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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 종주 산행기
2010년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온 일본 북알프스 종주 산행은 한마디로 고행이었다. 시작부터 비를 맞으며 3천 미터 고봉의 험한 준령을 운무 속에 넘으면서 세찬 바람과 맞서야 했다. 그러나 한 여름에 국내산에서는 볼 수 없는 만년설을 보고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일본 북알프스(해발 3190m)는 원래 히라산맥이었는데 영국 윌리암 홀덴과 월터 웨스턴이 산을 오르고 나서 알프스(마터호른)에 버금가는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가노현과 니가타현 경계의 시로우마다케(白馬岳) 부근부터 남서 방향으로 펼쳐진 산맥군으로 나가노, 도야마, 기후현에 걸친 대산릉(大山稜)이다. 유럽의 알프스에 비해 스케일은 작아도 경관이 아름답고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톱 모양의 날카로운 산 능선이 그에 못지않아 세계의 등산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일본의 100대 명산 중 15개가 북알프스에 있다. 우리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8월 정기 산행 겸 첫 해외원정 산행지로 금년 봄부터 준비를 해왔으며 이번에 12명의 대원들이 함께 했다.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니 오른쪽 바다위로 석양이 기울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나고야 시내를 가로질러 북알프스의 관문 도시인 다카야마(高山)로 달린다. 3시간 반 걸린다고 했다. 약간 흐리긴 하지만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고 시야가 좋다. 중간에 작은 규모의 휴게소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손님은 우리 일행이 전부다. 일본의 3대 도시라고 하는 나고야는 바닷가를 매립한 도시로 수평적으로 넓어 평화로워 보인다. 야트막하고 소박한 건물이 대부분이다.
어두운 밤길을 달린다. 그런데 차창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산간지대니 그렇겠지 하고 위안을 한다. 터널이 수없이 이어진다. 드디어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다카야마에 도착, 기차역 부근에 위치한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내일 아침부터 산에서만 2박 3일을 보내야 하기에 필요한 만큼 배낭을 꾸리고 산행코스를 점검해 본다. 종주코스는 산행기점인 가미코지를 출발 야리가다케산장에서 1박하고 이튿날 호다카다케산장으로 이동하여 1박 한 후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에 오른 다음 다케사와산장을 거쳐 가미코지로 다시 내려오는 약 40km의 원점회귀 산행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산행 길에 나섰다. 북알프스 산행 시작점이자 베이스캠프인 가미코지(上高地)까지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잘 정돈된 일본식 기와집과 멋진 노송 한 그루가 보인다. 교외로 나오자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진다. 논에는 벼가 익어가고 길가에 능소화, 배롱나무 그리고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마치 시원(始原)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터널을 지나 더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산 위로 운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몽환적이다. 마지막 터널이자 가장 긴 오브터널을 14분 동안 지나가는데 오르막에 곡선 구조로 위치는 기후현과 나가노현의 경계를 이룬다.
터널을 나오자 왼편에 화산폭발로 생긴 그림 같은 호수가 있고 그 너머로 눈 쌓인 북알프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잠시 후 가미코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빗방울이 점점 더 거세진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우려가 된다. 하늘의 뜻이니 어쩌겠는가. 비옷을 입어야 했다.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개당 300엔) 단체사진을 찍은 후 08: 50 산행을 시작했다.
3시간 동안은 비교적 평탄한 트레킹 코스다. 하동교 옆을 지나니 왼편 너른 계류 너머 운무가 살짝 걷히면서 산봉우리를 살짝 보여준다. 숲길 양옆으로 머위대와 관중 등 습지식물이 즐비하다. 50분 후에 묘우진(明神)산장에 도착했다. 산장 안에서 비를 피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휘파람새가 길동무를 해준다. 왼편으로 주산지처럼(규모는 작지만) 호수 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시원하게 흐르는 계류가 계속 이어진다.
얼마쯤 가니 오른쪽으로 산사태가 난 모습이 보인다. 일본산은 주로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산사태가 발생하기 쉬워 더 위험하다. 하늘높이 곧게 뻗은 숲길을 걷는다. 편안한 흙길위로 빗물이 고인다. 1시간 뒤 도쿠사와(德澤)산장에 도착했다. 왼편으로 계단과 현수교가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동했다. 왼편에 계곡을 끼고 걷고 또 걷는다.
1시간 뒤 요코오(橫尾)산장에 도착했다. 처음엔 여기서 점심을 먹고자 했으나 등산객이 너무 많아 다음 산장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까지 너무 멀어 허기를 참아야 했다. 계곡물이 점점 더 급해지고 색깔은 청옥색이다. 허기와 함께 지친 상태에서 1시간 30분 후인 오후 1시 8분 야리사와(槍澤) 롯지에 도착하여 점심 도시락으로 삼각김밥을 먹었다.
진주에서 왔다는 등산팀이 우리보다 먼저와 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다. 옷과 신발은 이미 다 젖어 한기가 느껴지는데 소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옆 건물 매점에 가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다. 그런데 주인이 내 행색을 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날씨에 반팔에다 비닐 우의차림이니.. 그러면서 오늘 일기가 매우 안 좋아 일본 등산객들은 대부분 하산 했다고 전한다. 갑자기 백두산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걱정이 되지만 어쩌겠는가.
롯지 앞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앞으로도 야리가다케까지 5.9km 남았다. 지금부터가 힘든 구간이니 오후 5시 전에 산장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 서둘러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0.9km를 가니 텐구바라 분기점이다. 너른 공터에 돌담을 쌓아 만든 대피소가 있고 주변에 텐트 몇 개가 보였다. 그 뒤 산 너머로 운무에 드리워진 산들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골짜기에 만년설과 함께 폭포수가 하얀 줄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좀 더 가다보니 진주에서 온 한 분이 쉬고 있었는데 그의 손목시계에 해발 2136m라고 나타나 있다. 바로 위 지점부터 계곡 쪽으로 눈이 두텁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해발 2200m 지점부터 빙설지대라고 보면 된다. 한 여름에 이런 눈을 보다니 정말 신기하다. 해발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니 급류가 흐르는 계곡이다. 거기서 일행들 사진을 찍으며 건너다 물에 빠져 왼쪽 무릎을 바위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위험한 순간을 모면했다.
위로 갈수록 눈은 점점 더 많다. 눈밭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일부러 눈길을 걸었다. 다져져서 그런지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다. 야리가다케 정상이 어디쯤인지는 대충 알 수 있겠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비는 더 거세지고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날은 점점 저물어가고 선두(가이드)는 어디쯤 갔는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정철수 건축사, 윤원석 고문님, 박기현 대장님 등과 후미를 이루고 가다 나중에 윤고문님과 앞서 나가고 나머지 세분이 뒤따라 왔다.
관목지대를 지나면서부터 완전한 바위지대다. 두 세 차례의 눈길 사면을 스틱을 이용, 조심스럽게 건너고 험한 바윗길을 조심조심 걸어 올랐다. 그렇게 힘겹게 오르다 보니 殺生分岐 지점인데 야리가다케산장 1km, 殺生롯지 150m라는 푯말이 서 있다. 살생이라니 기분이 섬뜩하다. 그런데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어지럽고(꼭 술 취한 것처럼)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한다. 해발 3천미터 이상에서 나타나는 고소증세로 산소 결핍현상이다.
500m, 200m, 100m, 50m 머리위로 산장 지붕이 희미하게 보인다. 힘겹게 한 발 그리고 또 한발을 내딛으며 드디어 골인! 장장 19.2km의 거리를 걸어온 것이다. 오후 6시 20분에 오늘의 목적지인 야리가다케산장(槍岳:3,060m)에 도착했으니 9시간 30분 동안 걸은 셈이다.
그런데 산장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덜덜 떨리고 오한이 나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리고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생기는 현상이다. 벌써부터 난로를 독차지하고 있던 다른 팀 속에 끼어 곁불을 쬐어보지만 젖을 대로 젖은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시나무 떨리듯 한다. 마침 오늘이 중복인데 복날 이렇게 개 떨 듯이 떨 줄이야.. 먼저 온 회원들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으나 밥 생각이 전혀 없다. 그 보다는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은 후미가 걱정 된다. 몇 번이고 문을 열어보지만 소식이 없다.
결국 후미가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는데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살생분기에서 길을 잘 못 들어 헤매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작고 시원찮은 난로였지만 불을 쬐도록 비켜주고 나서야 등산화와 배낭에 고인 물을 빼고 맨 나중에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오한에다 뱃속이 메슥거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된장국에 밥만 몇 술 떴다. 숙소로 올라와 옷을 갈아입으려니 다 젖은 상태라 그만두고 건조실에 등산화와 옷을 가져다 널어놓았다. 그런데 워낙 많이들 이용하고 젖은 것들이라 온통 축축하고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650명수용인 이 산장은 83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1만엔(14만원)에 저녁과 아침 그리고 점심도시락까지 제공된다. 비좁은 숙소 2층 침상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는데 난방이 안 된 상태라 발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그나마 이불이 있어 다행이다. 밤 8시 반에 일제히 소등. 그러나 잠이 오질 않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내일 산행이 또 걱정된다.
야리가다케 산장에서 1박하고 이틀 째 산행 길에 오르다
눈만 감은 채 밤을 지새웠다. 다들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이며 들락거리기도. 새벽 4시에 전깃불이 켜졌다. 이 때부터 산장 안은 술렁대기 시작, 부산하게들 움직인다. 좀 더 누워 있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온통 뿌옇다. 건조실에 가보니 등산화와 옷들이 마르기는커녕 거의 그대로다. 축축한 옷과 양말 그리고 등산화를 다시 입고 신어야 했다. 화장실에 가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나니 어지럼증이 좀 가시는 것 같다. 그러나 뱃속은 여전히 거북하다.
05:40 아침식사를 했는데 이 때도 거의 먹지 못했다. 06:30 산장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이틀 째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호다카다케산장이다. 그런데 가장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다행히 새벽에 비가 그치고 운무만 자욱하다. 오늘도 선두는 가이드, 후미는 이곳 산행 경험이 있는 박기현 대장이 맡았다. 어제의 상황을 고려 될수록 함께 이동하도록 했지만 또 차이가 벌이지고 말았다.
해발 3천 미터 급 등산로는 거의 암석 길이다. 좌측 북사면은 만년설지대로 날씨가 맑았으면 어제 우리가 올라왔던 곳이 보였을 텐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로 북알프스의 날 능선을 걷는다. 일본산엔 안전시설이나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 그저 등산로 바위에 O, X 표기가 고작이다. 고산을 오를 땐 몸을 산에 맡기고 산과 하나가 되는 수밖에 없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산의 날씨, 인생의 날씨 모두 예측 불허다.
1시간 만에 나카다케(中岳)에 도착. 여기서부터 험한 바윗길이 계속되는데 칼바람마저 불어와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조심해서 걸으며 눈이 두텁게 쌓인(7~8m)빙설지대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잠시 휴식. 좌측엔 만년설이 우측 능선엔 진초록 구상나무가 땅에 엎드려 있고 주변에 각종 야생화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고산지대에 나무가 없거나 키가 작은 것은 주로 바람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적응으로 뿌리는 넓고 잎이 작다.
편마암 계통의 돌길을 계속 밟으며 해발 3,032.7m의 미나미다케(南岳)에 도달한 뒤 그 아래 산장에서 휴식을 취했다. 따끈한 커피(200엔)를 마시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럼에도 후미는 보이지 않아 점심 먹을 장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09:30 산장을 출발했다. 점심을 먹게 될 기타호다카다케산장까지는 3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데 이 번 종주산행 최대의 난코스다. 톱니처럼 생긴 급경사의 벼랑길을 다섯 차례나 오르내려야 했다. 산 너머 산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랄까? 천천히 오르는가 싶더니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수직의 암벽구간인데 한 가닥 쇠줄과 철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했다. 칼바위 능선을 지나는데 제트기류가 흐르는지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아찔한 순간이다. 오히려 날씨가 맑았으면 고소공포증으로 현기증을 일으켰을 거라고 일행들이 한마디씩 하니 이런 것도 다행(?)
11:16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한숨 돌리고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에 눈길을 준다. 천상의 화원이다. 최진 부회장이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극기훈련에 돌입했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날카로운 편마암 조각이 발에 미끄러져 낙석으로 떨어진다. 수시로 ‘낙석’을 외쳐야 했다. 국내의 험한 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산을 오르내리며 아무생각도 들지 않는다. 저 봉우리가 끝인가 하고 오르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정말 죽을 맛이다. 그래도 젖은 옷이 말라 다행이다. 산에서 추운 것은 견디기 힘들지만 힘든 것은 견딜 수 있다. 속도를 줄이면 된다.
오후1:13 드디어 기타호다카다케산장(北德高小屋:3,106m)에 도착했다. 야외 긴 테이블에 앉아 회원들과 늦은 점심으로 일본 컵라면과 함께 주먹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철식 건축사가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계속 식사를 못해 걱정이다. 박기현 대장이 후미를 인솔하고 오느라 계속 늦어져 박기호 재무가 마중을 나갔다 한참 후 배낭을 대신 메고 돌아왔다. 이런 것이 의협심이고 책임감이다.
2:30P 하산키로 했다. 가이드가 지금부터는 수월한 구간이라고 했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비에 젖은 검은 바위와 바람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루하고 힘에 부친다. 몇 걸음 옮기다 쉬고를 반복해야 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이철식 건축사와 고생을 함께 했다. 내 말만 믿고 김해에서 합류했는데 발을 다쳐 진통제를 먹으며 견뎌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힘을 더 쓰는 다리가 통통 부었다고 그 큰 덩치로 고통을 호소한다. 안쓰럽지만 어쩌겠는가. 점심도 굶어 더 힘든 상태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힘내라는 말과 얼마 남지 않은 물을 건네주는 것밖에..
거의 그로기 상태에서 가리사와다케(凅澤岳:3,110m)를 지나고 호다카다케(橞高岳:2919.6m)를 지나 1km 더 내려오니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호다카다케산장(橞高岳小屋:2,983m)이다. 오후 5:20 도착했으니 8.9km를 10시간 50분 동안 걸은 셈이다. 산장규모는 야리가다케 보다 작았지만 시설은 양호했다. 1층 오른쪽 끝 방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건조실에 젖은 옷가지와 등산화를 말렸다. 먼저 온 회원들이 저녁식사 전에 라면을 끓여놓고 오라고 했지만 나는 속이 좋지 않아 방에서 누어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후미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기다리는데 방금 도착한 다른 팀들이 전하길 뒤에 남은 우리 일행이 거의 탈진상태로 못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기에서 1시간 거리라고. 드디어 일을 당하는구나 생각하니 뱃속이 멎고 입이 바짝 타들어간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려 기온은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해드랜턴을 두르고 가이드와 박재무 등이 구조대로 나섰다. 불안한 마음으로 모두 저녁식사를 거르고 기다리는데 30분 쯤 뒤 후미와 함께 구조대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살았다! 모두 환호했다. 천천히 걸어오는 우리 후미를 너무 과장해서 위급상황으로 전했던 제주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과 한 방을 썼다. 저녁 7시가 지나서 식사를 했다. 밥 생각도 없는데 날계란에 비벼 먹으니 먹을 만 했다. 된장국과 따끈한 녹차를 마시니 속이 좀 편해진다. 방으로 돌아와 2층 침대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무사한 것에 감사를 드리고 밤 8:30 소등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호다카다케산장에서 숙박 후 3일째 산행
7월의 마지막 날, 우리 종주산행도 마지막 날이다. 04:30 불이 켜지며 산중에서의 하루가 시작 되었다. 건조실에 가서 옷과 등산화를 먼저 챙기고 세수를 하는데 거울을 보니 눈이 통통 부었다. 고산지대라 기압이 낮아서 그럴 것이다. 05:30 아침식사를 마치고 불 꺼진 난로가 있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번 산행 중 최고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06: 35 산장을 출발 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을 거라는 예보와 달리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보다 더 흐리다. 한 가닥 희망을 가졌는데, 바람도 거세고 그래도 비만 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산장 앞에는 빙설이 6~7m 두께로 켜켜이 쌓여 있다.
드디어 북알프스의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로 간다. 그런데 처음부터 수직 암벽이다. 15분간 쇠줄과 철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던 중 이희철 건축사의 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합창을 했다. 제목은 칠갑산과 그리운 금강산-즉석 산상음악회다. 그리고 다시 돌길을 오르면서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으며 끝까지 무사 산행을 빌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 고산증세가 해소되는 듯 했다. 07:17 산장 800m, 정상 200m 지점에 도착했다. 그 때 서광이 좀 비치는가 싶더니 다시 오리무중이다. 거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운무 속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오르다 보니 머리 위로 뿌연 봉우리가 보이고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거기가 정상이었다.
일본 북알프스 정상(오쿠호다카다케)에 태극기를
07:45 비로소 정상인 오쿠호다카다케(臆橞高岳:3,190m)에 올랐다. 일본의 지붕 혼슈(本州) 중앙에 위치한 북알프스의 최고봉으로 일본에서 3번 째 높은 산이다. 웅대한 협곡과 험준한 암봉을 수없이 넘어와 밟은 정상 꼭대기에는 돌탑위에 일본인들의 숭배 대상인 신사가 모셔져 있었다. 나는 그 위에 올라가 집에서 갖고 온 태극기를 꺼내 몸에 두르고 대한민국만세! 건축사 만세! 라고 작은 소리로 외쳤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금년 8.29)의 역사적인 시점에 일본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북알프스 정상에 태극기를 올리고자 미리부터 마음먹었던 것이다.
08:00 하산을 해야 했다. 운무는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산 아래 풍경을 볼 수 없다. 이대로 내려가야 하나, 처음엔 운무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볼까도 했지만 야속하기만 하다. 얼마쯤 가다가 휴식을 취하며 이러한 심정을 노래로 표출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 더냐~~’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모습처럼 뭔가 아쉬운 점을 남겨두어야 그것이 인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 보고 가슴에 품을 수 있으면 그것 또한 좋은 것 아닌가. 정철수 건축사와 마에호다카다케(前橞高岳:3,090m)로 내려오면서 눈밭에서 우는 새와 꿩 한 마리를 목격했다.
09:57 기미코타이라 갈림길에서 급경사 길로 하산하여 다케사와산장으로 내려오는데 아~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트이는 것이 아닌가. 뾰족한 고봉과 광대한 협곡이 열렸다 닫혔다를 수시로 반복하며 변화무쌍한 북알프스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늘과 산과 구름뿐인 천상의 세계, 희미하게나마 그 속살을 내어 준다. 모든 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보다 아스라하게 보일 때가 더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법이다. 마치 지금까지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도(미안해서)해주려는지 산과 하늘, 구름과 바람이 맺고 풀면서 그려낸 풍경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끌어안을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진다.
이승훈 건축사, 박기현 대장 등과 뒤늦게나마 북알프스의 제 모습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구불구불한 자작나무 지대를 지나 새소리를 들으며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길에 엉겅퀴 및 야생화와 일본인들은 먹지 않는다는 곰취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이 마른 계곡(그 위에는 빙설)을 건너 오후 1:10 마지막 산장인 다케사와산장(岳澤小屋:2,180m)으로 내려오니 먼저 온 회원들이 점심을 먹고 쉬고 있었다. 우리 네 명은 라면(한국산)을 끓여(기압이 낮아 물이 끓지 않음) 주먹밥과 함께 먹었다. 이곳은 지금까지와 달리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가스 남은 것을 산장에 주니 좋아했다.
점심 후 가미코지로 내려 왔다. 올라오는 일본인들과 수시로 ‘곤니찌와’ 인사를 나누며 서로 길을 비켜주기도 했는데 그들은 산에서도 철저히 좌측통행을 고수한다. 한국의 산은 생활의 산인데 반해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일본의 산은 숭배의 대상이다. 철쭉, 조릿대, 풍혈, 산사태로 부러진 거목들, 쭉쭉 뻗은 히노끼 숲을 지나니 명신지(明神池)의 맑은 호수가 나타난다. 그림엽서 같은 정경이다. 오후 4:05 하동교(河童橋) 휴게소에 당도하니 회원들이 모여앉아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고 있어 합류했다. 장장 2박 3일의 산행을 모두 마치고 마시는 하산주인 것이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뒤늦게 찾아온 오십견통으로 배낭을 짊어질 때마다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걸으면서 어깨 통증이 심했는데 배낭을 벗어 놓으니 후련한 기분이다. 하동교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처음 산행 출발지인 가미코지 버스터미널로 돌아와 4:32P 관광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아 약이 오르지만 이것도 다 팔자소관 아닌가. 푹푹 찌는 듯한 더위, 겨울에서 다시 여름으로 돌아온 것이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저 멀리 또렷이 보이는 북알프스의 영봉들을 바라본다. 우리의 발길이 닿았던 곳들, 그러나 산행의 흔적은 땅이 아니라 내 가슴에 남는다. 엄홍길 대장은 등산은 인내의 예술이라고 했다. 내 인생에 한 획을 긋는 이 번 인고의 예술과도 같은 북알프스 산행 경험은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글쓴이 : 서울건축사등산회장 이 종 호
첫댓글 생생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건강하게 마치고 잘 다녀오신것 축하드립니다. 다음 산행기 기대해 봅니다. 화이팅.
사무총장님께서 함께 했더라면 제가 고생을 덜 했을 텐데요~~휴가는 잘 보내셨는지..
동행하지 않니하였다 하더라도 북알프스 산행 코스가 눈에 선 하내요 무척 힘든 산행이엇던 것 같은데 안전산행 하고 귀국하셨다니 반갑씁니다. 제가 갔다면 아마 다들 힘드셨을 것 갔네요 아무튼 평생을 두고 이야기 하실 산행 하셨으니 부럽씁니다 이종호 회장님, 후기는 제가 술 한잔 모실 때 듣고 싶읍니다. 성동 조익수
술 안주거리 제가 많이 만들어 왔으니 언제 한 번 한 잔 합시다.
회장님 후기 잘보고갑니다.
귀국할때는 북알프스 처다보기도 싫었는데...조금은 그리워 지네요...
얼마나 마음 조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경상도 사나이의 의리와 인내심으로 끝까지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하던지..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함께하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사고가 없어 다행이고요 앞으로의 산행에 큰약이 될 것입니다. 회장님, 대원들 모시고 어려운 산행 다녀오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다녀오고 나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합니다. 오히려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악천후에 고생 많이 하셨네요. 무사히 귀환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멋진 추억 오래 간직하시길 바람니다.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산에 대한 열정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선배님...!!!
일에 대한 열정은 김지한 건축사님이 더 대단하지요. 산에서도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