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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콜라보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 책 미리보기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취재,
억지 감동을 부르는 딱딱한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블로그 여행 후기를 보는 듯한
'리얼 평양 여행기'
정치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그저 호주 시민권을 가진 한국 태생의
평범한 국민1, 정재연 작가가 직접 겪은
평양으로 함께 떠나실래요~?
같이 북한으로 여행을 가게 된 팀원들은
동양인인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설마 북한과 휴전 상태인 남한에서
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나 역시 내가 북한으로 가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기 북한 맞아요?"
고층 빌딩이 즐비한 평양 시내,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 나온다.
아직도 꽃제비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동냥을 하는 모습이 보일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발전했을까?
가장 기대한 반찬은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인의 삶, 바로 김치였다.
북한의 김치도 남한 것과 같을까? 너무 궁금했다.
비주얼로만 봐선 왠지 간이 덜 된 느낌이 났는데
막상 먹어보니 어머! 깔끔 담백하다.
젓갈이 덜 들어간 서울식 김치 맛과 거의 흡사했다.
아삭아삭 씹히는 깍두기 또한 얼마나 맛있는지
깍두기만 몇 번을 리필해 먹었다.
식당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막걸리도 한 잔씩 돌렸는데
깍두기에 막걸리는 가히 환상의 콤비였다.
“네가 북한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모르는구나.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빨갱이들이 와서 널 잡아갈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
라며 하소연하듯 말씀하신 할머니는
6·25 전쟁을 직접 겪으신 분이었고,
엄마는 반공 방첩 사상을 철저히 교육 받은 세대입니다.
어릴 적, 국가와 가족에게 배운 북한은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였고
성인이 되어 바라본 북한은
호기심이 만연한 곳이 되었습니다.
'5년 전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DMZ와 JSA를 방문해
저 너머의 북한을 바라보았었다.
걸어서 채 2분도 안 걸릴 자리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쪽을 응시하던 북한 군인이
불과 70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나라 국민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이제는 직접 가서 모든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 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는
마치 나도 평양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겨 주는 에세이입니다.
생생한 경험담과 사진이 가득 담겨있어
마치 블로그로 여행 후기를 보는 듯,
술술 읽히기도 합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신기하고 놀라우면서
때로는 가슴 뭉클한 평양 이야기,
'24일 월요일'부터 재미나게 들려드립니다!
#1. 평양에 가신다고요?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북한 비자는 나오지 않았다. 여행을 너무 급하게 여행을 결정해서 비자 신청 시간도 촉박해서였을까? 이제 정말 여행이 코앞인데, 비행기는 탈 수 있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우선 중국국제항공 탑승 수속 카운터로 갔다.
“베이징 비자는요?”
“베이징에서 제3국으로 가는 거라 144시간 중국 무비자 체류를 신청하려고요.”
“어딜 가시는데요?”
순간 머릿속에 정적이 흘렀다. 예상에 없던 질문이다. 북한에 간다고 말하면 혹시 한국 정부에서 안 보내는 건 아닐까?
“평양요.”
“네? 평양 가신다고요?”
직원은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른 말 없이 매니저를 불러왔다. 매니저는 왜 북한에 가는지, 북한에 가면서 비자는 왜 아직까지 받지 못했는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 역시 비자가 아직도 안 나왔다는 게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일단 베이징으로 가야만 했기에 비행기를 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매니저는 난처하다는 듯한 얼굴로 몇 군데 전화를 돌리더니 잠깐 자리를 비웠다. 나는 갑자기 초조해졌다. 얼른 핸드폰을 켜고 베이징 여행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 한국 공항인데 북한 비자가 없으면 문제가 되나 봐요. 아직도 비자 안 나온 거예요? 빨리 확인 좀 해 주세요.’
5분 정도 기다렸을까? 매니저가 종이 한 장을 프린터 해왔다. 자세히 읽어 보니 북한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입국이 거절되어 다시 돌아와도 항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서였다. 안심하며 서둘러 서명하고 짐을 부친 뒤 탑승 게이트 앞으로 갔다. 물 한 병 사 들고 숨을 돌리니 눈앞에 중국국제항공의 비행기가 보였다. 곧 비행기를 탄다고 생각하니,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엄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잘 다녀올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못 돌아오더라도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선택해서 가는 거니까 나는 후회 안 할 거 같아. 베이징에 가서 연락할게.”
딸이 북한으로 여행 간다는 사실만 해도 겁이 나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니 기가 찼는지 엄마는 이렇게 대꾸했다.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앉아있어. 가서 한국말도 하지 말고 영어로만 말하고 튀는 행동 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그냥 주는 밥 먹고 조용히 있다 와. 한국말 절대 쓰지 말어. 알았지? 베이징 도착하자마자 전화해.”
그야말로 주는 밥 먹고 조용히 있다 와야 할 것 같은 여행. 이 특이하고도 특별한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떤 일이 있어도 평양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이 조금 넘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베이징 시내는 복잡했다. 대체 여행사가 어딨는지 두리번거리는 순간 ‘고려 여행사’ 팻말이 붙은 철문을 발견했다. 내가 상상했던 여행사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라서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그 철문을 한참이나 쳐다 보고 서 있었다.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1분 남짓 말 없이 있었더니 안에서 누군가 철문 고리를 열었다. 아담한 체구의 중국인 여자가 고양이를 안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 왔다. 막상 여행사 안으로 들어가니 밖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베이징에 있는 여행사지만 영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중국 직원보다 영국 직원이 더 많아 보였다. 가장 먼저 여행비 잔금을 결제했다. 여행 비용은 처음 신청할 때 총비용의 70%를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베이징 본사에서 유로로 결제한다. 다시 밖으로 나와 여행사를 구경하는데 다른 여행객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 같이 북한에 갈 팀원들이었다. 여행사 안으로 처음 들어설 때 내 표정도 저랬을까? 다들 어리둥절해서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서로 짧은 인사를 하고, 어색한 분위기도 깰 겸 각자의 여행 목적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북한 사진을 찍으러 가는 사진작가, 유명한 여행 유튜브 채널 운영자, 또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팀원들의 여행 이유는 ‘그냥 궁금해서’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동양인인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설마 북한과 휴전 상태인 남한에서 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나 역시 내가 북한으로 가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 고려항공 기내식 '미스테리 버거'를 맛보다!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2시간 그리고 다시 베이징에서 평양까지 90분이 걸린다. 같은 땅에 있는 옆 동네 치고는 오래도 걸리는 여정이다. 남색 유니폼을 멋지게 빼입은 고려항공 승무원들이 탑승 게이트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탑승을 직전에 둔 상황, 아무도 없던 탑승 게이트 데스크에 직원들이 오자 수다를 떨고 있던 무리, 책을 읽고 있던 사람, 샌드위치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던 사람들 모두 분주히 움직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북한 사람들, 장사하러 들어가는 중국 상인들, 여행가는 외국인들, 그리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나. 이들 중 나만큼 두렵고 무섭다가도 설레는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들 중 나처럼 ‘북한’이란 두 글자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끼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난 이제 곧 북한 사람들과 북한 항공기를 타고 북한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스릴까지 느껴졌다.
탑승이 시작되어 엄마 말대로 무리 중간 즈음에 줄을 섰다. 가능한 여행 내내 사람들 앞이나 뒤가 아닌 중간 즈음에 껴 있을 생각이었다.
고려항공은 '미스테리 버거'가 꽤 유명하다. 고려항공이 최하위 점수를 받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기내식 때문이라는 놀라운 사실! 맛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패티가 무슨 고기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승무원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나. 또한 빵과 패티 사이에 살짝 묻은(?) 야채까지, 햄버거라고 하기엔 뭔가 좀 모자란 비주얼이라고 들었다.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앞에서부터 신문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로동 신문'이었다. 북한은 두음 법칙을 쓰지 않는 것도 재미있고 신기하다. 옆에 앉은 사라(팀원 중 한 명)가 한국말을 쓰고 읽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사라 역시 호주사람인데 현재는 영국에 살고 있다.
“제이,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네. 저 남한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다른 나라로 여행 갔더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한국말을 쓰는 나라에 외국인들과 함께 들어가니 왠지 잘난 척(?) 좀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뒤 승무원들이 카트를 밀며 다시 나왔다. 비행기 여행의 하이라이트 기내식 타임이다! 나는 오히려 악명 높은 기내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맛볼 차례! 아까 그 승무원이 한국말로 물어 왔다.
"음료수는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콜라 주세요."
난 원래 콜라를 마시지 않지만 카트 위에 ‘코코아 단물’이라고 쓰여 있길래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이름부터가 솔직 담백하다. 북한 콜라 맛도 남한의 콜라와 똑같을까? 한 입 머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설탕을 풀어 넣은 한약물에 탄산을 넣은 것 같은 이 맛, 도저히 더 마실 수 없었다.
하지만 햄버거는 예상과 달리 맛있었다. 빵은 뽀송뽀송 신선했고 특히 패티 맛이 좋았다. 닭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기름져서 부드러웠다. 분명 소고기는 아닌 맛. 잡고기인가? 설마.. 개고기는 아니겠지? 북한도 식용으로 개를 기른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개고기가 섞였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닌 듯했다. 비록 야채는 양상추 한 장 얇게 들어 있었지만 맛이 나쁘지 않았다. 기내식은 전체적으로 만족!
맛있게 먹고 나니 어느덧 착륙을 준비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90분 비행답게 이륙 후 기내식 서비스가 나오고, 조금 있으니 착륙이란다. 서둘러 기내에서 받은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북한에 오기 전에 여행한 나라 두 곳과 체류 기간을 적으라고 되어있다. 북한에 오기 전 두 곳이라면 베이징과 서울인데, 서울 주소를 써도 되나 싶었다. 설마 우리집을 찾아 보는 건 아닐까, 예전에 살던 호주 집 주소를 적을까 하는 고민 때문에 머리까지 아팠다. 마침 현재 한국 대학을 다니는 독일 팀원에게 물으니 본인은 서울 집 주소를 적었다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체류 기간 5년 그리고 서울 집 주소를 썼다. 그렇게 난 내 모든 운명을 북조선 동포들에게 맡겼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문이 열렸다.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북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북한 땅을 밟은 것이다.
#3. 화려한 평양의 밤 그리고 가슴 뭉클한 한 마디
“어머머, 여기 북한 맞아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 나왔다. 어찌나 높은 건물들이 많은지 상상 이상이었다. 언제 이렇게 발전했을까? 옛날 이야기지만, 아직도 꽃제비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동냥을 하는 모습이 보일 줄 알았는데, 내가 북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평양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몇 번이나 봤을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미스 정, 놀랐습네까?"
연신 감탄사를 날리는 내게 가이드가 물었다.
“네, 정말 놀랍네요. 북한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남조선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릅네까?”
“네, 뉴스에는 정치 관련 내용만 나와서 사실상 현지인 이야기는 잘 몰라요. 특히 이런 발전된 모습은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그럼 우리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습네까?”
“네, 많지 않아요. 참, 탈북자분들이 북한 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그거 보면서 북한에 대해 좀 배우는 편이죠.”
“탈북자라고 하면 우리에 대해 나쁜 말만 하지 않겠습네까?”
가이드가 탈북자라는 말을 되짚는 순간, 아차 싶었다. 북한에서는 가장 예민한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네, 물론 어려웠던 북한 생활이나 탈북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것보다는 사람 사는 얘기를 해요. 사랑, 연애, 가족, 직장생활 같은 거요. 얼마 전에는 거기서 각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김치를 만들었어요. 북한도 김치 종류가 많더라고요. 이런 프로가 없으면 북한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를 거예요.”
조금 예민해진 것 같은 가이드의 눈치를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가이드는 이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색한 헛웃음도 보였다. 이후로는 정말 말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북한 사람이 말하는 탈북자 관해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버스에 내려 처음 도착한 곳은 김일성 경기장이다. 1926년에 건설되었다는 이 경기장은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야외 종합 체육경기장(첫 번째는 5월 1일 경기장)으로 축구를 포함한 각종 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한다. 2017년 4월, 대한민국 여자 축구 대표팀이 방북하여 2018 AFC 아시아 월드컵 예선을 진행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략 1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는데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크기의 김일성, 김정일 주석 사진이 건물 중앙에 걸려 있다. 한때는 모란봉경기장으로 불렸으나 김일성 주석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개축과 동시에 김일성 경기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간단히 평양 시내를 둘러본다고 들었는데,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보니 북한을 상징하는 김일성 광장과 말로만 듣던 대동강이 보였다. 대동강은 한반도에서 5번째로 큰 강이자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강 건너편으로는 주체사상탑이 우뚝 서 있었다. 저 탑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낮에 다시 올 거라는 말에 질문은 삼켰다. 우리는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면서 광장 내에 있는 인민대학습당 쪽으로 걸어갔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인민대학습당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서관이자 복합문화시설로 고서적부터 외국 서적, 아동 서적도 등 거의 모든 책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때 호주인 팀원 한 명이 북한 가이드에게 “북한에서도 웬만한 책은 다 읽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물론 그가 말한 ‘웬만한 책’은 ‘북한 사상에 반하는 종류가 포함된, 모든 책’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북한 가이드는 약간 주춤하더니 대답했다.
“저희도 모든 책을 다 구해서 읽습네다. 전자책도 봅네다.”
“여러분, 저녁 먹기 전에 평양 밤거리 산책할까요?”
가이드가 큰 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평양 밤거리를 산책한다니, 관광지가 아닌 일반 거리를 간다는 말에 다들 다시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핸드폰이나 사진기를 서둘러 꺼내며 걷기 시작했다. 바람도 많이 불고 허기진 상태였지만, 나 역시 북한 주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김일성 광장을 빠져나오니 퇴근하는 북한 시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처음 보는 편의점이다. ‘경림 종합편의’ 불이 꺼져 있길래 당연히 영업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안에 사람이 두 명 정도 보였다. 가이드에게 지금 편의점이 열려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예”하고 대답했다. 불 끄고 장사하는 것도 특이했지만 그것 말고도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시민들이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신들을 계속 쳐다보면서 연신 사진을 찍는데도 누구 하나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우리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미스 정, 기분이 어떠십네까?”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옆을 돌아다 보았다. 여기 가이드들은 홍길동도 아니고 언제 어디에서들 나타나는지 어느 순간 옆에 와 있다. 아무래도 북한 주민에게 말 시키고 싶어 하는 내 속마음이 읽혔나 보다.
“기분이요? 그냥 좀 신기해요. 저기 꼬마가 할머니한테 뭐라고 말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우리나라 말이랑 똑같을 줄 알았는데 많이 다르네요.”
내 말에 씁쓸하게 웃는 가이드의 표정을 보고, 같은 언어를 쓰는 남북을 나누듯이 말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하하. 우리나라가 어딨고 남의 나라가 어딨겠습네까? 남조선은 뭐고 또 북조선이 다 뭡네까? 우리 형제 아닙네까?”
“아, 맞아요.”
“그냥 서울에서 왔다고 하십시오. 저도 평양에서 왔다고 하겠습네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코끝이 찡했지만, 다행히 벌써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4. 신젖이 뭐야? 북한의 국민 간식 구경하기
밥까지 먹고 나니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타고 우리 팀이 3일 동안 묵을 서산 호텔에 도착했다. 서산 호텔은 4성급의 30층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호텔이다. 깜깜한 밤에 버스에서 내려 찬 공기를 마시니 마치 경주로 수학여행 온 느낌도 들었다.
2인실 배정을 받고는 물을 사기 위해 입구에 위치한 청량음료점에 들렀다. 남한의 편의점과 같은 곳이다.
“안녕하세요, 물 한 병 주세요.”
“한 병 말입네까?”
이곳의 점원은 한국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았다. 간식거리를 사 갈까 싶어 옆에 있는 오픈 냉장고를 들여다보았는데, 이것 또한 신세계였다.
닭알이라니? 그렇다. 북한에서는 계란을 닭알이라고 부른다. 이 솔직 담백한 이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신기한 이름이 있었다. 신젖은 도대체 뭘까? 젖이니까 우유? 판매원에게 물었다.
"신젖이 뭐예요?"
"네? 신젖이 신젖이지... 신젖 모르십네까? 맛이 아주 좋습네다. 한번 드셔보시라요."
맞는 말이긴 하다. 먹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힌트도 못 얻겠다 싶어서 하나 샀다. 그 자리에서 빨대를 꽂고 아주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마셨는데, 요거트다! 그렇다면 신 맛이 나는 소 젖의 줄임 말인가? 맛은 마시는 요플레랑 똑같았다.
닭고기 맛 튀기’는 아쉽게도 닭고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금이나 조미료가 거의 안 들어간 듯 했고, 과자를 먹고도 건강해지는 느낌은 처음 받았다. 짭짤한 과자맛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이라면 맛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화장품 가게도 보여서 가 보니 스킨로션부터 마스크 팩, 색조 화장까지 없는 게 없었다. 얼굴 팩은 미안막, 마사지 크림은 미안 크림, 스킨은 살결 물, 로션은 물 크림, 영양 크림은 밤 크림이라고 부른다. 북한 여성들은 미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 ‘미백 제품’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주원료는 개성 인삼. 나는 미안막 10 개입 두 박스를 샀다. 박스당 중국 돈 100원이니 한국 돈으로 거의 만 팔천 원 정도다. 북한 물가치곤 비싼 편이다. 점원에게 “비싸네요?” 하니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방에 들어와 보니 독일인 룸메이트는 어딜 갔는지 없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바삭하게 다림질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까 사 온 미안막까지 얼굴에 붙이고 텔레비전을 켜니 CNN 뉴스가 나왔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 호텔 천장을 올려다봤다. 내가 지금 평양 땅으로 와서 평양 호텔에 누워 있다니, 새삼 호주 여권이 감사해졌다. 방 온도가 조금 더운 것 같아 베란다로 가 문을 살짝 열었다. 잠옷에 카디건 하나 걸쳤는데 견딜 만했다.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평양의 밤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북한은 어떤 나라일까? 북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내일은 내가 가장 기대하는 개성에 간다. 나는 4년 전, 남한에서 JSA를 방문한 적이 있다.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고, 굉장히 뜻 깊은 경험이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 쪽을 응시하는 북한 군인을 보며 저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이제 곧 북한에서 남한을 바라보게 되겠지. 북쪽에서 보는 남쪽은 또 어떤 느낌일까? 기분이 묘했다. 내일을 위해 얼른 자기로 했다.
#5.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북한 영화 관람 후기
저녁 메뉴는 오리 바베큐였다. 식당에 들어서니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이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평양 시민들답게 외국인이 들어서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치 ‘놀러 왔으면 조용히들 놀다 가십시오’ 정도의 눈빛만 보였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대동강 맥주가 테이블 위에 두 병씩 올려져 있었다. 북한 맥주 맛있다는 말은 베이징에서도 수없이 들었지만 내심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었다. 나는 다소 건방진 자세로 생각 없이 한 잔 마셨다가 심봉사 눈 뜨듯 눈이 번쩍 뜨였다. 쌉쌀하게 톡 쏘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이 맛! 정말이지 최고의 맛이었다. 평양 소주도 함께 나왔다. 평양에서 쏘맥을 말아먹으니 이게 또 별미었다. 맥주를 추가할 때는 병당 1유로(약 1,300원)를 따로 내야 한다. 금강 맥주, 봉학 맥주등 종류도 많았지만 나는 대동강 맥주가 가장 맛있었다. 대동강 맥주는 흑맥주를 포함, 맥아와 백미의 비율에 따라 7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소비자 호평이 제일 좋다는 2번만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가는 줄 알았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단다. 이 또한 여행 계획에 없었지만 영화 보러 가고 싶은 사람 있냐는 가이드의 질문에 모두 손을 번쩍 들었다. 당연히 나도 들었다. 추가 금액은 5유로(약 6,500원). 추가 금액이 있더라도, 난 가능하다면 놀이공원도 가보고 싶고 대동강에서 유람선도 타보고 싶고 동해안까지 올라가 원산에서 조개구이도 해 먹고 싶고, 돈을 더 주고서라도 장마당 구경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 막 오픈을 했는지 아직 공기가 차가웠다. 팝팝거리며 팝콘이 튀겨지는 모습에 또 한번 놀라 가까이 가서 구경했다. 팝콘 구경이라니, 팝콘이 신기한 게 아니라 팝콘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보았을 거다. 바에서는 대동강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아까 식당에서 먹은 것도 모자랐는지 남자 팀원들이 줄을 서서 맥주를 받고 있었다. 가이드가 와서 물었다.
“팝콘 드실겁네까?”
“아뇨. 배가 불러서 팝콘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여기도 팝콘이 있네요?”
“우리도 영화 볼 때 팝콘 먹습네다.”
그가 웃으며 대답 했다.
우리가 본 영화의 제목은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였다.
영화관 내부로 들어가니 상당히 넓었다. 영화는 볼 만했다. 약간 신성일 주연 느낌의 올드무비라고 할 수 있겠다. 딱 70~80년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말은 역시 해피엔딩이었다. 탄광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가 국가를 대표하는 서커스 단원이 되는 이야기다.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아낌없는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비현실적인 면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 자막이 있었다. 나 또한 북한 특유의 억양과 낯선 단어, 표현들 때문에 자막 없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긴 좀 어려웠다. 난 나름 재미있게 잘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보니 코골며 자는 팀원도 몇 있었다. 참고로 영화에서도 언급 된 부분이지만 평양은 평양 주민이 아니고서는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알게 된 친구 말에 의하면 – 그는 탈북해서 한국에 정착 한지 10년이 지났다. – 평양에 방문 할 때는 ‘평양 통행증’ 같은 걸 미리 신청하고 받아야 하는데 평양에 친척이 살고 있거나 그곳으로 직업이 배치가 되지 않는 한 평민의 평양 방문은 꿈도 못 꿀 일이란다. 팀원 중 하나가 궁금해서 물었다.
“평양이 이렇게 살기 좋은데 사람들을 쉽게 못 들어 오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평양에 살고 싶어하는데 만약 누구나 들어오게 된다면 아마 지방에선 아무도 안 살려고 할 거에요. 밸런스를 맞춰야 해요.”
밸런스를 맞춘다라. 내가 북한 사람이었다면 꼭 평양에 살 수 있는 쪽이길 바랐을 것이다.
#6. 북한에도 지하철이 있다고? 생각보다 화려하고 멋진 부흥역
지하철은 부흥역, 영광역, 개선역까지 총 3곳을 구경하기로 했는데, 가장 먼저 북한의 중심이자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부흥역으로 갔다. 얼마나 깊은지 내려가는 데 4분이 넘게 걸린 이 에스컬레이터는 그 길이만 110 미터가 넘었다. 왜 이렇게 깊게 만들었나 싶어서 물어보니 전쟁 시 방공호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했다.
지하철 입구는 남한의 기차역과 비슷하게 생긴 걸 볼 수 있다. 역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개찰구와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지하철 이용객들은 역 앞 개찰구 입구에서 표를 구입 한 후 표를 찍고 들어간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통근자들 중에는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여기까진 남한의 지하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철 이용료는 1불 미만 이라고 들었다. 또한 내국인과 외국인의 가격도 다르고 언제 여행 하느냐에 따라 금액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라고 단정 짓기가 힘들다. 개찰구를 통과하니 정면에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만세! 구호가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는 얼마나 깊은지 롤러코스터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비상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에스컬레이터 세 개가 좌우로 나란히 작동 되며 이용객은 두 줄 또는 한 줄로 서서 이동해야 한다. 그 누구도 걷거나 뛰어 내려가지 않는 모습도 신기했다. 간혹 보따리를 앞에 두고 앉아서 이동하는 승객들도 보였다. 지하철 역 입구부터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이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시키는 스피커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나에게도 꽤 익숙한(?) 북한 여성 앵커의 박력 있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를 방문하시어 참 잘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대부분 지도자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의 방송이었다.
지하도에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다 보니 오른편 벽면에 이렇게 '종합 안내판' 이 보였다. 도착할 역명을 누르면 어디를 어떻게 가는지 역마다 불빛이 들어와 경로를 알려주는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나처럼 처음 이용하는 승객들에겐 엄청 편리한 시스템이다. 마치 남한의 교통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종합 안내판을 지나 돌아가니 드디어 승강장이 나왔다. 세상에나.. 입이 떡 벌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지하에 건설한 도시처럼 보일 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승강장을 목격했다. 어두운 터널에 열차만 딸랑 한 두 개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부흥역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화려한 분수대 쇼가 펼쳐 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가 너무 화려하고 고급스러웠고, 기둥, 벽에서도 섬세한 조각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을 이렇게 화려하게 꾸민 이유가 있을까 궁금해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는 평양 시민이 지하철을 탈 때 적은 돈으로도 럭셔리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김일성 주석의 뜻 이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 모두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잘 가꾸어진 역사 내부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화려하고 깨끗한 지하철을 볼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7. 덕성소학교 참관 수업
첫 번째 참관 수업은 컴퓨터 시간. 아이들이 컴퓨터 자판을 열심히 치고 있길래 뭘 하고 있나 가까이서 봤더니 한글, 영어 타자 연습 중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의 방문이 낯설지 않은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수업에만 열중했다.
아이들과 대화도 하고 좀 가까워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선생님조차 우리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으셨다. 바깥 운동장에는 체육 시간인지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다음으로 이동 한 곳은 영어 수업이었다. 아이들 모두 책상 위에 영어책을 펼쳐 놓고 한참 공부 중이었다. 서놓았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음식 영어로 말해 볼 사람?" 하고 물으니 경쟁하듯 다들 손을 번쩍 번쩍 들었다. 평소에 정말 발표를 많이 하는 분위기이거나 어느 정도 연습이 된 것 같았다. 외국인들 앞에서 발표를 하겠다고 경쟁하는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 학교는 관광코스에 포함 되어있다. 방문 날짜가 정해져 있는 듯 우리 팀 말고도 중국관광객팀이 더 있었다. 아이들은 밝게 웃는 표정으로 열심히 대화했다. 몇 남자아이들은 목소리부터 약간 전투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수업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아이들의 기세를 전하기 위해 대문자로 써 보겠다.
"WHAT FOOD DO YOU LIKE(어떤 음식을 좋아하니)?”
"I LIKE PANCAKES. DO YOU LIKE PANCAKES?(난 팬케이크를 좋아해. 너는 팬케이크를 좋아하니?)”
"NO, I DON'T. I LIKE RICECAKE(아니, 난 떡을 좋아해).”
수업이 끝날 즈음엔 팝송까지 멋들어지게 불러 주었다. 2학년 치곤 실력이 좋았다. 이후로는 아이들의 작은 공연까지 볼 수 있었다. 노래와 피아노, 드럼 연주까지 아이들의 실력은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한 남자 아이는 거의 독주 하듯이 드럼도 치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춤 추며 노래도 불렀다. 솔로로도 노래를 부르니 관광객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부른 노래 가사는 역시 모두 지도자를 찬양하고 조국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팀원들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때였다. 한 독일 관광객이 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드럼도 치고 솔로로 노래를 부른 그 남자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이, 저 남자 아이에게 공연이 훌륭해서 감동 받았다고 전해 줄래요?
나는 아이를 불러다 이렇게 말했다.
"이 분이 네 공연 덕분에 너무 감동 받으셨대. 좋은 공연 고맙다고 전해 달라셔."
아이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와 그 독일인을 번갈아 사면서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이드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데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난데없이 질문을 하니 적잖이 당황 했나 보다. 혹시나 내 말투 때문인가? 싶어서 천천히 "드럼을 너무 잘 치던데 연습 많이 했어?" 라고 다시 물었다. 아이는 날 뚫어지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고 좀 이상함을 느꼈던지 독일 관광객이 아이에게 영어로 "Thank you" 고마워 라고 말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까 그 독일인이 나에게 아이에게 뭐라고 전달했는지 물었다.
“부탁한 대로 말했어요. 공연에 감동 받았다고.”
“그런데 아이가 왜 아무 말이 없었을까요?”
“글쎄요. 외국인들과 말하지 말라고 선생님한테 지시 받진 않았을까요?
나도 그 아이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공연을 보여준 아이들과는 단체 사진을 찍고 마지막에는 다른 아이들의 탁구 연습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수준급으로 탁구를 치는 아이들의 탁구 연습 장면도 보고, 아이들과 단체 사진도 찍었다. 팀원 중에는 아이들에게 줄 크레파스며 연필 등을 가져온 사람도 몇 있었다. 선생님이나 학교 관계자를 통해서 줄 수 있었기에 준비해 둔 선물을 건네고 버스에 탑승했다.
#8. 제가 지금 무엇을 본 거죠?
식당에서는 우리 팀 남자 전원이 넥타이에 양복을 차려입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북한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인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양궁전, 그 이름부터 압도적이다. 예전에는 주석궁이라고 불렸으며 김일성 주석의 집무실 역할을 하던 건물이라고 했다. 금수산은 금수강산과 같이 ‘수를 놓은 비단’이란 뜻이다. 정원 규모까지 합치면 순안국제공항보다 넓은 곳이라고 들었다.
태양궁전에 가는 내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돌았다. 가이드는 특히 더 엄격하게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 여행은 여행자가 규칙을 어기면 전체 여행이 취소되거나 심한 경우 현지 가이드가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북한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관광을 하는 곳이지 이곳저곳을 누비며 마음껏 사진 찍고 모험을 즐기는 곳이 아니다. 지나친 호기심은 오히려 해가 된다.
금수산태양궁전 방문 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
1. 옷을 단정하게 입을 것(남자는 넥타이에 구두를,
여자는 바지나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스커트에 구두를 신어야 한다.)
2. 사진은 허가받은 장소에서만 찍을 것
3. 껌을 씹거나 사탕을 먹지 말 것
4. 뒷짐을 지거나 벽에 기대지 말 것
5. 무례한 표정이나, 행동 언행 등을 조심할 것
어느 사이 버스 창문으로 거대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궁전은 정말 궁전과 다름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군인들이 곳곳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베이징에서 설명을 듣고 북한에서도 들었지만 이렇게 와 보니 궁전 자체와 군인들이 주는 중압감은 실로 엄청났다. 안내원은 예쁜 한복을 입고 있었지만 웃음기 하나 없이 방향만 알려주었다. 여기서부터는 한 줄에 4명씩 줄을 맞춰 천천히 걸어야 했다. 끝이 안 보이는 궁전 정원은 잔디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뉴스에 나온 열병식에서 봤던 것처럼 발과 손동작을 완벽하게 맞춰 걷는 여군 무리도 보였다. 내부에도 바깥 못지않게 무장한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이곳에 방문한 북한 주민들의 얼굴은 전부 무표정이었다. 단체로 온 것 같은데도 옆 사람과 얘기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무빙워크가 끝날 무렵 신발 먼지를 터는 기계 위로 걸어 올라갔고, 이어서 반도체 회사에나 있을 법한 바람 나오는 문을 통과했다. 몸 전체를 소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시 엄청나게 긴 무빙워크가 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벽에 지도자 사진과 업적 등이 크게 걸려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니 김일성과 김정일 지도자 동상이 보였다. 동상의 크기는 실제 사람의 4~5배 이상 되어 보였다. 분위기는 너무나 엄숙했다. 앞서 방향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다시 우리 쪽을 보고 줄을 맞췄다. 그도 긴장했는지 넥타이 모양을 정돈했다. 사실 이렇게 직접 오기 전까지는 이곳이 북한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전혀 몰랐다. 동상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크고 하얀 문이 보였고, 군인이 우리 줄을 멈추게 했다.
‘이 극도의 긴장감은 뭐지?’
무표정의 군인들, 긴장한 가이드, 그리고 어리둥절한 팀원들의 표정이 날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1분 정도 기다리니까 군인이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가이드는 우리 줄이 잘 세워져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했고 모두 함께 들어갔다.
어둡지만 붉은 조명이 설치된 방에 들어갔는데 맙소사, 홀 정 중앙에 그들의 지도자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시신을 직접 보게 될 거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처음에는 인형일 거라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유리관 안에서 빨간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누워있는 건 분명히 사람이었다.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고 눈가의 주름까지 선명했다. 텔레비전에서 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 넓은 방 안에 관광객이 족히 50명은 되어 보이는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받았다. 모든 방문객은 유리관을 기준으로 앞에서 한 번, 양옆에서 한 번씩 총 세 번을 허리 숙여 인사해야 했다. 관 주위를 돌며 인사만 하는 거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시실로 이동하면서도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궁전은 크게 1, 2층으로 나누어졌는데 2층에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과 유품, 살아생전 다른 나라로부터 받은 온갖 상이나 메달, 선물 등이 함께 있었고, 1층은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과 유품, 메달 등이 비슷한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을 둘러본 후 궁전 뜰로 나갔다. 이제부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지만 궁전 정면을 찍을 수는 없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재 일본에서 번역 일을 하는 독일인 팀원이 내게 다가왔다.
“제이, 난 시신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어요.”
“저는 처음에 인형인 줄 알았어요. 눈가 주름까지 보이는 정교한 인형이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아닌 이상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순간 곳곳에서 보았던 ‘수령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주체사상 문구가 떠올랐다.
#9. 쇼핑 천국!? 광복백화점에서 현지인처럼 쇼핑하기
책방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고대하고 고대한 백화점 쇼핑 타임! 이번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오늘 방문하는 백화점은 평양 광복 거리에 위치한 광복 백화점이다. 버스는 백화점 입구까지 들어가서야 섰다. 광복 거리는 약간 명동 느낌이었다. 려명거리가 고급스러움이 있다면 광복 거리는 상점이나 맛집이 많이 들어선 번화가 느낌이었다.
백화점에서 지켜야 할 규칙도 있었다. 첫째, 사진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정해진 시간 내에 쇼핑을 끝내고 버스에 다시 모여야 한다. 셋째, 백화점 입구 환전소에서 유로나 달러 등을 북한 화폐로 바꾸고 남은 돈은 반드시 다시 환전해야 한다. 북한 화폐는 가지고 있을 수 없다. 넷째, 술은 한 명당 두 병까지만 구입할 수 있다.
백화점은 한국의 이마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현대적이고 규모도 클 뿐 아니라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층은 식료품, 2층은 옷이나 신발, 3층은 가전제품 코너였고 나는 1층만 보았는데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먼저 백화점 입구에 있는 작은 환은 환전소에서 유로를 북한 화폐로 바꿨다. 30 유로만 바꿔도 충분 할 거란 매니저님의 말을 듣고 쇼핑을 시작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중에 30유로를 한 번 더 바꿔서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북한 화폐는 옛날 우리나라 화폐와 비슷하게 생겼다. 지폐는 백 원, 이백 원, 오백 원, 이천 원, 오천 원 이렇게 여러 장으로 받았다. 환율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내가 산 물건들의 가격을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고급 생초콜릿 한 봉지(200그램)는 북한 돈으로 11,000원이었다.
식품 쪽은 종류별로 진열된 코너들만 해도 20개는 넘어 보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라면 코너였다. 놀랍게도 한국만큼이나 라면 종류가 다양했다. 매운 김치라면부터 메밀 라면, 심지어 짜장면까지 있었다. 컵라면도 종류대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것저것 생각 없이 담는 내게 매니저님이 와서는 “미스 정, 여기 이 즉석국수가 맛이 제일 좋습네다”하며 제일 앞에 진열되어 있던 컵라면을 추천해 주셨다. 북한은 라면을 즉석국수 또는 꼬부랑 국수라고 부른다.
쇼핑하는 동안 북한 주민들이 나를 계속 쳐다 봤다. 조선말을 하긴 하는데 머리색 때문인지 아니면 옷 스타일이 달라서 그랬는진 몰라도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쳐다 봤다. 30유로는 북한 화폐로는 꽤 두꺼웠는데 그 돈을 주먹에 쥐고 라면이며 담배를 카트에 가득 담으니 그 모습이 낯설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이 백화점에서 쇼핑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중산층 이상 인 것 같았다. 옷차림이 세련되고 카트에 많은 식료품을 넣으며 바쁘게 쇼핑하는 모습이었다.
쇼핑을 일찍 끝낸 팀원들은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나도 늦지 않게 서둘러 쇼핑을 마치고 매니저님과 커피숍에 갔다. 평양 광복 거리를 밤에 걸으니 왠지 대한민국 어디쯤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커피숍은 신식이었다. 북한 가이드들도 처음 와 봤는지 서로 잘 만들어 놨다며 감탄했다. 약간 경양식 분위기에 테이블마다 칸막이도 있어서 옆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구조였다. 나는 북한 가이드들이 모인 테이블로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남한 사람은 다 잘 살지 않습네까?”
“예에? 세상에 모든 국민이 다 잘 사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거기로 이민가게.” 했더니 웃는다. “남한도 잘 사는 사람들은 엄청 잘 살고 또 못 사는 사람들은 엄청 못 살아요. 북한도 그렇잖아요.”
북한도 그러지 않냐는 질문에 약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주의라면 빈부격차 없이 국민 모두가 공평하게 산다는 이념이 있기 때문인가?
“우리는 다 비슷비슷합네다. 우리 사회주의 아닙네까.”
“요즘 남한은 직업 갖기가 쉽지 않아요. 3포 세대라고 들어 봤어요? 남한 정보 많이 아니까 들어 봤을 수도 있겠네요?”
“아 그건 모릅네다.”
“3가지를 포기하는 거예요. 연애, 결혼, 출산. 월급 모아서 집 사기엔 집값이 터무니 없이 비싸니까 애초에 포기하는 거죠.”
“아휴, 집을 사야 한다니 저는 남한 가서는 못 살 것 같습네다. 우리는 집 걱정을 안하잖습네까. 나라에서 다 해 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시늉을 보이는 그에게 “그래도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이라고 물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미소만 보였다. 그에게 ‘자유’라는 단어가 좀 어색 했을지도 모르겠다.
#10. 가방 안에 술 들었소?
공항에 도착하니 매니저님이 "미스 정, 이제 돌아갈 준비 다 했습네까?"라고 미소 지으며 물었다.
"네, 덕분에 잘 먹고 잘 놀고 잘 보다 가요. 고맙습니다. 생각 많이 날 것 같아요."
내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옷깃을 잡아 끌며 "미스 정, 이쪽으로 오라우." 하며 체크인 하러 줄 서려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뒤를 졸졸 따라가니 비즈니스 카운터 앞이네? 일찍 통과 시켜 주시려고 줄이 짧은 곳으로 직접 데려가 주셨다.
매니저님이 같이 줄을 서 주셨다. 기회는 이때였다.
"저..매니저님. 사실 고백할 게 있는데요.. 저 맥주 두 병 이랑 소주 한 병해서 총 3병 샀어요."
매니저님은 당혹했는지 대답 없이 허공을 쳐다 보았다. 지금 당장 맥주 한 병을 빼겠다는 포즈를 취하는 나를 보곤 "일단 이쪽으로 와보라우"하며 군복 차림의 키가 큰 사람 있는 비즈니스 카운터로 데려 갔다. 하얀 얼굴의 군인은 아무 표정 없이 내 여권을 확인 했다.
"요기 남조선에서 관광 오신 분입네다."
매니저님도 긴장을 했는지 그 분께 내 소개를 조심스럽게 하셨지만 군인은 들은 척 만척 내 여권을 뚫어져라 살펴 보곤 다른 직원에게 내 짐을 엑스레이에 통과 시키라고 신호를 보냈다. 침이 꼴딱 넘어간다. 짐이 엑스레이를 통과하는 순간 삐익!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아.. 그 맥주가 뭐라고, 끝까지 규칙을 지키고 싶었는데.. 매니저님을 보니 그도 당황한 눈빛이다. 검사관이 무표정으로 날 보며 "가방 안에 술 들었소?" 라고 낮은 목소리로 짧게 물었다. 나만 들릴 법한 목소리로 "네에.." 라고 말했는데 들렸는지 어쨌는지.. "많이 샀소?" 다시 차갑게 물었다. 난 그 순간 처음으로 사람이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면 몸 속에서 똘기 충만한 어떤 호르몬을 마구 만들어낸다는 걸 느꼈다. 일단 솔직하게 말하자.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눈을 살짝 깔아 뜨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마치 어제 일처럼 정확하게 기억난다.
"제가 첫날인가 둘째 날 대동강 맥주를 마셨는데요, 너무 맛있어서 남동생 맛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날 금강 맥주를 마셨는데 호주산 맥주보다 맛있어서 엄마 맛 보게 해드리려고 샀고요, 어제는 저녁에 평양 소주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삼촌 드리려고 샀어요."
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순간 검사관이 뻥 터졌다. 매니저님도 덩달아 터졌다. "고렇게 맛있습네까?" 그 무뚝뚝한 검사관이 웃으며 물었다. 속으로 살았구나 했다. 비록 술 몇 병에 가족을 팔긴 했어도.. 맥주도 살고 나도 살았어!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당 술 두 병이 아니라 짐 당 두 병씩 이란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한번 들어올 때 마다 대동강 맥주를 몇 박스씩 사간다고 들었다. 또 뭘 사가냐는 질문에 선물용으로 산 다양한 담배들과 여러 가지 라면, 과자, 초콜릿 그리고 심지어 먹을지 안 먹을지도 모를 망둥어 튀김까지 듬뿍 샀다고 말하자 그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짓고 짐을 통과시켜주었다. 매니저님은 검사관 옆에서 티켓팅을 하는 직원에게 "좋은 자리로 좀 부탁합네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입국 심사대로 들어가기 전 매니저님과 한 번 더 악수했다. 정말이지 그가 있어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막 입국장으로 들어가려다 다른 가이드들한테 인사하지 못한 걸 깨달았다. 뒤를 돌아 여기저기 쳐다보니 나에게 누나 라고 쑥쓰럽게 부르던 그 가이드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쳐서 손을 흔드니 가만히 쳐다 보고 있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다 작은 목소리로만 인사했다. 몸을 돌려 출국 심사관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고작 5일이었는데 정이 많이 들었는지 나를 찾아온 친구를 시드니 공항에서 떠나 보내는 맘처럼 씁쓸했다.. 이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벌써 그리웠다.
비행기 좌석에 앉았을 때, 내 옆에는 나이 든 재일교포 두 분이 계셨다. 내가 승무원과 조선말로 대화하니 나를 계속 쳐다보시다가 "한국에서는 북한 여행을 오게 하나요?" 약간 어눌한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물어 보셨다.
"아니요, 저는 다른 나라 국적을 갖고 있어서 올 수 있었어요. 일본은 북한 여행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되나봐요?" 라고 물었더니 "일본도 정부가 북한에 가는걸 아주 싫어해요. 우리가 간다면 막진 못해도 안 좋아해요. 공항에 도착해서 북한에서 구입한 물건을 압수할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혹시라도 공항에서 물건을 압수하려고 한다면 '북한 물건은 압수한다'라고 쓰여있는 항공법을 보여 달라고 할 작정이라고 했다. 걱정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북한 입국은 여권에 사증을 찍지 않기 때문에 여행 기록은 남지 않지만 중국을 통해 제 3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144시간 체류 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그 동안 어딜 갔는지 물어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연습이라도 해야하나 싶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모든것이 준비가 잘되어있어야 발전이 되는건데
북한 발전은 하늘에서 뚝떨어진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