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은 외국말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어진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 말, 혹은 각 나라 말이었기에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만 있었던 방언은 여러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단수형으로 표기된 것입니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우리가 성경번역본 가운데 가장 원문에 가깝기에 권위를 두고 있는 KJV 성경에는,
이런 점을 살려 단수형 방언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an unknown tongue)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단수와 복수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까지 KJV 성경이 구별까지 해 놓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an unknown tongue)의 실체를 밝혀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것의 정체는 뭘까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이교도적인 산물이라면....
지금 방언기도를 하고 있는 분들 모두 이교도인이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방언기도로 영적인 진보가 있었다는 말로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방언기도가 하나님께 하는 영적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2절 때문이겠지요.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누구나 미혹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읽기 전에 전제해야 할 선(先)지식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망하기 위해서 서신을 썼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교린도서는 교정의 서신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언쟁과, 분쟁, 이교풍습, 신비주의가 만연된 이 교회를 교정하려고 서신을 썼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빈정거림, 책망, 교정, 그리고 교훈으로 점철되어 있다”
(조지 가드너)
잘못된 점을 책망하기 위해 쓴 내용을 권장으로 읽기 때문에 오해가 시작되는 겁니다.
간단한 실예를 볼까요?
(고전14: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이 구절을 권장으로 읽으면 방언의 정당성을 바울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망으로 읽어볼까요?
“내가 이미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방언(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말하고 싶다면...”
보시다시피 이렇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분들이 영적으로 해석한다고 자신이 이해되는 것을 영적이라고 우겨댑니다.
그리고 성경을 정확히 문맥과 배경을 따라 해석하면 지식으로만 성경을 푼다고 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문맥과 문장, 그리고 배경을 따라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해석이 나옵니다.
기도해서 해석된 해석이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2절을 볼까요?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이 구절을 권장으로 읽는 분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말이다.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망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읽어볼까요?
“방언은 사람에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하지 않는다.
방언하는 자들은 알아듣는 자가 없는데도(반드시 방언의 목적은 알아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
내 영이 비밀을 말한다고 한다(우겨댄다는 의미)
제가 너무 지나치게 해석했다고 생각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라는 이 구절의 원문적 해석을 보겠습니다.
πνεύματι δὲ λαλεῖ μυστήρια
집중해야 할 단어가 하나가 있습니다.
접속사 δὲ (데)입니다.
물론 이 단어는 한글 번역에서 빠져있습니다.
이 접속사 하나에 이 구절이 긍정이 될 수도 있고 부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but, now, nevertheless, moreover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나”로 해석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방언기도의 유익을 주장하는 분들을 위해 더 깊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그러나”로 해석하는 것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해석함이 더 옳습니다.
그것이 문맥을 고려한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KJV의 해석도 같습니다.
howbeit in the spirit he speaketh mysteries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으로 비밀스러운 것은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KJV가 번역상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인정을 하지만 자신의 목적과 부합되지 않을 때에는 과감히 KJV가 틀렸다고 우겨댑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한 번역본, 오역을 방지하기 위해 선택하신 성경”이라는 찬사를 보내다가 자신의 체험과 목적에 조금이라도 부합되면 문자적이니, 지식적이니, 학문적이니 라고 몰아세우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지식이 가장 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분명이 이 구절은 방언(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말하는 자들이 자신들이 하는 것을 비밀스러운 것이라고 우겨댐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고전14:2절의 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방언은 반드시 사람이 알아들어야 하는데도) 사람에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한다고 하지만(자신들의 주장)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으로 비밀스러운 것을 말합니다(말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이교도(델피신전)의 신비주의 방언(주문, 알 수 없는 언어)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성경이 말하는 외국어 방언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하나니(자기들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 하면서 알 수 없는 신비주의 방언을 말하나) 이는 그들의 헛소리를 알아듣는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한다고 하며 은폐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방언기도는 이교적이고, 주술적이며 사단적입니다.
그것과 끊임 없이 접촉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 갔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깊은 체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밀월의 관계로 들어갔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이 제공한 사탕입니다.
그래도 방언기도가 좋다면 계속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러나,
계속 그 사탕을 빤다면...
당신의 영혼을 위해 멈추라고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관찰자하고 unknown tongue 에 대해서 해석이 다른데요
말하는 사람은 자기언어로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낯선언어
알려지지 않은 언어가 됩니다
14장 전체를 조망하면
그런 결론이 나와요
그래서 방언의 뜻은 창세기 부터
계시록까지 동일한 뜻으로 지역언어가 됩니다
통역이 되는 언어라서 통역하라 한것이죠
내가 다른방언과 다른입술로 이 민족에게 말하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이구절의 방언은 다른민족 앗수르의 언어를 말하고 있는것이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18절에 바울이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I thank my God, I speak with tongues more than ye all
위 말씀은 어찌 해석하시나요?
tongues가 복수죠
여러가지 언어들이란 뜻입니다
바울이 4,5개 국 언어를 할줄 알았기 때문에
이방지역에 그 지역 방언으로 복음을 전할수 있었지요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에서 방언이라고 번역했으나 실제로 복수형입니다
방언들로 번역해야 맞는데 방언으로 번역해도 뜻은 통하는데 오늘날 마귀방언교에서 왜곡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관찰자 "너희 모든 사람보다 ...더"라고 말함은 너희가 하는 것이 방언임을 인정하고 말한 것이죠?
@죄인중 괴수 그 방언이 언어에요
바울이 없는데 어떤 유대인이 바울대신 유대말로 말씀을 가르치는 경우 고린도인은 못알아 듣죠
그러니 통역이 있어야 되는겁니다
너희는 한두가지 언어를 할줄알지만 나는 더 여러가지언어를 한다는 뜻이죠
@관찰자 즉 고린도교인들이 외국언어인 방언을 했다는 것인데 왜 글쓴이는 바울이 책망했다고 하고 이교도 주술이라할까요?
@죄인중 괴수 그게 나도 처음에는 그런식으로 해석했는데
12-14장을 수백번 보다보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요
모순이 없어야 하는데
모순이 생기면 일관성이 없으므로 어쩡쩡한 해석이 되는거죠
명백히 외국어라면
(말하는 사람은 자국어
듣는 사람에겐 외국어
따라서 듣는사람에게 타지역 방언이 되는거죠)
통역이 불가하거나 아무도 알수 없는 단순 음절의 반복은 주문과 같은거죠
랄라라 바라바라 따따따
이런것들이 주문과 같은것으로 마귀방언이 되는거지요
@관찰자 방언교는 방언이 말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만 생각하니 엉뚱하게 해석하는것이고
사실은 듣는사람의 입장에서 방언이라는거죠
14장 전체의 흐름을 보면 듣는사람에게 방언 외국어가 되는것으로 해석해야 모순이 안생깁니다
듣는사람이 못알아들으면 꽹가리소리다
허공에 대고 하는 소리다
서로 야만이 되는 소리다
라고 하는것이 바로 그런
뜻이 되는거죠
@관찰자 고린도인들이 외국어만 했다면
왜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않는 자들이 미쳤다할 것이라 했을까요?(23절)
그중에는 외국인이 없었을까요?
또 13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즉 통역의 은사가 임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거죠.
그래서 28절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전도위해 주신 외국어 은사를 자기와 하나님께 하라는게 이상하죠?
4절 방언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자기 세우고, 7절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다른 사람은 덕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외국어로 기도한다고 자기 덕이 세워지나요?
@죄인중 괴수 바울이 지적한 것은 방언은사 자랑하며 교회에서 남들 예배 방해되도록 큰 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떠벌이고 있는 짓들이나 강단에서 공개적으로 방언기도하는 짓 등등에 대한 것이라 봅니다.
혼자서 해야죠.
@죄인중 괴수 사도행전에서 여러사람이 여러나라 15-16개국 방언을 동시에 하죠
그 방언을 알아듣는 각국 사람은 하나님 높임을 들었죠
그러데 본토유대인들은 동시에 여러나라 방언이 들리니 하나도 못알아 듣고
솔취했다고 했죠
미쳤다고 한거죠
(듣는사람에게 방언인) 방언을 말하는자는 자국어를 말하는 것이됩니다
그런데 통역이 없으면 허공에 대고하는 헛소리가 되므로 양쪽말을 아는 통역할 사람을 구해주소서 기도하라는거죠
통역은 말하는 사람이 할수 없죠 왜냐 자기말을 듣는교인의 말로 통역을 할수있다면 그냥 교인들의 말로 하면 되지 뭐하러 통역을 합니까
통역이 없으면 교인들을 가르쳐봐야 아무 효과 없으니 그냥 잠잠히 있어라
@관찰자 기본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국어로 말하는것이고 듣는 교인들에게 외국어라는 것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한국말 모르는 미국 목사 빌리그래함이 한국의 집회에서 연사로 말하는
경우와 똑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빌리그래함은 자국어인 영어로 말하지만
한국사람들에게는 외국어방언이죠
영어방언
통역이 있어야 합니다
통역이 없으면 설교를 아무리 잘해도 꽝입니다
통역을 미처 구하지 못했을때는 빌리그래함 혼자 조용히 있던지 혼자 하나님께 기도하던지 하라는것이고
통역구하기를 기도하고 백방으로 알아봐서 통역을 구해야 집회가 목적달성을 할수 있는겁니다
미국인 연사 여러명이 동시에 말하면 통역할수도 없으니 한사람씩
@관찰자 고린도는 본토 유대인들과 별 상관 없어요.
자국어를 말하는 것은 은사라고 할 수 없구요.
대부분 그리이스어를 사용했을 같은 교회안의 문제입니다.
@관찰자 순서대로 말하고 통역은 한사람이 순서대로 통역하라고 하는거죠
@관찰자 자국어는 불신자도 누구나 하는 것이데 그것이 성령의 은사냐구요.
@죄인중 괴수 바울이 고린도에가서 몇개월 가르친것 뿐이니 다 초신자고 문제투성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지역으로 옮겨다니며 전도하기에 바쁘고
이방인을 전도할때 유대인의 회당에서 먼저시작 합니다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고요
유대인 이방인 섞여있어요
유대인은 구약을 다 알고 바울의 말을듣고 복음을 쉽게 깨우칩니다
바울은 다른지역으로 떠납니다
누가 가르쳐요
유대인밖에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유대인중에는 헬라어에 능통한 사람도 있고 서툰사람도 있죠
서툰사람은 능통한 사람의 통역이 있어야 하죠
@관찰자 그러니까 유대인이 유대인말하고 미국인이 미국어하고 한국인이 한국어 하는게 성령의 방언 은사라는 것입니까?
처음과 달리 잘못 나가신거 같아요.
@관찰자 성령의 은사요?
교회 청소, 주방일, 관리, 교사, 구제하는일 모두 성령의 은사지요
교회를 세우는데 유익하게 하는일은 무엇이든 다 성령의 은사입니다
(로마서 12장)
음악재능으로 섬기는것도 은사이구요
외국어 통역을 잘해서 교회집회에 유익하면
은사지요
방언교에서 신비한 현상만을 은사라고 강조해서 성령을 마술사인양 치장해서 개만도 못한 소리를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우겨대며 속이는겁니다
@죄인중 괴수 방언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방언이라니까요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에 120문도에게 자신이 모르는 타국어를 성령이 강제로 시키는 경우 이것은 은사라는 개념을
쓰면 안됩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을 위한것이 아니라 듣는 디아스포라를 위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경우는 성령의 필요에 의해서 성령의 뜻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은사는 무엇인가
교회의 지체가 되어 각자 기능을 잘해서 전체가 유익하며 교회가 견고히 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댓가 없는 자기희생이라 성령이 시키지 않으면 못하죠
그래서 성령의 나타남이라 하기도하고 성령의 은사 선물이라고도 하는것이죠
@관찰자 어쩌다보니 주제가 빗나갓네요.
우선 기본적으로 방언은 자국어가 아니기에 자신도 모르는 말이므로 통역하기를 기도하라(pray)했지 통역사를 구하라 한 것이 아닙니다.
@관찰자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을 대조해 보고 깊이 생각해 보세요
로마서에는 방언과 통역은 빠져 있습니다
왜 빠져 있을까요
방언교에서 주장하는것 처럼 그토록 중요하고 신령한 은사라면 로마교회에서는 왜 필요가 없었을까요?
@죄인중 괴수 방언은 말하는 사람은 자국어, 듣는 사람에게
외국어방언입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교인들)을 위해 통역하라는것 아닙니까
기도는 왜 합니까 통역을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관찰자 방언은 특별한게 아니라 성령께서 자기 뜻대로 주시는 은사들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통역이 없으면 개인의 덕(유익)을 세운다 했습니다.
개인적 기도의 은사에 가깝죠.
그래서 교회의 공적인 유익이 별로 없는 은사라는 것이죠.
그것을 고린도 교회에서 잘난척하며 무질서하게 큰소리로 떠벌이니 지적한 것이구요.
(지금도 다른 교인들 기도 방해하고 짜증나게 하고 마이크 들고 방언 자랑하며 꽥꽥대는 그런 자들이 여전하죠.)
그런 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죄인중 괴수 방언을 더 많이 해서 감사한 바울의 자국어는 몇 개라는 것인가요?
@죄인중 괴수 사도바울은 과연 누구인가?
헬라파 유태인으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 하였고
가멜리엘 문하생으로
외국어에 능통한 석학이며
로마 시민권을 소지한 특수 층
유태인 공회원(국회의원)신분에
철저한 율법 신봉자였다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고전 14:18)
바울이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감사한다고 말한 이 내용이 지금의 옹알거림 현상의 근거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바울은 사람이 사람을 향하여 실제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옹알거리는 소리를 뜻 한다면 ‘비밀의 방언으로 기도하므로’라고 하였을 것이다.
@관찰자 . 바울은 최소한 로마어, 헬라어, 터어키어, 히브리어를 맘대로 구사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또한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하기를 소원했으므로 스페인어에도 능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관찰자 그리고 개인의 유익을 위한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한것만 은사라합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관찰자 님은 방언은사가 자국어라 했습니다.
자국어 뜻이 뭔가요?
성령의 은사는 우선 개인의 덕과 유익을 위한 것도 있어 각자 열매를 맺으므로 그것들이 합하며 결국 교회에 유익이 되지요.
@죄인중 괴수 빌리그래함이 여의도에 와서 영어로 설교했지요?
영어는 빌리그래홈의 자국어 즉 자기나라말이죠
그런 한국사람에게는 영어 즉 외국어방언이죠
@죄인중 괴수 제가 님 글이 처음과 빗나갔다고 해도
님은 방언을 자국어라고 계속 주장하시는데
고린도 교회는 대부분 당연히 같은 지방 언어를 쓰고있었고 그런데 은사받은 여러 교인들이 자국어가 아닌 알 수 없는 말을 떠벌여 문제가 되서 지적당한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와서 문제된게 아니에요.
@죄인중 괴수 그렇게 상상할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면 모순이 발생합니다
아래구절과 맞지 않지요
아래구절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21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느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관찰자 21절은 다른방언 다른입술
외국인에 의한 외국어라는 것이 분명하죠
22절은 사도행전의 150문도의 외국어방언이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표적이었죠
결국은 방언의 의미가 외국언어라는것이데 듣는사람에게 외국언어라는 뜻이 분명하지요
@관찰자 그 부분이 참 어렵긴 한데
제 해석은
유대민족이 자기들 언어로 전하는 주님 말씀도 믿지 않기에 다른 방법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전해보지만 역시 듣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대로
그래서 방언은 (본래) 너희와 같이 믿는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불순종하는 유대인들 같은 하나님 믿는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방법인 것이다.
근데 믿는 너희가 다 모여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하면 진짜 믿지 않는 자들이 보기에 미쳤다하지 않겠느냐?
이부분은 저도 온전히 이해가 안갑니다.
@슈와아이나리 방해 마세유
@죄인중 괴수 바울이 교인들의 집회시에 말씀을 나누거나 가르칠때에 가르치는자와 듣는자들의 의사소통이 안되는 경우에 질서있게 통역을 두고 의사소통을 해서 서로 열매맺고 아멘할수 있도록 하라고 권면하는것이 14장의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성경을 잘 안다고 히브리어로 설명을 하는데
서너사람이 동시에 히브리어로 말을 하면 중구난방이 되죠
초신자로서 듣는 사람이나 처음온 사람들은 하나도 못알아 들으니 미친집회라고 할수 밖에 없죠
그러니 한사람씩만 말하고
통역하고 그 다음 사람이
말하고 통역하고 질서있게 해야 다 알아듣고 아멘할수 있는것이죠
@관찰자 알아들을수 없는것은 언어가 달라서 못알아 듣는것이에요
그래서 통역이 없으면 말할필요 없는것이고
통역이 있으면 방언 즉 히브리어로 말하는것을 금하지는 말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언을 사모하라는것은 교인들의 말로 말하라는 것이에요
예언은 앞날을 점치라는
얘기가 아니고
預言 맡길예 말씀언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맡겨둔 말씀을 교인들이 알아듣는 말로 말하라는 뜻이에요
기억에만 의존하여 성경의 예언을 말하다가 틀리는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는 정확히 아는 사람이 틀린 부분을 지적하고 교정하거나 수정한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예언하는 자는 예언하는자에게 제재를 받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관찰자 이렇게 해석의 기본방향이
설정되면 아무런 모순이 없이 물흐르듯 자연스런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게 되면 여기저기 구절마다 상충되는것이 나올수 밖에 없고 모순이 계속 나오게 됩니다
방언교의 교리가 상충되고 모순되는 점은 입을 닫고 있죠
해석을 한다해도 억지해석만 하게 되어
스스로 모순됨만 입증할 뿐이죠
@관찰자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그렇게 님 주장에 맞게 그림 그리시고 있네요.
그냥 외국인들도 참석하는 교회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기본적으로 자국어로 예배합니다.
바울이 그런 소수 외국인과 언어소통 문제를 말한겁니까?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리 없는 자국어로 설명하는 무식한 바보들이 있어서 그것을 그리 길도록 설명하고 가르치며 귀한 성경에 기록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