것이 사진이라면, 야구에서 남는 것은 기록일 터. 기록을 통해 21세기의 첫 10년을 장식한 스타들을 떠올려봤다. 그것이 좋은 기록이든 나쁜 기록이든, 일단 명단에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업적이다. 페이지를 열기 전에 일단 박수 한 번 쳐주자. 그것이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그래도 손민한이 있었다
- 손민한
롯데의 21세기 시작은 최악이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을 끝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1년부터는 그 유명한 ‘8888577’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러나 그 암울했던 시기에도 묵묵히 마운드를 지킨 선수가 있었다. 손민한이 주인공이다. 그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팀을 살리기 위해 던지고 또 던졌다. 부진한 성적에 롯데를 외면하던 팬들 또한 손민한만은 지켜주려 애썼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손민한에 대한 롯데 팬들의 자부심은 성적에서 드러난다. 손민한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총 90승을 수확했다. 전체 최다승이다. 부상으로 한 경기도 못 나온 지난해를 빼면 해마다 평균 10승을 올렸다. 특히 롯데가 팀 리빌딩에 박차를 가하던 2005년부터 맹활약을 뽐냈다.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 때까지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성실했다. 1306이닝을 던져 이 부문도 전체 1위다. 에이스라는 단어는 이런 선수를 두고 쓰는 말이다.
요즘 손민한에 대한 시선은 썩 좋지 않다. 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손민한은 2008년 12승을 거둔 뒤 고전하고 있다. 2009년은 14경기 등판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재기 또한 요원하다. 연봉과 이름값을 감안하면 아쉽다. 그러나 손민한의 가치를 단순히 성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는 팀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주던 유일한 선수였다. 그 가치는 기록으로 평가할 수 없다.
* 2001~2010 다승 TOP 5
1. 손민한(롯데) 90승
1. 리오스(KIA-두산) 90승
3. 배영수(삼성) 84승
4. 류현진(한화) 78승
5. 송진우(한화) 76승
# 타자들을 돌려 세우다
- 박명환
타자들에게 가장 짜릿한 순간은 홈런을 쳤을 때다. 그 쾌감은 쳐본 사람만 안다. 그렇다면 투수는? 삼진이다. 공을 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타자들을 돌려세우는 느낌은 통쾌함 그 자체다. 2001년 이후 이런 통쾌함을 가장 많이 맛본 선수가 박명환이다. 역대 통산 탈삼진 순위에서도 5위에 올라 있는 박명환은 2001년부터 총 914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LG로 이적한 이후 부상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이 기록은 더 나아갈 수도 있었다.
타자를 범타로 유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타이밍만 뺏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삼진은 다르다. 타자를 움찔하게 하는 구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만큼 2000년대 초반 박명환의 구위는 뛰어났다. 150km를 넘나드는 직구는 기본이고, 여기에 고속 슬라이더라는 필살기가 있었다. 전성기 박명환의 슬라이더는 웬만한 투수들의 직구 스피드와 비슷했다. 타자들의 방망이가 연방 헛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영점만 잡히면 언제든지 두 자릿수 탈삼진이 가능했던 모습은 과거의 일이다. 수차례의 부상은 박명환에게 ‘파워피처’라는 수식어를 앗아갔다. 직구 스피드는 뚝 떨어졌고, 고속 슬라이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교파 투수로의 전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박명환의 삼진쇼는 팬들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선수의 짜릿함만큼이나 팬들의 짜릿함도 컸기 때문이다.
* 2001~2010 탈삼진 TOP 5
1. 박명환(두산-LG) 914개
2. 류현진(한화) 900개
3. 배영수(삼성) 857개
4. 리오스(KIA-두산) 807개
5. 김수경(넥센) 804개
# 불? 지펴봐! 다 꺼줄 테니
- 오승환
요즘도 야구인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동열이 몸을 풀면 그냥 경기를 포기했다”라는 말이다. 마냥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럴 정도로 선동열은 위대한 투수였다. 그런 선동열 감독이 국내 최고의 마무리로 인정하는 투수가 있으니, 오승환이 그 주인공이다. 제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21세기 이후만 놓고 따진다면, 이 말에 사족을 달기는 어려워 보인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오승환은 지금까지 총 165번이나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가 절정이었다. 2006년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인 47세이브를 올린 것을 비롯, 3년 동안 126세이브를 쓸어 담았다. 마무리투수가 연차별 최고 연봉을 차례로 깼으니 활약상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상대에게 주는 위압감도 최고였다. 오승환이 등판하면 거기서 경기가 끝날 것 같았다. 하루 이틀 정도의 호투로 쌓을 수 있는 훈장이 아니다.
오승환은 마무리투수에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묵직한 구위는 물론이고,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까지 완비했다. 옥에 티는 최근 2년간 부상으로 주춤했다는 정도다. 하지만 오승환을 뛰어넘는 소방수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오승환의 시선은 한국프로야구의 전설들로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 통산 세이브 1위 김용수(LG)의 기록은 227세이브. 얼마 남지 않았다. 적어도 오승환에게는 그렇다.
* 2001~2010 세이브 TOP 5
1. 오승환(삼성) 165세이브
2. 조용준(넥센) 116세이브
3. 정재훈(두산) 113세이브
4. 진필중(두산-KIA-LG) 88세이브
5. 노장진(삼성-롯데) 86세이브
# 내가 살 곳은 마운드다
- 류택현
선발투수들은 특혜를 받는 부류다. 하루만 힘껏 던지면 4일의 휴식이 보장된다. 이에 비하면 불펜투수들은 노예다. 훨씬 더 많은 경기에 나선다. 연투도 흔하다. 더군다나 언제 등판할지도 알 수 없다. 거의 매 경기 몸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다. ‘야구의 3D 업종’이라고 푸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투수 출장 기록은 그 의미가 크다. 꾸준함과 건강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다승이나 세이브 못지않게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2001년 이후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는 류택현이다. 류택현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75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등판의 99%가 ‘폼 안 나는’ 원포인트 릴리프였다. 그럼에도 류택현은 최선을 다했다. 빛이 나지 않는 자리에서 최다 출장이라는 빛나는 기록을 세웠다. 같은 기간, 타자 중에서도 류택현보다 많은 경기에 출장한 선수는 100명이 안 된다. 차곡차곡 쌓은 대기록이라 할 만하다.
류택현은 지난해를 끝으로 LG에서 방출됐다. 팔꿈치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LG가 예우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은퇴 후 구단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류택현은 거부했다. 만 40살의 나이에 팔꿈치 수술이라는 모험을 선택했다. 재활을 거쳐 현역으로 복귀한다는 각오다.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도전이 성공한다면 프로야구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 투수최다출장기록이다. 3경기면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
* 2001~2010 경기출장(투수) TOP 5
1. 류택현(LG) 575경기
2. 가득염(롯데-SK) 513경기
3. 송신영(넥센) 487경기
4. 조웅천(SK) 459경기
5. 오상민(SK-삼성-LG) 452경기
# 거북이는 계속 걸었다
- 박한이
21세기가 밝은 뒤 최고의 교타자를 뽑는다면 어떨까?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병규를 말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장성호를 말할지 모른다. 어쩌면 김현수의 이름이 거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타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안타로만 따진다면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박한이다. 2001년 이후 1316안타를 친 박한이는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이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분명 박한이는 잘 치는 타자다. 2003년에는 170안타를 몰아치며 최다안타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그래도 좀 의외다. 경쟁자들에 비해 인상이 강렬하지 못한 탓이다. 통산 타율은 3할이 안 된다. 타율로 치면 김동주나 장성호가 더 뛰어났다. 이 때문에 타석에 더 많이 들어서는 톱타자의 이점이 만들어낸 기록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이병규가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이 타이틀의 수상자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꾸준했다. 박한이의 1위 등극에 함부로 토를 달 수 없는 이유다. 2001년 이후 1200경기 이상에 출전한 선수는 리그에서 박한이가 유일하다. 또한 박한이는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세 자릿수 안타를 놓쳐본 적이 없다. 결국 꾸준함이 만들어준 기록인 셈이다. 경쟁자들처럼 통통 뛰는 토끼는 아니지만, 거북이처럼 묵묵히 길을 걸었다. 그리고 동화에서처럼 가장 첫 머리에 섰다. 박한이는 21세기 첫 10년이 만든 숨은 영웅이다.
* 2001~2010 최다안타 TOP 5
1. 박한이(삼성) 1316개
2. 장성호(KIA-한화) 1219개
3. 홍성흔(두산-롯데) 1199개
4. 이진영(SK-LG) 1182개
5. 양준혁(삼성) 1176개
# 2인자도 역사에 남는다
심정수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 2등은 잊힌다. 사람들이 기를 쓰며 1등이 되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2등이 없는 1등은 없다. 때로는 1등을 더 빛나게 하는 감초가 되기도 한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심정수가 딱 그런 선수다. 심정수는 이승엽이라는 당대의 거포에게 밀린 2인자 이미지가 강하다. 많은 홈런을 때리고도 항상 이승엽에게 밀렸다. 그렇다 해도 심정수가 남긴 기록까지 간과할 수는 없다.
통산 328개의 홈런을 기록한 심정수는 그 중 202개를 2001년 이후 쏘아 올렸다. 10년을 꽉 채운 것도 아니다. 8시즌 만에 이 기록을 세웠다. 역시 백미는 이승엽과의 홈런 레이스 당시다. 2002년에는 46개, 2003년에는 53개를 담장 밖으로 넘기며 괴력을 과시했다.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한 이후, 삼성이 대체자로 심정수를 지목한 것은 그의 가치를 방증한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심정수는 삼성 입단 이후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부상이 문제였다. 2006년은 26경기 출장, 2008년은 22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리고 더 뛸 수 있는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만약 심정수가 건강했다고 가정하면, 프로야구 통산기록이 여럿 바뀔 수도 있었다. 우선 장종훈의 홈런 기록은 양준혁이 아닌 심정수에 의해 경신됐을 것이 확실하다. 한편 양준혁은 심정수 덕에 타점 신기록행진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기록 그 자체로도 훌륭하다. 2인자도 역사에 남았다.
* 2001~2010 홈런 TOP 5
1. 심정수(현대-삼성) 202개
2. 송지만(한화-넥센) 198개
2. 이대호(롯데) 198개
4. 김태균(한화) 188개
5. 김동주(두산) 176개
# 두목이라 불린 사나이
- 김동주
맞다. 김동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솔직해지자. 김동주를 싫어하는 이유 중 “너무 잘해서”라는 시기와 질투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가? 부끄러워하지 말자. 당연한 심리다. 적어도 2001년 이후부터만 따진다면, 김동주는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였던 까닭이다. 또한 지금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투수들에게 주는 위압감은 덤이다. 김동주만큼 ‘두목’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선수는 없었다.
성적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2001년 이후에만 707타점을 올렸고, 드넓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면서도 176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힘만 앞세우는 선수도 아니다. 지난 10년간 타율이 0.314에 이른다. 김동주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던 선수는 팀 동료 김현수가 유일하다. 또한 출루율, 장타율, 희생플라이 등 다른 지표에서도 고른 성적을 냈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가 김동주다.
어느덧 김동주도 노장이 됐다. 올해로 36살이다. 보통 선수였으면 많은 것을 후배들에게 내놔야 하는 시기다. 그러나 김동주의 위상은 여전히 굳건하다. 아직은 끄떡없다. 타순도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김동주가 버틴다는 자체만으로도 두산의 중심타선은 강력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든든한 지주가 있다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는 큰 복이다. 김동주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우리는 김동주라는 새로운 전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 2001~2010 타점 TOP 5
1. 김동주(두산) 707개
2. 장성호(KIA-한화) 706개
3. 김태균(한화) 701개
4. 이대호(롯데) 696개
5. 송지만(한화-넥센) 664개
# 내가 최고의 도둑이다
- 이대형
도루(盜壘)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도둑 도’자가 쓰인다. 말 그대로 ‘누(壘)를 훔친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도둑질이다. 또한 팬들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빠르다고 누를 훔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 배터리의 수를 읽는 센스가 필요하다. 불로소득은 더더욱 아니다. 한 경기에도 몇 번씩 몸을 날려야 한다. 도루왕들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그래도 팀을 위해서 감수한다.
‘슈퍼 소닉’ 이대형은 요즈음의 프로야구에서 대도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다. 김일권-이순철-이종범-전준호로 내려오는 계보를 잇는 적자이기도 하다. 기록만 보면 역대 최고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대형은 3년 연속 60도루 이상을 성공시켰다. 그 어떤 대도도 2년 연속 60도루를 성공시킨 적이 없었다. 오직 이대형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4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에 올랐다. 이대형의 질주를 막을 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대형은 항상 ‘반쪽짜리’ 선수라는 폄하에 시달리곤 한다.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율과 출루율만으로 이대형을 평가할 수는 없다. 발의 가치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상대 배터리를 괴롭히는 공을 무시할 수 없고, 도루를 통해 단타를 2루타로 둔갑시킬 수 있음을 잊어서도 안 된다. 여기에 넓은 수비범위는 최고다. 진짜 도둑들에게는 손가락질을 해야겠지만, 이대형 같은 도둑은 더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 2001~2010 도루 TOP 5
1. 이대형(LG) 307개
2. 김주찬(롯데) 242개
3. 박용택(LG) 217개
4. 이종욱(두산) 212개
5. 정수근(두산-롯데) 208개
응원 횟수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