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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등봉 산행기
용인등봉은 응봉산의 여러 봉우리들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특별하게 특징지을 만한 외모나 내어줄만한
조망처로도 내세울만한 곳이 없는 그렇고 그런 멧부리중의 하나 일 뿐이다.
그렇지만 응봉의 거대 산군들이 품고있는 깊고 장대한 덕풍계곡은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에는 예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곳임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여름산행지를 선정하기위한 첫째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시원한 그늘과 맑고 시원한 계곡을
아우를 수 있는 곳이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여름산행지에서 조망권 확보에만 치중을 고려하다보면 계곡미를 간과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계절에 걸맞는 산행지 선택의 중요함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어쨋던 이곳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려하고 화려한 비경이 숨어있는
천혜의 계곡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바램하나로도 충분히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강원도 삼척시와 경상북도 봉화군이 경계를 긋고 있는 능선고개 석개재를 들머리로 삼았으니
가고 오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보인다. 평소보다 삼십분 앞당겨 출발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틀이 멀다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산속으로 들어가니, 땀 흘리고 운동하는 산길이니 망정이지
삶이 궁지에 몰렸을때 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산길이라면 식구들에게는
복장을 치고 애간장을 끓게 할 일이다. 별 탈 없이 땀이나 흘리고 운동을 하는 등산을 무시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과 궁지에 몰린 삶에 대한 태개책을 모색하기위한 입산은 이렇게
차원이 다르다. 通則登山(통칙등산)이고 窮則入山(궁칙입산)인 것이다.
입산이 아니고 등산을 즐기기 위하여 주말 휴일도 아니고, 주중의 업무일에 근교산행도 아니고,
비교적 원거리 산행에 나설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참석자들은 복받은 사람들 축에 끼워 넣어도
별 무리는 없지싶다. 평생직장에서 퇴직을 하신 분들, 자영업에서 뒷자리로 물러 앉으신 분들,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가정경제에 부담이 없으신 여성등이 주요 구성분포가 될 것이다.
무시로 날짜와 시간에 구애를 받지않고 이렇게 산행에 나서기 위해서는 대개 세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무리가 안생기는 법이다.첫째는 우선 건강한 육체가 필요충분 조건이다.
둘째는 비용은 기존의 산악회 회비가 비교적 저렴한 편이긴 해도, 수시로 참가하려면 용돈을
포함한 비용이 부담을 느낄 수는 있게 마련이다. 세번째는 부부지간이 취미 활동이 같아서
함께 등산을 나서는 경우라면 몰라도 취향이 제각각이라면 불화의 원인이 발생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런 경우라면 일방의 긍정적인 싸인이 있다면 문제의 소지가 없겠지만 그렇치 못한 경우에는
무시로 등산을 나서기란 불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무시로 등산을 나설 수 있다는 것, 오늘 함께 한 산꾼들 대개는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건강과 경제,그리고 가정의 평화가 두루 갖춰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면소재지에 도착한 시간이 아마 오전11시쯤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게거품을 가득 품고 헐떡거린다. 브레이크 라이닝계통에 과도한 열기로
뒷바퀴 주변에서 진한 고무 타는 냄새와 연기가 풀풀 피어 오른다. 봉화군과 강원도 가곡면을
넘나드는 지방도는 석개천의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경북과 강원도가 나뉘는 고개 석개재에는
양도(兩道)가 표시한 조형물이 시선을 끌고,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이 펼쳐진 산여울의 끝자락이
가물가물 한없이 이어진다. 검푸른 산여울의 푸른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자못 시원하다.
이윽고, 게거품을 내뿜으며 달려온 버스에서 기지개를 펴며 산꾼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누가 뭐라기도 전에 하나 둘 소리없이 울창하게 우거진 초록의 그늘속으로 스며들어가기
시작한다.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식솔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길, 진달래와 철쭉들이
그들과 어울린 산길 풍경은 이곳 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나라 산풍경이지 싶다.
능선주변이면 대개 주위 조망을 살필 수 있는 공간과 틈이 열리게 마련인데 울창한 녹음이 안면방해를
일삼는다. 능선 꼭데기도 울창하게 우거진 계곡과 진배없이 녹음으로 뒤덮혀 초록의 터널을
방불케 마련이라 조망의 즐거움은 반감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묘봉(1167,5m)으로 향하는 산길이 나있는 삼거리,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주력의 선발진에서도
묘봉을 다녀오려는 분이 한분도 나서 질 않는다. 산행 시작전에는 묘봉까지 산행에 포함시키려고
내심 맘을 먹었었는데 혼자 다녀오기도 그렇고 해서 포기하고 그들과 합류를 결정한다.
특별하게 내세 울 만한 것도 특징도 없는 녹색의 산길은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간데 없는 검푸른 산여울의 실루엣 뿐, 그러나 파란 하늘,산매미와 산여치의 노래경연, 산새들의
노랫소리,온갖 초록의 울창한 녹음에서만이 뿜어져 나올 수 있는 녹향의 싱그러움이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슨 이유로, 무엇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불원천리 이곳에 왔을까, 산을 찿아 온 이유는 눈부신 비경과 절경을 만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이유가 우선시 된다면 산행을 목적으로 하는 산악클럽을 뒤질게 아니라 여행클럽의 사무실문을
두드려야 맞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대여섯은 넘고 넘은 듯하다.
내려섬과 올라섬의 지루한 동작이 반복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러나 산행이란 묘한 것이라서
그러한 반복운동의 연속동작이 바로 산행의 기본이란 사실이다. 된비알의 심한 헐떡임이 있으면
머지않아 가뿐 숨을 가다듬을 수 있는 한가롭고 즐거운 내림 길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정수리에 올라선다는 것, 세상 모든사람들이 갈구하고 기원하는 높은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땀이 수반되지 않은 오름이라면 전신을 휘감는 감동과 흥분을 줄 수 있는 성취감을 느낄 수 가
없을 것이다.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스트레스와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일반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삶의 성취감은 변변치 못 할 것이 뻔하다.그러나 가끔씩이라도 등산을 나서서 작은 성취감이라도
만끽하고 일상에 복귀한다면 항상 높은자리에 앉아서 자리에 연연하는 것보다 훌륭한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가? 작고 하얀빛갈의 아크릴 판에 붉은 색으로 이름표가 소박한 해발1,124m의
용인등봉, 참나무 활엽수가 사위를 가리워 내세울 만한 조망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수리 면적도 비좁아 휴식을 취하기 위한 장소로도 마땅치는 않아보인다.
용인등봉을 뒤로하고 비알을 내려서니 언제나 닥치는 상황처럼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고 산객을
시험하려한다. 시험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앞에 놓인 장애물을 비켜 지날 수는 없는 일,
소리없이 하염없이 눈치콧치도 없이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998m봉을 넘는다.
거꾸로 곤두박질을 칠 정도로 가파른 수직의 내리막길, 작으마한 이정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직진방향은 낙동정맥의 남진 산길이고 좌측으로는 오늘 산행코스인 문지골을 가리키고 있다.
문지골을 내려서는 산길도 계속 이어지면서 수직을 방불케하는 급경사 길, 한아름이 넘는 노송들이
기골도 장대하게 쭉쭉 뻗어오른 몸집들이 탐스럽다. 벼락을 맞았는지 시커멓게 불에 타서
허리가 부러진 안쓰러운 거대한 노송, 문지골 내려서는 급경사 구간에 매여있는 손기름이
반질반질한 로프, 잠시잠깐 한눈을 팔 수 없도록 문지골 내려서는 산길은 산객을 매섭게 시험에 들게 한다.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빼꼼이 울창한 수목사이로 맑은 햇살을 비춘다. 햇살들이 투명하고 맑은
계곡의 수면위에 무한정 쏟아져 내린다. 심심산골 깊은 계곡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서늘하고
신선한 공기와 향취 그리고 고요함이 차안(此岸)을 벗어나 피안(彼岸)에 들어 선 느낌이 들고,
심심계곡을 울창하게 뒤덮은 장대한 수목사이로는 숲과 나무의 요정인 드리아데스와
하마드리아데스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산객을 맞아 줄 것만 같은 청정골짜기 문지골 한복판에,
그렇게도 매섭게 몰아치며 시험에 빠지게 하던 산길은 산객을 선경의 한복판으로 시나브로 끌어 들인다.
흰거품을 내뿜으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파란하늘의 맑고 푸른 심성을 담고있는 계류의 속삭임,
울창한 녹음의 검푸른 숲사이로 골짜기의 팔난봉꾼 골바람이 옷자락을 헤치고, 산새들과 풀벌레의
노래소리에 맞추어 금새라도 숲속의 요정이 나붓나붓 나타날 것만 같다.
작으마한 소(沼)는 옥색을,그보다 큰 소는 에메랄드빛을,그리고 검푸른 빛갈의 심오한 색갈의
큼지막한 소(沼)들이 각양각색의 크고작은 바위들과 공생을 하며 비경의 계곡을 꾸미고 있다.
계곡변을 따라 산길은 희미하게 이어지다가는 끊기고 끊어졌다가는 이어지곤한다.
희미하던 계곡 길이 끊어졌으면 무작정 계류를 따라 진행방향을 설정하면 문제가 없다. 홍수나 산사태로
강수량이 풍부한 우기(雨期)에 계곡의 예전 산길을 고집하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쉬운 법이다.
수직의 바위협곡 사이를 지나고, 바위절벽에 내걸린 로프를 의지하여 계류를 벗어나고, 검푸른 계류의
우렁찬 울림을 뒤로하고 징검다리 바위를 건너뛰며 즐비하게 이어지는 크고작은 폭포를 지난다.
오뉴월 무더운 날씨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연일 폭염의 무더운 날씨에도 주춤거림 없이 샘솟는
등산열정이 혹시 빠져 나올 수 없는 중독에나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른다.
이미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걸치고 있는 옷가지들은 물속에 담갔다 꺼내입은 것처럼 후줄근 하다.
계류에 텀벙 몸을 담그고 싶지만 아직도 계곡을 빠져나가려면 한시간가량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나마 희미하던 산길이 사라지면 계곡한복판의 크고작은 바위들을 징검다리삼아 이동을 하며
미로게임을 하듯이 하산길을 추적한다. 계곡의 수량(水量)이 많지 않기때문에 하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강수량이 늘어나 혹시라도 계곡에 물이 불어나면 계곡을 경유하는 산행계획은 무모하고
위험스러운 사태를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곳이다.
오후3시 쯤에 덕풍계곡 상류의 여러 물줄기가 합류하는 계곡 합수점에 이른다.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는 산자락 따비밭에는 농부의 부지런함이 밭고랑 구비구비마다 느껴진다.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 일 것이다. 계곡 안내도와 이동식 화장실이 반갑다.
계곡을 찿아 온 피서객들처럼 보이는 대여섯명의 남녀들이 시원한 그늘아래 평상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이는 덕풍산장, 그 아래에 있는 고향산장에는 중년의 사내한명만이 멀뚱멀뚱 집을 지키고 있다.
온종일 무더위에 산행을 하느라고 전신이 품고있는 수분을 땀으로 모두 내보냈으니
갈증에 목이 마를 것은 자명한 이치, 막걸리라면 사족을 못쓰는 막걸리 술꾼 김바다가 이리기웃
저리기웃 산장안을 살핀다. 잠시후 예의 중년사내가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주말에는 손님들이 좀 있어서 영업준비를 해놓치만, 평일에는 찿는 손님들이 별로 없는 관계로
찬거리 준비를 해놓은 것이 없어서 손님들에게 내놓을 메뉴가 마땅치 않다고 송구스러워 한다.
그게 무슨 대순가! 막걸리는 며칠전에 갖다 놓은 것이 몇병 있는 모양이다.
시원한 냉장상태의 막걸리에는 특별하게 안주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구태여 안주를 삼는다면
보통 파전이나 빈대떡이면 화수분이고, 좀더 특별한 안주를 택한다면 싱싱한 홍어회 무침이나
삭힌 홍어와 삼겹살,거기에 김장김치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지 싶다.
서너순배 정신줄놓고 들이킨 막걸리 덕분에 산행의 피로와 갈증이 모두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아직도 뙤약볕 햇살은 굽힐 줄 모르고, 산매미 산여치들의 지저김도 지칠줄을 모른다.
열댓명의 인원이 충원이 되어야 차량으로 덕풍계곡 입구인 풍곡리 주차장으로 이동을 할텐데
후미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속될 것도 같다. 덕풍계곡 도로변에서 무슨 공사를 하는 분의
차량인 모양이다. 후줄근한 행색에 재미까지 없는 두 사내를 합석시켜준 고마운 젊은이들때문에
일찌감치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김장김치에 돼지고기를 곁들인 찌게에 밥 한사발을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조금전 고향산장에서
마신 막걸리가 부족하진 않은 것 같은데, 권한다고 덥석덥석 받아마시는게 고주망태들의
전형적인 주태(酒態)인 모양이다. 언제 그런 주태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인가?
오후6시쯤,심심산골 깊은 계곡인데도 불구하고 해거름은 아직 멀어보인다.
그렇다고 여유를 부리기에는 갈 길이 멀기만하다. 아쉽지만 뒷풀이를 접어야 한다.
텁텁한 술기운과 산행의 피로가 스펀지에 물이 스미 듯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