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은 죽고, 푸틴은 5선 대통령 되고
19세기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그의 1831년 저서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결론 부분에서 "러시아인들은 사회의 모든 권위를 단 한 사람에게 몰아준다. 그 행동 수단은 예종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20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정치 상황을 보면 토크빌의 통찰이 그대로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엊그제 러시아에서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나라가 커서 그런지 3일에 걸쳐 무려 9만6천개의 투표장에서 투표를 했다고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정세에 밝은 자유칼럼 독자들은 이 선거에 무관심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선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보나마나 결과는 뻔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겁니다.
푸틴은 이번 선거로 집권기간을 6년 더 연장했습니다. 2030년까지 그는 크렘린궁을 차지해서 러시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선거 한 달을 앞둔 지난 2월 16일 푸틴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시베리아의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산책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의료팀이 응급처치를 취했으나 소생하지 못했다." 는 설명을 내놨습니다. 그의 측근들은 이런 해명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제한된 조건이었지만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나발니와 소통하고 있었으며 그의 변호사는 죽기 전날 그를 접견했습니다. 이들은 나발니가 정신에 이상을 일으킬 몸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신체적 학대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설령 나발니가 맞아죽지는 않았을지라도 극한의 수용소 환경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결국 푸틴이 정적을 제거한 것이라는 정서를 가진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를 수용했던 형무소는 혹한의 시베리아 북극권에 있습니다. 반체제 문학가 솔제니친이 스탈린 시절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를 그린 소설 '수용소군도'(Gulag)와 같은 극한의 유형지입니다.
변호사인 나발니가 반체제 운동가로 행동에 나선 것은 2011년 푸틴의 독재와 부패를 폭로하면서부터인데, 푸틴 정권은 횡령 사기 혐의로 그를 기소하고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나빌니는 아직도 진상이 규명 안 된 독극물 노비촉 살해 시도가 분수령이 되어 그의 반체제 활동과 이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노비촉에 중독된 나발니는 독일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고 귀국했습니다. 푸틴정권은 귀국하면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나발니는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도 귀국했고 공항에서 체포되어 테러리스트 지원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습니다.
푸틴 정권은 나발니를 대중의 관심에서 격리하기 위해 방송 신문 등에 그의 활동에 대한 보도를 통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이름조차 못 나오게 했습니다. 심지어 재판정에서도 나발니는 이름 대신에 '독일에서 온 환자'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마치 한국의 신군부 독재체제에서 언론이 당시 김영삼 야당 총재의 단식농성을 직접 보도하지 못하고 '모 야당인사의 식사문제'라는 표현을 썼던 것을 연상케 합니다.
나발니는 투옥되었지만 더욱 맹렬하게 푸틴체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나빌니의 무기는 바로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습니다. 그가 유튜브에 푸틴의 비밀 호화궁전을 포스팅하자 1억명이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도 공부했던 모양입니다. 측근에게 "한국과 대만이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체제로 전환했다면 러시아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발니의 죽음은 러시아의 반체제 세력에게는 큰 충격이자 상실입니다. 반면 푸틴에게는 눈엣가시가 사라진 셈입니다.
이 세계에는 푸틴보다 더 장기집권한 독재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보다도 푸틴의 장기집권이 몰고올 어두운 바람이 두려움의 근원입니다. 그는 세계를 벌벌 떨게할 버튼을 여러개 쥐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과 세계 에너지공급의 판도가 그의 의도에 달려있습니다. 그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며 영향력을 과시하는 일도 꺼림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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