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고 달이 뜨는 일만큼이나 물은 지치지 않고 바다에 이른다는데 숨어들어서라도 지지 않는 길을 찾는다는데
겨울바람에 길을 물으며 강릉 천변을 헤맬 때 거두지 못한 빨래처럼 깃대에 매달려 펄럭이는 卍
소란한 바람에 휘청이는 풍차라면 잠깐 놀란 돛이라면 주저앉은 닻이라면
물 반 卍 반인 강릉 천변에서 나는 쉬운 일이 없어 숨 쉴 수도 없는 나를 숨겨주기로 합니다 긴 숨을 몰아쉬고 엎어진 김에 쉬어가기로 합니다
물처럼 卍처럼 쉬워지기로 합니다
—월간 《현대시》 2022년 8월호 ------------------- 정끝별 /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88년 《문학사상》(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평론)로 등단.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