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는 무척이나 불행한 화가였다. 그의 삶은 알코올, 마약, 방탕한 생활로 엉망진창이었고,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은 모딜리아니의 이런 면을 이용했다. 싸구려 작업실을 마련해 준 후 술 살돈 몇 푼을 집어 주고 그림을 원했다. 심지어 술 한 병을 준 후 작업실 문을 잠그고 그림이 완성되면 문을 열어주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에겐 술 한 병이 연료와도 같았다. 그는 시대를 한탄하며 이렇게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고, 자신을 파괴하는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갔다.
그의 망가져가는 삶과는 달리 그의 예술 감성은 누구보다 고귀하고 고요했다. 모딜리아니는 아주 잘생기고 매력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천사처럼 잘생겼다"라고 했다. 그래서 평생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축복받은 외모와 달리 건강은 신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여러 번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야 했고, 그래서 하고 싶어 했던 조각도 할 수 없었다. 그의 회화 또한 인정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피카소라는 거장이 있어 그의 예술을 펼쳐 나갈 수도 없었다. 자기 파괴적인 행위는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설움이었고 그는 이 설움을 술로 잊고자 했으며, 가뜩이나 건강이 안 좋았던 그는 더 망가졌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고향인 리보르노에 머무는 동안 파리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며 그린 '리보르노의 거지(The Beggar of Livorno)이다. 모델 비용이 없었던 모딜리아니가 가난한 사람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걸인을 그렸지만 아마도 그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는 가난과 추위에 떨며 인정받지 못한 화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였을 것이다.
이 그림은 모딜리아니는 문학작품들로부터 그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감을 받았으며 '세잔'으로부터 푸른색과 녹색의 강렬한 색채의 붓놀림에 영향을 받아 그린 초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