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다닐 때 교사 뒤편 뜰에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었다.
거기 소녀가 벌거벗고 예쁜 몸매를 한껏 드러내며 샤워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 조각상 하나 있었다.
분수 물이 그 소녀를 향해 뿜어지고.......우리는 연못 주변 벤치에 앉아 친한 친구끼리 이야기도 하고 시험 공부도하고 무얼 먹기도하고 그랬었다.
처음 벌거벗은 소녀상을 보았을 때 혼자 부끄러운 생각이 났고, '저런 걸 왜 창피하게 저기다가 떠억하니 보란듯이 갖다 두었지?'
우리학교에 남학생이 없어 참 다행이야......' 그런 생각도 했었다.
어느 여름 오후 소나기가 시원하게 한줄기 쏟아 붓고는 해가 눈부시게 드러났는데, (그 때 분수 물은 안나왔고)
소녀상의 오른 팔은 위쪽으로 향해 올라가 있었고 왼팔은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가리듯 아래로 향해 있었다.
그런데 왼 손 가락에 물방울이 한 방울 매달려 서쪽에서 지는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게 아닌가.
꼭 그 소녀가 반지를 끼고 있는 것 처럼.....
그 때 찬란한 물방울 반지를 보며 생각했다. 물방울도 보석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데 일생 보석이나 재물 같은거 연연하지 말고 이 세상에 내가 향유할 수 있는 수많은 물방울 보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그런데 지난 겨울에 이사와서 화장실에 가서 보니까 수많은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천정에 매달려 있는 거 아닌가?
이유인 즉 전에 살던 사람이 오래전 수세식 화장실 바람 불 때 마당을 개조해서 욕실을 들이는데 조금이라도 더 넓게 공간을 확보하려고 화장실을 바깥으로 밀어내게 되었는데, 집 쪽으로 붙은 데 공기는 따뜻하고 화장실 외벽은 찬 공기에 맞닿아 물방울이 맺힌거였다.
좁은 화장실 머리 숙이고 들어가 불을 켜면 천정에 수백개의 물방울이 꼭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장식해 놓은 샹드리에처럼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거 아닌가.
처음 그 천정을 올려다 보면서 여고의 소녀상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생각 났다.
그런 반지가 수백개 있으니 마음이 얼마나 흥그러웠는지.....
안방에 들어와 옆지기에게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수백개 생겼다고 이야기하면서 옛날 여고 시절 생각도 이야기 하는데
이 양반이 갑지기 쉿하고 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더니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 도둑놈이 진짠 줄 알고 칼들고 들어 올라.'
이 말에 그냥 옆구리 쥐고 뒤집어졌다.
옆지기의 일생 유머 중 단연 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