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벽운산장의 두 제자(3)
추료는 허리에 찬 청명검을 한번 쓰다듬어 보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벽운산장의 추료라고 하오만, 그대들은 어쩌자고 나의 제자들에게 살수
를 쓴 것이오?'
장염이 추료의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저는 장염이라 하고, 제 뒤에 계신 분은 저의 누님이신 향이라 합니다.'
두 사람을 소개한 장염이 향이와 자기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설명하기 시
작했다.
장염의 말이 마침내 마당에 쓰러진 두 사람의 행동에까지 이르자 추료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이구(黃二具)는 썩 이리로 들어오너라!'
추료의 음성이 끝나자마자 장염에게 자신을 황장군이라고 했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을 말했다가는, 무공을 폐하고 파문
시키겠다. 오늘 너희가 금마장을 도와 저 소저를 겁탈하려고 했다는 게 사실이냐
!'
황장군은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자 어차피 금마장도 죽은 상황이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단체로 이 폐가에 찾아올 일이란 없으니, 달리 거
짓을 꾸며내기도 어려웠다.
'사부님, 금마장이 저희들에게 하도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저 소저와 단둘이
있게 해주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를 강제로 욕보이거나 할 줄은 몰랐습니
다.'
사실을 약간 섞고 적당한 거짓을 섞으면 말하는 사람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
르게 될 때가 있다. 황장군이 스스로 대답하고 보니, 금마장만 천하에 몹쓸 놈이
되고 말았다.
장염은 황장군의 대답이 실로 교묘하다고 생각했다. 자기들도 뻔히 무슨 일이
일어날줄 알고 저녁 늦게 돌아가라고 붙잡았는데, 이제와서 죽은 사람에게 모든
허물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턱밑까지 길게 자란 추료의 검은 수염이 바람도 없는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
했다.
'이놈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을 헛되이 가르쳤구나. 협의(俠義)를 행하라고
전수한 무공으로 음란한 짓거리를 벌이다니, 네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
추료가 금마장과 소복래의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더니 청명검을 뽑아들었다.
챙!
그 순간 뒤에서 금소구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추사부, 어찌 아이들을 두 번 죽이려 하시오!'
뒤늦게 당도한 금소구도 뒤에서 황장군의 말을 들었다. 비록 부끄러운 일을 저
질렀지만, 그렇다고 어찌 한번 죽은 아들의 시신에 또다시 칼질을 하도록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추료는 금소구가 만류하자 한숨을 크게 내쉬고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잘못은
가르쳐 고치면 되겠지만 한번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가 없다. 비록 순간의 분
노로 검을 뽑아들었지만, 차마 아비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향해 살수를 쓸 수는
없었다.
'두 분께 못난 제자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구하오.'
장염은 추료의 말을 듣고 향이를 바라보았다. 자기야 그저 사람들 손에 이끌려
길을 왔다갔다 한 것밖에 없으나, 당사자인 향이는 안 그런척 해도 크게 놀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다만 저 두 분의 기혈이 저의 미천한 재주로 막히게 되었으니 대
협께서 손을 써서 살리시기를 바랍니다.'
금소구는 아직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님을 알고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
다.
추료는 검을 수습하자 곧 금마장과 소복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때려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겠지만, 금소구와 저 낮선 두 남녀 앞에서 더 이상 노
기를 드러내기도 뭐했다.
'저 소저는 자신이 제압한 사람을 왜 나에게 풀어주라고 하는 것인가? 겉으로
는 용서해도 마음속까지는 이 두 사람을 용서하고 있지 않다는 뜻인가?'
추료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내력을 일으켜 두 사람의 전신 혈도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어떻게 제압 당했는지 두 사람은 눈만 꿈뻑일 뿐 기혈이 소통하는 기미
가 보이지 않았다.
추료가 일각동안 번갈아 가며 두 사람을 안마했지만, 금마장과 소복래의 얼굴
은 점점 흑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기혈이 막힌지 오래되 생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추료는 이미 십여 년 전에 공동파의 고수로 이름을 날렸
었으나, 지금 이 순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엇으로 제압했기에 이처럼 혈도가 풀리지 않는단 말인가!'
향이가 일으킨 검기에는 서검자에게 얻은 백로주의 공력과 장염이 전수한 태극
양의검법의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추료가 지금 이 공력을
일시에 해소 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손에 찍혀 경
혈이 막혔으려니 생각한 추료가 여유있게 안마를 시작했으나, 일각이 지나고 이
각이 지나자 땀을 비오듯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흘린 땀만으로 막힌 공력을
풀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추료가 손을 털고 일어나 향이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왕에 이 두 짐승을 용서해 주시기로 하셨다면, 좀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로서는 두 짐승의 혈도를 풀기 어려우니 점혈의 위치와 방법을 알려
주시면 해혈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던 광료는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추료는 공
동파의 제일기재요, 이미 십 년 전에 공동파의 무공을 다 터득한 사람이었다. 그
런데 그가 해혈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르침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손으로 점혈을 한 것과 검기로 한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공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깊은 경지에서의 점혈은 단지 혈도를 봉쇄하는 것 이
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향이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믿거나 말거나 어차피 해혈을 해야 한다면 자기
가 검기로 격공점혈(隔空點穴)한 것을 가르쳐 줘야했다.
'그들은 저의 검기에 의해 우측의 견정혈을 점혈 당했습니다.'
'...'
추료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검기점혈이라니! 자신도 이미 십 년 전에 검기점혈
의 경지에 들었었다. 그때 그가 도달한 검기점혈이란 어디까지나 검 끝에 힘을
빼고 혈도를 점하는 검의 점혈이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이 검의 점혈을 가지고
검기점혈이라고 말했다. 바늘 끝 같은 검 끝으로 싸움 도중에 상대의 혈도를 제
압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게다가 정확한 힘의 안배가 없다
면 검기점혈은 점혈이 아니라 관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검기 점혈을 한답시고
무림의 인사들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팔다리를 꼬치 꿰듯 꿰어 온 것도 그 같
은 이유 때문이었다.
추료가 다시 두사람의 견정혈을 살펴보았다. 과연 견정혈이 육안으로 확인이
될 정도로 움푹 꺼져 있었다. 추료가 금마장의 견정혈에 장심(掌心)을 대고 내공
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참이나 내력을 주입했음에도 견정혈의 혈도는 타통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소저가 했다는 이 검기점혈은 그가 알고 있던 바와 사뭇 다른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혈도가 굳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추료가 다시 향
이를 바라보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소저가 말씀하시는 것이, 설마, 격공점혈이라는 것이오?'
추료가 더듬거리며 말을 마치자 향이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료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자신도 유형의 검기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 검기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저 소녀는 유형의 검기로
단지 혈도를 제압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검기점혈의 수법이었다.
'저로서는 소저의 점혈을 풀 길이 없으니,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소저께서 이 짐
승들을 살펴 주심이 어떠신지요?'
향이가 난처하다는 얼굴로 추료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사실은 저도 아직 검기가 어떻게 발출되어 저들을 제압했는지 이
해하지 못한지라, 더더욱 점혈된 혈도를 풀 수가 없습니다.'
'허, 어찌 이런 일이...'
추료가 넋을 잃고 향이를 바라보았다. 검기로 격공점혈을 할 줄 아는 절대고수
가 자기도 어쩌다가 그리 된 것이라고 하니, 도무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장염이 추료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선 이 두사람을 방으로 들여 놓고 다시 해혈을 시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혈도가 굳은데다가 날씨마저 차가우니 더더욱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서 드리
는 말씀입니다.'
추료가 두 사람의 검게 죽어가는 안색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들을 시켜 이들을 본가(本家)로 옮기겠소.'
금소구가 옆에서 말하자 추료가 금소구의 말에 반대를 했다.
'금대인의 마음은 알겠으나, 지금 여기서 이들을 해혈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 소저뿐이니 이곳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두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같소.'
'추사부, 그렇다해도 이곳은 너무 비좁으니 어찌 우리가 모두 모여 사태를 지
켜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 두 분도 저희 집으로 모셔가서 함께 거하시면 어
려움이 없을 줄 압니다.'
말을 마친 금소구가 향이와 장염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족한 자식놈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만, 모두 용서하여
주시고 저희 집에 함께 가셔서 조금 머물러 주심이 어떠하실지요?'
이미 향이가 무림의 고수라고 생각한 금소구는 감히 향이와 장염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누님, 어찌 하시렵니까?'
'장동생, 제가 간다고 어찌 저분들께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직 장동생 만이 모
든 것을 할 수 있으니, 저는 장동생의 의견을 따를 뿐입니다.'
장염이 빙그레 웃으며 향이에게 말했다.
'향누님, 누님의 마음이 불편하지만 않으시다면 저분의 집으로 함께 가서 묵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너무 좁아 다른 분들이 함께 머물기가
어려우니, 우리가 자리를 옮겨야 겠습니다.'
장염이 옮길 것을 결정하자 금소구는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봐 재빨리 사람들
을 불러 두 사람을 업어 나르게 했다.
마당에 있던 두 사람이 업혀나가자 광료가 추료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사형, 저 소저가 정말로 격공점혈을 한 것입니까?'
'내가 보기에는, 사실인 것 같다.'
추료가 맥빠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검 하나만을 수련한 자
신도 아직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비록 불완전 하지만
저 소녀는 벌써 검기점혈(劍氣點穴)로 들어선 것이다. 추료가 몸을 돌이켜 대문
을 빠져나가자 광료와 세 명의 공동파 제자도 조용히 따라나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마당에는 대륙전장의 사람들 몇 명만이 장염과 향이의 길
안내를 돕기 위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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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향이가 절대고수 수준이라~~~ 장념은 보디가드 한명 대동하게 되었네!~!~!~
ㅈㄱ~~~~~~~~~````````````````````````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겁게 즐독 했네요^^ 감솨 함다~~
즐감~!
향이의 무공이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ㅈㄷㄳ,,,
늘 감사합니다.
오늘은 쉬시나 보네^^
힘 드시더라도 좀 자주 올려 주시지요. 즐독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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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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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잘 보고 있습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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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