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마시는 즉석 원두커피 ‘바로 까페’가 이 회사 제품이다. 특급호텔이나 스테이크 하우스에도 구띠에가 만든 고급 원두커피가 들어간다. 2000년 초 이 회사는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1회용 드립 커피 시대를 열었다. 이 기술은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유럽 7개국과 대만·중국 등에서 특허를 얻으며 인스턴트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까지 했다. 세계적인 커피 전문 기업 네슬레의 부사장도 이 제품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느냐”며 감탄했다고 한다. 모두 외국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틈새시장을 찾아 연구해 온 결과다.
박명진 (주)구띠에 대표의 이력은 변화무쌍하다.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인 그는, 1987년 1월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씨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박종철 씨가 연행된 곳이 바로 박 대표가 살던 하숙집이었다. 우리 현대사의 아픔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박 대표도 여러 번 안기부에 드나들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소위 말하는 운동권 서클에 가입해 활동했는데, 그 사건 이후 곧바로 해병대에 강제 차출돼 입대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대구 팔공산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했어요.”
운동권이었지만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였던 그는 수입 원두커피를 수십 종 구비해두고 내려 마시곤 했다. 고시 공부 할 때도 책상 옆에 커피를 비축해 두고 친구들이 올 때마다 대접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운영하던 대구 합지 공장에 불이 났다. 장남인 그가 뒷수습을 도와야 했는데, 보험계약이 끝난 직후 발생한 화재라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 살던 집과 공장 부지를 팔아도 빚더미에 올라앉을 판이어서 고시 공부를 중단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에서 노래방 기기가 들어와 막 보급될 때였어요. 세운상가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과 노래방 기기 제조 공장을 차렸습니다. 이게 대박이 나 20대에는 꿈도 꿀 수 없는 돈을 벌었습니다.”
사업 3년 만에 집안 빚을 모두 청산할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뒤이어 그는 호주에서 자재를 수입해 조립식 전원주택 사업을 한다, 베트남에 공장을 차린다 하면서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자금만 축내고 있었다. 커피로 사업 방향을 정한 것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주일(駐日) 콜롬비아 대사와의 인연 덕이었다. 커피 이야기를 하다 친해진 대사는 그에게 “한국에서 커피 사업을 해 보라”며 자금까지 지원하겠다고 했다.
“경기도 미금시에 300평 규모의 대형 커피숍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다른 사업들도 적자가 누적돼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벌여 놓았던 일을 모두 정리하니 5000만 원이 남더군요.”
1회용 원두커피로 편의점 공략
일본의 콜롬비아 대사에게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통보하고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더니 대사는 “일본의 커피 회사를 소개시켜 줄 테니 사업을 다시 시작해 보라”고 했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석 달간 커피에 대한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 나갔다. 그 후 일본에서 커피 볶는 기계를 중고로 들여와 30평짜리 지하 공장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커피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십 권의 원서를 읽으며 지식을 넓혀 나갔다. 최고 품질의 커피를 내놓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다 하루에 스무 잔 이상 커피를 마신 날도 많았다. 이래저래 지새는 밤들이 이어졌다. 콜롬비아에서 수입한 최고급 생두를 볶아서 만든 제품을 들고 서울시내 커피숍을 돌았다. 그런데 단가가 맞지 않았다. 가정용 커피는 인스턴트가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찾아낸 틈새시장이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 갔더니 커피 메이커로 내린 드립 커피를 팔더군요. 원두커피를 미리 내려 놓으면 산화돼 맛이나 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때그때 내려서 먹어야 제 맛이 나는데, 그렇게 팔면 편의점으로서는 수익이 안 나니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내려 팔고 있더군요. 그걸 본 순간 ‘1회용 원두커피를 만들면 편의점을 공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인스턴트커피를 종이컵에 담아 파는 걸 보고 떠올린 생각이었다. 컵 뚜껑에 필터를 부착하고, 평면인 컵 뚜껑에 생기는 수막현상을 없애는 방법을 찾기 위해 또 날밤을 샜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1회용 원두커피 가 탄생한 것. 예상했던 대로 대박이었다.
(주)구띠에는 콜롬비아산 생두를 수입해 고유 기술로 볶고 로스팅해 질 좋은 원두커피를 생산한다. |
(주)구띠에는 커피 전문점도 운영한다. 스타 벅스가 국내에 진출하기 전인 1998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열었다. 월 1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자리 잡아 가고 있는데, 1년여 뒤 스타벅스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파고드는 스타벅스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때 박 대표는 ‘앞으로 어디에 매장을 열든 스타벅스 때문에 죽겠구나, 스타벅스 바로 옆에서도 살아남으려면 품질로 승부하는 방법밖에 없겠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커피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올인했다. 생두를 제공하는 콜롬비아 산지를 돌아보고, 새로운 로스팅 기술을 개발했다. 덕분에 (주)구띠에가 생산한 커피는 국내 최고급 호텔에 납품되고 있다. 호텔에 납품되는 커피는 외국인 20~30명이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 선정하는데, (주)구띠에 커피가 테스트 때마다 1등을 해 왔다고 자랑한다.
전국에 직영점 열다섯 군데와 가맹점 서른다섯 군데를 두고 있는 구띠에는 경기도 광주 본사 근처에 100여 평 규모의 커피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커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와 직원, 가맹점주들이 만나 대화하는 장소이자 교육 장소로 쓰이고 있다. 박명진 대표도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사업 구상을 한다.
“저희 같은 중소 업체가 다국적 기업과 국내 대기업 틈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카피하기 힘든 품질과 새로운 메뉴 개발밖에 없어요. 외국계 커피점에서는 향유할 수 없는 우리만의 맛과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죠.”
서구 문물의 대표 격인 커피. 이를 우리 것으로 소화한 후 다시 역수출하기 위해 그는 밤낮없이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