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혼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악몽에서 벗어 난지도 긴 시간이 지났고 어떤 편견도
무마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연륜이 쌓인 승화된 나의 삶이니...
할아버지의 사촌 동생이신 나의 종조부님의 장손이고 아버지의 오촌 형님이신
나의 종백부님의 아들이니 재종형제로써 나에게 육촌 오라버니가 된다.
유년시절 명절 때면 우리 집 차례가 끝나고 오빠네로 건너가
작은할아버지 제사를 모셨다. (오빠네는 4대째 독자였다.)
대소 간에 여식이 귀한 탓으로 늘 아버지 무릎이나
손아귀에 매달려 지냈으므로 동석하여 차례를 지켜보았다.
때론 할아버지 담뱃대로 절하는 형제들의 엉덩이를 찌르는 장난도..
집안 어른들의 귀여움도 많이 받았고 형제들의 우애도 깊었다.
그리고 오빠의 보살핌과 사랑은 유별났다.
나중엔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로 나에게 집착했다.
내가 중1일 때 오빠는 고등학교 2학년..
우리 동창 강홍구의 둘째형 영구 오빠랑 김고동창인데
그 오빠가 편지배달부 노릇 참 많이 했다.
명성극장 앞 세느제과에서 주말이면 만났고 영화관람도 엄청했다.
난 단지 좋아하는 친척오빠 였는데 오빤 여동생 이상의 감정에
절제해야만 하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경희대 영문과에 합격해서 제일먼저 내게로 달려왔고 엄마의 축하 상도 받았다.
(김고 졸업식 때 엄마가 못 가게해서 오빠가 몹시 서운해 했으므로...)
고등학교는 반드시 서울로 오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나의 약속도 받아냈다.
하지만, 집에서는 여자아이를 객지에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상주여고만을 고집..
나 역시 서울로 보내주지 않는다고 반기로 여고 원서대를 가지고 도망을 쳤었다.
그 다음날 친구네서 붙잡혀 안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내 기억에 부모님한테 맞아 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내가 장영숙이를 꼬여서 도망쳤는데..
엄마는 영숙이가 나를 꼬여낸줄 아시고 우리 집에 못 오게 하셨다.)
오빠는 방학이면 과 친구들과 내려와 여동생이라 자랑하고
남의 과수원 원두막을 빌려서 밤낮을 어울려들 놀았다.
학기중의 편지는 사연마다 그리움과 보고픔으로 쓰여졌고
혼자만의 아픔과 고통으로 친척임을 한탄하며 힘들어 했다.
철없던 시절 오빠의 마음이 그토록 심각한지도 또한 그것이 상사병인 줄도 몰랐다.
여형제 없이 남자형제들 사이에서 이성보다는 동성을 느끼며 자랐고
더구나 난 이성엔 많이 아둔하고 모든 성장이 늦된 편 이었다.
학창시절에 남학생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았고 보호막 속에서 순박함으로만 자랐다.
(난 혈액형이 A형인데 모두들 O형으로 보는 경향은
대소 간에 남자들이 많고 또 성장과정과 환경 탓 일테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질 못하고 결국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죽음의 길을 택했다.
같은 핏줄임을 원망하고 몸속에 흐르는 피를 모두 걸려내고 싶다는
오빠의 유서는 집안 어른들 뿐만아니라 나의 충격도 엄청났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슬픔 이었고..
남편이 늘 궁금해 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머릿속의 암연 이었다.
종백부님도 돌아 가셨었고 4대 독자인 오빠마저 단명하여 대까지 끊겨 버렸다.
혼자 남으신 종백모님 염려에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아 뵈었으나
결국은 오래 사시질 못하시고 종백부님과 오빠 곁으로 떠나셨다.
나 또한 오빠를 가슴에 묻은 탓인지 참 많이 아파했고 슬픔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산 사람은 살아진다는 말처럼 많은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십년 세월을 한결같이 일편단심으로 지켜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혼 초부터 오빠는 간간이 꿈으로 찾아오고
그 다음날이면 이유없는 짜증과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위에서 잉꼬부부라 부러워하는데 꿈에 오빠를 본 날이면
사소한 일로 시비가 생기고 남편이 그렇게 밉고 너무도 싫은 것이다.
심할 때는 헤어지자는 말로 남편을 괴롭혔다.
거듭하는 일상의 의문과 말 못하는 고통으로 3년 만에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 하시면서 단골 철학관을 찾아가 어떤 의식을 치루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불교의식으로 일종의 천도재 같은 길 열어줌인가 보다..
아무튼, 그 이후론 꿈으로 조차 볼 수 없었고 또 의문스런 다툼도 생기지 않았다.
(내가 오빠를 잡고 놓아주질 않아서 떠나지 못한 유 혼으로 남아 있었나....!?)
첫댓글 49제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동민이 꿈에 전라의 상호가 이제는 간다면서 어느 문으로 사라지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21세기에 유혼이 있을까?? 하는 의문들에.. 나의 경험을 잠못이루는 늦은밤! 암울했던 기억을 떠올려 적어 보았다..^^;
금생의 인연 다 벗어 던지고 내세로 떠났구려..
잔잔한 필체로 써내린 글. 여느 기성문단의 작가의 글 못잖은 감성과 마음을 침잠으로 다스리는 글입니다. 삶의 철학이라고 높여 부르기조차 저어합니다. 내내 건필하시고 저같은 독자가 묵묵히 읽어 내린다는 마음으로 또 정진하심을 바랍니다. 오래간남에 중앙꾸러기 게시판에서 님을 뵙습니다.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