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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PAPER 2008년도 1월호 '이충걸의 소설 아닌 소설' 섹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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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탁구를
난 여섯 살 때부터 아빠와 탁구를 쳤다. 난 탁구의 모든 것을 좋애했다. 탁구공이 테이블과 라켓 사이에서 폭폭 튕겨지는 소리도 좋았고, 공을 제대로 쳤을 때의 찌릿함도, 공이 왔다 갔다 대화하는 것 같은 모습도 좋았다.
나는 지하에서 탁구를 배웠다. 창고로 쓰는 우리 집 지하실은 언제나 무서웠다. 낡아서 망가진 것도, 가지고 놀 것도 없었다. 형광등이 비치지 않는 뒤쪽에 노출된 시멘트 벽 뒤로 어두운 공간이 끝없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피처럼 붉은 스위치 판엔, 스위치를 끄면 절대로 안 된다는 아빠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뭔가가 나타나 날 죽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하실엔 탁구대가 있었는데, 나에겐 적어도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이유였다.
초록핵 페인트 위에 하얀 중앙 라인이 그려져 있는 탁구대 아래엔 갈색 울 담요가 깔려 있었다. 가구라곤 아빠가 신혼 때 산 식탁 의자와 구석의 파란 공단 소파밖에 없었다. 가끔 소파 뒤로 빗맞은 공이 굴러들어가 숨는 바람에 리놀륨바닥이 패도록 소파를 끌어내야 했다. 아빠가 시합에 나가 받았던 금빛 트로피 열일곱 개는 견장처럼 자랑스럽게 바닥에 놓여 있었지만, 때론 공을 찾기 위해 휘저어야 할 추가된 장애물이었다.
탁구대는 늘 먼지와 끈적끈적한 자국들로 뒤덮여 있었다. 친구들이 카운트를 보며 환타나 오란씨를 흘린 자국이었다. 그들은 탁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실은 양쪽으로 갈렸다. 일부는 멋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애들은 "요즘 누가 탁구를 치니? 다 게임 하지." 그러면서도 시합은 봤다. 하긴, 대부분의 내 또래들이 탁구에 관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끔 TV로 중국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것뿐이었다. 골프, 테니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와 프로를 가르는 차이(크기와 성격)에 대해 알 수 있는 숱한 기회와 만나지만 탁구는 자주 방송을 타는 것도 아니고, 토너먼트 관중들은 다른 토너먼트의 선수가 되는 게 대부분이다. 또 9X5사이즈 테이블에 6인치 높이의 네트, 작은 플라스틱 공, 그리고 나무로 된 어른 손바닥만 한 라켓이 장비의 전부인, 그처럼 겸손한 스케일에 쉬워 보이는 경기도 없을 것이다. 이름도 꼭 주방세제 같아서 하나도 심각할 일도 없이.
아빠가 나와 탁구를 칠 때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몇 번의 샷을 놓칠 때도 있었지만, 그건 탁구의 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시합의 핵심은 여전했다. 아빠의 대표적인 샷이었던 포어핸드와 체스의 대가처럼 경기를 장악하는 힘은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세계 챔피언급 탁구 선수들은 9000rpm 속도의 스핀을 날린다지만, 아빠의 죽음의 포어핸드는 탁구대 끝에 세운 담배를 단번에 쓰러뜨릴 정도로 정확했다.
아빠의 학습법은 불필요하게 가혹했다. 언젠가 아빠가 포어핸드 드라이브 자세를 가르쳐줄 때, 내 라켓은 위보다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빠가 머리를 숙이라고 해서 바닥을 내려다보자 더 큰소리가 내 뒷통수를 가격했다.
"내가 숙이라고 한 건 네 머리가 아니라 라켓의 머리다, 이 멍충아."
가장 강한 샷은 상대의 공격을 받아치는거야, 라고 아빠는 말했다.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는 척하곤 다시 정확히 상대 쪽으로 되받아치는 거야. 팔꿈치를 겨냥하고, 하지만 난 리듬을 타지 못했고 나의 샷은 도저히 예상대로 나가지 않았다. 아빠는 늘 내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자기가 제대로만 서브를 넣는다면 난 단 하나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늘 큰 소리쳤다.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었다. 나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내 마음속의 존경심을 지키기 위해 죽어라고 스매시를 날렸지만 아빠를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번은 아빠가 나에게 핸디 10점을 걸고 내기를 했었다. 전교 40등 안에 드는 것과, 남색 더플코트가 걸린 시합이었다. 아빠는 비장하지도 않게 말했다.
"안 봐준다."
첫 세트의 처음 다섯 번 난 아빠의 서브에 할 말을 잃었다. 짧게, 길게, 무겁게, 가볍게 들어오는 서브는 받을 수도 없었고, 그중 세 번은 라켓을 대지조차 못했다. 라켓에 겨우 맞힌 공 두 개는 내가 보내려던 방향과 반대로 날아가, 하나는 탁구대 왼편 모서리를 스치며 밑으로 곤두박질쳤고 다른 하나는 천장으로 솟구쳤다. 아빠의 라켓에선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는 동네 친구처럼 치지 않았다. 하나님처럼 쳤다. 난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오래 연습을 안 했더니 몸이 안 풀려서 그래. 아빠가 운이 좋아서 그래.
일곱 번째 서브를 받았을 땐 나조차 믿을 수 없었다. 불처럼 빠르고 무시무시한 공을 보낸 건 아니지만, 어쨋든 넘겼다. 물론 그는, 내가 라켓 앞면으로 가 아니라 라켓 옆구리로 빗기든 얼결에 받아친 걸 보았다. 아빠는 나를 세 판 내내 21대 0으로 이겼다. 난 여전히 현실을 부인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아빨 이길 수 있어요."
아빤 탁구에서만큼은 나의 승부근성과, 공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때의 울부 짖음을 맘껏 발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다. 내가 전력을 다해서 날린 결정적인 강타는 언제나 인정해주었다.
탁구는 인생의 과정과 같다. 철저한 채식주의자 혹은 사무라이가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탁구에 관한 내 자신감만은 한계가 없었다. 세상에는 금덩이 손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기술의 노예가 된 로봇 선수들. 그러나 나는, 중국인들 중 2백만이 프로 선수라고 해도 다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무 때나 시합을 해도 무조건 이긴다는 얘긴 아니고, 환경-조명, 테이블 주변의 공간, 음향상태-만 되면 아무튼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샷을 날릴 '순' 있다는 거다.
어렸을 때의 나에게 탁구는, 공이 탁구대에 부딪혔다가 톡톡 튀어 오르는 우아한 게임도 아니었고, 위엄 있는 뉘앙스를 지닌 운동도 아니었고, 저녁식사 후의 단순한 오락거리도, 아주 까다롭고 민감한 스포츠도 아니었다. 그냥 세계를 몰살해버리는 게임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완벽하게 도망갈 수 있었다. 난 어떤 주저나 수줍음도 없이 탁구를 쳤기 때문에 내 인생에 탁구 게임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차별 되었다. 다른 데 놀러 가도 그 도시에 탁구장이 있는지를 늘 확인하던 아빠처럼 나는 잘 때도 라켓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었고, 여자 우승자의 상그밍 남자보다 더 적다는 데 분개했었다. 그건 명백한 성적 차별이었으니까.
나는 탁구를 잘 쳤다. 내 손과 눈은 타이밍을 포착하는 뛰어난 감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빠처럼 엄지와 검지 사이로 탁구채를 잡는 펜홀더 그립이었던 나는 언제 어떻게 공을 회전시켜야 하는지, 네트 얼만큼 위로 공을 커트해야 할지, 어떻게 벨 것 같은 각도로 스매싱을 날려야 할지, 언제 테이블 끝으로 길게 회전을 그리며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난 언제나 시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늘 학교 탁구부 언니들과 다른 동네의 탁구동아리 오빠들을 찾아 겨루었다. 세상엔 별의별 나이와 모습과 수준과 전형의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나는 거의 이기는 축이었다. 대가족이 부산스럽게 응원하는, 세 살부터 탁구를 쳤다는 탁구 신동, 탁구에 너무 빠져 생일파티도 탁구대 위에 초코파이를 올려놓고 했다던 여드름 자국 천지의 열여섯 살 오빠, 큰형 때문에 열한 살 때부터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는 중학교 탁구부 주장, 전국 대회를 준비 중이던 중국 선수 헤지리를 닮은 고무줄 언니도 깼다. 나는 늘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까를 생각했다. 때론 상대가 예측하는 서브와 정반대의 서브를 넣고, 때론 그가 예측하는 대로 서브를 주어 상대가 게임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나선 한 방에 부숴버렸다.
진 적이 있진 않으냐고? 물론. 실점하는 요소엔 선수 자신 말고 다른 게 더 있다. 탁구대 중심의 네트가 너무 헐겁거나 높아도 그럴 수 있고, 바깥 소음이나 부산스러운 관중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가끔 내 발이 탁구장 바닥을 너무 낯설어하기도 했다. 어쩌다 시합에 졌을 때도 예의 바른 소녀처럼 굴었다. 그러나 시합에 졌는데, 발목까지 삐었을 땐 라켓을 집어던지기도 했고, 심한 욕을 한 적도 있다.
라켓은 늘 문제였다. 오돌토돌한 고무막 커버가 얇게 덮인 우리 집 라켓도 형편없었고, 머리에 대고 밀면 뿌리까지 빠져나갈 듯 그악스럽게 매끈거리는 탁구장 라켓도 후지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반인들이나 쓰는 표준적이고도 후진 라켓 대신 더 부드럽고 더 균형 잡힌 재질의 러버를 댄 프로 선수용 라켓이 갖고 싶었다. 그냥 라켓이면 됐지 특정한 고무, 스펀지, 두께, 나무, 그리고 스피드 그루가 다 무슨 상관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날로 머리털을 다 뽑아놓았을 것이다.
내가 열 네 살 때 아빠는 나를 데리고 동대문운동장의 스포츠용품 가게에 갔다. 아빠는 슈퍼마켓에서 수박을 고르는 것처럼 러버를 만지작거리다가 내 전형에 맞는, 2.5밀리미터 일급 버터플라이를 사선, 탁구채 앞뒤에 붙은 고무를 떼어내고 떼어낸 고무와 나무에 접착제를 얇게 펴 바른다음, 15분 후 접착제가 완전히 마르자 러버를 나무판에 단단히 붙였다. "양영자나 따이리리도 이런 라켓 못 가져봤을 거야."
아빠는 또 말했다. "정말 잘치고 싶음 몸을 키우면 안돼. 어차피 큰 근육은 탁구에 도움이 안돼. 팔 근육을 키우면 몸의 균형을 깰지도 모르거든. 강하게 쳐야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기도 해야 돼. 근육은 서로 조화롭게 움직여야 하거든.
아빠의 탁구 지식을 들을 때마다 타이거 우즈 생각이 났다. 타이거 우즈는 컴퓨터였다. 그러나 나에겐 그렇게 많이 알 필요도 요구도 없었다. 이기는 것에 목말라 하는 것, 시합에 나가고 싶은마음,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러나 매순간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따라다니는 직업선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원치도 않았다. 나이 먹을수록 시합에 나가고 싶은 마음,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러나 매순간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따라다니는 직업 선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원치도 않았다. 나이 먹을수록 시합이 끝나면 더 길게 쉬어야 할 게 뻔했다. 경기마다 고통은 커가고, 매번, 더 잘할수록 덜 안심된다는 걸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아빠는, 내가 선수가 되길 바라신 걸까, 아니면 단지 취미로 좋아하길 바라신 걸까? 아빠는 탁구를 사랑하셨을까, 탁구 치는 것을 사랑하셨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체전에 나가 우승까지 했지만, 나는 결코 선수가 될 수 없었다.
남편 따라 아르헨티나에서 피복 공장을 운영하는 동안 나에게 탁구는 습관이 아니라 한때 쳐봤던 무었이었다. 이따금 나는 탁구의 신전 안에서의 나의 위치, 더 정확하게 탁구 신전으로부터 내가 떨어져나간 거리, 지구로부터 큰곰자리별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곤 했다. 서울에서 떠나온 지 15년이 지나는 동안 탁구는 TV에서 우호적인 경기로 변했다. 탁구공 사이즈가 커졌고, 서브를 넣는 선수는 더이상 공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21점이 한 세트인 경기에서 5점마다 서브권을 넘기는 규칙은 11점을 내고 매 2점마다 서브권을 넘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게임은 훨씬 짧아졌다. 그건 체스 경기를 더 재미있게 한답시고 체스말의 반을 버리는 것, 햄릿 연극을 더 흥미롭게 하기 위해 제 3막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았다. 모든 시합을 즐겁게 만드는 반전의 기회가 줄었다. 결국 탁구는 한때 드라마였지만, 이젠 일반화되고 단순하고 비개인적인 흥미로 전락했다. 기존 게임이 가졌던 고유의 검투사적인 전투이자 나와 당신 간의 인간적인 전투로서의 묘미가 사라지고, 내 라켓과 상대 라켓의 전투가 된 것이다. 나와 내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는 지하실 벽에 선수 시절의 아빠 사진을 새로 걸고 계셨다.
십여 년을 손에서 놓고 지냈지만 몇 번 공을 치고 나니 내 동작이 문제는 아니란 걸 알았다. 여태껏 모든 걸 잘못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난 정말 작은 탁구를 치고있었다. 라켓 손잡이를 너무 낮게 잡고 있었고, 공을 칠 때는 손이 너무 옆으로 휘어져 있었다. 탁구에서 적당한 스트로크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작과 앞으로 숙이는 동작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거기에 공이 닿을 때 라켓 각도가 속도와 회전을 좌우한다. 그런데 난 꼭 움직여야 할 필요를 느끼기 전까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땐 움직이지 않고 손만 뻗어 공을 치거나 받는 게 좋은 샷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제 와서 난, 움직이면서 다음 샷을 기다려야 한다고 자꾸만 내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난 여전히 운동 신경을 흔적처럼 가지고 있었다. 난 상대가 대각선 샷을 기대하고 있을 때 탁구대 양옆 직선으로 공을 보내는 것에 능란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러자 백스핀의 수비자세인 백핸드와 포어핸드 드라이브가 저절로 나왔다. 아빠 역시 녹슬지 않았다. 내 백핸드는 삽시간에 속도를 늦춘 커트로 끊겼고, 나의 꽤 강한 포어핸드는 네트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테이블 끝으로 뻗어나가는 맞드라이브로 되돌아왔다. 아빠의 공은 라켓 고무 속으로 침몰했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에게 돌진해왔다. 치명적인 펀치를 날리며 내 얼굴을 내리치기도 했다. 여전히 아빠는 권총으로, 나는 활과 화살로 뛰어든 시합이었다. 시합은 접전이었다. 매치포인트로 다가갈수록 아빠는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진 채 긴 드라이브를 날렸다. 그때마다 볼은 아웃 되거나 네트에 걸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 번이라도 아빠를 이기고 싶었고,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오늘, 생에 처음으로 아빠를 이겼다.
"와, 언제 그렇게 늘었니?"
아빠는 경이로운 듯 활짝 웃었다.
"그동안 내가 봐드린 거 모르겼죠?"
내가 응수했다. 그 옛날 우리의 게임이 끝날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빠는 복싱 아나운서 흉내를 내며 다시 외쳤다. "오늘의 승리자, 내 딸, 영원한 챔피언입니다!" 문득 아빠가 실력의 10분의 1도 채 발휘하지 않았다는 것, 내 샷을 일부러 네트에 걸리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내가 이긴게 아니라 아빠가 져주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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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환상적인 장편(掌篇) 소설입니다....정말 빨려들어가며 읽었습니다. 감사^^
와우, 정말 잘읽었습니다.
정말 탁구를 제대로!! 아는분이 쓰셨군요~
햐!! 정말 부럽네요^^ 긴 글이었지만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들고 아빠가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언제쯤이면 나도 잘칠라나 아~부러워라 0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