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Sonata No.7 in B flat Major Op.83
프로코피에프 / 피아노 소나타7번 Op.83
Sergei Sergeevich Prokofiev 1891~1953
Glenn Gould, piano
Piano Sonata No.7 in b-flat major, Op. 83
1. Allegro inquieto - Andantino
2. Andante caloroso
3. Precipitato
전쟁 소나타
6번, 8번과 함께 일명 ''전쟁 소나타''라고 불리는 음악이다.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에 의해 초연되었고 프로코피예프는 리히테르의 연주를 듣고 나서 "내 피아노 소나타 7번이 얼마나 대단한 연주였는지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리히테르의 연주는 아직 들어보질 못했다. (이 곡은 리히테르에게 헌정되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하면 7번! 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대표적인 곡인 것은 둘째 치고 현대 피아노 음악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음악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공교롭게도 그는 스탈린과 같은 날에 죽었다) 그 누구보다도 활동적으로 작곡을 했다. 그러나, 피터와 늑대 및 교향곡 5번과 같은 단순하면서도 대중 친화적인 작품과 이들 작품이 작곡된 뒤인 1939년에서 1944년 사이에 작곡된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전쟁 소나타(6, 7, 8번)’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음악적 불연속성은 쉽게 받아들기 힘든 것이다. 물론 이들 작품 모두에 뛰어난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맞물려 하행하는 장, 단 3도로 된 6번 소나타의 시작 동기는 1세기 이전에 베토벤이 발트슈타인 소나타의 시작부분에 썼던 유례없는 반복화음만큼이나 그 개성이 강렬하다.
7번 소나타는 20세기의 우상파괴적 모더니즘과 미래를 위한 폭력을 음악에 반사시킨 곡이다. 독일의 소련에 대한 전투가 시작되었고 전망은 암울했다. 작품 전체는 고전주의를 연상시키는 규칙적인 진행과 서사적인 스케일, 그리고 비극적인 것에 대한 향수가 서린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패시지, 이 두 가지 요소가 날카롭고 정교하게 대조를 이루며 낯선 이미지를 창조해 낸다. 이 가운데 서정적 패시지(2악장)는 이 작품에 보완적이고 은유적인 측면을 더하는 것으로서, 이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작품해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의 음악은 어렵다''고 말한다. 베베른, 힌데미트, 쉰베르크, 불레즈, 오네게르... 그냥 듣고만 있어도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운 이러한 작곡가들의 음악들이 낯설게, 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음악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양식에 대한 ''낯설음''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현대음악만이 아니라,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모든 ''낯선 음악''은 우리에게 당황스러움을 준다 - 이것은 베토벤 만년의 난해한 음악들이나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던져준 당황스러움과 유사한 것이리라.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로 ''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생각할 수 있을 것 이다. 이것은 연주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베토벤 후기의 음악이 청중들과 연주가들에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사망하고 나서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였는데, 연주가들이 그의 음악이 제시하고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나타난 ''난해한'' 음악들도 이전의 음악양식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음악양식을 탈피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다만 그 방법으로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화성과, 조성, 그리고 기본적인 음계의 파괴를 택했다는 것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음악이 되어 버렸다는 일종의 ''벽''을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20세기의 음악은 그 이전에 있어왔던 어떠한 음악사조보다도 무원칙적이고 세분화되어 있어서 어떠한 공통분모도 찾아보기 힘든 듯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무조성 (無調性)과 다조성(多調性), 혹은 4도의 화성에 의해 불협화음을 음악의 주된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 대위법의 새로운 부각, 그리고 리듬의 강조라는 기본적인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20세기 음악과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 ''리듬''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성이나 화음은 쉽게 전달되어 오지도 않을뿐더러 현대음악의 화성은 듣는 사람을 유쾌하게 혹은 편안하게 해 주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Sergei Prokofiev, 1891-1953, Russia)의 음악들은 현대음악과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실례들이다. 그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고전적인 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익살스럽고, 대단히 리드미컬하다.
프로코피에프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음악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뛰어난 피아노 음악을 많이 남겼는데, 5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9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20세기 이후에 창작된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 중 가장 뛰어난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제 7번 (1942)은 그 자신의 가장 뛰어난 피아노곡일 뿐 아니라 ''건반악기의 타악기적 취급''이라는 독특한 그의 작곡양식이 극도로 잘 표현되어 있어 20세기 음악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전체의 연주시간은 17분 내외이며 극단적인 대비를 가지는 각각 다른 세 개의 악장이 매우 압축된 방식으로 간결하게 작곡되어 있기 때문에 지루함을 주는 일도 결코 없다.
1악장은 Allegro inquieto로 대단히 공격적인 제 1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운명의 테마''가 가끔씩 얼굴을 내민다. 악상이 발전해 나갈수록 리드미컬한 음감이 살아나는데, 템포를 빠르게 잡지 않으면 이러한 역동감은 현저히 반감한다. 막바지에 가서는 첫 번째 주제를 이용한 코다가 나타나고 ''운명의 테마''를 흘리듯이 제시하며 끝마치게 된다.
2악장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닌 Andante doloroso이다. 프로코피에프의 젊은 시절의 음악의 전형을 보는 듯하며, 그 음악적인 고조를 3악장으로 연결시키는 솜씨에는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음악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무엇보다 3악장인데, Precipitato라는 속도기호가 쓰여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맹렬하고 극적인 기세로 밀어 붙이는 악장이다. 선율선은 거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마치 타악기군을 두들기는 듯한 강렬한 추진력을 가진 리듬에 의해서 거의 최면상태에 가까운 흥분을 유발해 낸다. 때때로 이러한 흥분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피아노 소나타 제7번 Bb장조 작품83
소나타 제7번은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음악의 정점이다. 프로코피에프 원숙기의 것으로 음악의 본질적인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요약한 작품의 하나이다. 젊은 프로코피에프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음악세계에 갑자기 등장, 처음으로 주요작들을 내면서 "야만인", "미래주의자", "입체파" 따위라며 입방아에 오르던 때로부터 30년쯤 뒤의 작품이다. 그러나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서법의 독창성에는 전통과의 결별은 없다. 특히 리스트, 스크리아빈 등 19세기 거장들의 유산과의 사이에 단절이 없다. 이러한 연속성은 무엇보다 작곡가가 생각하는 자신과 피아노라는 악성은 무엇보다 작곡가가 생각하는 자신과 피아노라는 악기의 관계, 또 이 관계의 구체성과 명료성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앞선 이들처럼 프로코피에프도 작곡가와 피아노 거장이라는 두개 역할의 눈으로 자신을 보았기 대문이다.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간결한 것도 그와 피아노와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이해해야 한다. 작품 성격이 안으로는 갖가지인데도, 이 간결성이 방대한 작품의 여러 국면을 통일해 주는 가장 응집력있는 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일찍부터 프로코피에프는 자기 피아노 양식의 본질적 특성을 완벽하게 규정한 바 있다. 광택있고 기계적인 성격의 운동에너지, 날카로운 불협화음, 격렬한 리듬 다이내미즘, 타악기적 취급-이 모두가 도발적인 음빛깔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코피에프는 또 서정적인 에피소드에도 관심을 가졌고, 사람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가락을 쏟아낼 수 있었다.
소나타 제7번 작품83은 1939년에서 1942년 사이 써 1943년 1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에 의해 초연되었다. 여러 얘깃거리를 한꺼번에 다룬 전형적인 작품으로, 동료 미라 멘델손에 따르면 전형 중의 전형이라고 한다.
프로코피에프는 1939년 소나타 제6,7,8번을 한꺼번에 쓰기 시작했으나, 끝마친 것은 각각 1940, 1942, 1944년의 일이다.(그 사이 1940년에는 <전쟁과 평화>에 착수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3부작 <전쟁소나타>인데, 각 편마다 결정적으로 다른 성격을 띤다. 프로코피에프 음악언어의 결렬한 대조, 도발적인 면모가 제7번에 뚜렷하다.
1악장 알레그로 인퀴에토(불안한, 요동하는) 맨처음, 소용돌이치며 내닫는 첫 주제그룹부터 이런 성격이 지배한다. 딱 잘라말하듯 거칠게 시작하는 주제그룹, 무미건조하고 공격적인 서법에, 처음 100마디가 지나서야 긴장이 누그러들면서 첫도막은 차츰 고요해져 전혀 대조적인, 서정적 안단티노에 자리를 내준다. 이처럼 뚜렷한 대조가 맨처음, 첫 주제재료의 그침없는 혼란 때부터 품고 있던 개념의 진짜 얼굴이다. 안단티노의 서정적 에피소드나 발전부로 접어들면서 재료의 긴장은 절정에 달한다. 앞의 서정적 주제도 발전부에 두 번, 성격을 바꾸어 낮은 음역에 얼굴을 보인다. 다시 안단티노의 짤막한 되풀이, 그러나 마무리 도막은 첫 주제의 몰아치는 성격을 재확인한다.
마(E)장조, 정열적이고 노래하듯 하게 시작하는 2악장 안단테 칼로로소(정열적으로, 따스하게)는 또 다른 종류의 대조가 특징이다. 같은 조의 쇼팽의 유명한 연습곡 작품10-3과 프로코피에프 가락은 살짝 닮아 있다. 마치 쇼팽 연습곡을 아득한 데서 끌어오려는 듯, 표현 넘치는 그 분위기를 모던하게 되씹어 보려는 듯하다. 포코 피우 아니마토의 새 주제는 한층 진지하고 무거운 모습이다. 악장의 중심부인 가운데 도막을 이 주제가 지배하면서 서법이 차츰 두터워지고 긴장도 더해간다. 끝부분에서 처음 캄타빌레 주제로 되돌아오면서 긴장도 풀린다.
제3악장 프레치피타토(성급하게, 맹렬하게)에서 프로코피에프는 타악기적 피아노 스타일을 회복한다. 고삐풀린 원초적 리듬 에너지, 거장다운 토카타풍 격렬함과 도발적이고 생생한 움직임이 지배한다(7/8박자 도막에서는 앞선 푸리안트(furiant)의 충동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