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었을 때 지푸라기가 있었다 처음 본 것은 여름이었다 외
출과 귀가를 반복할 때마다 지푸라기 밟는 소리를 들었다 해마다
지푸라기는 늘어갔다 때가 탄 인형들은 지푸라기를 보는 것인지
못 보는 것인지 복도에서 한창 통통했다 밟기만 하던 어느 날 지푸
라기에 앉아 있었다 여름이었다 살에 닿을 때마다 쌀이 닿는 것 같
았다 쌀에 앉은 것 같았다 쌀이 가득한 복도에서 쌀을 기다리는 자
세 같았다 오래전부터 쌀을 기다려온 걸까 쌀에 빛이 내리고 쌀에
어둠이 내렸다 먼 아이들이 웃는 소리 얹히고 가까운 밥의 냄새도
기웃거렸다 쌀과 밥을 만지는 차이 지푸라기와 쌀의 차이 움직일
때마다 쌀이 굴러다녔다 대답 같은 알맹이들이 가득했다 쌀알을
믿는다 지푸라기를 믿는다 문을 믿는다 대문 앞 수많은 쌀을 믿는
다 지푸라기를 보았다는 사람을 믿는다 여름에 쌀을 놓고 갔다는
사람을 믿는다 믿음이라는 감을 잃기 않기 위해 매일 지푸라기를
보았다 밥을 보았다 쌀에 빛이 내리고 쌀에 여름이 내렸다 쌀은 푹
신해지고 눅눅해졌다 밥에 앉은 것 같았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옷
이 끈적해졌다 밥알에 밥알이 붙는 것인지 몸에 옷이 붙는 것인지
땀이 흐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름 위에 앉아있었다 햅빛 햅쌀
햇여름 헛것들이 보였다 산 인형과 없는사람 그리고 살아있는 여
름이 보였다 창밖으로 맑은 산이 보였다 바닥을 짚고 일어섰을 때
바지에 여름이 묻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