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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30년 가까이 매일 6시간 이상씩 참선하는 이유 글 | 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인지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기도를 한다는 것은 방법과 신앙의 대상이 다를 뿐이지 자신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는 것은 같은 것이라 생각하여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아내는 불교신자로서 사찰의 선원이라는 곳에서 1년에 9개월 이상, 또 하루에 8시간 이상 참선을 한다. 이미 이렇게 한 지가 13년째이고, 그전 10년 동안에는 출퇴근 방식으로 하루 6시간씩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참선을 했다. 또 그 전에는 집에서 참선을 했다. 참선이라는 것이 밖에서 바라보기에는 가만히 앉아서 말 없이 앉아있는 것이고, 때 되면 밥해서 먹여주고, 시간되면 잔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이나 아무 것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일이라고 할라 치면 기껏해야 ‘울력’이라고 가끔 한두 시간 정도 청소하고 풀 뽑고 겨울엔 눈 치우고 이외의 일이란 없다. 그런데 이렇게 편하고 좋은 일인 것 같은데 쉽지 않는 일인가 보다. 왜냐하면 부모형제를 버리고 부처의 진리를 깨달아 보겠다고 출가하신 스님들이 전국적으로 10000 명에 이르고 불교신자가 1500만 명 또는 그 이상이지만 1년에 결제라는 형식으로 선방에 방부(등록함) 드리고 참선하는 스님이 약 1000명 내외밖에 안 된다. 또 그중에 10년 이상 빠짐없이 공부한 스님은 전국적으로도 100~200명 정도이고 신도들의 숫자도 이보다 다소 적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스님 10000명, 신도 1500만 명이 부처님의 진리를 얻겠다고 각자 방법에 따라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은 제가 절이나 스님들과 교류한지 35년이 됐지만 아직 듣지 못했다. 이렇게 힘들고 성공 가능성도 적고 성공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실적이 드러나지도 않는 것을 왜 하는 것일까? 스님들이 교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궁금하고 이해할 수 없어서 아내에게 물어 봤다. “왜 도대체 참선을 하느냐?”고. 살면서 모든 게 자신의 마음대로 안 되고, 더구나 남편은 더욱 마음대로 안 되고, 자식은 더더욱 마음대로 안 되니, 이 모든 것이 마음대로 안 되니 자신의 마음이나 편안히 해보겠다고 시작한 것이란다. 그러데 신기한 것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자신의 마음과 골 때리는 자식과 도저히 내 마음 같지 않은 남편이 참선을 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앉아 있은 지 10년쯤 되어 마음이 편안해지니 얼마 전부턴 조금씩 조금씩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자신의 마음과 비슷해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꼭 교향악단 연주가 끝나고 관객이 흥에 겨워 각자 자기 멋대로 박수를 치다가 박수가 끝날 땐 공명을 일으킨 듯 혹은 꼭 약속한 듯이 같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끝내듯이.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참선을 하니까 뭐가 좋더냐고. 우리 엄마는 공부를 못해도, 사고를 쳐도 웃지는 않아도 ‘화’를 안냈다. 항상 얼굴이 편안했다. 친구 엄마는 난리가 나는데 우리 집은 안 그래서 처음에 이상했는데 엄마가 화를 안내니까 엄마한테 야단맞을 생각을 안 하게 되어 마음이 편하고,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되니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니까 엄마에게 미안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인 나는 어떻게 느낄까. 솔직한 심정을 밝히면 생활은 다소 불편하다. 하지만 집에서 빈둥거리는 자식 보다(진짜 공부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자식이 예쁘듯이 기쁘다. 그리고 가정과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고맙다. 그리고 집을 비운 아내의 눈을 피해서 타락할 기회는 많지만 타락할 수 없다. 이유는 아내가 가정을 위해 그 힘들다는 참선을 10년 이상하면 그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타락의 기회가 오는 순간, 아내의 고요한 선방에서 참선하는 모습이 떠오르면 감히 도저히 타락을 할 수가 없다. 아내가 자진해서 고백하는 참선의 이유는 이렇다. “자신의 욕심대로 안 되니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해보고 때려도 보고 온갖 유난을 떨어 봤지만 자신만 점점 더 괴롭고 자식과 사이에 또 남편과 사이에 감정만 더 나빠지고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는 것이다. 어쩔 수없이 자신이 변하기로 마음먹으니 자식과 남편이 변하더라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몰라도 사랑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꿈을 꾼다면 기도하라”며 타이르듯 하는 말이다. ‘도’는 닦아가는 과정에 꼭 ‘도’를 이루어도 이루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인지 모른다. ‘도’는 그냥 ‘도’를 닦는데 가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식한 나의 해석으로는 ‘도’는 그냥 사람이면 누구나 가는 길이려니 이렇게 생각하며 나도 따라 선방에 간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아내가 30년 가까이 매일 6시간 이상씩 참선하는 이유|작성자 솔로 |
전 재산을 날려도… 사고를 쳐도… 아내는 성모 마리아보다 위대하다?
글 | 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2018-04-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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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 음식남여, 즉 먹고 마시고 남녀 간에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하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는 사이 순간순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의 일들이 방송 연속극보다 더 역동적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각자 집안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권력이 있든 없든 돈이 많건 적건 지식이 있든 없든 떠나서 예외 없이 우리 모두는 이런 삶의 중심에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역할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오죽하면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엄마가 이민족이면 그 아이는 유대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아버지가 이민족이어도 엄마가 유대인이면 그 후손은 유대인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만큼 어머니의 가정에서 아이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어떤 군 지휘관은 어떤 중요한 일을 병사에게 맡길 때는 편부슬하의 아이 보다는 편모슬하의 병사에게 맡긴다고 한다. 왜냐하면 엄마 손에서 자란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여성들이 여권신장이니 남녀평등이니 여성해방운동이니 페미니즘 등을 사회적으로도 강조하지만 여자로서 엄마의 가치, 아내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는 여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자는 무식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신성에 가까운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안타깝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 보다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우리 집의 여자로서 나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가치를 한번 생각해보자.
예로부터 여자는 시집을 잘못 가면 자신의 인생만 망치지만 남자는 여자를 잘못 만나면 3대가 불행해진다고 했다. 또 명문가가 되려면 훌륭한 며느리를 3대에 걸쳐서 맞으면 되고, 또 일단 명문 가문이 되고 나도 3대에 한 명 정도는 훌륭한 며느리가 있어야 그 명문가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며느리는 시부모의 뜻을 이어서 집안을 지킬 수 있고, 남편을 내조하여 훌륭한 남편을 만들고, 훌륭한 자식을 낳아서 위대한 인물을 여럿 키워내기 때문에 3대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시어머니께서는 계신지 안계신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 어머니이신 시어머니께서는 왕비 열전의 주인공 못지않은 머리와 인생경험으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아내를 왕비열전으로 몸소 느끼도록 해주셨다. 아주 약한 걸로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우리어머님은 매일 새벽 4시30분경 일어나서 세수하시고 성경 공부를 하신다. 이 때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아침에 한문투성이 성경, 영어고어성경, 일어 성경을 동시에 펴놓고 며느리를 불러선 성경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며 영어성경을 뜻에 맞게 뉘앙스를 설명해보라고 하고선, 번역을 못하면 야단이라도 쳤으면 좋으련만 혀만 끌끌 차고 돌아앉는다. 조용한 방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혀 차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며느리는 그래도 속이 없는 양 “어머니 죽 드세요”라고 아양을 떤다.
마리아의 남편께서는 큰돈을 벌어다 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진 몰라도 전혀 사고치고 집안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젊은 시절 전 재산을 날리는 사고를 쳐도 아내는 큰 소리로 야단 한 번치고는 다시는 같은 일로 책망하는 일이 없었다. 여자문제는 내가 사고 칠 수도 없는 것이 내가 생긴 것도 시원찮지만 아내는 “밖에서 얼굴 팔리게 사고치지 말고 아예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니 더 무서워서 사고 칠 수조차 없었다.
마리아께서는 아이를 하나만 낳았고, 그 아이가 별로 사고도 안치고, 사춘기를 지나 자라면서 강해지고 지혜로워져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가 되었지만 우리 집의 아이는 사내아이가 둘이고, 자라면서 강해지기는 했지만 오락실 가고 담배 피다 걸려서 부모님 호출 당하고 하느님의 은혜는 느낄 틈도 없이 부모가 학교에 불려 다니기 일쑤였다. 아마도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저는 자식을 키우면서 무지개도 보고 지옥도 보았고 아비규환도 보았고 천당과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는 도솔천 내원궁도 보았다.
더구나 공부 안하고 말썽 피우는 자식 사랑하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으니 아내는 제가 본 지옥과 아비규환도 천국으로 여기고 도솔천 내원궁을 삼고 살았으니 지금이 있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식을 키우며 지금도 1년 12개월 중에 9개월을 하루에 9시간씩 기도를 하는데, 아무리 어리석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위대한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과 꿈이 점점 굳어지니 아내는 나이 들수록 점점 장군 같이 되어간다. 결과는 아내 마음속의 무지개를 죽부인 삼아 기다려 볼 일이다.
부족한 나에게는 변함없는 아내이고 어리석은 자식의 어머니이고 별난 시어머니의 며느리이니 내 입장에선 성모 마리아 보다 더 위대하다. 사실은 나의 아내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내는 성모 마리아 보다 위대하지 않을까 싶다
성형 말리는 강남 성형의과의사
‘성선설’과 ‘성악설’을 아이에게 물으니… 어린 아들은 어른의 스승
글 | 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2018-03-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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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8살, 작은 아이가 5살 때의 일이다. 여름휴가 때 가족들이 부산에 계신 어머니에게 휴가 겸 재롱떨러 내려갔다. 휴가 2~3일 후 평소에 밝은 집사람이 시어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이 어둡다. 근데 아이들은 부모 심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장난이 점점 심해진다. 평소 같으면 타이르고 말았을 정도인데 시어머니에게 욕먹은 것의 응어리가 있었는지 애들 엄마가 드디어 폭발했다.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엄마를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말을 시켜도 대답안하기, 눈 마주치지 않기, 옆자리 안 앉기 등등…. 한참을 왕따 당한 아내가 시어머니 앞이니 한껏 품위 있게 아이들에게 타이르기를 “너희들이 너무 장난이 심하니 엄마가 너희를 야단친 것이 아니냐”고 핑계를 댄다. 5살짜리 막내가 엄마에게 따지듯 항의한다. “야단치는 것과 신경질 내는 건 다르지 않는냐.”
5살짜리 손자의 엄마에 대한 항의에 한껏 고무된 시어머니는 “그래 야단치는 것과 신경질 내는 건 다르지”라며 애들을 거든다.
순간적으로 아내의 인격은 시어머니 앞에서 그만 무너졌다. 다행히 아내가 아이들에게 사과하면서 마무리됐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아내가, 없는 살림에 꼭 필요하지도 않는 비싼 식기세트를 박스로 사왔다. 아무리 싸게 샀다고 하지만 집안 형편으론 큰돈이기도 하고 우리 가족끼리 식사할 땐 필요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저런 비싼 식기를 써야하는 요리를 대접할 손님이 우리 집에 몇 번이나 초대받아서 오겠냐”고 잔소리를 하니 평소에 조용하던 아내가 그날따라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다가 그만 말싸움이 심해 거친 소리가 나오게 됐다. 폭풍이 지나고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씩씩거리며 내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30분쯤 지났을까? 4학년짜리 아들이 노크하고 들어온다. 아버지에게 할 말이 있단다.
“아버지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비싼 그릇 산 것도 엄마가 잘못했고, 꼭 필요하지 않은 걸 산 것도 엄마가 잘못했고, 평소 우리집에서 저런 비싼 그릇 쓰지도 않는 것도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모르시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아버지는 맞는 말씀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엄마도 여자라는 걸 모르셨습니다.”
순간적으로 난 4학년 아들에게 할 말을 잃었다.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큰 아이 때문에 사회수업이 엉망이 돼서 우리 아이를 특별 가정지도를 부탁하기 위해 학부모가 학교에 오셔야 된다고 한다.
내용인즉, 사회시간에 선생님께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시는데 우리집 아들이 장난치다가 선생님께 걸렸다. 선생님이 당연히 수업 내용을 안 듣고 장난쳤다고 생각하고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아들은 “선한 사람 입장에서는 ‘악’이 ‘악’이고, 악한 사람 입장에서는 ‘선’이 ‘악’이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더욱 화가 나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니, “선악은 사람이 필요에 따라 편한 대로 만든 것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수업분위기가 초토화 됐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화가 나서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냐”고 야단치니, 아들 대답이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하고 어떻게 하면 악을 행할 수 있느냐”고 되물어서 그만 사회담당 여선생님이 울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선생님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아버지인 나는 아이에게 뭐라고 지도해야할까?
내 주제엔 아이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첫댓글 정말 훌륭한 가정이네요. 찬탄합니다.