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62시간의 기차여행을 해야한다. 조급한 마음은 금물이다. 한번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너무나 어려운 여행이 된다. 5년 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까지 21시간 기차여행한 일이 생각난다. 시간 조절을 하지 못해 너무나 피곤하고 지루했다. 거의 폭발할 지경까지 간 악몽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때는 침대 칸이 아니고 일반 좌석이라 더욱 힘이 들었다.
새벽 3시 30분 이르쿠츠크 행 317호에 올랐다. 블리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운행하는 러시아호는 14시간을 달려 이 곳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한 것이다. 4인실 쿠페를 예약했는데 우리 칸에는 이미 한 분이 타고 있었다. 바삐 올라와서 인지 땀이 온 몸에 젖었 다.
우리보다 먼저 타신 분은 40대 중반의 여자로 이름이 브웨라라고 한다. 현재 사할린에 살며 직업이 군인이라고 했다. 지금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21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사는 딸을 찾아간다고 한다. 사할린에서 5일 전에 출발하여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했는데 앞으로 5-6일 정도는 더 가야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딸을 찾아가는 데만 12일 정도 걸린다. 또, 딸을 만나고 12일 동안 기차와 배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25일간의 기차를 타고 15일간 딸을 만나면 그 분의 일정은 마치게 된다. 40일 동안의 휴가기간에 딸을 만나는 시간은 15일 정도이다. 15일을 즐기기 위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힘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브웨라의 여행 일정은 이렇다. 사할린 집에서 항구(1시간 30분), 사할린 항구에서 러시아 대륙의 항구인 비아노(16시간), 비아노에서 하바로프스크(24시간), 비아노에서 출발한 기차의 종착역이 하바로프스크이기 때문에 브웨라가 탄 객차를 우리가 탈 기차와 연결해야 하는데 우리가 탈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4시간), 하바로프스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95시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딸의 집(24시간), 그리고 중간에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 나의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오랜 기차여행을 해야하는 브웨라를 볼 때, 러시아가 얼마나 넓은 나라인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와 동행한 이라도 사할린이 고향이라 브웨라와 너의 고향이 가까우냐고 물었더니 이라가 하는 말 "가까워요"한다.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냐고 물으니까 2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3시간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정 많은 한국인 어머니들은 눈물을 글썽이지 않는가?
브웨라의 40일 여행 중에서 사랑하는 딸과 생활하는 시간은 15일 밖에 되지 않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40일 이상 딸과 즐거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딸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40일 이상 더 많은 시간을 딸을 생각하면서 보내리라.
시베리아횡단열차 승객들의 생활태도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지루해서인지 아침 10시 정도가 되어야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세면과 식사 준비에 분주하며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객실의 창문을 통하여 아름다운 시베리아 풍광을 볼 수도 있지만 복도에서 어깨를 창문너머에 기대며 그윽한 눈빛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오후에도 창 넘어 시베리아의 아름다움을 눈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며, 일부사람들은 보드카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승객 중 60% 정도는 보드카에 취해 마음이 넓어지고 낫 익은 이방인에게도 눈빛을 준다.
술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술을 마신다. 기차여행을 하는 대부분 사람들 입에서 보드카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오랜 기차 여행동안 같은 객실에서 친해져 결혼에 골인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다음에 소개할 마리아와 안드레도 기차 안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저녁때 많은 승객들이 흡연실에 모여들었다. 러시아 인으로서 키가 무척 작은 마리아, 체구가 당당하고 체첸 사태의 영웅인 현역군인 안드레,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울란우데에서 근무한다는 조각과 같이 잘생긴 전형적인 러시아 청년 알렉산더 등... 이들과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는 알렉산더는 미숙하나마 영어를 구사했다.
마리아는 사진첩을 보여주며 자신의 가족을 소개시켜 주었다. 16세에 결혼하여 11살 된 아들과 9살인 작은 아들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남편과 이혼하고 1년 전 기차 안에서 만난 현역군인인 안드레와 결혼한다고 한다. 안드레는 23살로 마리아보다 4년 연하이고 초혼이라고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아들이 2명이 있는 이혼녀와 연하의 총각과의 결혼! 러시아 인들은 설명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이와 같이 대답한다. "여기는 러시아이다(This is a Russia)"라고.. 러시아니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지역적으로 너무 넓어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해할 만한 설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마리아와 안드레가 타고 있는 객차가 달랐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안드레는 군인이기 때문에 공짜로 기차를 탄다고 한다. 그래서 군인들과 단체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렇단다. 마리아도 안드레와 같이 가고 싶어서 안드레가 움직이는 시간대의 같은 차에 동승한 것이다. 그러나, 옆 칸이라 사랑하는 안드레를 위해 마리아는 항상 분주히 움직이며 깨끗한 옷과 먹을 것을 날라다 주고 있었다.
안드레는 울란우데에서 내리고 마리아는 9살 된 아들을 대리고 모스크바에서도 15시간 떨어진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안드레가 있는 곳과는 기차로만 100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다. 마리아는 고향에서 사랑하는 안드레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서로 마음이 변하지 않고 그들이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빌었다. 그리고 안드레와 마리아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기를 빈다고... 누가 그랬던가?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특히, 사랑이 움직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이 결혼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드레는 말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보드카를 마셔야 한다고...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보드카가 없었다. 보드카 대신에 한국 담배와 러시아 담배를 교환하여 피웠다.
아침 9시 30분! 기차가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기차의 흔들림이 없으면 이상해 잠에서 깨어나고 기차가 달리면 숙면을 취했다. 어느덧 횡단열차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 보니 시골의 작은 역이다. 이렇게 작은 역에서는 오래 정차하지 않는데 30분 이상 정차해 있었다. 더욱 더 이상한 것은 언제 떠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우리가 선 역은 뻬뜨로보스크 역이다. 역 안에는 동판으로 여러 명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탑이 있다. 데카브리스트 난을 일으킨 영웅들의 기념비란다.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하니까 승무원이 제지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행이 울란우데에서 출발해 하바로프스크를 향해 우리가 머무르는 역 쪽으로 오기 때문에 경호를 위하여 기차 안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한다. 두시간 정도가 되었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태운 기차가 우리가 탄 기차 옆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약 20량 가량으로 연결된 깨끗한 기차가 서서히 뻬트로브스크 역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 국가 수반이 20일 이상 평양을 비우며 한 나라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한다는 것이 너무 무모한 일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며 "국정운영의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정치에는 깜깜한 필자가 보더라도 무모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가 한심스러웠다.
외교란 주고받기(give and take) 개임이 아닌가? 하나는 주고 하나는 받고 이렇게 해서 시너지 효과를 얻어 국익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외교 아닌가? 20일 이상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여 러시아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는데 이런 여행을 허락 받으면서 과연 얼마나 국익에 합당한 외교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김정일은 인민의 피가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외교도 자신의 정권유지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인민의 피는 이데올로기기의 산물이 아닌가? 이런 자문에 안타까움이 남았다. 또 하나의 조국 북한도 정신적인 행복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지 않는가?
김정일 북한위원장의 열차가 내가 탄 열차 옆을 지나가니 만감이 교차했다. 부처님이여! 신이여! 또 하나의 조국 북한에게도 행복과 행운을... 그리고, 나의 조국 대한민국도 경제의 어려움을 벗어나 협동하고, 사랑하며, 겸손하고, 검소한 생활을 영원히 할 수 있는 슬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무심한 여행자는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베리아 대지를 응시하며 소원을 빌어보았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의 폭도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은 부산이 되는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중국의 수도 북경을 지나 유럽으로 갈 수도 있고,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반도의 한쪽 끝, 아니 분단이후 작은 섬나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가 대륙의 시발점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학생, 사업가 등도 더욱 커다란 웅지를 가슴에 품고 시베리아와 유럽의 광대한 대륙을 누비리라. 생각만 해보아도 가슴 벅찬 일이다. 작고 가난한 섬나라에서 나는 40년 이상을 살았다.
학창시절 지리나 역사 교과서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반도를 끼고 있는 대륙국가라고 배웠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작은 섬나라로 어렵게 살고 있지 않은가? 대륙의 일원이 되면 우리도 대륙인의 기질을 가질 것 같다. 그래서 조급한, 경솔함 같은 나쁜 습관을 버리게 되고 너그러움과 넉넉함을 가질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대륙의 일원으로서 살아보고 싶다. 정말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철도 길이 열려 온 대륙을 여행할 수 있는 시기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한번 부산 발 모스크바 행 기차에 몸을 맡기리라.
우리를 태운 열차는 성난 황소처럼 그러나 빠르지 않게 모스크바를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크고 작은 역에서 잠시 쉬었다 또 내달린다. 작은 역에서는 1-2분 정도 멈추지만 큰 역에서는 20-30분 정도 정차를 했다. 이 때 많은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체조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 곤 한다.
그러나, 이 시간에 가장 중요하고 낭만적인 일은 가차 역 앞에서 서는 작은 시장을 둘러보는 것이다. 여행정보에 의하면 행상들이 60년대 우리나라에서 그러하듯이 열차 앞까지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며 물건을 판다고 들었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니 그렇지 않았다. 상인들은 기차역 앞 플랫폼의 일정지역에서 좌판을 벌이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여러 좌판을 돌아다니며 자기가 필요한 식료품을 구입했다. 행상들은 자신이 직접 재배한 오이, 사과, 포도, 상추 등을 팔기도 하고, 빵, 물, 술, 음료수, 튀김 등 여행자들이 필요한 음식물을 팔기도 하며, 러시아 민속인형인 마뜨로슈카, 문양이 새겨진 목각공예품인 하흘로마, 정교한 그림을 그려 넣은 목각보석함인 쉬카툴카와 같은 토산품을 팔기도 했다. 나도 시장으로 달려가 다양한 빵과 음료수를 조금씩 구입했다. 판매하는 물건들도 모스크바 쪽으로 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톡 쪽은 식빵 같은 것을 많이 팔았으나 이르쿠츠크 쪽으로 진행하자 고로깨와 같은 따뜻한 음식을 팔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먹어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지 않았다. 어쨌든 오랫동안 정차하는 역에서 벌어지는 작은 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블리디보스톡은 밤 10시 정도에 해가 지지만 하바로프스크를 떠나 19시간을 서쪽으로 오니까 밤 11시 정도에 해가 지는 것 같다. 점점 해가 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광활한 지평선 너머로 스러져 가는 빨간 불기둥이 너무 황홀했다. 이한영 사장과 나는 이국의 여행자로서 황홀한 저녁 해를 바라보며 보드카 잔을 기울였다.
40도 짜리 보드카인데 이한영 사장은 양주는 좋아하면서 보드카는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덕분에 내가 마실 수 있는 양은 많아서 좋았다. 커다란 종이컵에 가득 따라서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이 하는 대로 시원한 물로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적셔 주었다. 1병의 보드카를 모두 비우자 어느덧 해도 지고 한쪽에서 아름다운 반달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누가 이야기했던가? 보드카에 취해서 잠든 것이 아니라 혼절하여 잠들었다고... 나 역시 혼절하여 잠이 들었다. 새벽 1시에 잠들어 눈을 떠보니 오전 10시 30분 아닌가? 보드카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잠을 잔 것이다. 온몸이 뿌듯했다. 단점이라면 샤워를 할 수 없음이 약간 서운할 뿐이다. 아침은 소시지와 안에 감자와 파, 그리고 으깬 삶은 계란이 들어있는 고로케와 빵을 커피와 곁들여 먹었다.
어제는 백화나무(자작나무) 숲 속을 지나왔다. 시베리아 하면 생각나는 백화나무는 줄기가 하얗다고 해서 백화나무라 부르는데 마치 나무 줄기에 누군가가 흰색 페인트를 칠한 것과 같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백화나무 숲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타이가 지역이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보는 풍경처럼 작은 구릉이 있고 백화나무를 비롯한 이름 모를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며 차창 안의 여행자들을 포근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넒은 초원의 목장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 흐르는 강물은 맑았고 수량도 풍부했다.
현재 시베리아는 엄청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관광자원은 인간의 손이 묻지 않은 자연의 미 그것이다. 인간의 손이 휘저으면 시베리아도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운 숲, 울창한 숲, 맑은 공기와 강, 광활함 이런 것들이 시베리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바로프스크를 출발해 40시간이 지났지만 지루한 줄 몰랐다. 너무 바빠서(?) 책 한자, 일기 한 페이지 쓸 시간도 없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하루 24시간을 계산해 보면 이해가 간다. 잠을 9시간 정도 자고, 밥 먹는 시간이 약 3시간,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창 밖을 내다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시간이 5시간, 큰 역에서 정차하는 동안 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시장 보는데 2시간, 세면 또는 기타 시간이 2시간, 나머지는 책을 보거나 술을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다.
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루하다고 했던가? 나와 이한영 사장은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바쁜 서울 생활을 탈피해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려고 여기에 왔는데 너무 바쁘다고... 우리가 책을 읽을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어 바쁘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이틀의 짧은 초보 여행자이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여행하려면, 책 한 권을 읽겠다는 계획과 숙면을 취하기 위해 잠을 잘 때 한잔의 보드카를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으면 어제와 같이 혼절(?)할 수도 있다.
기차는 어느 덧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울란우데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드넓은 초원에 그림처럼 집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울란우데 역의 철길을 따라 강이 흐르고 있고 강의 양편에는 공장과 집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고즈넉이 서 있다. 울란우데에서 많은 군인들이 내리고 있었다. 멀리서 마리아와 안드레의 이별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포옹과 한 개피의 담배를 나눠 피우며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있었다. 잘 생긴 알렉산더도 청바지와 하얀 티를 입고 성큼성큼 울란우데 역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울란우데는 러시아와 몽골이 만나는 곳이다.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기차로 14시간을 달리면 러시아의 울란우데에 도착한다. 그래서 인지 울란우데는 몽골의 라마불교 사원들이 많이 있다. 몽골 사람들이나 몽골을 방문한 여행자들은 울란바타르를 출발해서 우란우데에 도착해 바이칼을 찾는다. 2년 전 몽골을 방문했을 때 나는 바이칼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비자를 발급 받는데 100달러를 달라고 했고 시간도 없어 포기한 적이 있다. 차라리 몽골을 좀 더 심도 있게 여행하자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언제인가는 바이칼 호수를 방문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바이칼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오는 사람, 비행기로 이르쿠츠크로 날아온 사람,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울란우데를 경유하여 오는 사람으로 나뉘어 진다. 그때부터 낫 익은 지명이 울란우데이다. 울란우데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오는 기차가 만나는 지점이며, 또한 중국의 북경(뻬이징)으로 가는 기차도 여기서 작별한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바이칼 호수를 따라 기차가 달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차창 밖의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강렬한 햇빛아래 영롱이 반짝이는 바이칼의 모습은 성스럽게 보였다. 가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시골 아이들의 순수함과 일부 개구쟁이들이 가끔 우리를 보며 손을 밀어 넣는 흉내를 하면서 욕을 하는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 너무 흡사해 수줍은 웃음으로 답례를 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장장 62시간을 달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울란우데를 지나 1시간 정도 달리고 발샤야 레취카(큰강)역을 지나자 많은 승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거대한 호수가 조금씩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 바이칼"이라는 탄성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침대차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가로 모였다. 창을 열어제치자 물비린내가 물씬 풍겼지만 공기는 오히려 상쾌했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바이칼호는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같았다. 시카고에서 바라 본 미시간 호는 작은 연못과 같았다.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의 바이칼호는 경상남북도를 합친 넓이의 거대한 호수로 호수의 폭이 가장 넓은 곳은 79㎞나 되고 둘래가 2,000km나 된다. 호수 안에 20여 개의 섬까지 떠 있으니 말이 호수지 웬만한 바다 못지 않다.
수정처럼 맑은 바이칼은 이미 호수가 아니다. 바다인 것이다. 짓푸른 바다의 모습은 아니지만 웅장한 맑은 물을 담고 있는 바다였다. 글재주가 없는 공학도의 필력으로는 기록할 수 가 없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수줍게, 그러나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차창을 통해 본 바이칼은 가끔 벽화나무가 앞을 가리며 바이칼의 외모에 화장을 해 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해수욕장을 감싸주는 해송처럼 바이칼을 백화나무가 안아주고 있었다.
바이칼의 온화한 모습은 3시간 동안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광대한 호수이다. 날씨의 변덕이 심하다는 바이칼도 우리를 환영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맑은 날씨에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3시간의 기차 길은 9,288km에 달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 여정의 백미였다. 이르쿠츠크까지 3시간 동안 바이칼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백화나무 숲이 그 자리를 메우고 다시 바이칼이 나타나는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