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있을 때
2020년 6월 14일 갈라디아서 6:1-10
1. 윤리
믿음이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겉으로 보고 믿음이 있다, 없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사람 속에 있는 것이기에 겉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행위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행위, 행동, 모습을 보고서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가 있지요.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도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 문제에 대해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약 2:18)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믿음의 실천, 실천하는 믿음을 강조한 말씀입니다만, 아무튼 믿음은 행함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행함을 통해 나타날 때, 우리는 이것을 신앙인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지요.
바울은 자신이 설립한 교회들에 편지를 많이 보냈습니다. 여러 번의 선교여행에서 설립한 교회가 많으니 돌봐야 할 교회도 여럿이었고, 요즘 같이 교통편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이었으니 편지가 유용한 방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통해 복음의 내용을 전하고, 또 교우들의 생활에 대해 권면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 복음의 내용을 전하고, 잘못된 가르침들을 지적하여 바로잡고 한 것들이 교리라면, 교우들의 생활에 대하여 권면한 것은 윤리라고 하겠습니다. 바울의 편지들, 이른바 서신서에는 교리와 윤리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2. 갈라디아서 6:1-10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인데, 후반부에 이르러 교우들의 생활에 대한 지침, 신앙인으로서 유지해야 할 바람직한 생활 태도, 윤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타인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라고 쓴 단어는 ‘파라프토마(παραπτωμα)’인데, 이는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죄보다는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잘못, 실수를 지칭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많고, 사실은 우리도 때때로 이런 잘못을 저지르며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타인의 잘못을 어떠한 태도로 대하나 입니다. 두 가지 태도가 있지요. 하나는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랄하게 지적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유의할 건, 경건한(?) 분들 가운데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분들 가운데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데 능한 분들이 많습니다. 주변에 그런 분들 있지요? 그런데 바울은 조금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라고 하십니다. “온유한 마음으로…”란 올바르게 화내고 규모 있게 참는 것을 뜻합니다. 화를 내되 바르게 화를 내고, 규모 있게 절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규모 있게 절제하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죠?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하여간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온유한 마음이라고 해서 화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불의를 덮어주고 잘못을 묵과하는 것이 온유가 아닙니다.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겁니다. 다만 그 방식이 온유하단 겁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의 순례자들인데 이런 경지에 이르러야겠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남의 허물에 대해 불쑥 불쑥, 너무 쉽게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2절과 5절입니다.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5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져야 할 짐이 두 개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기 몫의 짐입니다. 너무 당연하지요. 우리는 각자 자기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둘째는 남의 짐입니다. 바울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499장) 찬송가 가사처럼 남의 짐을 져 주는 일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7-8절입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 되어있지요. 개역개정판에는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뮈크테리제타이(μυκτηρίζεται)’를 직역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다.(to be fooled)’입니다. 즉 하나님이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심는 대로 거두지 않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길 바란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바보 취급하는 거랍니다. 바울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에다 심을 것이 아니고, 성령에다 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저는 2002년 7월 14일에 영은교회에 부임했습니다. 7월 14일 주일을 앞두고 교회건물을 찾아가 봤습니다. 공릉동 길가의 상가 맨 위층 5층에 있었지요. 감사하게도 작은 건물인데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5층에서 내리니 바로 교회 문인데, 그 문 위에 돌 판이 하나 붙어있었습니다. 거기에 성경구절이 적혀있었는데, 그게 바로 갈 6:9이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개역한글) 오용식목사님이 붙였을까요? 아무튼 매우 인상 깊었고, 제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갈 6:9을 다시 봉독합시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3. 기회 있을 때
10절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자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전도하고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전도는 신앙을 전하는 겁니다. 그러나 선교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전도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며칠 전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소선합창단이라고 있는데 단원이 40명 정도 된답니다. 이 합창단이 연습할 장소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우리교회를 아는 분이 제게 전화해서 그 사정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정의 사용료를 내고 예배당을 합창단 연습장소로 이용할 수 없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교회가 주중에 유용하게 사용되지 못하여 안타깝던 상황이었는데, 너무 감사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코로나 사태로 다중의 모임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당장 시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당회와 예배부가 의논하는 가운데 있으니 잘 판단해서 결정하리라 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교회는 언제나 이 말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는 4형제를 두셨습니다만, 말년엔 신당동에서 교회 구역식구들의 돌봄을 받으셨습니다. 물론 형제들이 늘 찾아뵈었습니다만, 그래도 가깝기는 한 동네 사는 구역식구들이 더 가까웠습니다. 팔순의 어머니를 칠순의 권사님들이 돌보아주셨습니다. 입맛이 없어 잘 못 드시는 때면 죽도 끓여다 주시고, 김치 담그면 한 그릇 떠다 드리고, 멀리 사는 자식들보다 더 정성껏 돌봐주셨습니다. 그 구역식구들, 권사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되,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도 특별히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권사님들이 제일 크게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어쩌면 이때가 우리 교우들이 가장 할 일이 많은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우들께서 권사님들을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찾아뵈어도 좋지만, 지금 같은 때 전화로 문안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또한 “기회가 있는 동안에…” 하라고 하셨습니다. “기회가 있는 동안에” “기회 있을 때” 해야 합니다. 기회 있을 때! 지금은, 아직은 나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지금은, 아직은 나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 기회 있을 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하늘샘교회 성도여러분, 기회 있을 때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