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가야'의 존재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가야 유적에 대한 발굴과 연구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가야'의 중요성과 존재 가치가 높아졌다. 신라 이전 시기 가야의 영토에 속했던 부산 경남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늦었지만 다행스럽게 여길 일이다.
그래도 고구려 백제 신라로 구성된 '삼국시대'라는 시대 구분으로 가야는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육가야(六伽倻)의 소국들로 흩어져 있으면서 연맹체는 형성돼 있었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고대국가의 틀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구려 신라 백제와 동급의 국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 이창우 산행대장이 김해 함박산 정상부 나무계단을 오르고 있다. 사진 왼쪽에 볼록 솟은 봉우리가 웅크린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는 임호산이다. 멀리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 일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부산 경남의 일부 지식인들은 우리 역사에서 1~6세기를 '사국시대'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려 500여 년 동안이나 한반도 남쪽의 광범위한 영토를 차지하고 찬란한 철기문화와 높은 수준의 예술적 재능을 뽐냈으며, 소국 연합체라는 한계 속에서도 동쪽의 신라 서쪽의 백제와 당당히 대립한 것이 가야가 아닌가.
그 같은 역사적 주제는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지만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찾아간 김해 임호산(林虎山·176m)~경운산(慶雲山·378.7m) 코스 산행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가야'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들머리 주변에 후세에 '금관가야'로 알려진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김수로왕의 무덤인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그리고 수로왕의 전설과 연관된 구지봉이 있으며 산행 초반부에는 가락국 건국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흥부암(興府庵)이라는 '2000년 고찰'을 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묵직한 상념만으로 산행을 할 수는 없는 일. 부산에서 가깝고 도심지에 있으면서 야트막한 능선이 이어지는 산길이어서 마치 동네 뒷산 가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산행을 하기에 딱 좋은 코스다. 산행 시간도 4시간 안팎이면 충분히 마칠 수 있어 하산 후 가야의 흔적을 찾아 자녀들과 함께 유적 견학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마침 최근 공중파 방송사 MBC에서 수로왕 이야기를 다룬 '김수로'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기도 하니 이번 산행의 주제를 '가볍게 떠나는 가락국 흔적 찾기'라고 잡아도 나쁘지 않겠다.
전체 산행은 김해시 외동 흥부암 입구에서 출발해 흥부암~임호산 정상~함박산~체육공원~58번국도변 주유소~일동한신아파트 관통~주촌고개~경운산~삼계교차로로 이어지는 총 9.5㎞ 코스에서 이뤄진다. 걷는 시간만 3시간10분, 휴식 등을 포함해도 4시간 정도면 충분히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임호산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동김해IC에서 서김해IC 쪽으로 가다가 우측에 보이는 볼록 솟은 산이다. 해발 200m도 되지 않는 낮은 산이지만 8부 능선상에 암자가 있고 그 암자 뒤에는 튀어나온 암벽이 있다.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어 남해고속도로를 자주 타는 운전자들에게도 쉽게 눈에 띈다.
산행은 동아그린아파트 오른쪽 '흥부암' 표지판이 있는 도로변에서 시작된다. 흥부암까지는 10분쯤 임도를 타고 천천히 오른다. 큰 절벽 아래 암자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길과 대웅전 오른쪽 후문을 거쳐 오르는 길 등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2000년 고찰' 흥부암을 좀 더 보기 위해 오른쪽 대웅전 방향을 택한다.
흥부암은 그 창건 배경부터 임호산 및 가락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수로왕이 서기 42년 가락국을 세우고 5년 뒤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황옥과 혼인을 했는데 그 1년 후인 서기 48년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허보옥)이 흥부암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유화상은 우선 호랑이가 엎드린 모양인 이 산이 가락국의 드넓은 들판을 내려다보며 나라의 운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호랑이 머리에 해당하는 정상 아래에 입 역할을 하는 바위 절벽이 너무 험악하게 생겨 국운에 해를 끼칠 것으로 보고 그 입을 막기 위해 사찰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흥부암이라고 한다. 사찰의 이름도 나라의 부흥과 백성의 편안함을 부처님의 법력을 빌려 기원한다는 의미로 지었다.
경운산 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김해시 전경과 임호산.
실제 깎아지른 절벽 아래 좁은 터에 위치한 흥부암에서 내려다보면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이 함께 보인다.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해우소를 지나 후문이 있다. 곧바로 편안한 숲길과 연결되는데 2분만 가면 '팔각정 가는 길'이라는 표시가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 오르막을 타고 7분쯤 가면 정상 직전 능선 갈림길에 닿고 왼쪽 정상부의 팔각정에 오른다. 김해평야와 대성동 내외동 봉황동 구산동 등 시가지는 물론이고 분성산 김해천문대와 신어산, 그 뒤로 금정산과 백양산 장산 엄광산 구덕산 승학산까지 조망된다. 남서쪽으로는 옥녀봉 굴암산 불모산 등 진해 창원과 김해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까지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앞으로 가야 할 함박산과 경운산도 보인다. 임호산은 낮지만 조망이 빼어나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직진하면 곧바로 삼각점을 지나고 3분 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통과한다. 김해 시민들의 산책로 역할을 하는 산인 까닭인지 편안한 능선길이다. 5분 후 갈림길을 통과해 7분쯤 더 가면 오른쪽 봉명중학교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한다. 15분쯤 가면 함박산 아래 이정표에서 왼쪽 우회길이 아닌 정면 오르막을 택한다. 나무계단이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계단을 3분쯤 오르면 임호산보다 더 큰 정상석이 서 있는 함박산 정상이다. 뒤돌아보면 조금 전 올랐던 임호산과 마치 호랑이 등허리 같은 능선이 이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Y자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을 택해 3분만 가면 체육공원을 통과한다. 3분 후 무덤이 있는 봉우리 정상에서 오른쪽 내리막을 택해 10분만 가면 58번 국도변 반석주유소 앞에 닿는다.
임호산 정상부 절벽 아래 자리 잡은 흥부암.
횡단보도를 건너 곧바로 일동한신휴플러스아파트 118동 오른쪽 도로를 타고 단지를 가로질러 경로당을 지나면 1042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건너 왼쪽으로 100m쯤 가면 주촌고개. 아치형 상징물 오른쪽에 경운산 줄기로 오르는 등산로가 열려 있다. 5분 후 무덤 3기를 지나 살짝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탄다. 10분 후 가야초등 갈림길을 지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면 능선 상의 첫 봉우리인 268봉. 잠시 후 전망대 겸 쉼터를 거쳐 2분만 가면 경운사 갈림길을 지나고 한 차례 더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체육시설(김해시 8-1)이 있는 안부 갈림길에 닿는다. 계속 직진해 10분이면 수인사 갈림길인 사거리에 닿는다. '전망대' 표시 이정표를 보며 직진, 1분만 더 가면 우측에 전망덱이 나온다. 연지공원 수로왕비릉 수로왕릉을 포함한 김해 시가지와 분성산 신어산은 물론이고 김해평야 일대와 낙동강까지 보이는 곳이다. 취재팀이 지나 온 임호산과 함박산 역시 뚜렷하게 조망된다. 5분 후 349봉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한다. 오른쪽은 부산장신대로 하산하는 길. 왼쪽으로 2분만 내려서면 수인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우회한 길과 만나는데 이곳에서 정면 체육공원 방향이 아닌 오른쪽 2시 방향길로 10분만 가면 경운산 정상이다. 텅 빈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북쪽 삼계동 아파트단지 뒤로 나전고개가 보인다. 또한 멀리 낙동강 건너 양산 천태산과 토곡산 신선봉 매바위(어곡산) 등의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고 동쪽 신어산과 그 뒤로 상계봉 파리봉 장산 등도 보인다.
직진해서 10분만 가면 331봉 지나 갈림길에 닿는데 이정표 상 동신아파트 방향인 오른쪽 내리막을 탄다. 왼쪽 길은 낙남정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른쪽 내리막을 타고 송전철탑을 지나 15분 정도 지나 삼계교차로 14번 국도에 도착한다. 여기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동신아파트 앞에서 14번 시내버스를 타고 들머리로 돌아갈 수 있는데 중간에 수로왕비릉과 수로왕릉을 지나므로 잠시 둘러보는 것도 '가야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한 방법이다.
◆ 떠나기 전에
- 임호산 다른 이름 유민산 악산 봉명산 등 다양 - 가락국 유민공주 황세장군 이야기 전해져
임호산 정상 팔각정과 오른쪽 멀리 드러난 경운산 능선.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고 해 이름 붙여진 임호산(林虎山)은 유민산(流民山) 악산(惡山) 봉명산(鳳鳴山) 안민산(安民山)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해발 176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으로는 의외로 많은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산이 가야시대부터 얼마나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이름 가운데 특히 '유민산'이라고 불리게 된 사연은 흥미롭다. 유민산이라는 이름은 가락국 제9대 숙왕의 딸 유민공주가 출가해 머문 산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렇다면 유민공주는 왜 출가하게 됐을까. 숙왕 때 인물인 황세장군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여의낭자와 혼인하기로 약속한 사이였는데 왕이 자신의 딸인 유민공주와 장군을 맺어주려고 하자 이에 낙심한 여의낭자가 병을 앓다가 숨졌다. 또 황세장군마저 세상을 등지자 여기에 충격을 받은 유민공주는 궁궐을 버리고 출가, 이 산 암자에서 두 사람의 명복을 빌며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현재 임호산 아래에는 유민공주의 이름을 딴 유민공원이라는 소공원이 있다. 유민공주가 출가한 암자는 흥부암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교통편
- 덕천교차로 구포역 등에서 127번 버스 이용 - 자가용 이용 땐 흥부암 표지판 아래 주차
임호산~경운산 코스는 걷기 편한 산길의 연속이다.
부산에서는 시내버스로 단번에 들머리까지 갈 수 있다. 북구 덕천교차로나 구포역에서 127번 시내버스를 타면 김해시 외동 동아그린아파트 앞 흥부암 입구에 내릴 수 있다. 상당히 편리하다. 산행 후에는 삼계교차로 인근 동신아파트 앞에서 시내버스로 외동터미널이나 김해시청, 연지공원에서 내려 다시 127번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동김해IC에서 내린다. 김해시청 방향으로 국도 14호선을 타고 좌회전, 김해시청과 중부경찰서를 지나면 해반천을 가로지르는 전하교를 건너는데 여기서 직진한다. 100m쯤 가서 1020번 도로를 타고 우회전해 300m만 가면 왼쪽에 흥부암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 주변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산행 후에는 14번 버스를 타고 전하교에서 하차한 후 14번 국도를 건너면 출발지인 흥부암 입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