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교가제창이 있겠는데요, 본교교가를 작곡하신 이득형 전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지휘를 해주시겠습니다.” 2014년 10월 3일, 제31차 신정 총 동문체육대회가 열린 신정초등학교운동장교단 위의 사회자가 아버지를 중앙으로 모셨다. 조금 전의 애국가제창 때처럼 처음에는 주춤거리시더니 곧 전주의 음을 잡아 양손을 상하로 움직이며 제대로 지휘하셨다. 하지만 예전처럼 어깨보다 높이 올리는 힘찬 모습이 아님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지난 6월,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친 갈비뼈고정을 위해 무더운 여름 내내 차고 계셨던 압박혁대를 푸셨으므로 꼿꼿한 모습이셨기 때문이다. ‘아! 비록 낮고 약하게 지휘하는 모습일지언정 내년 이맘때도 저 교단위에 서신 아버지모습을 또 다시 볼 수 있다면.......’ 무거운 바위덩어리가 가슴을 억누르는 것 같아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줌을 조정하면서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환자 같지 않는 말쑥한 아버지모습을 동영상처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님생신날이었던 작년음력1월 16일. 가까운 친인척들과 식사를 마치고, 아들, 딸, 사위, 며느리들로 구성된 신바람고스톱기쁨조들만 남아 부모님과 함께 고스톱을 쳤다. 그런데 아버지모습이 눈에 띄게 많이 야위셨다. 혈색도 좋지 않아 매우 초췌해지셨다. “요즘 등이 자꾸 아파. 물리치료를 받아도 그때뿐, 아무 소용이 없네.” ‘혹시 암?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우리들보다 걸음도 더 빠르고, 계단도 탁. 탁. 탁. 앞서 잘 내려가시잖아? 지금까지 의치도 하나 없이 무도 잘 깨물어 씹으셨는데.’ 이상한 예감에 정밀검사받기를 권했다. 워낙 건강하셨기에 우리아버지만큼은 100세시대의 주인공으로 오래오래 사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청천벽력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개인정형외과병원에서 일산 국립암센터로 옮겨 재검 받은 병명은 전립선암말기! 그것도 악성으로 이미 등까지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 진통제와 항암제 섞인 호르몬주사치료법밖에 없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셋째남동생내외주축으로 호주에서 살고 있는 첫째남동생, 무원마을의 둘째남동생, 남양주의 여동생내외 그리고 우리부부는 단체카톡방을 통해 부모님 및 서로의 근황들을 주고받았다.
아버지의 교직생활 45년 중 장학사근무시절, 과한 업무로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을 제때치료 못 받아 증세가 악화되어 오래전에 청각장애2급을 받으셨다. 누구라도 대화하려면 마치 싸우는 것처럼 큰소리로 반복해야하는 불편을 수없이 겪어야했고, 결국 글씨로 써보여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1.4후퇴 때의 고생으로 소화기관도 좋지 않았지만 토마토나 무를 후식으로 드시게 한 어머니의 오랜 지극정성에 의해 요즘은 매우 좋아지셨다. 항상 무언가 깊이 생각하시면서 연구하는 노력파로 평교사시절에는 음악이론을 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많은 교육재료를 만들어 시범발표, 활용하게 하여 많은 상도 받으셨다. ‘간이수력발전’, ‘계절의 변화가 생기는 이유’, ‘자연관찰원’ 설치, ‘힘의 전달’ 교구제작물 등 자연과 과학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하셨다. 학교장으로 한자교육을 직접 시키면서 학생들도 참여토록 하는 교내TV방송촬영 반도 운영하셨다. 교사들로 하여금 정답의 동그라미표시만 하게 하여 모두 100점을 맞게 하는 최우수인성교육제도를 펼쳐 감동한 제자들이 ‘동그란 어린이’ 동요비를 세웠다.
[동그란 어린이] 동그라미 엄마가 정성으로 키우고 동그라미 선생님 사랑으로 이끌어 동그란 마음으로 자라나는 어린이
하늘에선 해와 달 동그라미 그리고 땅위에선 예쁜 꽃 동그랗게 피우 듯 동그란 희망으로 자라나는 어린이
퇴직 후에는 한국학교발명협회편집국장으로 근무하시면서 발명교육교재인 ‘발명영재’를 오랫동안 발행하셨고, 1999년 6월에는 자동길이조절이 가능한 다기능지팡이를 발명, KBS TV ‘발명아이디어 왕 선발’프로에 출연하여 대상을 받기도 하셨다. 틈틈이 컴퓨터로 원고를 써서 책도 여러 권 발행하셨는데 작년6월에는 제5회 전국어르신문학작품공모에 작품을 내어 시상식에도 참석하셨다. 연주봉사에 앞서 실버아코디언연주단회원들이 연습할 악보를 편집, 인쇄, 지도까지 도맡아오셨고, 지난11월에 개최한 발명품대회에 출품할 것이라며 발만 누르면 악기연주자들의 악보가 자동으로 넘어가는 기계를 만들어놓기도 하셨다. 1970년대 초, KBS TV 교육방송음악담당 ST 3년간 출연은 음악교육에 공헌이 컸다하여 문교부장관공로상을 수상하셨고, 1985년 6월 30일, 임진각에서 통곡으로 읽으신 ‘북으로 보내는 편지’는 KBS TV 생방송을 통하여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었다. 1996년 1월 29일에 방송된 KBS TV 아침마당프로에서 가난하여 도시락대신에 수돗물로 배 채웠던 옛 제자, 강윤숙이가 남몰래 김밥을 싸서 책상서랍에 넣어주셨던 담임선생님, 아버지를 찾아 큰절 올리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주었으며 같은 해 5월 스승의 날에 방송된 2차 방송 때는 스승과 제자의 훈훈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외에도 신지식인으로 선발되는 등 각종 큰상과 높은 칭송,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오셨다.
이처럼 매사 적극적이셨으므로 암이라는 세포가 아버지신체에 감히 접근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누구하나 협조해주거나 조언해주는 사람 없이 홀로 성공하기까지 숱한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받으신 것 같다. 그중 암 발병 가장 큰 원인은 2013년 1월 18일에 하늘나라로 떠난 막내아들 때문일 것이다. 흉선암 치료로 고생할 때 부모로서 뜨거운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리셨을까? ‘부모는 땅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처럼 제일 똑똑하고 재주 많던 막내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셨을까! 남들은 비싼 학원비를 들여도 보내기 힘들다는 서울대미대를 딱 2개월, 그것도 고3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미술공부를 하는가?’ 궁금해 하던 재광이를 두 누나들이 홍대 앞 미술학원을 보내준 것이 고작이었다. 수학, 국어, 영어 등 필기시험과목은 우수했던 학교공부가 다였었다. 재광이의 서울대합격소식을 들은 아버지께서 커다란 케이크를 안방북쪽에 놓으시고 큰절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향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 제 막내아들이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통일이 될 때까지 부디 살아만 주십시오. 아버지, 어머니! 흐흐흑.......”
각계인사들의 축하말씀이 끝나자 아버지께서 마이크를 잡으시고, 교단중앙에 서셨다. “여러분, 선진국 32개가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 즉 OECD가맹국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1위라고 합니다. 특히 노인장수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자살자가 많이 늘었는데 최근 10년 새 2배 넘게 폭증했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시민들의 삶이 보호받고, 자살률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프로젝트로 '마음이음1080'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0대부터 80대까지 모든 서울시민과 단체들이 자살예방을 위해 협력하자는 의미랍니다. 옆에 계신 분은 내가 이 학교를 떠난 뒤 부임하신 윤영일 선생님으로 아동문학작가십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글을 많이 쓰셨는데 윤영일 선생님이 쓰신 글에 내가 곡을 붙인 ‘살아야해’ 노래가 자살방지한국협회주제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나를 따라 1학년 때 신정학교로 전학 왔다가 5학년 때 전학 간 우리 딸이 ‘살아야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의자에 앉아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신 아버지가 곧 전주연주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 첫 음반을 잘못 잡으신 아버지는 계속 틀리는 게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연주를 중단시키기 위해 두 손을 잡았다. “아버지, 아버지, 잠깐만이요!” 졸업동문들이 16회부터 34회 푯말을 들고 서있는 운동장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순발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제가 잠시 아버지에 대해 설명 좀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여든 일곱이신데 현재 전립선암말기로 시한부인생을 보내고 계십니다. 거기에 청각장애 2급이고, 수전증까지 있어서 담당의사는 아코디언연주를 말리라고 하지만 오래 전부터 병원, 요양원, 노인정, 교도소 등에서 아코디언연주봉사를 해 오신 아버지께서 너무너무 좋아하시므로 도저히 말릴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쓰러지는 그날까지 아코디언연주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아버지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와! 짝짝짝.......” “고맙습니다.”
[살아야해] <1절> ♬ 이 세상 태어남은 하늘의 축복이라 어둠을 헤쳐 가며 밝은 빛 찾아가자 ♬ 고통을 이겨내야 삶의 기쁨 얻는 것 살아야해 살아야해 그날을 위하여
<2절> ♬ 생명을 보전함은 인류의 사명이라 험한 길 헤쳐 가며 행복을 찾아가자 ♬ 안간힘 다하면 못 이룰 일 없는 것 살아야해 살아야해 그날을 위하여 ♬ 고통을 이겨내야 삶의 기쁨 얻는 것 살아야해 살아야해 그날을 위하여 그날을 위하여
빠른 템포로 유쾌하게 불러야하는 노래임에도 ‘살아야해 살아야해’ 대목에서는 마치 아버지께서 ‘이 세상과 하직하고 싶지 않아 살고 싶다’며 몸부림치는 것 같아 참으로 괴로웠다. 지난 8월초, 김포우리병원 1층 룸에 모인 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 간병인들 그리고 8월 말에 갔던 여주의 소망교도소에서 350여 명의 강력남자 범들과 교도소관계자들 앞에서 아버지의 아코디언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을 때처럼 목울대가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더구나 오늘의 아버지아코디언연주는 40대의 청춘을 불태우셨고, 교장으로 6년간 근무하시다가 제자들의 성원으로 성대한 정년퇴임식을 치룬, ‘앞으로 다시 또 설 수 있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신정초교에서의 아버지생애 마지막 아코디언연주가 될 것이기에 큰 의미가 깊다. 지난 5월에 확실한 병명과 앞으로 1년밖에 못 사실 거라는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들은 이후로 하루하루 밤낮이 바뀔 때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고,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느낌으로 살아왔다. 아버지는 운동장에 서있는 제자들이 박수치는 모습에 힘을 얻으셨는지 온힘을 다해 크고 바르게 치시느라 입을 악다물고 힘껏 건반을 누르셨지만 아코디언연주소리는 약했고, 이따금 틀리셨다. ‘예전 같았으면 재빨리 제 건반을 찾아 올바르게 연주하셨을 텐데.’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순발력도 재작년보다 현저히 떨어지셨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넓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작년늦가을부터는 튼튼하던 치아가 흔들린다며 김치, 고기 등을 잘 못 드시더니 급기야 두 개를 빼셨다. 종아리도 자주 부어 컴퓨터작업을 하시거나 주무실 땐 두 다리를 높이 위로 올리는 불편한 자세를 취하셔야 했다. 귀에서도 물이 나와 결국 처방약을 드셔야했다. 전립선암세포가 조금씩, 조금씩 기승을 부리며 아버지의 좋은 세포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증거란다. ‘귀가 어두워 못 알아듣는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씀드려야하나?’ 자식들은 고민, 고민하였지만 벽에 붙어있는 담당의사의 ‘전립선암에 대한 논문’내용과 본인의 증세가 같다는 사실을 아시는 아버지는 일부러 모르는 척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작년여름 어느 날, 나만 불러 조용히 부탁하셨다. “내 장례식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지금 유고집을 작성하고 있으니까 네가 잊지 말고 나눠드려라!” 마치 유언과 같은 말씀을 너무나도 담담히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다. 난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눈물만 글썽, 먼 하늘로 시선을 옮기고 말았다. “갈비뼈 다친 것 때문에 요즘은 진통제만 먹지, 전립선암은 다 나았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전화로 증세를 묻는 친인척들에게 큰소리로 위로하시던 아버지께서 지난신정 때는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하루에 두 알씩 두 번 복용하던 진통제를 요즘은 한 알씩 두 번만 먹어도 괜찮아.” 예전에 심혈관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셨을 때, 담당의사가 부탁했다. “하루에 복도 열 바퀴만 도세요!” 하지만 아버지는 오전오후로 두, 세 배 운동하시면서 ‘하나도 안 아파. 몸이 날아갈 것 같아.’ 강한 정신력으로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셨다. 1.4후퇴 때, 고향(개성)을 홀로 떠나오신 후, 60여 년간 부모형제상면만을 고대하며 이산의 고통과 삶의 괴로움을 아코디언연주로 위안 삼으셨다. 생활 속에서 절약과 성실을 몸소 실천하고,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과 지식을 얻으며 노력하는 태도를 자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늘 애쓰셨다.
자살방지한국협회주제가인 ‘살아야해’ 노래가 드디어 CD로 나와 작곡가협회에 가입,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되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의 담임인 아버지로부터 작곡법을 배운 이후 현재 원주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며 많은 신인가수들을 발굴, 양성, 배출시키고 있는 신정15회 원종락 제자의 힘을 빌려 작년 10월 말일날짜로 마친 것이다. 요즘 아버지는 작곡 작업에 여념이 없으시다. “내가 죽어도 후세에 뭔가 남기기 위해서....... 같이 피난 내려온 사람 중에 이젠 네 명만 남았네. 그중 내 나이가 제일 많아.” 월1회 요양원정기아코디언봉사 때마다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사촌동생을 작년연말에 잃자 마음의 충격이 크신 듯하다. “팔판동 아주머니가 생전에 써둔 글을 딸이 사진과 함께 책으로 냈는데 나는 그 책보다 더 훌륭한 유고집을 만들 생각이야.” 예전처럼 앞으로의 간절한 꿈도 당신의 건강회복보다는 남북통일과 부모형제상면이라는 아버지! 천직으로 삼았던 교육자로서의 길을 다음 생에서도 또 걷고 싶다는 아버지! 건강관리를 잘하여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다는 아버지! ‘죽어서도 자식들의 신세는 지지 말아야지!’ 김포시 월곶면에 납골당을 미리 준비해놓으신 아버지! [평생을 교직에 몸 바치며 부모님을 그리다가 모골은 여기 두고 영혼만이 저승 가서 뵙도다.] 비문까지 새겨놓으신 아버지!
이 세상에서 아버지모습을 볼 수 없는 훗날....... 생이별로 애태우던 아버지의 귀향길이 열리고, 틀릴 듯 맞다가 끊어질듯 이어지는 아버지의 구슬픈 아코디언연주와 ‘살아계신다면 꼭 한번만이라도 따뜻한 진짓상을 바치고 싶습니다. 보고 싶은 아버지, 어머니!’ 울분으로 토하던 아버지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없는 언젠가....... 아버지의 삶 모두는 우리자식들 인생의 튼튼한 표본이 되어주셨습니다. 미래의 주인공, 어린 꿈나무들을 위해 작곡하신 20여 곡의 유치원가, 초등학교교가(인천 검단, 서울 신정, 신월, 연신, 내발산, 공항, 개명, 두산, 매봉, 천일, 구일, 세륜), 단가(한국발명협회영재 2002년)들은 못 이룬 교육열정의 넋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대한건아들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갖가지 이유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살아야해’ 노래는 새 삶의 기둥이 되어 줄 것입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짧은 인사로 헤어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으신 ‘성황당고개’ 노래는 눈을 감지 못한 채 하늘나라에서도 슬퍼할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원혼을 말끔히 달래 줄 것입니다. “아버지, 꿈에서도 그리워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하늘나라에서 만나셨겠죠? 평생가슴앓이로 소원이었던 효심을 우렁차고 신나는 아코디언연주로 멋진 공연을 보여드리세요. 뒤따를 후세들을 위해서 이승보다 더 폭넓고 알찬 공적들을 쌓아놓으시고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제일 존경하던 아버지! 진정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불쌍하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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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피인이계옥 원문보기 글쓴이: 이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