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핑’이라고 하면 흔히 근육을 키우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나 산소운반능력을 높이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처럼 특정 약물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특정 금지약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선수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어 규제하는 행위가 있다. 그 중 이번 글에서는 주로 척수손상 선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독특한 규제 대상인 ‘부스팅(boosting)’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휠체어 경기를 하는 장면. AI생성이미지.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을 전후해 척수손상 선수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조사가 진행됐다. 조사에 참여한 99명 중 16.7%가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자율신경반사부전(autonomic dysreflexia, AD)’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상당수는 이러한 행위가 건강에 위험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용한 것은 어떤 금지된 약물이 아니라 척수손상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자율신경 반응 중 하나였다.
이러한 자율신경 반응을 의도적으로 경기력 향상을 위해 유발하는 행위를 ‘부스팅(boosting)’이라고 하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이러한 행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병적인 신체 반응이 어떻게 경기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척수손상 선수에게서 운동 중 자율신경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스팅은 어떻게 일어날까
건강한 사람은 운동 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심박수와 심박출량이 증가하고, 혈관수축을 통해 혈류가 활동하는 근육으로 적절하게 재분배된다. 그러나 T6 이상의 고위 척수손상에서는 뇌에서 내려오는 교감신경 조절이 제한되어 운동 중 심박수와 혈압을 충분히 높이는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이러한 자율신경 기능의 손상은 심박출량과 산소섭취량을 제한해 운동수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스팅이 일어나는 과정. 관련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함.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들에게는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AD가 발생할 수도 있다. 손상 부위 아래에서 강한 감각자극이 발생하면 척수의 교감신경 반사가 활성화되면서 광범위한 혈관수축과 급격한 혈압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 정상이라면 뇌에서 내려오는 억제성 신호가 이러한 반응을 조절하지만, 고위 척수손상에서는 하행성 조절 신호가 손상 부위를 충분히 통과하지 못해 과도한 교감신경 반응을 억제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방광이나 장의 팽창, 피부 자극 등 다양한 자극이 AD를 유발할 수 있으며 부스팅을 위해 음낭을 누르거나 발가락을 부러뜨리는 방법을 시도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AD는 통제하기 어려운 특성상 평소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면서 유사 시 신속히 치료를 해야 하는 위험한 의학적 상태이므로 의도적으로 AD를 유발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력이 좋아질까
부스팅이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실험적 근거도 있다. 2015년 Sports Medicine의 critical review에 포함된 직접 비교 연구에서는 부스팅 상태에서 운동수행능력이 약 7~10% 향상됐으며, 혈압과 심박수, 산소섭취량, 혈중 카테콜아민 등의 증가도 관찰됐다. 최근 2025년 systematic scoping review에서도 최고산소섭취량, 최고출력 및 타임트라이얼 수행이 향상될 가능성이 확인됐다.
다만 ‘7~10%’라는 수치는 소수의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이며, 부스팅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연구에는 안전상의 제약도 커 이를 일반화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작은 기록 차이가 순위를 좌우하는 스포츠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가능성이다.
경기력을 얻는 대신 혈압을 건다
문제는 AD로 인한 혈압 상승이 단순한 운동성 혈압 상승과 다르다는 점이다. 2021년 Consortium for Spinal Cord Medicine 임상진료지침은 AD를 갑작스럽고 심한 혈압 상승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IPC 규정에서는 수축기혈압이 160mmHg를 초과하는 경우 ‘위험한 자율신경반사부전 상태(hazardous dysreflexic state)’로 간주하며, 약 10분 후 재검사에서도 기준을 초과하면 해당 경기에서 제외한다.
다만 160mmHg는 ‘부스팅 양성 기준’은 아니다. AD는 의도하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의도적인 부스팅이 확인되면 혈압과 관계없이 실격된다.
약물 너머의 도핑
2013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IPC가 세 차례의 주요 국제 패럴림픽 대회에서 시행한 78회의 검사에서는 당시 기준상 부스팅 양성인 선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앞선 베이징 설문 조사에서 16.7%가 부스팅 경험을 보고했다는 결과만으로 이를 장애인 스포츠에서 흔한 행위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조사와 검사 결과가 부스팅이 일반적인 약물도핑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스포츠약사는 선수의 약을 볼 때 보통 금지목록을 확인한다. 슈도에페드린, β₂ 작용제, 트라마돌처럼 약물의 성분과 용량, 투여 시점은 도핑방지에서 중요한 확인 대상이다. 반면 부스팅은 특정 금지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생리적 반응을 의도적으로 유발해 경기력을 높이는 행위다. 따라서 선수의 건강을 지키는 보건의료인의 입장에서는 금지된 ‘물질’뿐 아니라 경기력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장애인 스포츠에서는 장애로 인해 달라진 생리적 특성이 경기력과 선수 안전, 도핑 규정에 동시에 연결될 수 있다. 부스팅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스포츠약사가 알아야 할 도핑방지의 영역일 것이다.
References
1) Bhambhani Y, Mactavish J, Warren S, et al. Boosting in athletes with high-level spinal cord injury: knowledge, incidence and attitudes of athletes in paralympic sport. Disabil Rehabil. 2010;32(26):2172-2190. doi:10.3109/09638288.2010.505678
2) Blauwet CA, Benjamin-Laing H, Stomphorst J, Van de Vliet P, Pit-Grosheide P, Willick SE. Testing for boosting at the Paralympic games: policies, results and future directions. Br J Sports Med. 2013;47(13):832-837. doi:10.1136/bjsports-2012-092103
3) 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 Chapter 4.2: Position Statement on Autonomic Dysreflexia and Boosting. Published April 2016. Accessed August 21, 2026. https://www.paralympic.org/ipc-handbook
4) Krassioukov A, Linsenmeyer TA, Beck LA, et al. Evaluation and Management of Autonomic Dysreflexia and Other Autonomic Dysfunctions: Preventing the Highs and Lows: Management of Blood Pressure, Sweating, and Temperature Dysfunction. Top Spinal Cord Inj Rehabil. 2021;27(2):225-290. doi:10.46292/sci2702-225
5) Gee CM, West CR, Krassioukov AV. Boosting in Elite Athletes with Spinal Cord Injury: A Critical Review of Physiology and Testing Procedures. Sports Med. 2015;45(8):1133-1142. doi:10.1007/s40279-015-0340-9
6) Hodgkiss, D.D., Balthazaar, S.J.T., Gee, C.M. et al. Strategies to Augment the Cardiovascular System and Acutely Enhance Exercise Performance in Individuals with Spinal Cord Injury: A Systematic Scoping Review. Sports Med - Open 11, 125 (2025). https://doi.org/10.1186/s40798-025-009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