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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개의 청년학교 텃발활동 (사진: 박진영 제공) |
먹는 것
지난해, 할 일이 없어지자 당황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때로는 밤을 새우며 일했던 바쁜 일상이 사라졌다. 자의적이었으나 적응되지 않았다. 유치원이 시작이었을까? 매일 어딘가에 가고, 다시 집에 돌아오고, 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준비 기간 없이 취직을 하고 지난해까지 꼬박 30년을 바쁘게 지냈다. 30년 만에 마침내 찾은 자유지만, 바빴던 과거는 코끼리 발목에 묶인 쇠사슬처럼 나를 묶어 자유의 몸인 현재의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조련사들은 아기 코끼리가 걷기 시작할 때 족쇄를 묶어 훈련시키는데, 코끼리가 장성하여 힘이 생겨도 족쇄에 길들여져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는 이야기)
바쁘게 지내온 시간들이 퇴직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바쁠 때 가장 소홀히 했던 일이 떠올랐다. 바로 먹는 일이다. 아침은 걸렀고 점심은 적당히 때웠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니 식당에서 1인분의 식사를 하면 늘 속이 더부룩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단골집의 오징어볶음이라도 오후에는 늘 내 속을 힘들게 했다. 일이 휘몰아치게 바쁜 날이면 간단히 컵라면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하루 대여섯 잔의 카페인으로 단기적 에너지를 쥐어짜내야만 했던 일들도 많았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피자, 치킨 아니면 자장면 정도. 먹는 일에 신경 쓸 시간조차 없이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2018년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N개의 청년학교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 I am what I eat〉에 참여했다. 총 5회로 진행된 이 학교는 먹는 삶에 대한 강연, 텃밭 활동, 김장하기, 발효음식 만들기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이 학교에 참여하는 동안 매일 먹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과제였다. 오랜만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설렘으로 열심히 기록했다. 꾸준히 기록하며 깨닫게 된 것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퇴사 후 시간이 많아졌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단순히 많이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전히 먹는 것을 소홀히 여기고 있었다. 바쁠 때도, 시간이 많아 허둥댈 때도 먹는 문제는 늘 이렇게 뒷전이 되었다. 삶은 소중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바쁠 때나 할 일이 없을 때나 나를 구성하는 직접 요인을 소홀히 여긴 결과는 당연했다. 급속도로 체중이 줄고 체력은 떨어져서 저녁 8시만 되어도 피곤해지기 일쑤였다. 내 삶을 구성하는 기초단위인 먹는 일상을 돌보지 않을 때면 내 삶 전체가 황폐해지는 듯했다. 일상적인 일이 늘 바쁘다는 이유에 쫓겨 소홀해지자 삶 전체가 차근차근 무너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겨우 자라는 것 같이 척박한 삶을 이어가던 중 만난 이 프로그램은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편의점 도시락 매출이 껑충 뛰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편의점 도시락 판매 규모는 2013년 779억 원에서 2018년 3,500억 원으로 5년 사이 4.5배 급성장”했고, 올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의 규모는 4천억 원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돈이다. 일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려면 7~8천 원 정도, 조금 더 특별한 날에는 1만 원이 훌쩍 넘는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요즘 같은 때, 평범한 날 보통의 점심은 저렴하고 간단한 것으로 때우게 되는 이유에 주머니 사정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기자는 1만원 안팎의 점심식사 대신 “한 끼 비용의 절반으로 다양한 도시락을 즐길 수 있다”는 직장인 김진혁 씨와의 인터뷰도 소개했다. 이렇듯 우리의 먹는 일상은 돈과 연결된다.
먹는 것만큼 직접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것은 없다. 내가 햄버거를 먹으면 햄버거는 내가 된다. 먹는 것은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 그 이상이다. 햄버거 내의 성분이 내 몸 속 어딘가 다른 요소로 전환되어 축적된다. 곧 나의 신체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시간과 돈에 쫓겨 먹는 일상을 소홀히 하는 삶,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사는 곳
최근 이사를 했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햇빛 잘 드는 2층 전셋집으로 옮겼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아침 기상 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의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반지하에 살 때는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 아침마다 힘이 들었다. 특히 하체가 무거워서 발을 딛고 일어설 때면 종종 수영장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일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2주 전 이사한 집은 규모를 줄여 옮겼지만, 삶의 만족도는 두 배로 높아졌다.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인용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말이다. 이 영화가 계기가 되어 이사를 결심했다. 상황에 쫓겨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 여겨졌다. 이 영화는 건축가 슈이치와 그의 아내 히데코의 평범한 일상은 담은 다큐멘터리다. 90세 넘은 노인이 세월을 아끼며, 자신의 삶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작은 새들과 나무, 식물들까지 돌보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특히, 최저비용 최대생산만을 목표로 하는 당시 일본 건축 사회에서 대규모 주거단지 대신 바람의 길을 모색하고 숲의 자리를 마련하는 슈이치와 히데코의 모습은 진짜 사는 곳에 대한 가치를 말해주었다. 목적했던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시작한 일에 대한 책임으로 그는 그 지역에 땅을 마련하고 집은 작게 짓되 나무를 심어 원래의 모습을 되돌려주려 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로 하나둘 채워갔다.
영화를 보면서 머리 한쪽에 우리 집이 떠올랐다. “자신의 일터와 집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필요했을 뿐. 결혼을 하며 형편에 맞춰 구하려고 보니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집을 찾는 것은 원시적 불능에 가까웠다. 돈에 맞추자니, 주 활동 지역에서 멀어졌다. 주어진 예산 범위에서 구하려고 애를 썼는데, 부동산에서 보여주는 집들은 대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정류장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을 한참이나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소음을 막아주는 창문과 깨끗한 화장실이면 먼 거리도 감내할 마음이 있었으나,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집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다. 집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비용의 규모를 처음으로 체감했다. 햇빛을 포기하고 튼튼한 창문이라는 조건 하나를 겨우 건진 결혼 후 첫 집이었다. 알뜰살뜰 살면 된다는 생각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집기는 친구들과 동네 이웃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렇게 하나둘 만들어간 생활공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 한구석에 동경 - 정원이 있는 조용한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삶의 공간을 자신이 뜻한 바대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생활이, 혹은 현대의 생활이라는 것이 우리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 나무 대신 공기청정기로 깨끗한 공기를 얻고, 지하수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정수기로 정제된 물을 공급받는다. 숲의 바람 대신 에어컨으로 바람을 만들고, 이웃의 온기 대신 멀리서 끌어오는 전기와 가스로 집을 덥힌다. 내 삶의 보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으로 가득 채워져 간다. 게다가 집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의 대가는 가혹할 만큼 저렴하다.
지난 2월 국토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수도권 임차 가구의 월평균 주거비는 68만7천 원, 월평균 교통비는 11만7천 원이라고 한다. 특히 월평균 소득이 200~300만 원인 그룹의 월 주거비와 교통비는 29.6%로 집계되었다. 월평균 소득 1천만 원 이상인 그룹의 결과(9.9%)와 비교했을 때 약 3배 정도의 차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월든 호수로 갈 수도 없고 자연인같이 산으로 갈 수도 없는 생활,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 사진: 박진영 제공 |
사람들
일을 그만두자 너무 일상적이어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삶의 모습을 하나둘 뜯어보게 되었다. 시간이 생긴 뒤에야 비로소 이런 호사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처음엔 당황했고 지금은 적응됐다. 매일 아침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집을 나서서 서점, 도서관, 멀티플렉스 같은 곳을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나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내 삶을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은 사람들이었다. 세계는 진일보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적인 질문에 함께 마음을 모아 고민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일하는 현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도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계산기를 두들기며 결혼이 정말 내 삶에 이득인지 따져 물었을 때에도 성경이 말하는 ‘한 몸 됨’의 의미를 직선으로 말해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삶의 중요한 굴곡마다, 사람들은 길모퉁이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너무 바빠서 시간에 쫓겨 다닐 때에도, 시간이 너무 많아서 막막할 때도, 어김없이 나타나 묻고 답하며 서로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요즘에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물음이 가장 반갑다.
여유는 내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무엇보다 막연한 행복보다 잘 사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차근차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 많다. 좋은 몸을 만들어가기 위해 좋은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농부가 직접 기른 채소와 작가가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사러 시장에 간다. 작년에는 직접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나무를 다듬어 책장도 만들었다. 올해는 동네 이웃들과 함께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벼룩시장을 기획하고 있다. 내 몸의 소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귀 기울이고 집중한다. 평소 쳐다보지도 못했던 책들을 집어 읽는다. 대가 없이 좋아서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돈이 되지 않는 일도 덥석 뛰어든다. 경험을 넓히자 세계가 확장되었다. 흘려버렸던 일상을 주워 담고 꿰어서 보배를 만드는 기분이다.
물론 불안하다. 경력이 단절되어 사회로의 재진입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쉼 없이 찾아온다. 모든 일이 잘될 거라는 섣부른 희망은 품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스스로를 탐구하며 보내는 나날이 허투루의 시간은 아니라는 믿음을 단단히 할 뿐이다. 건축가 김현진은 《진심의 공간》에서 “충분한 시간을 쏟아부어야 우리는 각자 가지고 태어난 재능과 개성을 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319쪽).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조금 더 시간을 쏟아부어 보기로 한다. 그의 말대로 “산다는 것은 앉을 시간을 갖는다는 것, 주소를 새긴다는 것, 동반자를 얻는다는 것”이라면, 나는 함께 모여 앉는 자리를 만들며 살고 싶다. 그래서 꾸준히 앉을 시간을 내어 일상의 공간을 가꾸고, 사람들과 함께 잘 살고 있는지 묻고 서로 답하며 살고 싶다.
▲ 된장 만들기(사진: 박진영 제공) |
박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