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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순례 (1호 -10호) (1) 숭 례 문 (崇禮門)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서울 성곽(城郭)의 정문으로 문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며 태조(太祖) 7년(1398)에 창건된 후 세종(世宗) 29년(1447) 크게 개축(改築)되었다.
(2) 원각사지십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 조선(朝鮮) 세조(世祖) 11년(1465)에 세운 원각사는 연산군(燕山君) 때 폐사(廢寺)되어 현재 이 탑과 비(碑)만 남아 있다
(3)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이 비(碑)는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 16년(555)에 왕(王)의 국경순수기념비(國境巡狩記念碑)의 하나로 북한산(北漢山) 비봉(碑峰)에 세워졌던 것이며, 삼국시대(三國時代) 금석문(金石文) 중 가장 유명하고 귀중한 것이다. 1400여년의 오랜 풍우(風雨)로 그 비신의 보존이 어려워 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1972년 8월 25일에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4) 고달사지부도(高達寺址浮屠)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 이 부도는 누구의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각부 양식수법으로 보아 고려(高麗) 광종(光宗) 9년(958)에 입각한 원종대사(元宗大師)의 혜진탑(慧眞塔)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3.4m이다.
(5)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법주사 신라(新羅) 석등(石燈)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造成年代)는 성덕왕(聖德王)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6) 중원탑평리칠층석탑 (中原塔坪里七層石塔)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이 탑은 남한강(南漢江) 상류(上流)의 강가 높은 토단 위에 건립(建立)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유일한 7층의 거탑(巨塔)으로 높이 14.5m이다.
(7) 봉선홍경사사적갈비 (奉先弘慶寺事蹟碣碑)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20 봉선홍경사지(奉先弘慶寺址)가 있었던 곳은 인가(人家)도 드물었으며 잡초가 우거져 가끔 도적이 출몰하여 행인이 곤란을 당하였다고 한다 . 이에 고려(高麗) 현종(顯宗)은 창사(創寺)를 명(命)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 강민첨(姜民瞻)을 감독으로 동왕(同王) 12년(1021)에 200여칸을 완공하였다. 비를 세운 연대는 절을 세운 지 5년 뒤의 일이다.
(8)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聖住寺郎慧和尙白月보光塔碑)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2 이 석비는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때 당(唐)나라에 수학하고 돌아온 낭혜화상(郎慧和尙) 무염(無染)(801∼888)을 위해 세워진 탑비로
전체높이 4.55m, 비신높이 2.52m, 너비 1.5m로 신라시대의 비석으로는
최대(最大)의 것이며, 최치원(崔致遠) 사산비(四山碑) 가운데 하나로 비문은 최치원이 짓고 글씨는 최인곤(崔仁滾)이 썼으며 비를 세운 연대(年代)는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4년(890)으로 추정(推定)하고 있다.
(9)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 (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79 이 석탑은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다.
(10)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 (實相寺百丈菴三層石塔)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4 실상사 백장암 기단(基壇) 구조(構造)와 각부(各部) 장식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여 주는 전고(全高) 5m의 이형석탑(異形石塔)이다. 통일신라(統一新羅) 하대(下代)의 아름답고 대표적인 석탑의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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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다시 한번 공부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6번은 지나면서 자주 보는 탑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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