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 도원 선생
내 친구 도원선생은 동창이지만 나이가 우리보다 서너 살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름을 막 부르고 경어도 쓰지 않는다. 내심 미안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온 50년 친구 사이가 경어를 씀으로써 딱딱해지지 않을까 하는 억지 합리화로 자위해본다.
내 친구 도원은 정말 성실한 친구다. 우리 사범학교가 스승 師자와 모범(법)範자를 쓰는데, 도원이야말로 사회의 모범이 될만한 친구다. 반평생 그와 사귀면서 언성 한번 높이는 것을 본 일이 없다. 학창 시절의 도원을 떠올려보면 깨끗한 하복 상의 깃에 언제나 손수건을 끼워 다니는 정갈한 모습이 생각이 난다. 40여년 교직생활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성실한 자세로 선후배들의 귀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내 친구 도원은 탐구심이 강하다. 무엇하나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산행을 하는 중에도 들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고 하나라도 알려고 노력한다. 이런 탐구심이 후발주자로서 네티즌에 당당히 진입하는 영광(?)도 누렸다. 끊임없는 연구자세는 일찍이 ‘마인드 컨트롤’에도 관심을 가졌고, 그의 서예 솜씨는 가히 대가에 버금한다. 겸손이 몸에 밴 그의 성격이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오늘 도원이 집안일로 산행에 빠졌다. 성실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성격이라 볼 일도 참 많은 친구다. 그래서 그의 인기 브랜드인 방울토마토를 맛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브랜드처럼 도원이 탱글탱글하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 그림처럼 아름다운 거미오름에서
주간예보로는 비 날씨가 예보되었으나 바람도 없는 화창한 봄 날씨다. 고사리 철이라 지난주처럼 한 시간 먼저 가자는 친구가 이외로 많다. 운공네, 산하네를 비롯하여 제주시 쪽에서 가는 친구 아홉이 모두 백약이 앞에 모였다. 나중에 서귀포 팀이 합류하여 11명이 되었지만 오늘은 결석이 많은 편이다. 참 놓치기 아까운 오름인데 말이다. 유난히 집안일이 많은 날인가 보다. 오늘부터 산행에 참석하기로 했던 완산네도 집안대사로 다음주로 미뤘다.
고사리를 찾아 들로 흩어졌으나 고사리는 어디에 숨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고사리가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인가 보다. 소득이 별로다. 그런대로 산하와 꼴찌는 고사리가 많은 산담 안을 점령하여 수확이 짭짤하다는 소문이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드디어 산남에서 삿갓과 선달이 도착했다.
작년의 바람과 급한 경사로 얼먹었던 경험을 살려 오늘은 우리가 내렸던 반대 방향인 남서쪽 능선으로 오르기로 했다. 고압선 철탑을 지나 가시덤불이 듬성듬성한 목장 길에는 잔디가 곱게 깔려 있다. 따스한 햇볕과 느슨한 마음이 졸음이 올 것 같은 편안함을 우리에게 준다. 행복감에 젖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옛날 할머니를 보러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다.
이 일대는 묘가 유난히 많다. 이 거미오름이 본래 이름이 신령하다는 뜻의 거문 오름인데 수려한 경치가 사자에게도 영험하여 후손이 발복하나보다. 이 오름은 네 개의 큰 봉우리가 세 개의 굼부리를 에워 싼 형태다. 우리는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남서쪽 봉우리의 허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작년보다 훨씬 수월하다. 따뜻하고 좋은 날씨도 한 몫 거든다. 기슭에서는 바람이 거의 없으나 오름에 오를 수록 바람이 분다. 그러나 이 정도의 오름에 부는 바람은 산들바람이다.
한라산과 일출봉이 보이는 처음 봉우리의 양지바른 태역밭에는 먼저 올라온 일행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정해진 순서처럼 선달표 매실주와 요즘 주가가 상종가를 치는 은하수표 독새기가 나온다. 이런 탁 트인 공간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낙이다. 오름에서 나누는 대화, 그것은 거짓 없고 진솔하며 군더더기 없고 상큼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침없이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날씨도 맑아 주변 오름 군들이 장관을 이룬다. 송당 일대가 오름 천국이라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한껏 고조된 기분으로 이 오름의 절정인 주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보는 방향에 따라 피라미드로도 보이고 군막처럼 보이기도 하는 주봉은 상당히 가파르고 상부의 좁은 정상면은 제외하고는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어 위험하기 그지없다. 잘못하여 구르기라도 하면 굼부리 밑바닥까지 곤두박질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조심조심 정상을 걸으며 주위를 감상했다.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급한 경사에 많은 사람들의 오르내리는 발길에 오름에 생채기를 내어 군데군데 패여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입산금지나 체계적인 보호시설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곳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기도 힘들어 우리는 경사면에 일렬로 앉아 사진을 찍고 경사가 급한 큰 봉우리를 서둘러 내려왔다.
서쪽 봉우리를 빙 돌아 또 하나의 원형 굼부리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굼부리를 굽어보며 정상에서 다 못한 만찬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꼴찌의 오가피주와 순대가 단연 빛을 발한다.( 잘 모르는 분이 읽으면 우리가 오름에서 술만 마시는 걸로 오해하실까봐 밝히는데, 인원에 비해 술의 양은 한 사람이 술 두세 잔 정도로 오름을 오르내리면 다 깰 정도이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 여기에다 산하와 운공네가 준비해 온 떡까지 곁들여 오늘도 배가 부르다. 그래서 식당에서의 점심은 생략하기로 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가지고 온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식당에서의 점심을 생략하는 일이 많아졌다. 산을 오르면서 오히려 살이 찐다는 여론도 있고 해서 이런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자리회 등 특별한 별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면 당분간 식당 점심은 생략할 생각이니 양해 바란다. 그것도 오름 삼락의 하나라고 아쉬워하는 분은 오름에서의 만찬에 그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론 식당을 다시 찾아야겠지.
내려오다 고사리에 아직 미련이 남은 친구들은 좀더 꺾기로 하고 산남 친구들과는 먼저 헤어졌다. 짝도 없이 둘만 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저들은 언제쯤 짝을 채워 나타나려나. 다시 목요일을 기다리며 한 주를 즐겁게 보내길 바란다. (2006. 4. 27)
첫댓글 고사리 꺾기 총결산은? 뉘 가족이 메달감인지 아리송 하네요. 앞으론 도원 선생을 큰 성님으로 모시고 첨잔은 도원 선생. 막잔은 꼴찌 선생순으로, 술잔은 누가? 그야 꼴찌가 해야지요.
그야 꼴찌가 해야지요, 하모요!
고사리 메달도 꼴찌가...ㅎㅎㅎ
부부사진만 이력이 붙는 게 아니라 단체사진에도 이력이 붙는 것 같다. 정물오름 사진에는 꼴찌가 입을 안 열어 옥에 티가 되었는데, 동거미 오름에서 정말 멋진 사진이 나왔다.
도원표 방울도마토가 간식 메뉴에 결석되어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구먼. 도원표 하나 쯤은 탱글탱글하게 키울랑게 걱정일랑 말드라고이. 이젠 오름 결석을 아쉽게 생각되는 걸 보니,오름 맛을 알아가는 게비어.
완산의 재개 낭보에 뜨겁게 환호! 햇살, ggolzz, 김립, 이 카페지기 들의 열정에 그저 고개숙일 뿐, 감사 감사...티카하랴, 글쓰랴, 아무나 못하는 일임을 통감. 특히 햇살의 도원 예찬 글을 읽고 과분한 칭찬에 미안,죄송할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