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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 어머님 생신을 맞아 본가인 진주에 다녀왔다.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우리 본가는 정확히
말하면 진주에서 산청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면 나오는 명석면이다. 산좋고 물좋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도 좀 있고 해서 본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성철스님 생가에 다녀왔다.
재작년에도 한 번 가보았었는데 이번에도 웬지 그 유명하신 분에게 무언가 배울 것은 없는가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하였었다.
성철스님 생가는 산청군에서 그분의 업적을 기려 생가터에 劫外寺(겁외사)라는 절을 지어 기념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생전의 소박한 의복과 유품, 그리고 가르침을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성철스님은 본명은 '이영주'이고 1912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하였다. 장남으로서 결혼도 하고 딸도
두었으나 부친의 엄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 25세 때인 1936년 3월 해인사에서 승려
하동산(河東山)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55년 비구(比丘)와 대처(帶妻)의
분규가 일어났을 때 해인사 초대 주지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어 그해 동안거(冬安?에서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問)을 했으며,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다. 1981년에는 한국 선불교의 주요특징으로
지적되었던 지눌(知訥)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선문정로 禪門正路를 펴내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성철스님은 생애 엄격한 수행으로 유명했다.
6.25전쟁 뒤에 스님은 안정사 앞 골짜기에 초가 세 채로 된 토굴을 짓고 '천제굴'이라고 이름하여
그곳에서 참선에 면려했다. 그때에 근처의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고, 스님의 법문을
듣고는 발심하여 출가하는 일이 잇달았다. 스님은 이 곳에서 처음으로 신도들에게 그 유명한 삼천배를
시키기 시작했다. 스님을 만나려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재벌이든 장관이든 누구 할 것 없이 먼저 부처님
앞에서 삼천배를 해야 했다.
성철스님은 그 수행의 예봉과 다문박식으로 제방 선원에서 명성이 자자해졌다. 특히나 지금도 널리
이야기 되고 있는 그 유명한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은 큰 화제가 되었다. 눕지도, 자지도 않는
장좌불와 정진은 동화사 금당에서 견성한 뒤로 여덟 해 동안 줄곧 이어졌다. 스님은 그 여덟 해
동안에 밤중에도 잠은 커녕 졸음으로 고개 한 번 떨구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때인가 도봉산
망월사에서 하룻 밤을 지낼 때였다고 한다. 그날 밤도 여느 때처럼 장좌불와로 밤을 지새는데,
마침 망월사에 머물고 있던 춘성 노스님이 "저 철 수좌가 정말 소문대로 눕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면서
좌복 위에 꼿꼿이 앉아 지새는가?"하여 문에 구멍을 뚫고 날이 새도록 지켜보았다고 한다. 과연 소문대
로 좌복 위에서 꼼짝도 않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감탄하여, 그 때부터 춘성 노스님도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장좌불와 수행을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스님은 1955년 겨울에 대구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 성전암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그뒤로 십년 동안
한번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십 년에 걸친 동구불출(洞口不出)', 스님은 퇴락한 성전암을 수리하고
는 그 둘레에 철조망을 둘렀다. 그렇게 둘러친 철조망 안에서 일체의 바깥 출입을 삼가면서 스님은 수
많은 불경과 조사어록을 공부함은 물론, 과학과 수학 같은 학문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다. 바깥에서
는 불교정화라는 이름으로 대처승과 비구승의 투쟁이 한창일 때, 스님은 시류를 멀리한 채, 한국 불교의
진정한 내적 정화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고 있었으니, 곧 뒷날 '성철 불교'라 일컫게 된 독보적인 불교이
론과 실천 논리를 확립한다. 스님은 1993년에 그 유명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란 가르침을 남기
고 82세로 생을 마쳤다.
나는 여기서 성철스님이 왜 그렇게도 유명한가를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싶다.
첫째는 혹독할 만큼의 철저한 자기성찰과 수행이었다. 진리에의 깨달음을 위한 처절한 수행은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정도였다. 둘째는 성철스님이 나름대로 주창한 '돈오돈수'라는 성불에의
접근법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단 한번에 불심의 이치를 알아 구극의 깨달음에 도달하여 더 이상
의 수행이 필요없는 경지를 말한다. 반면에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깨닫고 나서도 계속 수행하여 깨달음
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본래 돈오의 성불론은 선종에서 주장되었다. 즉 미망과 깨달음은 한 생
각의 차이이니 본성이 단지 일념에 상응하여 중생의 자아가 바로 본심을 보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 돈
오의 성불론이다. 그런데 돈오점수란 그렇게 한 순간에 깨달았다 할지라도 완전한 깨달음이란 순식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불도를 차례대로 닦고 행하여 점차적으로 향상하여 완성된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완
전한 깨달음인 돈오돈수와 깨닫고 나서도 계속 깨달음을 닦아야 하는 돈오점수의 차이는 선종의 수행론
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나는 돈오돈수라는 접근법에 대해 매우 놀라운 점을 발견한다. 돈오돈수라는 성불론은 선종에서
비롯되었지만 법화경의 즉신성불과 아주 가깝게 접근해 있다고 느껴진다. 성철스님은 자해불성의 경지에
가깝게 접근하여 즉신성불의 원리를 어느 정도 깨닫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성철스님의 불법철학에 대해 몇가지 비판을 하고자 한다.
먼저, 자신만의 깨달음의 만족에 그쳤다는 점이다. 스님의 일생동안의 행적을 볼 때 거의 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면려했다. 그런데 혼자만의 깨달음에 그친다는 것은 대승교가 아니라 소승교에
불과하다. 조금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보면 스님이 수행했던 선종은 이전권교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종인지과(從因至果)'이다. 종인지과란 인을 좇아 과에 이른다는 뜻이다.
즉, 석존이 깨달았다고 하는 그 성불의 인을 쫓아 끝없는 수행끝에 성불(成佛)이라고 하는
과(果)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석존이 어떤 수행과정을 거쳐서 어떤 깨달음을 열었는지
몰라 그것을 알고자 평생을 바쳐 계율을 지키면서 명상에 잠기며 그것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도달하는 곳은 깨달음을 열었다고 하는 결과일 뿐이다. 즉 관념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떠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무념, 무상이라는 것이다. 구식론에서 제8식의 아뢰야식까지의 모든 편견과 탐욕과 그릇된 마음들
을 모두 초월한 경지에 섰을 때 회득할 수 있다는 원리이다. 그것을 위해 '회신멸지(灰身滅智)라고 하여
자신의 오염된 몸뚱아리와 탐욕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지식을 모두 없애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
선의 수행은 바로 그것을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이것은 생로병사의 고뇌로 가득차 있는 현실세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초월적인 경지에 도달하고 나면 그야말로 어떤 것에
도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는 아득히 먼 얘기일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님이 평생을 바쳐 추구한 그 종인지과의 노력은 오로지 진정한 결실은 없는
공허한 관념의 유희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석존이 궁극적으로
남기고자 했던 法은 '종인지과'가 아니라 종과향인(從果向因)이다. '종과향인'이란 ' 果를 쫓아서 因으로
향한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果는 불성을 즉시에 용현하는 것이고 因은 민중구제 활동,
즉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다.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에는 석존이 성불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이
설명되어 있다. 그것을 '삼묘합론'이라고 한다. 그 중 최고 핵심적인 내용이 '아본행보살도(我本行菩薩
道)'이다. 나는 본래 보살도를 수행해서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문저(文底)에 '南無妙
法蓮華經'가 비침되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석존도 바로 이 南無妙法蓮華經를 불러서 부처가 되었다.
(따라서 서방극락정토에 있다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도를 수행한다고 할 때의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사바세계의 중생의 생명상태이다.
따라서 보살도를 행하는 범부인 중생의 생명에서 깨달음인 불계를 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천, 성문, 연각, 보살, 불계의 십계의 생명에서 불계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머지 구계의 중생의 생명 속에서 용현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허공에 뜬
구름같은 추상적인 부처만의 깨달음의 공간이라고 하는 세계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의 주
인공은 부처가 아니라 바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다. 이 범부들이 손쉽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구계를 단절하고 초월하여 불성을 얻는다는 것과 구계 그 자체로 불성
을 용현한다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그다음으로, 그러면 깨달은 부처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깨달음에 만족해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민중구제의 사명을 생애에 걸쳐 해나가는 일이다. 果인 불성을 생명에
용현하여 그것으로 열심히 민중구제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즉 果인 불성을 곧바로 용현하여 그 다음에
는 성불의 원인이었던 민중구제의 보살도를 행하는 성불의 因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종과향
인(從果向因)'이라고 한다. '종인지과(從因至果)'와는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잘 생각해보시라 과연 어떤 것이 더 위대한 일인지? 평생을 깨달음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명상에만
잠겨 있는 게 위대한지, 아니면 즉시로 불성을 용현하여, 깨달은 부처가 궁적적으로 해야 하는
민중구제의사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위대한지.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성철스님의 철학과 수행은 분명히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철스님은 자신만의 깨달음의 추구에 그쳤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세계에 펼쳐서 민중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제자를 육성하지 못했다. 민중구제의 사명감에 불타는 제자를 육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그의 사상은 세월이 갈수록 아무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점점 잊혀져만 가고 있다.
실제로 내가 스님의 생가를 방문하고 있던 그 시각에 오직 서너명의 다른 방문객들만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뿐, 광포의 힘찬 기운은 찾아볼 수 없고 적막감만이 멤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래도 성철스님을 높이 사고 싶은 것은 그분이 법화경 적문의 제법실상 정도를
깨달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가르침 속에는 모든 삼라만상이 꾸며 갖추지 않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바로 묘법의 당체이다 라고 하는 제법실상의 일부분을 깨달으셨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법화경에서 최종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후영추산, 즉 허공회에서 묘법을 듣고 깨달은 다음에 다
시 영추산으로 돌아와 묘법에의 대확신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고뇌의 사바세계에서 민중을 교화하며 살
아가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성철스님은 분명 허공회에서만 머물렀던 것이다. 불계는 구계의 중
생의 생명 속에서 현현되어야 되는 것인데... 스님은 구계의 중생의 생명을 떠난 곳에서 허공에
떠있는 무념, 무상, 무아의 깨달음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선종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싶다.
선종은 기본적으로 '교외별전 불립문자(敎外別傳 不立文字)'라고 하여 경전을 거부하고 문자 자체를
부정한다. 왜냐하면 최고의 진리는 결코 문자나 어떤 사물로 나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문자로 그것을 표현하는 순간, 그 본질(진리)은 이미 100%의 순도를 나타내는 진리의 표현이 아니라
는 것이다. 따라서 경을 공부하기 보다 스승이 남긴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眼, 耳, 鼻, 舌, 身의 오식(五識)과 제6식인 의식, 제7식의 말나식 그리고 제8식인
아뢰야식까지를 전부 벗어나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단계로 보았다. 그 경지에
오르면 일체의 탐욕과 세속의 고뇌에서 벗어나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문이나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참선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해 다음과 같이 엄하게 파절이 된다.
「지금의 법화경의 문자는 모두 생신(生身)의 부처인데 우리들은 육안(肉眼)이기 때문에 문자라고
보느니라. 예컨대, 아귀는 항하를 불이라고 보고, 사람은 물이라 보며, 천인(天人)은 감로라고 보니
물은 하나이지만 과보에 따라서 보는 바가 각각 다름이라. 이 법화경의 문자는 맹목자(盲目者)는
보지 못하고 육안(肉眼)은 흑색이라 보며 이승(二乘)은 허공이라 보고, 보살은 가지가지의 색(色)
이라 보고, 불종(佛種), 순숙(純熟)한 사람은 부처라고 뵈옵느니라. 그러기에 경문에 가로되
'만약 능히 가지는 자는 곧 불신(佛身)을 갖는 것이니라'
「부처는 문자에 의해 중생을 제도하시느니라」
「문자는 바로 일체중생의 심법(心法)이 나타난 모습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글로 나타낸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씨를 알고 相을 보는 일이 있노라. 대개 心과 色法은 不二의 法이므로
쓴 것을 가지고 그사람의 빈복(貧福)의相을 보느니라. 그러므로 문자는 바로 일체중생의
색심불이의 모습이니라. 그대가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그대의 색심도 세우지 말지니라」
이 내용은 만약 문자를 부정한다면 자기 자신의 육체와 마음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신 부분이다. 그러니까 부정하는 자신의 육체와 마음으로 참선을 한들
그것 자체가 벌써 올바르지 못하다는 뜻이다. 실로 대성인께서는 문자를 부정하는 선종에 대해
천마의 소위라고 엄하게 파절하셨다.
한편, 수행의 단계인 52위 중에서, 51번째 단계인 등각에 오른 보살은 부처와 거의 동등한
수준의 보살이다. 그런데 이 등각의 보살이 마지막 단계를 거쳐야 진짜의 깨달음의 단계인
52번째 묘각의 문으로 들아갈 수 있는데, 그 마지막 단계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명자즉(名字卽)의
범부'이다. 등각에 오른 보살도 명자즉의 범부의 위치에서 곧바로 묘각(부처의 위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많은 참선을 한 수행자도
결국 최종 단계에서는 '명자즉의 범부'에서 그 다음의 묘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이 '명자즉의 범부'라는 것이 아주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단계의 수행을
거친 사람이라면 적어도 굉장히 신비스러운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법한데 의외로
말이나 문자를 통해 그것을 그대로 믿는 범부의 입장에서 성불의 단계로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승려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명자즉(名字卽)이란 처음으로 정법을
듣고서도 일념삼천의 理를 말(名字)이나 문자에 의해서 이해하고 정법을 의심없이 믿는 位를 말한다.
결국은 등각에 이러른 수행자들이 등각의 단계까지 올랐을 때 그다음에는 명자즉에 의해
묘각의 경지로 들어갔다. 그 '묘각'이라고 하는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는 그러니까 법화경의 문자만
듣고 보아도 그대로 100% 믿고 깨달음을 연다는 것이다. 참으로 세상사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인간이 갖다붙인 이름에 의해 서로 인연을 맺고 결과를 만들어간다. 그 이름을 이전경에서는 특히 참선
을 주로 하는 선종에서는 불립문자라 해서 그 문자를 부정하고 마음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이치
의 본질을 깨닫는다고 하는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도 어찌 보면 무한히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가운데 잠시 모습을 현현해 나타내고 있는 임시의 가제에 불과할 것이다. 가제란다면 그 자체도 본질은
아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조차 부정해야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고 하는 속에 그 부정한 육
체와 마음으로 참선을 하고 명상을 해본들 그곳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을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 세상사는 전부 임시로 갖다붙인 이름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그것으로 다 통하고 있다.
자신이 임시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자신이듯이. 사람의 이름도 다 틀린다. 그러나 중제와 공제와
가제와 셋이 아니라 여시본말구경등해서 결국은 하나인 것이다. 결국은 같은 주파수가 흐르고 있는 것
이다. 따라서 우주 만물이 모두가 남김없이 묘법의 당체이다. 따라서 어떤 이름도 묘법의 당체가 된다.
우리의 생 자체가 假의 연속일진대 그러나 그 속에 엄연히 하나의 일관된 空이 흐르고 있다.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름이라고 하는 임의의 假, 그 속에는 엄연히 일관된 하나의 空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최고의 의미이다. 아니 이렇게밖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것 외에 그 어떤 것에 진실의 의미를 부과해야 한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초월한 곳에 무언가 진실한 삶이 있다면 이 우주 자체가 아예 그런 것들이
없이 탄생되어졌어야 했을 것이다. 아니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좋았을 것이다.
임의로 만들어낸 문자와 숫자에 의해 각종 수학계산이 이루어지고 기계가 만들어지고 온갖 생활용품이
만들어져 사용되어지고 심지어 우주선까지 만들어져 우주를 탐구한다. 이쯤 되면 더이상
이런 것들을 假로 지정하여 무의미하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 것 이외에 더 무엇을 추구해야
한단 말인가? 성철스님의 육체도 임시의 모습을 나타낸 가제였지만 그 임시의 몸둥아리 속에서 8식의
아뢰야식 보다 더 깊이 있는 최고의 불성을 보았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자신의 임시의 몸둥아리에서 묘
법의 당체를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것 자체에 최고의 의미를
부여해야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계의 생명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구계의 생명 속에서 어떻게
하면 불성을 용현시킬까 하는 것이다. 사바세계의 구계를 떠나려는 순간에 이미 그것은 교묘하고도
사악한 마성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더 분석해보고 싶은 부분은 많지만 오늘은 이정도에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해본 성철스님의 생가가 너무 적막하여 발걸음을 돌리는 마음이
무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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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심오함이 뭍어납니다.
처가가 산청이라 매우 정감이 가는 곳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