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지하실로 내려가신지 다섯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여전히 올라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산장에 왔을 때부터 들려오던 울음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크게 들릴 뿐이었다.
[크르르…크르르…]
처음에 울음소리는 고양이의 그것처럼 가냘프고 애처로웠다. 그러나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어느새 맹수의 으르렁거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허기를 참지 못하는 맹수가 먹이를 노려보고 있을 때 칼날 같은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런 소리였다. 나는 그저 그 소리를 피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빨리 잠이 들기를 빌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이 모든 일이 꿈이었고, 언제나처럼 부모님과 아침을 먹기를 빌며 나는 눈을 감았다.
“지하실로 내려가야겠다.”
식탁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비우신 아버지는 식탁에서 일어나시더니 나와 어머니를 보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종연이랑 있어. 따라서 내려올 생각 하지 말고.”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때는, 아직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 그렇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 역시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다시는 못 올라오실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경찰을 불렀겠지만, 그때는 그냥 지하실로 숨어든 고양이나 개가-워낙 오래된 산장이라 구멍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은가-다시 나가지 못해 울고만 있다고 생각했었다.
“뭐 하러 그건 들고 가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식탁 위의 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가시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나무로 된 야구 방망이 하나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을 열으셨다.
“그냥 뭐,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당신은 겁도 많아. 어쨌든 조심하세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그냥 웃어 보인 뒤, 문으로 들어가셨다. 뚜벅뚜벅. 아버지가 계단으로 지하실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문을 닫은 것 마냥 스르르 문이 닫혔다.
“어머니, 저 그럼 들어가서 좀 쉴게요.”
나 역시 식탁에서 일어나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시던 어머니가 나를 향해 살며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고 1이 놀러왔다고 쉬기만 하면 되?”
“공부에서 탈출하라고 데리고 오신 거잖아요. 하루만 봐주세요.”
“후후. 알겠다. 좀 있다가 아버지 올라오시면 다시 나와. 알겠지?”
“예.”
내 대답을 들으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셨고, 등을 돌려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도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십여 분 후,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내려가봐야겠다.”
공포에 질린 어머니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붉게 충혈 된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식칼을 든 어머니의 오른손은 전혀 떨리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공포를 이겨낼 만큼, 그리고 그 공포와 충분히 싸울 수 있을 만큼 아버지를 사랑했다. 하지만 어머니 혼자서는 보낼 수 없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며 어머니에게 고함을 질렀다.
“미쳤어요? 경찰을 부르던지 아니면 같이 가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너무나 크게 나왔다. 어머니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시다가,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띠셨다.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는데 기다릴 수 있는 아내는 없어. 그리고 그런 위험한데를 자식을 데리고 갈 어머니도 없고. 십분 안에 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라. 알겠지?”
어머니는 계속 웃고 계셨지만, 입술의 떨림은 멈추시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겁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겁을 먹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지하실로 내려가려고 하시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말리려는 것도 당연했지만……. 나는 어머니를 말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눈빛에서는 공포보다 더 한 그 무엇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 순간까지도 지하실에서는 끊임없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울음소리 속에서 간간히 으르렁거림이 섞여 들려왔지만, 그때까지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들을 수도 없을 만큼 약한 소리였다.
“그럼 엄마 갔다 올게.”
어머니가 지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죽으려고 환장했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시 닫히는 문과 지하실로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를 소파에 앉아 가슴을 졸이며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 분후-어쩌면 그 보다 더 짧았을 수도, 길었을 수도 있다-지하실에서 어머니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한 순간에 어두워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보다 더 무서운 건 적막이었다. 작년에 원주 치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담력시험 삼아 무덤에 갔다 온 적이 있다. 민박집 앞에 있는 무덤가에 가서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를 들고 오는 것이었는데, 내가 맨 처음이었다. 물론 아무 것도-해골괴물이나 좀비 따위의 인간의 살점에 굶주린 괴물 말이다-나오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서웠던 건 그 적막함이었다. 앞으로 일 미터 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건 내 숨소리뿐 이었 다. 거칠고 공포에 질린 숨소리. 인간을 증오하고 인육으로 배를 채우고 싶어 하는 괴물들이 숲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내 다리를 잡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 공간.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더 무서웠다. 창가의 달빛만을 의지한 채, 어둠 속에서 지하실에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산장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났지만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잠을 자려고 아무리 눈을 감고 있었지만, 긴장 때문인지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질 뿐이었다.
[쿵.쿵.쿵]
으르렁거림과 함께 이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거대한 무언가가 지금 지하실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쿠웅. 쿠웅. 쿠웅.]
일정한 박자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영화에서 봤던 모르스부호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 그대로 있어. 네 부모 다음에는 네 차례야. 알고 있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괴물이 입맛을 다시며 내 귀에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더 이상은 이렇게 견딜 수가 없다. 오늘 밤, 새벽이 오기 전까지 녀석은 분명 지하실에서 튀어나와 나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으로는 녀석의 허기를 채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녀석이 저렇게 발광할리는 없지 않은가. 당한다면, 결국 그렇게 내가 당할 거라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온 몸이 땀범벅이었다. 침대보와 이불에는 잔뜩 땀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티셔츠와 추리닝은 금방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손으로 짠다면 뚝뚝하고 땀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축축한 티셔츠를 그냥 벗어버렸다. 그리고 티셔츠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나는 겨우 손으로 뒤져 부엌 찬장에서 과도를 찾을 수 있었다. 과도로 티셔츠를 찢은 후, 그것을 양손에 둘둘 감았다. 그리고 오른손에 식칼을, 왼손에는 과도를 들었다. 칼을 보자 어느 순간 긴장감이 풀리고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 한번, 한번은 찌를 수 있으리라. 그곳이 눈일 수도 있고, 그 괴물의 심장일 수도 있다. 그래,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나는 더 이상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기로 했다.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의 복수로는 부족하지만. 이제 생각은 그만이다. 지금 남은 건, 지하실로 내려가서 이 칼을 그 녀석의 몸에 꽂아주는 것뿐 이다.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지하실로 가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썩은 냄새. 이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맡았던 생선의 내장이 썩은 냄새만큼 독한 악취였다. 그리고 한기. 마치 알몸으로 냉장고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살갗이 면도날에 베어지는 것 같은 지독한 한기였다. 그리고 그 악취와 한기 속에서 그것의 울음소리는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으르릉. 크르르르. 크르릉]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일정한 박자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긴장해서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것 때문인지 계단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계단, 천장에서 우수수 흘러내리는 먼지들, 겁먹은 듯 어디인가로 도망가는 개미들. 순간 개미들이 부러웠다. 녀석들은 저렇게 수 십, 아니 수 백 마리가 같이 도망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혼자서 그것과 맞서야 한다. 하하. 순간 웃음이 나왔다. 개미를 부러워하는 인간이라니. 너무나 우스웠다. 하하. 흐흐흐. 크크크. 댐에 1센티의 금이 가도 전부다 무너져 버리듯, 웃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이 모든 상황이 더 없이 우습게 느껴졌다. 지하실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는 개미를 부러워하는 아들. 싸구려 삼류 괴담에나 나올 이야기가 아닌가. 우습고 유치한.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게 된 순간 입가에서 소금기가 느껴졌다.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색한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때, 중학생 깡패들과 싸우다 이빨이 부러진 후로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울지 말자. 연아. 울지 마. 목숨을 건 싸움을 앞둔 사나이에게 눈물이라는 건 어울리지 않잖아. 난 손에 감은 티셔츠조각으로 내 눈을 닦았다. 티셔츠 조각에 묻어 있던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지만,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그래. 내려가자. 무엇을 보더라도, 혹은 죽더라도 나는 내려가야 한다. 그것을 보고, 내 손으로 그것의 몸에 이 칼을 찔러 넣기 위해서는. 입술을 깨물며 나는 지하실로 향하는 첫 번째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두 번째 계단을 밟으려는 순간, 스르르 문이 닫혔다. 나는 뒤돌아보았지만 올라가지는 않았다. 저 문을 연다면, 난 그대로 울음을 터뜨리며 줄행랑을 쳐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다시 세 번째 계단을 밟았다. 그 순간, 지하실의 그것은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나를 환영이라도 한다는 듯 더욱 더 크게 울부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