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천홍 화분의 선물
매우 화려한 호접란인 만천홍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오늘 오후 내가 강의를 맡은 배움교실에서 수필 공부를 함께하는 문우들이 보내준 것이다. 그것도 S 시인이 집으로 직접 가지고 왔다. 얼결에 받아들면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얘기에 바쁘다는 핑계를 앞세워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선물의 합당성 여부에 의구심이 들어 몹시 미안하고 결례를 한 것 같아 편편치 않다.
어쩌다 보니 소위 등단 이후 몇 해 뒤부터 거의 매년 한권씩 수필집을 펴냈다. 금년에도 이달(계묘년 2월) 초순에 18번째 수필집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를 출간했다. 마침 수필 배움교실을 다시 열고나서 세 번째 강의가 열리던 날(2월 18일) 참여하는 문우들에게 한 권씩 건넸다. 그랬더니 황송하게도 오늘(2월 20일) S 시인이 대표로 난 화분을 가지고 온 것 같았다. 화분의 전면에 달린 두 개의 리본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그 하나에는 “한판암 교수님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다른 하나에는 “배움교실 수필반 일동”라고 적혀있었다.
지나치게 호화롭고 꽃도 몇 백 송이가 무리지어 피어 과하다고 판단돼서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엄청난 가격에 깜짝 놀랐다. 엇비슷한 수준의 화분의 가격은 최하 20만원부터 시작해 놀랄 정도로 매우 비쌌다. 연분홍 색깔을 띈 꽃으로 꽃대가 자그마치 아홉이다. 각 꽃대마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여려 송이가 활짝 피어났으며 끝 부분엔 앞으로 피어날 꽃 몽우리가 무수하게 달려있어 장관이다. 개인적으로 여태까지 이렇게 고급 난 화분을 가졌던 적이 없어 기분은 엄청 좋지만 마음 한켠은 무겁고 문우들에게 폐를 끼치고 크나큰 빚을 진 기분이다.
지금 진행 중인 수필 배움교실은 일종의 재능 기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문우들에게 심적 부담을 주거나 신경을 쓰지 않도록 처신한다. 이런 이유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집에서 배움교실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 신세를 진다. 한편 강의를 마치고 귀가 할 때는 특별한 변동사항이 없는 한 택시를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운 좋게 운전하는 문우 중에 우리 집과 방향이 같은 사람이 있을 경우엔 그 차를 얻어 타기도 할 참이다.
수입을 목적으로 참여하는 배움교실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강의를 해도 강사료를 비롯한 어떤 형태의 사례도 없다. 잘은 모르지만 참여하는 문우들은 강의가 열리는 날엔 각자의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위해서 1만원씩 갹출하는 것이 전부로 그 외에 개인이 부담하는 여타의 비용은 없지 싶다. 따라서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은 강의 종료 뒤에 저녁식사를, 셋째 주 토요일은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처음엔 나도 회비 갹출에 동참하려 했으나 극구 반대해 눈을 질끈 감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공짜로 식사를 얻어먹고 있다.
예로부터 ‘배보다 배꼽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책 얘기를 꺼내거나 기증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문우들에게 내 책이 새로 출간되었으니 구해서 한 번씩 읽어보라고 낯 두꺼운 얘기를 하는 편이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 아니었을까. 책값은 기껏해야 1만 5천원인데 비해 내게 난 화분을 선물하기 위해 각자가 책값보다 많은 돈을 부담했을 게 명명백백하다. 별 뜻 없이 책 한권을 기증했을 따름인데 ‘배보다 배꼽이 커진’ 격이 된 현실에 겸연쩍고 송구할 따름이다. 매년 책을 펴낼 때마다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숱하게 책을 보냈어도 오늘의 경우처럼 부담스런 선물을 받았던 적이 없어 어찌 대응해야 할지 허둥대고 있다.
강의를 하며 외형적인 체면치레를 위해 재능 기부라고 번지르르하게 포장하지만 이는 내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려는 연민에 지나지 않으리라.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치유(healing)의 방법으로서 강의에 나섰다는 게 솔직한 고백일성 싶다. 왜냐하면 나이 듦에 따라 여기저기서 소외되어 외로움을 절감하게 마련인데 무언가에 함께하며 어울리는 길이기에 과다한 참가비를 지불한대도 기꺼이 동참할 터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최선을 다해 강의에 임해 문우들의 한껏 부푼 기대에 부응토록 진력할 각오이다.
원래 선물이란 고마움을 더덜이 없이 진솔하게 정성을 담아 건네는 물건이다. ‘지나친 겸손’인 과공(過恭)이 ‘예의에 어긋나는’ 비례(非禮)가 되기 마련이듯이 ‘지나친 칭찬’인 과찬(過讚) 또한 비례가 틀림없다. 결국 격을 달리 할지라도 지나친 선물 역시 그 순수성과 관계없이 부담을 안길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 언제나 주고받으면 기쁘고 흐뭇한 선물은 어디까지가 적정한 선일까?
한맥문학가협회사화집, 제 17집, 2023년 5월 30일
(2023년 2월 20일 월요일)
첫댓글 교수님!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수필집 제목에서부터 교수님의 인격이 느껴집니다.
한 사람이 선물한 것도 아니고 여럿이서 모아서 준비한 선물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호접란은 꽃이 오래 갑니다.
저는 아들이 2년 전 어버이날 선물로 보내 준 호접란이 있는데요.
올해는 영양제를 2개 꽂아 주어선지 더 오래 피었답니다.
3월 6일부터 피었는데요.
6월17일 한 송이가 떨어지고 남은 한 송이가 지는 중이랍니다..
거의 백일을 피었네요.
그래서 저는 호접란은 화무백일홍? 화백일홍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주는 날짜를 달력에 적어 가면서 신경을 썼더니
잘 자라고 있습니다.
화분의 꽃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