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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를 출발하여 마닐라로 이동하여 막사이사이 재단과 미팅을 하고, 한국 교민들을 위해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과 JTS 방문단은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하여 3시에 JTS 센터를 출발했습니다. JTS 센터에서 가가얀데오르 공항까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뚫고 2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5시에 가가얀데오르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하여 수하물을 부치고 탑승 수속을 했습니다.
연발이 될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7시 2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40분을 비행하여 9시에 무사히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차를 타고 마닐라 정토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마닐라 시내 중심가에 마닐라 정토법당이 있습니다. 개원을 한 이후 곧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와서 잘 활용되지 못하다가 최근에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정토법당입니다. 9시 40분에 마닐라 정토법당에 도착하여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마닐라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특별법회를 시작했습니다. 40여 명의 회원들이 자리한 가운데 모두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경전 속에 나오는 부처님의 삶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불교 공부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버지의 종족이 석가족이었고, 어머니의 종족이 꼴리족이었습니다. 두 종족은 서로 다른 종족이지만 결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석가족의 여인들은 꼴리족으로 시집을 가고, 꼴리족의 여인들은 석가족으로 시집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석가족도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었지만, 꼴리족은 그보다 더 강한 자존심을 가진 종족이었습니다. 두 종족 사이에는 로히니라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기슭으로 흘러 내려온 이 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양쪽 농부들은 이 강물을 나누어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 가뭄이 심해 강물이 점점 줄어들어서 그 강물을 한쪽에서만 사용해도 부족할 만큼 양이 적어졌습니다. 그러자 꼴리족 사람들은 물을 나누면 양쪽 농사를 다 망치니 차라리 자신들 쪽으로만 물을 대어 농사를 제대로 짓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석가족과 꼴리족 간에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말다툼은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으로 번져 결국 돌을 던지는 큰 싸움으로 확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상부에 보고되어 군대가 파견될 정도로 전쟁의 위기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강물과 사람의 피, 둘 중에 무엇이 더 귀중한가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이 싸움이 계속되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는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은 강 가운데 허공에 떠 계셨다' 하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마 부처님이 양쪽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양쪽 군대의 대장을 불러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지금 무기를 들고 싸우려고 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리게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이어서 질문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물어보겠다. 저 흐르는 강물과 너희들 몸속에 흐르는 피 중 어떤 것이 더 귀중한가?’
‘부처님, 어떻게 저 하찮은 강물을 사람 몸속의 피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피가 훨씬 더 귀합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그 소중한 피를 왜 저 하찮은 물을 위해 강물처럼 흘리려고 하느냐?’
이 말을 듣고 감정에 치우쳤던 양쪽은 크게 반성하여 싸움을 멈추고 서로 협력하여 물 관리를 잘해서 그해의 가뭄을 잘 넘겼습니다. 이것이 로히니 강물 분쟁에 대한 부처님의 일화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학과 사상으로만 접근하면 이러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루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이다' 하는 것과 같이 추상적인 논의에만 집중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삶을 살펴보면 이렇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화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처님의 삶을 공부하지 않고, 단지 복을 비는 기도만 드리거나 철학적으로 논쟁만 한다면, 불교 안에 담긴 구체적인 역사성과 사회성을 잃게 됩니다. 논리와 사상으로 정리한 불교 교리는 후대의 학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부처님은 교리를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일상은 사람들과의 단순한 대화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대화는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각하도록 도왔습니다.
수행, 활동 속에서 자각을 해나가는 것
이처럼 여러분들도 여러 대화들과 활동 속에서 자각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민다나오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활동을 하면서 '내가 소비를 많이 하고 있구나', '내 아들이라면 이렇게 두지 않을 텐데' 하고 자각을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민다나오 산악 마을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이 만약 내 아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의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거나 최선을 다해 챙기지 않는 것입니다. 내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똑같이 챙겨주지는 못하더라도 1:100에서 1:50으로 조정하고, 1:50에서 1:10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 바로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자각을 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면 벌 받는다’, ‘그렇게 하면 복 받는다’ 하는 접근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자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술을 마셔라’, ‘술을 마시지 마라’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자신의 건강, 행동, 말에서 어떤 흐트러짐이 나타나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서 조절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리석은 중생이 독이 든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부처님은 '먹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거기에 독이 들어 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먹지 않고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살고 싶으면 먹고 싶어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에 따른 자신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과보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법당에 와서 법문을 들으면서 깨달을 수도 있고, 봉사를 하다가 깨달을 수도 있고, 싸우다가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시국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일들도 국가 차원에서는 손실이 많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민주 시민의식을 깨우쳐 주기도 하고, 남북이 분단과 적대관계에 있는 한 우리의 안전이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시켜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일본 같은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처럼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건 바로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계엄의 핑계가 종북좌파가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여 그들을 척결하기 위해서라고 하잖아요.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이런 명분으로 계엄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들이 준비를 잘했으면 큰일 날 뻔했겠지만, 준비가 좀 서툴러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모든 일은 꼭 다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잘 못하는 것도 좋을 때가 있구나’ 하는 깨우침도 얻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관계가 좋고, 형제자매, 자녀와의 관계가 좋더라도 늘 자기 인생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합니다. 서로 돕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을 잃어버린다면 여러분들이 어느 순간에 눈을 감을 때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정진을 꾸준히 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법문을 끝내고, 이어서 스님의 제안으로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 필리핀 JTS 대표를 역임한 이원주 대표님이 20년 동안 민다나오에서 JTS 사업을 하며 경험한 것들을 엮은 책 ‘헬로, 민다나오’가 지난 10월에 불교출판문화상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상패와 상장을 스님이 대독하고 직접 전달해 주는 의식을 했습니다.
“모두 박수로 축하해 주세요.”
이원주 전 대표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앞으로 나와 상패와 상장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이원주 전 대표님이 간단히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민다나오 JTS 사업은 저 혼자만의 활동이 절대 아닙니다. 법륜스님이 앞에서 이끌어 주셨고, 실제 활동은 JTS 활동가들이 했습니다. 저는 JTS 활동가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만 좀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지방 정부나 교육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부분에서 제가 조금의 일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마닐라 정토회에서 많은 보살님들과 거사님들이 20년 동안 함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땀과 노력에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올해 1년 동안 10개 학교 준공을 무사히 해낸 노재국 필리핀 JTS 대표님의 노고에 대해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올해 새로 부임한 노재국 대표님이 깜짝 놀랄 일을 해내셨습니다. 그동안 필리핀 JTS가 1년에 학교를 최대로 많이 지은 것이 5개였는데, 올해는 10개의 학교를 준공했습니다. 학교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수십 번 산을 오르고 내리며 답사하고 점검을 해야 합니다.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십시오.”
노재국 대표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원주 전 대표님이 기초를 워낙 잘 닦아 놓아 주셔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준공식을 하는 날까지 완공을 제대로 못한 곳이 있어서 그게 좀 아쉽습니다. 그래서 제가 ‘화장실이 없는 곳이 있으니 기저귀를 차고 오세요’ 하고 공지를 드리긴 했는데요.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없으면 또 인생사가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해 준 향훈 법사님과 JTS 활동가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JTS 방문단에 참가한 모든 분들을 스님이 한 명씩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마닐라 정토법당 특별법회를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마닐라 정토법당에서 회원들이 손수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눈 후 스님은 곧바로 막사이사이 센터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막사이사이 센터에 도착하자 관계자가 나와서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센터 앞에는 1958년부터 수상하신 분들이 새겨져 있는 벽화가 그리져 있었습니다. 스님의 사진도 한쪽 부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센터 안에 조성되어 있는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막사이사이 재단의 수잔 아판(Susan Afan)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테이블에 앉아서 가볍게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수잔 대표님은 먼저 이번 민다나오 방문 일정에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번에 민다나오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제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실무자들이 험한 산길을 오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무릎이 안 좋아서 만약 참가했다면 큰 짐이 될 뻔했습니다. (웃음) 언제 한국으로 가시는지요?”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들어갑니다.”
“오 마이 갓! 스님의 열정적인 에너지의 비결이 무엇인가요? 홍삼을 많이 드시나요?”
“혼자 살면 됩니다.” (웃음)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수잔 대표님이 스님과의 미팅을 요청한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스님과의 미팅을 요청한 이유는 지금까지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던 분들의 기념물이나 책 등 이런 것들을 전달받아서 수상자들의 생각과 위대함이 전설처럼 계속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막사이사이 재단은 올해로 67년이 되었고, 이제 100년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스님의 많은 조언을 얻고 싶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 소개하면서 막사이사이 재단과 어떤 일을 서로 협력할 수 있을지 수잔 대표님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정토회는 비록 외형은 종교단체이지만 복을 빌어주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수행을 통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그런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괴로움이 좀 줄어들게 되면, 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보답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럴 때 기부를 받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실천 활동은 크게 세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소비를 절약하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자는 운동입니다.
둘째,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이 있으면 기본 생활도 안 되는 어려운 사람을 돕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 문제, 교육 문제, 의료문제, 이렇게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기초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곳에 기초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곳 민다나오에서는 산속 깊은 곳에 사는 소수 원주민들, 치안 유지가 되지 않는 무슬림 분쟁지역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장애 아동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세 곳에 집중적으로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시리아처럼 지진 피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를 지어주고,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면 그들을 돕고,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서도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셋째, 가난한 마을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탄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생활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겐 집을 지어주고, 집은 있지만 가난한 집은 내부 수리를 해줍니다. 둘째, 농수로나 농로를 놓는 것처럼 생산 시설을 개선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방식을 개량한다든지, 소규모의 축산업을 지원한다든지, 약간의 수입이 늘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큰 규모는 지원하지 않고 소규모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셋째, 학교 시설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어디를 가든 학교가 다 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어서 수리를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이가 빠진 노인들에게 보건의료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부탄은 기후변화의 여파로 식수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물 소비량도 늘고 있어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상수원을 확보하고 상수시설을 갖추는 일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일을 지원합니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오래된 집이나 전통문화라는 것이 훼손이 되어도 그냥 내버려 두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한 개의 주 전체를 5년간 목표를 세워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초점이 아니고, 기후 위기 시대에 적게 소비하고도 행복하게 사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목표입니다.
대부분의 활동이 JTS가 주체적으로 개발해서 진행하는데, 그 나라에서 이런 방향을 갖고 비슷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협력해서 지역 개발을 진행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동티모르를 방문한 이유는 동티모르에서 하는 일을 직접 보고 어떤 것을 협력할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가 봤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실험적으로 함께 해보고, 그것이 성공적이라고 하면 규모를 좀 키워서 해볼 생각입니다. 물론 그들이 잘하고 있다면 제가 따로 가서 역할을 할 필요가 없고 그 사람이 잘하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수잔 대표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진행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우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스님의 놀라운 조직력과 활동에 대해 얘기를 들으면서 흥분을 감출 수 없습니다.”
수잔 대표님은 내년 5월부터 7월까지 ADB(Asian Development Bank) 주최로 전 세계의 물 공급에 대한 세미나가 열린다고 알려주면서 스님을 그 행사에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막사이사이 재단이 최근에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하면서 스님과 몇몇 훌륭한 분들이 서로 협력하게 되기를 바라며 몇 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최근에 막사이사이 재단은 다른 수상자들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 일본인 의사가 다른 나라의 백내장 환자들에게 백내장 수술을 많이 해줬다고 합니다. 이분은 수술 장비를 본인이 갖고 있어서 언제든지 민다나오 지역에 백내장 환자가 있다면 작은 부락의 단위라도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하시는 일에 이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계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인도의 불가촉천민 출신이신데, 불가촉천민들의 생활개선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인도를 방문하실 때 그분을 한번 만나 보시면 또 이분과의 연계를 통해서 좋은 방안이나 협업이 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계신 분이 매일 만 개의 도시락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과 연계가 된다면 가난한 지역의 음식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막사이사이 재단은 최근에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간의 연계를 통해서 평화와 인도주의가 이 세상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스님도 수잔 대표님의 구상에 적극 동의를 표하면서 지원을 할 때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찾아내서 수상하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서로 연결시켜 주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난해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인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님은 산에 사는 사람에게 물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갖고 많은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 실행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과 연계를 시켜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원을 하고 싶어도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몰라서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 문제를 성실히 연구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지원을 잘못하면 자립성을 잃게 할 위험이 있고, 또 돈이 자꾸 들어가게 되면 부패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정 지원을 할 때는 자립성을 해치지 않고, 혹시 이것이 부패한 쪽으로 가지 않는지 늘 주의해야 합니다.”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박물관에 보관하고 싶다고 요청한 물건들을 전달했습니다. 스님이 종이가방에 담아 온 물건들을 소개했습니다.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스님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연장, 기도할 때 사용하는 염주, 스님이 입고 있는 옷, 세 가지를 박물관에 보관하고 싶다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옷은 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새 옷을 안 사기로 하고 살기 때문에 죽고 난 다음에 줄 수 있어요. 지금은 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웃음)
대신에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연장은 지금 드릴 수가 있어요. 이것은 제가 살아있을 때도 새로 살 수가 있으니까요. 농기구는 제가 직접 사용해 온 겁니다.”
“Thank you very much.”
막사이사이 재단에서도 스님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막사이사이상 66주년 기념식에서 사용했던 액자인데 ‘평화’라는 단어를 여섯 가지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자 스님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해 놓은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모두 2002년에 스님이 수상할 때 관계된 자료들인데 20년이 넘도록 보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이 수상자들에 대해 연구하고자 할 때 참고할 수 있게 모든 자료들을 디지털화 작업을 한 다음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복도로 이동하자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958년부터 수상하신 분들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진행해 온 필리핀 민다나오 JTS사업은 바로 막사이사이상 수상이 계기였기 때문에 스님에게도 막사이사이상 수상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수잔 대표님은 막사이사이상 수상 이후에도 한결같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스님의 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막사이사이 재단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마닐라 교민들을 만나기 위해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마카티 시티에 위치한 AIM(Asian Institute of Management) 경영전문대학입니다.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장 앞에서는 필리핀 JTS 20년 역사를 기록한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가장 먼저 사진전을 관람했습니다.
2002년 스님이 막사이사이상(Ramon Magsaysay Award)을 수상한 것을 인연으로 토니 대주교님의 부탁을 받아 민다나오 지역을 답사하였고, 2003년부터 민다나오 지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73개의 학교를 지으며 민다나오에 평화의 씨앗을 심어 오고 있습니다. 20년 전 스님의 얼굴이 정말 젊어 보였습니다.
학교 하나를 짓기 위해 수십 번씩 오지를 오가야 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일찍 도착한 많은 교민들이 사진전을 관람하며 봉사자들이 준비한 김밥, 햄버거, 떡, 차 등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전 관람을 마치고 스님은 역대 필리핀 한인회장을 역임한 분들, 무역 협회, 체육 협회의 각 회장님들을 비롯한 마닐라 교민 사회의 원로 인사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2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지난 2일에 로힝야 난민캠프에 비누 636만 개 전달식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오자 큰 박수와 함성이 터졌습니다. 젊은 청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여러분께 영상을 보여드린 이유는 곧 연말이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죠.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는 기준 여섯 가지를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는 것,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는 것, 병든 자에게 약을 주는 것, 나그네가 된 자를 영접하는 것,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하는 것입니다. 나그네가 된 자를 영접하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서는 난민 지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죠. 또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하는 것은 요즘 시대에서는 양심수들을 면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세계가 시끄럽지만, 우리가 이런 작은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연말에는 즐기는 크리스마스만 보내지 말고, 이웃과 나누는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필리핀 JTS가 올해 민다나오에 10개 학교를 지었다고 소개하면서 지난 5일 동안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올해 JTS에서는 민다나오에서 다섯 개 지역 읍내 중앙초등학교에 장애인 학교 다섯 개, 산간지대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원주민 학교 다섯 개, 총 열 개의 학교를 지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에는 6개 주 15개 군 73개 마을에 학교를 지었습니다. 지금까지 민다나오에 지은 학교의 교실 칸수를 모두 합치면 206칸입니다.
지방에 가면 아직 장애인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JTS의 목표는 한 개의 군에 적어도 한 개의 장애인 학교가 있도록 군청이 있는 모든 중앙초등학교마다 장애인 학교를 하나씩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등산을 가든 놀러를 가든 그냥 놀지 말고, 이런 곳에 가서 놀면 좋습니다. 이런 곳을 방문하여 봉사를 하다 보면 저절로 등산이 됩니다. 배낭에 먹을 것을 좀 넣어 가서 아이들한테 나눠주기도 하고, 학교도 좀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뭘 봐야 욕심이 생기는 것처럼 자비심도 직접 현장을 가서 봐야 생깁니다.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그 모습을 봐야 마음이 일어나지, 그냥 얘기만 들어서는 마음이 잘 안 일어나요. 저도 북한 돕기를 시작한 이유가 압록강 강변에 가서 죽은 시신이 떠내려오는 것도 보고, 영양실조에 걸려 삐쩍 마른 애들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직접 보니까 이념이고 뭐고 싹 없어졌어요. 일단 사람이 굶어 죽는 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념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배가 부르다는 반증입니다. 배가 고프면 이념이 어디 있고, 종교가 어디 있겠어요? 현장을 직접 보면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곧바로 돌아가게 됩니다.
학교를 짓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JTS에서는 이런 일을 할 때 종교를 절대 따지지 않습니다. 지금 JTS가 민다나오에서 하는 일들도 가톨릭 주교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협조를 받아 가며 함께 하고 있어요. 어제도 주교님과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요. 이런 활동은 종교를 넘어서서 해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단체 이름을 ‘Join Together Society’라고 만든 겁니다. 배고픈 사람을 돕는 것, 병든 사람을 돕는 것,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은 종교, 성별, 국가, 이런 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민다나오에서 학교 짓기를 시작할 때 제가 MILF(무슬림 반군) 지역의 사령관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른들은 종교나 이념을 갖고 싸울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이들이 공부하려면 학교와 선생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지어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해 주세요.’
사령관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많은 분쟁지역에도 학교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분쟁 지역에 학교가 생기자 정말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원래는 가톨릭 사람들과 무슬림 사람들이 서로 얼굴도 안 보고, 만나면 도망가고 그랬는데, 학교를 같이 짓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학부모가 되어 서로 만나다 보니까 오해가 점점 풀리게 되었어요. 종족 간에 갈등이 있었던 원주민 부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화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에서 이렇게 서로 소통이 되도록 하면 저절로 평화가 오게 됩니다.
그러니 민다나오에 오는 것을 너무 겁내지 마세요. 아마 돈이 될 만한 게 있다고 하면 위험해도 갈 텐데, 돈이 별로 안 되니까 안 가시는 것 같아요. 인간의 삶이란 꼭 돈이 되는 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히말라야 산만 등산을 가지 마시고 민다나오에도 3천 미터 가까이 되는 높은 산이 있습니다. 필리핀에 사는 여러분들이 민다나오에도 자주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인생 고민에 대해 손을 들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8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개인 사업을 하는 분인데 거래업체가 통화를 할 때마다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 괴롭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거래업체가 저를 많이 무시해서 괴롭습니다
“저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거래업체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업체 중 한 군데에서 저를 아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래를 끊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거래를 계속하자니 제가 탈모도 생기고, 심적으로 너무 괴롭습니다. 스님께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질문자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얘기해 보세요.”
“업무상 통화를 하면 저를 많이 무시합니다. 저도 많은 생각을 하고 그쪽에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하는데, 저를 무시하는 태도가 너무 심합니다.”
“그러면 거래를 안 하면 되죠.”
“그런데 거래를 안 하면 수입이 줄어드니깐요.”
“돈을 벌려고 하면 내가 약간 굽히고 상대를 대해야죠.”
“내가 굽히고 상대를 대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요.”
“힘이 든다는 건 배가 부르다는 얘기죠. 배가 한번 고파보면 숙이는 게 뭐가 힘들겠어요? 흥부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형수가 밥 푸던 주걱으로 뺨을 때리니깐 뺨에 붙은 밥풀을 먹으면서 이쪽도 한 번 더 때려달라고 했잖아요. 그것처럼 돈이 벌리는데 전화로 좀 무시하는 게 뭐 그리 큰 문제예요? 그게 기분이 나쁘면 돈 버는 걸 포기해야죠.”
“돈도 벌고, 무시하는 발언도 듣지 않고, 이 상황을 좀 슬기롭게 극복해 보고 싶어요.”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건 욕심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질문자가 단박에 알아듣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스님이 추가로 설명을 했습니다.
“스님이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했나요?”
“아니요. 현실적으로 잘 말씀해 주셨어요.”
“돈을 벌려면 무시를 좀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달리 무슨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이 자꾸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돈이 벌린다면 ‘까짓것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하며 상대가 뭐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꾸를 하면 됩니다. 이런 일에 자존심을 내세울 게 뭐가 있어요? 그럼에도 자존심을 세우고 싶다면 ‘너무 갑질을 해서 당신 하고는 거래를 못 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관계를 끊으면 됩니다. 대신 약간 손해를 보고 살아야겠죠. 두 개를 어떻게 다 가지나요?
만약 스님이 된 사람이 결혼도 하고,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면서 또 존경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스님이 되면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율은 없지만 관습적으로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스님이 고기를 먹는다고 누가 비난하면 그건 감수해야 해요. ‘왜 당신은 먹고, 나는 못 먹게 하나?’ 이렇게 반박하면, 그 사람도 저한테 ‘승복 벗고 먹어라!’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그러니 승복을 입었다면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고기를 먹으려면 비난을 기꺼이 받고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비난을 안 받으면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먹는 방법이 있겠죠.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무시받는 것을 감수한 후에 집에 와서 화풀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존심 세우지 말고 상대가 욕하면 ‘저 말은 외국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말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돈이 벌리는데요. 돈이 되는 일에는 목숨도 무릅쓰잖아요? 전쟁 지역에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으면 가잖아요. 전쟁 지역에도 가는데, 욕하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웃음)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노인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도 자살하는 사람이 생겨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스님은 활동에 회의가 들거나 힘들 때가 없었나요?
봉사는 재미있고 돈 버는 건 재미가 없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책임도 있는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2세 코피노(Kopino)를 돕는 봉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가끔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아내한테 말로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삐질 때가 있습니다. 아내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내가 진 것 같은 생각이 안 들까요?
복을 지으면 내가 다음 생애에 복을 받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손자들이 복을 받게 되는 걸까요?
탄핵소추안 가결이 되고 나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하는 행동을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마지막 질문은 한국의 시국 현안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은 한국에서 일어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닐라 정토회!”
봉사자들은 서둘러 강연장 뒷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습니다. 스님도 함께 뒷정리를 도왔습니다.
저녁에는 필리핀 JTS 부대표인 이규초 님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번 필리핀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밤 11시 30분이 되어 다시 마닐라 공항으로 갔습니다.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스님은 탑승구 앞에서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았습니다.
내일은 새벽 2시에 마닐라 공항을 출발하여 한국 시간으로 아침 8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오후에는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저녁에는 행복한대화 즉문즉설 강연 중 올해 마지막 강연을 성남시에서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