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35~46 / 지갑과 칼을 준비하라고 하신 예수님
(눅 22: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눅 22: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눅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눅 22: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눅 22: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눅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 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눅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저는 싸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손해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서 싸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싸움은 세상 사람들의 싸움과는 다릅니다. 세상적인 악한 싸움이 아니라 선한 싸움입니다. 혈과 육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악령과 싸우는 것입니다.
둘째는 연약한 육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바울도 선한 싸움을 잘 싸우라고 격려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는 씨름과 같습니다. 그 싸움이 힘이 듭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악한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육신과 사탄을 이기고 기적이 일상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5~38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전대도 주머니도 신도 없이 전도 여행을 다녀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전대와 주머니와 검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사라고 하십니다.
전대는 돈을 빼앗아 놓는 주머니요. 주머니는 물건을 빼앗아 넣는 자루입니다.
이 말씀만 보면 예수님이 이제 떠나니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무리들과 싸움을 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말고의 귀를 자르자 ‘칼을 꽂으라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칼과 주머니와 전대를 가지라고 한 것은 말씀의 칼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성경 말씀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사야 53:12b절 "이는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칼을 가지고 사탄과 싸울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려면 말씀의 칼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한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칼만 가지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의 칼이 성령의 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칼이 성령의 검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한다
39~40 이날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목요일 날입니다.
예수님은 평상시 가시던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십자가를 앞두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육신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은 항상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비난받지 않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미움받지 않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통을 피하고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육신의 유혹이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데 방해됩니다. 우리가 이런 육신의 유혹을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욕구가 있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하고 사람들에게 비방과 모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침 뱉음도 당하고 발길질도 당합니다.
발가벗겨지는 수치도 받아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여섯 시간을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십자가를 앞두고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두려움과 슬픔이 육신의 소원에서 오는 유혹인 것을 아셨습니다. 이것을 싸워서 이기고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되고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슬픔 두려움 불안 염려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육신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기도와 말씀으로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날 때 심히 두렵고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기도로 두려움을 물리쳤을 때 자신을 죽이러 오는 에서가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으로 첩 브닌나에게 시달림을 받아 심히 슬펐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이를 물리쳤을 때 사무엘을 낳고 다윗 왕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그때 마음에 평안이 오고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며 말씀으로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리며 싸우셨습니다.
41~44 예수님이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소원을 진실하게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자기 육신의 소원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고통스럽습니다.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를 돌아보지 아니합니까? 내가 슬프고 낙심됩니다.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사랑하신다면서 왜 이 고통을 주십니까? 이런 기도가 진실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솔직하게 아뢰는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이사야 53장 말씀을 잡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았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육신의 소원과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육신의 소원을 이기셨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기도하는 예수님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육신은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방해하지만 천사는 기도할 때 힘을 주사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통곡하며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피와 땀과 눈물로 기도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그만큼 육신의 소욕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육신의 소원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얻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홀로 기도하는 것이 힘들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셨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이 힘들 때 기도의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슬픔과 절망과 불안을 극복하기까지 기도해야 우리는 진정한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5~46 기도하러 따라갔던 제자들은 피곤함과 슬픔을 인하여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어찌하여 자느냐 책망하시고 다시 한번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밥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사자와 같은 사탄을 잡아서 노획물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사자를 팔아서 큰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자다가 다 도망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한 시간씩 세 번 기도합니다. 세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시간 기도하면 나를 이기고 두 시간 기도하면 사탄을 이기고 세 시간 기도하면 기적이 일상화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사탄의 시험을 세 가지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40일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사탄의 첫째 시험은 말씀보다 돈을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다는 말씀으로 돈보다 말씀이 좋다는 것을 영접하고 말씀을 택하였습니다. 둘째 시험은 사람들 앞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과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소명을 가장한 야망을 물리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방법보다 사탄의 방법으로 구원역사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말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결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인류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첫째는 육신의 소원과 싸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안일하게 살고자 하는 소원과 싸워야 합니다. 인정받고 비난받지 않고자 하는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죽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이기심과 싸우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탄의 시험과 싸워야 합니다. 말씀보다 돈을 중시하고 하나님을 빙자하여 가신을 과시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사탄의 시험과 싸워야 합니다. 말씀을 잡고 기도함으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