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 쇼핑몰 앱 ‘소리마켓’ 개발한 (주)와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기술혁신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결제 시스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빠른 배송, 오프라인 매장보다 저렴한 가격…. 온라인 쇼핑의 대표적인 편의성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대부분의 상품 정보가 이미지로 소개되어 있다 보니 음성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더라도 원하는 상품까지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곤 한다. 그간 시각장애인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지만 해결은 요원하니 답답함만 깊었다. 그런데 얼마 전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렸다. 청년 스타트업 (주)와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 앱 ‘소리마켓’을 개발해 내놓은 것이다. 박지혁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Q. (주)와들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주)와들은 2019년 4월 설립한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입니다. KAIST에서 전기·전자공학을 공부하던 중 네이버 벤처캐피털 스프링캠프의 지원을 받았고, 휴학한 뒤 이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기술혁신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한 발전은 너무 더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스마트 기기를 제작하는 (주)dot에서 잠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은 뒤 정보 소외계층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일곱 명의 동료 직원들은 수업이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만났어요. ‘와들’은 펭귄이나 오리가 걷는 걸음걸이를 의미합니다.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면 곧 넘어질 것 같은데 용케 넘어지지 않거든요. 느리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죠. 그렇게 조금은 서툴러도 꾸준히 나아가자는 다짐을 담았어요. 회사 로고인 파란 펭귄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Q. 장애인복지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고등학생 때 장애인에 관한 연구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어요. 뇌성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지원하는 재활 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였죠. 이를 통해 ‘걷는다’는 일상적인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희망이라는 것을, 또한 장애인을 위한 재활기술의 발전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장애인복지와 장애인 재활기술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결국 그 경험이 씨앗이 되었고, 창업으로 싹 틔우게 됐습니다.
Q. ‘소리마켓’은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요.
A.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최근에는 시각장애인도 스마트폰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추세이기에 그동안 개발한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을 모아 한 복지관을 찾았습니다. 일종의 시장 조사 차원이었죠.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게 바로 쇼핑 앱이었어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쇼핑 앱들은 이미지 위주의 상품 정보나 복잡한 결제 시스템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앱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상품의 이미지를 일일이 텍스트로 표기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에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게 상품 이미지 안에 표기된 각종 텍스트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하는 OCR(광학식 문자판독장치) 기능이었어요. 시험 삼아 ‘블루펭귄 앱’을 만들었고, 그 앱을 기반으로 여러 차례 보완을 거쳐 소리마켓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Q. 주변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예상보다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특히 OCR 기능이 주목받았죠. 시각장애인이 그간 쇼핑 앱 사용에서 얼마나 불편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물론 개선할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령 스마트폰을 처음 사면 사용법에 나오는 예시 문자메시지는 굳이 음성지원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데 초기 버전에서는 그런 게 전부 음성으로 출력되는 바람에 혼란스럽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상품 정보를 보는데 다소 엉뚱한 내용이 나온 셈이니까요. 그래서 상품 이미지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걸러내고, 구매 시 꼭 알아야 하는 부분만 지원하도록 OCR를 수정했습니다. 배송 추적이나 결제 방식의 다양화 등 개발 과정에서 놓친 부분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품이든 소비자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죠.
Q.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요.
A. 지난 6월 소리마켓 앱을 iOS 앱스토어에 출시했는데, 대형 프랜차이즈인 오가닉빅마트와 입점 계약에 따라 현재는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쇼핑몰 상품이 다소 제한적이에요. 차츰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가전제품 등으로 영역을 넓힐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술에서 한층 더 발전해야겠죠. 가령 어떤 제품을 구매할 때 상품 명세 등의 정보도 중요하지만, 색상이나 형태, 재질 등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잖아요. 특히 의류나 패션 소품 같은 건 더욱 그렇죠. 하지만 형태나 디자인을 OCR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애초에 그런 점까지 보강한, 좀 더 편리한 앱을 개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꾸준히 연구하다 보면 또 다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Q. 개발자로서 기쁨과 보람도 클 것 같아요.
A. “해냈다”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시각장애인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요. 그동안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온라인 쇼핑에 마침내 성공했다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어 기쁘다는 말에 감동합니다. 비장애인에게는 사소한 일일 수 있으나 장애인은 그것을 해냄으로써 자립 의지를 조금 더 키우게 된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기술이 조금 더 사려 깊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A.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거나 소외되는 계층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무인 결제기)만 봐도 그렇죠. 시각장애인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기술은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건데 누군가는 그 기술로 인해 삶의 질이 하락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런 기술혁신의 사각지대를 찾아 해소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회사가 안정권에 들어서면 상품의 테스트를 맡아줄 시각장애인도 모집할 계획입니다. (주)와들이 무리 중 가장 앞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역할을 하겠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기술혁신의 사각지대를 돌아볼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붐’을 일으키면 좋겠고요. 때론 비틀거리겠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겠습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53호 사람의 향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