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또는 '나무관세음보살'
어려서부터 자주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다가 몇 해전부터 불교에 관심이 쏠리면서 이 말의 의미를 알아보려했는데,
이젠 대충 이런 뜻이 아닐까하는 수준까지 오게 돼 차제에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려고 한다.
우선 자구(字句) 해석부터 한다면 '나무아미타불'의 경우에 '나무'는 옛 산스크리트어의
나마스(namas)에서 온 말을 중국어로 南無로 음사(音寫)한 표현이다. 뜻은 '존경하다',
'귀의하다'는 의미로 현재 인도어의 인사말 '나마스테'도 이 나마스와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게 경의를 표한다,' 또는 '귀의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아미타불이란 어떤 부처인가? .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로
아미타란 이름은 산스크리트의 아미타유스(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 또는 아미타브하
(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아미타(阿彌陀)라고 음역하였고,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 등이라 의역하였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서는,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法藏)이라는 비구(比丘)였는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성취하여
지금부터 10겁(劫) 전에 부처가 되어 현재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처는 자신이 세운 서원(誓願)으로 하여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그 원을 아미타불이 되기 이전인 법장비구 때에 처음 세운 원이라고 하여 본원(本願)이라고 한다.
모두 48원(願)인데, 이 48원의 하나하나는 한결같이 남을 위하는 자비심에 가득한 이타행(利他行)
으로 되어 있어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를 이룩하고 있는 이 부처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13번째의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과 15번째의 수명무량원(壽命無量願)은
아미타불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18번째의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은
“불국토(佛國土)에 태어나려는 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염(念)하면 왕생(往生)하게 될 것”
이라고 하여, 중생들에게 염불(念佛)을 통한 정토왕생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중에서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이 일반 신도나 중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누구나 지극한 마음으로 아무타불을 염(念)하면 죽어서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아미타불이 일반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큰 것이다.
그것은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지만, 오랜 기간 각고의 수련과 수도를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해도 도를 깨쳐 성불하는 인원은 극히 작은 수에 불과한 것이고, 일반대중(범부)이 그 경지에
이르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인 이상, 일반대중이 지극정성으로 염불하며 아마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염하기만 하여도 신심(信心)이 두터우면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사후에
극락왕생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불교가 민중신앙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은 관세음 보살에 관한 내용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불교의 보살로서
산스크리트로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vara)이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
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은 구역이며 관자재는 신역인데,
산스크리트 '아바로키테슈바라', 곧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였다.
원전(原典)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인데,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이다.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救世淨者],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보살[大悲聖者]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관음신앙의 중심사상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권화(權化)를 갖춘 관음보살의
묘지력(妙智力)과 그의 다양한 응현(應現:22應身)을 먼저 설명하고,
관음에 귀의하여 지성으로 관음을 염할 때 인간생활에서의 수많은 고난이 모두 물러갈 뿐 아니라,
관음이 신앙자로 하여금 완전한 오경(悟境)의 구원에로 인도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관음보살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 또는 천비(千臂)천안관음이라고도
하는 데, 천’은 무량 ·원만의 뜻이고, ‘천수’는 자비의 광대함을, ‘천안’은 지혜의 원만,
자재함을 나타낸다. 천 개의 손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삼국유사》에는 분황사(芬皇寺)의 천수관음에게 빌어 눈먼 아이가 눈을 뜨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수관음은 관음신앙의 유포와 함께 민간에 깊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누구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정성으로 염불하면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내세의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교가 기복신앙(祈福信仰)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조선조 개국이후
숭유배불(崇儒排佛)정책으로 인하여 불교가 말살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부녀자들의 역할에 힘 입는 바 크다고 하는데, 이른바 '치마불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부녀자들이 절을 찾아가 집안의 어려움이나 소망을 빌고 시주하는
관행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종교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불교가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하더라도 바탕에는 신심(信心)이 전제가 되어 있다. 이 점은 기독교를
비롯한 여타 종교의 경우는 더욱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종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수의 신도를 확보해야 하는데, 모든 신도가 다 상근기(上根氣)의 인간일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는 다층구조(多層構造)로 되어 있다고 한다. 상근기의 일부 인간에게는 깨달음을 통한
성불이 가능할 지 모르나, 대다수의 신도들은 각기 수준에 맞는 배려가 필요한 것이란 점에서
현실의 고난과 내세의 행복을 약속해주는 장치가 긴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대한 불교도의 신앙은 이상의 나의 짧은 소견보다 휠씬 깊고
높은 근거에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짐작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천년 한국불교의 역사중
최고봉을 이룩한 신라의 원효대선사도 만년에는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에 경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이미 대각(大覺)을 이루었지만, 중생과 함께 가야하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중생의 경우에 남을 위해 기도하기에 앞서 자신과 가족의 평안을
도모하려는 태도는 어느 종교에서나 용납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중생인 일반대중의 경우에는 지극한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
만으로도 현세와 내세에서 많은 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은 불국사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석굴암에 있는 11면관음보살상(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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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미타불의 형상에는 단독상과 삼존상이 있고,
좌우 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가장 보편적이며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地藏菩薩) 또는 팔대보살을 봉안하여 군상(群像)을 이루는 예도 많다.
한편 아미타불상의 형식적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수인(手印)으로
보통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과 9품인(九品印)을 짓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아미타불상으로는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강화 백련사 철아미타불좌상, 용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무위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한편 관세음보살의 경우는 관음전이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때에는 관음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의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관음전 안에는 관음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류(楊柳)관음·십일면(十一面)관음·해수(海水)관음·백의(白衣)관음 등을 모신 곳도 있다.
그리고 후불탱화(後佛幀畵)로는 주로 아미타불화로 모신다.
첫댓글 불신자가 아니라도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군요. 우리나라와 같이 다종교국가로써 타종교의 이해 없이 평화가 잇겠습니까 자주 좋은 글을 부탁드립니다.
무식한 불교 신자라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