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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의 실패(대하 16:7-10)
할렐루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즘 하늘을 보면, 맑지가 않습니다.
미세먼지가 없는 맑고 화창한 날씨가 그립습니다.
시원한 단비가 내려서 미세먼지가 다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예배 가운데, 은혜의 단비, 축복의 단비가 내려서, 우리 마음에 쌓여 있는 염려와 걱정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저는 가수 조용필 씨기 부른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 인생, 비바람에 꺾이니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 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여러분! 왜 일편단심 해바라기가 아니고, 왜 일편단심 민들레일까요?
봄이 되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민들레입니다.
민들레는 한 송이 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100-200개의 꽃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는 통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노아 홍수 때, 물이 민들레 꽃을 덮어버리기 전에, 씨앗이 방주 지붕 위로 올라가 있다가, 비가 그친 후에 양지 바른 곳에, 노란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그리고 민들레에 관한 전해져오는 또 다른 이야기는 민들레라는 여인이, 일하러, 멀리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일편단심 기다리다 지쳐, 죽었는데, 그 죽은 자리에,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이 그 꽃을 민들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 꽃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일편단심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조용필 씨가 “일편단심 민들레야”라고 불러서, “일편단심 민들레”가 된 것이 아니라, 일편단심 민들레에 관련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입니다.
민들레는 아무 데서나 잘 자랍니다.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거의 뿌리만 남더라도, 다시 잎이 올라오고, 꽃을 피우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민들레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일편단심의 절개가 있습니다.
민들레는 함께 모여, 꽃 하나를 이루는 조화로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이, 일편단심 민들레이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아사 왕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와 그의 백성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아사 왕은 남유다의 세 번째 왕으로서, 41년 동안,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전반기 36년 동안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후반기 5년 동안, 그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일편단심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동일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흔들거립니다. 왔다 갔다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사랑이 있다 없다. 믿음이 있다 없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만 기다리지 못하고, 딴 마음을 품고, 딴짓을 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은 좋지만, 끝이 안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용두사미”라고 합니다.
“용두사미”란 머리는 용이나 꼬리는 뱀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용두사미”란 처음은 좋으나 끝이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처음은 별로 좋지 않지만, 끝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야 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면, 한결같을 수 없다면, 처음은 좋으나, 끝이 안 좋은 사람보다는, 처음은 좋지 않으나, 끝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든, 지금보다는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끝도, 믿음의 끝도 다 좋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10절을 보면,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연회장이 신랑에게,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우리 자녀들의 삶도, 지금보다는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모든 것들이 처음보다는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점점 더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을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우리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뜨겁게 사랑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식은 사랑마저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돌이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이 식어버리셨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겁습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뜨겁다면, 그 뜨거운 마음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 버렸다면,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는 다르게, 처음보다는 나중이 더 좋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는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여러분! 처음보다는 나중이 더 좋은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믿음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있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해지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한 알의 씨앗에 불과하지만, 나중에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아사 왕은 처음에는 좋았으나, 나중은 좋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으나, 나중에는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사 왕은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구스의 세라 왕이 백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남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그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대하 14:11)
아사 왕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는 승리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전쟁에서, 전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그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함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는 백만 명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이 때부터, 아사 왕 35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아사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맘껏 누렸습니다.
여러분! 아사 왕 3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려고 올라왔습니다.
이때, 아사 왕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구스의 세라 왕이 백만 명의 군대와 삼백 승의 전차를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북이스라엘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처음과는 달리, 아사 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사 왕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었습니다.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대하 16:3)
여러분! 아사 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대신, 아람 왕 벤하닷에게, 많은 은금을 보내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사 왕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북이스라엘 편에 서지 말고, 우리 유다 편에 서서, 북이스라엘을 함께 물리치자”고 많은 뇌물을 주면서, 제안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북이스라엘 성읍들을 쳤습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이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아사 왕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7-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아멘.
아람의 공격을 받은 북이스라엘이 물러갔습니다.
그리하여, 아사 왕은 또 한 번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바로 그때,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다고 하는 사실을 책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느냐? 패배했느냐?”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했느냐? 의지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위급한 상황을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사 왕은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보화를 꺼내, 아람 왕에게 뇌물로 갖다 바치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사 왕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있는 금은보화마저도 꺼내, 아람 왕에게 뇌물로 갖다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권력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위급한 일을 만났을 때, 아사 왕은 하나님보다, 아람 왕을 더 의지했습니다. 아사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아람 왕 벤하닷을 자기 편으로 삼아, 전쟁을 하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쟁의 결과는 그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힘과 돈과 권력을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내 생각, 내 의지, 내 계획을 앞세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 왕에게,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견자 하나니는 옛날 구스의 세라 왕이 남유다를 쳐들어왔을 때의 일을 끄집어내어 말했습니다.
구스의 백만 명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왕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때, 왕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까?
왕이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 왕을 도와주셨습니다.
왕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적들을 물리쳐주셨습니다.
백만 명의 군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을 때, 승리했는데, 왜 지금은 하나님을 찾지 않으셨습니까? 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 왕을 책망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아멘.
아사 왕은 아람 왕 벤하닷을 의지함으로,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 왕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선견자 하나니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또다른 전쟁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여러분! 선견자 하나니의 책망을 들은 아사 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사 왕은 선견자 하나니의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습니다.
아사 왕은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습니다.
아사 왕은 왕이 된 지 39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사 왕은 말년에, 죽을 병에 걸려, 심하게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여러분! 아사 왕이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아사 왕이 백만 명의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선지자 아사랴는 아사 왕에게,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고 외쳤습니다.
아사랴 선지자의 말을 들은 아사 왕은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없애고,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백만 명을 물리치고, 노략한 물건 중에서, 하나님 앞에, 소 7백 마리와 양 7천 마리를 바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과 백성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사 왕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때에는 선견자 하나니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왕이시여. 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습니까?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힘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했습니까?”
아사 왕은 선견자 하나니의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학대했습니다.
여러분! 전쟁에서의 승리, 세상에서의 성공이 중요합니다.
출세, 성공,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믿음을 버리면 안됩니다.
세상의 성공이 믿음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믿음의 실패를 바꾸면 안됩니다.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믿음에서도 성공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출세하기 위하여, 돈 벌기 위하여, 믿음을 버리면 안됩니다. 진정한 승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믿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더욱더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아사 왕은 36년 동안, 하나님을 찾았던 믿음을, 마지막 5년 동안,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찾았던 그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던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잘 듣던 그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려옵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선지자 아사랴의 말을 들은 아사 왕은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소 7백 마리와 양 7천 마리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대하 15:18절을 보면, “그가 또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물건과 자기가 구별한 물건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려오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습니까?”
선견자 하나니의 말을 들은 아사 왕은 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학대했습니다.
아사 왕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뇌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갖다 바쳐서, 비록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고, 죽어간다면,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던 사람이, 왜 하나님을 찾지 않고, 돈으로, 뇌물로,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을까요?
한 마디로,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이 정도 했으면,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실패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했을 때, 다윗은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회개했습니다. 통회자복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나중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전도 여행에 동참했던 마가도 도중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떠났습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는 돌이켜, 마가복음을 저술했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빌 1:24)라고 불렀습니다. 마가는 믿음에서 성공했습니다.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끝에는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건강하기 위해서, 믿음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온갖 금은보화를 다 갖다 바치면서, 승리한들, 하나님을 버리게 된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의 실패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절대로 교만하면 안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잠 16:18)
절대로 믿음에 있어서, 교만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교만하면 패망합니다. 넘어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끝날 때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후 15:57-58)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수고, 교회를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처음보다는 나중이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에 있어서, 절대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넘어졌다고 생각되거든 주님을 찾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처음보다는 나중이 더 좋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한결같은 사랑으로, 일편단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도 주님을 향하여, 변함없이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이 마음, 이 믿음, 변치 않도록, 큰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